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고초려
인재를 맞아들이기 위하여 참을성 있게 노력함. 중국 삼국 시대에, 촉한의 유비가 난양(南陽)에 은거하고 있던 제갈량의 초옥으로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데서 유래한다
삼고초려의 대강은, 조조에게 어머니가 사로잡힌 서서가 유비의 곁을 떠나면서 자신의 절친한 친구인 제갈량을 천거합니다. 제갈량은 당시 '복룡'이란 별명으로 더욱 유명했으며, 당시 형주에 머물던 석학 사마휘는 '복룡과 봉추 둘 중 하나만 얻으면 천하를 평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할 정도로 명석함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유비는 겨우 얻은 제대로 된 참모인 서서를 잃었기에 제갈량을 바로 찾아갔다. 하지만 두 차례나 만나지 못했고, 세 번째 찾아 가서야 제갈량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제갈량을 설득 등용하는데 성공한다. 우리는 이를 두고 '삼고초려'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의문을 해결하기 전에 우리는 '삼국지연의'가 어디까지나 '나관중'이란 뛰어난 작가에 의해 창작된 소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소설이기에 극적인 재미를 높이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역사가 아닌 민간의 야담이나 야사를 포함시키기도 한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삼국지연의'를 제외한 이 부분을 다루고 있는 역사서에서는 '삼고초려'장면이 없다. 그리고 그 당시를 대상으로 한 역사서 중 가장 정확하다는 '삼국지(일명, 정사 삼국지)'에는 서서가 조조에게 가기 이전에 이미 제갈량이 유비군에 합류해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삼고초려'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싶으시다면 나관중의 사상에 관해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관중은 한족 정통 왕조가 지배하던 시절에 살았으며, 당시에는 '촉한정통론'이 지배적이었다. 나관중 역시 '촉한정통론'을 숭상하는 인물 중에 한 명이었다.
'촉한정통론'이란 혈통적으로 따졌을때 한(漢) 황실의 핏줄을 이어받은 유비가 건국한 '촉한'이야 말로 한나라의 뒤를 이은 국가이며, 조조의 위나 손권의 오는 황실에 반기를 든 반란세력일 뿐이다. 라는 주장이다. 그런 의식을 갖고 있는 나관중은 삼국 중에 가장 약했던 촉한을 어떻게든 미화하려 했을 겁니다. 그래서 나타나는 것이 유비, 관우, 제갈량의 미화이다.
'삼고초려'장면은 유비의 인품을 미화하는 한 편, 후일에 뛰어난 활약을 보이는 제갈량을 더욱 돋보이기 위한 장치로서 마련된 허구의 이야기일 뿐으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마도 서서의 천거를 통해 유비에게 등용된 것은 사실인 듯 하지만, 삼고초려 같은 일은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유비(현덕)가 제갈공명을 만나러 갔을때 최주평(공명의 친구)이 岂不闻‘顺天者逸,逆天者劳’,‘数之所在,理不得而夺之;命之所在,人不得而强之’乎?” 라 하였다. 이는 하늘의 뜻에 따르는 자는 편안함을 누릴 수 있고 하늘의 뜻을 위배하는 자는 고생만 하고 공이 없다는 소리도 들어본 적 없단 말인가. 하늘의 뜻이 있는 한 어떠한 도리든 하늘의 뜻에 위배되어서는 아니 되고 운명이 있는 한 사람은 억지를 써서는 아니 된다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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