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전한前漢 ( BC206~25 ) - 한漢의 제8대 소제,

지식창고지기 2009. 6. 1. 10:10

제8대 소제 昭帝


무제는 죽기전 광광, 김일제, 상관걸을 불러놓고 조첩여가 낳은 막내아들 불릉을 후계자로

삼을 것이니 잘 보필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뒤 불릉이 8세의 나이로 제위에 오르니 이가 소제이다.

이 무렵 좌장군으로 있던 상관걸의 아들 상관안은 곽광의 사위가 되었는데, 후일 자신의

딸을 소제의 황후로 들여보냈다.

그리되자 상관걸과 상관안은 황후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되었고, 그에따라 권세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다.

하지만 곽광의 권세에는 미치지 못했다.

곽광은 곽거병의 동생으로서 열 살때부터 무제를 섬겼고, 무제의 총애또한 매우 두터웠다.

한편 개장공주는 자신의 정인인 정외인에게 봉작을 내려주길 원했으나, 곽광은 이에 강력히

반발하였다.

그런일이 있은후 개장공주는 곽광을 원망하게 되었고, 이 일은 곽광에게 불만을 품은

자들이 연왕 단과 짜고 곽광을 몰아내려는 음모를 꾸미기에 이른다.

개장공주의 집에서 주연을 베풀어 곽광을 초대한 후 매복시킨 군사로 그를 죽이고, 이어

소제를 폐하고 연왕 단을 황제로 새로이 옹립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사전에 누설되어 크게 노한 소제는 상관걸, 상관안, 상홍양 등을 잡아

들이 일족을 몰살시켰다.


이후 제위 13년 만인 21세에 생을 마감하고, 그 뒤를 창읍왕이 이었다.


창읍왕은 매우 광폭하여 수시로 노래를 부르며 신하들과 술을 마셨다.

그러면서 부녀자를 희롱하고 호락이 싸움을 즐긴다든지, 소제가 총애하던 몽(夢)이라는

후궁과 정사의 쾌락에 흠뻑 빠졌다.

이때는 소제의 상중이었는데, 상중에도 주지육림에 빠져있었다.

이를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곽광은 정식으로 즉위식을 거행하지 않았음을

이용하여 창읍왕을 폐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