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대 성제 成帝
기원전 33 ~ 기원전 7
성제는 젊은 시절 경서를 좋아하여 학문에 힘썼으나,
후에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이로인해 태자의 자리에서 폐위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한편성제는 즉위초기에 정치에 열중하는 듯 하였으나, 시간이 지나자 제 버릇대로
주색에 빠져들었다.
성제는 외삼촌인 왕승을 안성후에 봉하고 왕담, 왕상, 왕립, 왕근, 왕봉시 등 다섯
사람에게 관내후의 직위를 주었다.
그뒤 허황후를 폐하고 조비연이라는 여인을 황후로 삼았다.
조비연은 매우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는데, 그녀가 태어났을때 그녀의 집은 너무도
가난하여 부모는 그녀를 내다 버렸다.
그런데 3일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살아있었기에, 이상히 여긴 부모는
그녀를 다시 데려다 키웠다.
조비연은 성장하여 성제의 누님인 양아공주의 하녀로 들어갔다.
그녀는 하녀였으나 몸놀림이 매우 날렵하여 양아공주는 가무를 가르쳤다.
과연 그녀는 무용에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제비처럼 날렵하다’ 라는 뜻으로 ‘비연(飛燕)'이라 불렀다.
그후 성제가 누님집에 들렀을때 비연의 춤을보고 첫눈에 반하였는데, 양아공주는 조비연
뿐만아니라 그녀의 여동생도 함께 궁중으로 보내었다.
조비연 자매는 모두 절세미인으로서 노래에 춤에 뛰어났다.
얼마후 조비연은 황후의 자리에 올랐고, 동생은 소의에 올라 자매가 황제의 사랑을 다투게
되었다.
그리하여 조 자매는 십수년에 걸쳐 성제의 총애를 독차지 하였는데, 이들자매는 질투심이
워낙강하여 성제는 도무지 다른여자를 가까이 할 수 없었다.
또한 그 긴 세월동안 두 자매 모두 아들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조비연은 꾀를 생각해 내었다.
당시는 후궁의 처소에 남자 출입이 철저히 금지되었는데, 후궁에 물자를 실어나르는
독차(犢車 - 작은소가 끄는 마차)가 있었다.
황후가 특별히 주문한 물건이라는 증명서만 있으면 문을 지키는 병사들도 검사하지
못하였다.
조비연은 그 독차에 십여명의 젊은 청년들을 들여보내어 간통을 행했다.
하지만 끝내 임신을 할 수는 없었다.
이후로도 자매는 황제를 독차지 하였는데, 그러던 어느날 황제가 급사하였다.
방중약을 과음하였기 때문이었다.
시의가 하루 한알만 먹이라고한 약을 조소의는 술에취해 일곱알을 모두 먹여, 황제를
급사케 하였다.
그러자 아들의 급사에 의혹을 품은 황태후는
“폐하의 서거에 대해 철저히 조사하라.”는 명을 내렸고, 이내 조소의의 책임이 드러났다.
그리하여 조소의는 자결하였다.
성제는 제위에 오른지 26년만에 죽고, 그 뒤를 애제(哀帝)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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