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라의 종교개혁 (에스라서 7-8 장의 주해와 적용)1)
배정훈 (대전신학대학교)
I. 서론
에스라서 7-8장의 연구는 에스라-느헤미야서 전체에 대한 이해와 밀접히 관련되어있다.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각각 서로 다른 이념을 보여주면서도 최종 편집자에 의하여 통일성 있는 한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에스라는 성전과 제의의 회복을 다루고 있고, 느헤미야는 모세의 율법에 기초한 공동체의 건설을 다루고 있다. 2) 에스라는 성전의 재건 후에 개혁을 시작하고, 느헤미야는 공동체의 건설 후에 개혁을 시작한다. 에스라-느헤미야서의 최종편집은 이 둘의 개혁의 목표를 율법-성전 공동체의 건설에 두고 있다. 유대 공동체는 에스라의 종교개혁으로부터 시작하여, 느헤미야서에서 율법 공동체의 형성을 통해 개혁을 완성하게 된다.
에스라서의 전체적인 주제는 성전과 제의의 회복으로서 문학적인 구조는 A. 회복의 준비 (에스라 1:1-11); B. 성전과 기명의 회복시 귀환한 자들 (에스라 2:1-70); C. 제의의 회복과 성전재건 (3:1-6:22); D. 에스라의 종교개혁 (에스라 7:1-10:44) 으로 나눌 수 있다. 마지막 단락인 에스라의 종교개혁의 초점은 이미 재건된 성전의 회복이다. 회복의 중심에는 에스라와 그와 함께 귀환한 백성들로 나타난다. 에스라의 종교개혁의 일부인 에스라서 7-8장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1) 회복의 주체자로서 제사장이요 학사인 에스라 (스 7:1-10); 2) 회복의 근거로서 아닥사스다의 조서 (스 7:11-28); 3) 회복의 공동체 (스 8:1-20); 4) 회복을 향한 귀환: 기명의 운반과 은혜로운 귀환 (스 8:21-35).
II. 분석적 관찰
1. 회복의 주체자로서 학사와 제사장인 에스라 (7:1-10)
에스라서 7장은 1-6 장과 “이 일 후에”라는 말로 연결되어 있다. 성전건축이 주전 515년이고,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돌아온 시기를 주전 458년으로 본다면3) 6장과 7장 사이는 약 57년의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에스라서는 전체적으로 성전의 회복을 강조하는데, 에스라서 6장까지 제의는 회복되고 성전은 완성되었고, 7장 이하는 성전회복의 남은 과제를 어떻게 이룰 것인가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
첫 번째 주제는 누가 성전개혁을 이룰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에스라서의 답은 제사장이요 학사인 에스라가 개혁을 추진할 합법적인 인물임을 명시한다. 그리하여 첫 번째 제시하는 것은 에스라의 족보를 통하여 그가 대제사장의 후손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스 7:1-5). 에스라는 아론의 16대손이라고 소개하는데 이 구절은 역대기상 6:1-15와 비교할 때, 아사랴, 아마랴, 아히둡, 사독을 중복(haplography) 되었다고 보고 생략했으며, 형식적으로는 에스라는 스라야의 아들인 여호사닥을 의미하지만 포로기가 시작될 때에 포로로 끌려간 여호사닥과 에스라를 같은 인물로 볼 수는 없다. 만약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을 보여주려고 한다기보다는 에스라가 포로로 끌려간 대제사장의 후손중의 하나임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또한 본문에서 에스라가 실제 대제사장직을 수행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은 채 아론의 후손이라는 자료만 삽입하였는데, 이 족보를 이곳에 배치한 사람의 의도는 에스라가 포로로 잡혀간 대제사장의 후손으로 대제사장직은 수행하지 않지만 종교개혁을 추진할만한 자격이 있는 합법적인 자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사실상 제사장으로서의 에스라의 역할은 나타나지 않고, 제사장의 직무는 오히려 율법의 권위아래 종속되어 있어서, 에스라의 임무는 율법에 대한 것으로 집중되며 제사장의 신분은 율법에 대한 직무 안에 숨겨져 있다.
에스라의 또 다른 권위는 그가 학사라는 것이다. 원래 학사라는 말은 페르샤에서 법에 유능한 관리이다. 동시에 본문에서 학사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자이다 (7:6). 즉, 본문 전체에 흐르고 있는 것은 에스라가 종교적으로 모세의 율법에 익숙하며 동시에 페르샤의 법에 익숙한 관리임을 보여준다. 6절에 따르면 왕에게 구하는 것을 받는 자인데 그 이유는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받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에스라가 페르샤의 학사로서 일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 에스라가 제국에서 고위 관리로 일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런데 본문에서 암시하는 또 다른 것은 모세의 법과 페르샤의 시민법이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페르샤가 식민지를 통치하는 방법중 하나는 왕이 인정하는 종교법을 제국의 법으로 채택하여 통치의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그리하여 에스라가 다루는 법은 제국의 법인 시민법인 동시에 유대 백성의 종교법인 것이다. 에스라는 바벨론 디아스포라에 속한 자로서 왕의 명령이고 동시에 유다의 종교법인 모세의 율법으로 유다 지역을 개혁하기 위하여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이다. 이와 같이 7장의 서두에서 에스라는 제사장이요 동시에 학사임을 보여준다.
7장에서 “올라가다”라는 단어가 반복됨으로 (스 7:6, 7, 8, 13, 28), 에스라서 1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는 고레스의 조서의 성취를 강조함으로 (스 1:1-3), 에스라서 전체가 일정한 통일성이 있음을 보여 준다. 7장은 에스라의 귀환에 대해 전체적으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이스라엘 자손,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노래하는 자들, 문지기들, 느디님 사람들이다(스 7:7). 둘째, 그들의 예루살렘으로의 여행은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을 떠나서 오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도착함으로 완료된다. 셋째로, 이 개혁가운데 에스라의 사명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사역이 학사인 에스라의 주임무이며, 장차 후기 유대교의 뼈대를 이루는 행위들이라고 볼 수 있다.
2. 회복의 근거로서 아닥사스다의 조서 (스 7:11-28)
11절 이하에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소개하는 구절은 (7:12-26) 아람어로 씌여졌는데,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처음으로 에스라를 학사요, 제사장으로 소개한다. 7장 1-10절에서 에스라가 제사장 후손임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하나님의 율법과 제국의 법에 능통한 학사임을 보여주는데 이제는 에스라를 공공연하게 학사와 제사장의 직책을 가진 자로 설명한다. 둘째로, 아닥사스다의 조서는 고레스의 조서의 정신을 따라 변방을 강화하고, 식민지의 종교전통을 격려하는 페르샤의 식민정책의 일관성을 보여준다. 고레스의 조서를 따라 모든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감을 허락하고, 이미 건축된 성전 관리를 위하여 바벨론 백성, 유다 백성, 심지어 왕의 내탕고를 이용하여 헌물을 제공하게 한다. 바벨론에서 헌물로 받은 은금은 성전건축비용으로 사용되고, 강 서편 고지들은 성전건축을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제공하고, 하나님의 전에서 일하는 자들에게는 면세가 허락된다. 셋째로, 이전보다 발전된 형태로 유다와 예루살렘을 통치하는 제국의 법이 곧 유다의 종교법임이 확인된다. 이 조서는 한편으로 하나님의 법을 준수할 뿐 아니라 왕과 왕자의 나라의 평화를 기원하도록 한다. 특히 제국의 통치법은 유대의 전통적인 종교법과 일치하여 종교법의 수행을 위하여 행정권을 발동하여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사형, 정배, 가산적몰, 투옥 등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 (7:26).
이러한 아닥사스다의 조서는 페르샤 왕이 작성한 것으로 귀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지만 저자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가능하게 하신 것이라고 고백한다. 그리하여 27-28 절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한다. 하나님의 목적은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하는 것이다. 에스라서 전체는 유다의 성전의 회복인데, 1-6 장에 나타난 제의회복, 성전건축에 이어서 7장에서부터 건축된 성전을 정결케 하며 제의제도가 수립되고 백성들이 정결케 되는 개혁의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 마지막 단계의 행위를 “여호와의 전을 아름답게 할 뜻" 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은 ”에스라로 왕과 그 모사들의 앞과 왕의 권세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신다.“라고 고백한다. 결국 이 구절은 에스라를 비롯한 유다의 지도자들이 예루살렘에 올라오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운 역사하심으로 고백하는 것이다. 이는 에스라의 일관성 있는 표현이다.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사역을 잘 수행하는 것은 ”하나님 여호와의 도우심을 입은 것이며“(스 7:6), 바벨론에서 길을 떠나 예루살렘에 이르게 된 것도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은 것“이다 (스 7:9).
3. 회복의 공동체 (스 8:1-20)
회복을 위해 하나님이 권위를 부여한 페르샤 왕의 허가를 얻어 내고, 다음에 밝히는 것은 누가 돌아왔는가 하는 것이다. 제사장, 다윗의 자손, 그리고 열두 지파, 그리고 레위인들이다. 이러한 민족의 통일성은 귀환을 위하여 중요한 요소이다. 첫 번째 자료는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 자들의 목록이다 (8:1-14). 명단은 제사장의 자손, 다윗의 자손 그리고 열두 족속의 자손들이 나열된다. 이러한 명단은 에스라 2장, 에스라 10 장, 느헤미야 7장, 느헤미야 10장 등에서 반복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에스라 8장의 명단이 2장의 명단을 그대로 복사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다음의 사실에서 확인된다. 첫째, 8장에서는 제사장들이 아론의 혈통을 계승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반해, 2장에서는 사독의 혈통을 따르고 있다. 둘째로, 바핫모압 가문은 예수아의 혈통만 대표하고 있고, 요압의 혈통은 독립된 지위에 있다. 에스라 2장에서는 두 가문이 모두 바핫모압 가문에 속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명단에 빠진 것은 레위인들의 명단이다. 이스라엘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열두 지파, 그리고 제사장과 다윗의 후손, 레위인을 강조하는 역대기의 경향에 맞추기 위해 레위인의 추가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에스라는 민족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레위인들을 소집한다 (8:15-20). 에스라가 무리를 모아 삼일간 장막에 유하면서 살핀 결과 레위인들이 하나도 없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닥사스다의 조서에도 이미 “이스라엘 백성과 저희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 이 언급된바 레위인이 빠진다는 것은 에스라가 이루려는 성전회복의 불완전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미 초기 귀환자들중에도 제사장 4289명인데 반하여(스 2:36-39) 레위인들은 가수와 문지기를 포함하여 341명에 지나지 않았으며(스 2:40-42), 다시 에스라의 소집에는 레위인들이 아예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공동체는 제사장 나라로서 제사장과 레위인들의 지위의 격차가 크기 때문에 레위인들에게 고국으로의 귀환은 별로 매력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레위 자손을 소집하기 위하여 에스라가 보낸 사람은 일곱명의 족장들과 두 명의 명철한 사람이다 (8:16). 이중에 일곱명의 족장가운데에는 엘라단이 세 번 반복되고, 야립이 두 번 반복되지만 서로 다른 사람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명철한 사람이란 말은 포로후기 시대에 교사를 의미하였다. 느 8:8-9에는 이 단어가 율법을 해석하거나 가르치는 자를 의미한다. 17절에서 맛소라 본문에 따르면 에스라의 말을 전한 사람들이 “잇도와 그 형제 곧 느디님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때 잇도와 그 형제를 느디님 사람과 동격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가 확실치 않다. 그런데 문맥상 잇도와 그 형제를 성전 노예로 보기보다는 유명한 인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리하여 “잇도와 그 형제 그리고 느디님 사람들“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저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사람들을 데려왔는데, 말리의 자손중 명철한 사람, 세레바와 형제들 십팔명, 다른 형제 이십명, 그리고 느디님 사람중 이백여명을 데려왔다.
4. 회복을 향한 귀환: 기명의 운반과 은혜로운 귀환 (스 8:21-35).
하나님의 성전을 채울 일군이 모두 소집된 후에 에스라는 출발을 위한 금식을 선포하였다. 포로이전에 금식은 희생제물을 동반하고 죽은 자를 위한 애도에 사용되기도 하고(삼상 31:13; 삼하 1:12; 12:16, 21-13), 개인이나 국가적인 위기에 이루어졌다 (삿 20:26; 렘 14:2; 36:6, 9; 시 35:13; 69:11; 109:24). 포로후기에는 더 보편화되어 예루살렘의 멸망을 슬퍼하는 의식이 되었으며 (슥 7:2-7; 8-19; 사 58:3-9), 죄의 고백을 동반한 기도로 사용되었다 (느 9:1; 단 9:3; 대하 20:3). 금식은 자신을 죽음에 처하게 만듦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기다리는 형식이 되었다 (왕상 21:27-29; 사 58:3-9; 레 16:29-34). 아하와 강가에서의 금식은 예상되는 위험 앞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는 의식이다. 에스라는 “우리와 우리 어린 것과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간구하였다. 특별히 느헤미야와 달리 왕에게 보병과 마병을 구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에스라는 평소에 왕에게 말하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 권능과 진노를 베푸신다” 하였다고 말한다. 즉, 에스라 일행이 귀환한다는 것을 왕도 알고 지켜보고 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고 평소에 고백해왔기에 누가 보아도 험난한 여행을 보병과 마병없이 단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들의 믿음은 단지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보호가운데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기에 위험한 여행을 믿음으로 강행하기를 결심하며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응낙하심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그들의 귀환길의 중요성은 또한 은금과 기명의 운반이다. 성전의 회복을 위해 채워져야 할 것이기에 반드시 운반해야 했다. 은금과 기명 운반자로 선정된 세레바와 하사바는 18절에 따르면 레위인으로 여겨진다. 이들과 형제 십인이 따로 세워졌다. 저들이 관리하여야 할 보물은 은금과 기명인데 이 보물들은 왕, 모사, 방백들, 이스라엘 무리들이 드리는 것들이다. 저희들이 달아보니 은 육백 오십 달란트, 은 기명 일백 달란트, 금 일백 달란트, 금잔 이십개, 놋 그릇은 두 대였다. 이 헌물들을 운반할 책임자로 지장된 자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먼저 선발된 자들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들이다. 또한 그들이 날라야 할 기명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채울 것이기에 거룩한 것이며, 은금들도 하나님께 즐거이 드린 것이기에 거룩한 것이다. 선발된 자들은 거룩한 기명과 은금을 옮겨 성전에 채울 때까지 거룩함을 삼가 지켜야 했다. 그리하여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은금과 기명을 하나님의 성전에 가져갈 준비를 하였다.
지금까지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정은 다음과 같다. (1) 정월 초하루 예루살렘으로 가기를 원하는 사람 모두에게 발송된 호출장. (2) 모으는데 사흘이 걸림 (8:15). (3) 레위인들을 찾고 준비하는데 더 시간이 걸림. (4) 정월 십이일 아하와 강을 출발함 (8:31). (5) 오월 일일에 예루살렘 도착 (7:9). (6) 도착하여 사흘을 기다림 (8:32). (7) 도착한지 나흘되는 날에 성물을 인계함 (8:33). 예루살렘으로 가는 일정에 하나님께서 도우신 일은 신앙고백적으로 서술된다: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스 8:31). 예루살렘에 도착한지 나흘만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앞에서 므레못에게 인계하였다. 34, 35 절은 이전까지의 일인칭에서 삼인칭으로 변화된다. 편집자는 귀환한 자들은 익숙한 용어인 “사로 잡혔던 자의 자손”이라고 부른다. 특히 귀환한 자들이 희생제를 드림이 강조되었다. 동물희생제가 드려진 경우는 성전봉헌 직후의 귀환자들이며 (스 6:17), 히스기야에 의한 솔로몬 성전의 재봉헌(대하 29:20-24)시에 이루어졌다. 속죄제를 드린 이유는 귀환 전의 상태를 부정한 상태로 보기 때문이다.
III. 설교를 위한 적용
1. 에스라의 종교개혁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이스라엘의 역사가운데 에스라-느헤미야의 개혁은 향후 기독교 시대까지 이르는 유대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줌을 알아야 한다. 이 개혁을 추진하는 세력은 아직 포로 상태에 있고 그 포로를 허락하신 것은 하나님이시기에 개혁은 포로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래서 개혁은 삼단계로 이루어진다: 고레스의 조서를 통한 회복의 허락, 성전의 회복, 공동체의 회복. 에스라-느헤미야의 개혁은 역사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에는 이후의 유대 공동체를 향한 모델로서 제시된다. 고레스의 조서의 반포는 유다 공동체의 귀환이 제국의 이익을 위하여 허락된 합법적인 것임을 선포하고 그 유효성은 느헤미야의 개혁에 이르기까지 나타난다. 유대인들의 제국의 한계 안에서 그들은 제국의 법이자 자신들의 종교법인 모세 오경을 근거로 변화된 상황에 맞는 개혁을 추진하였다. 개혁의 첫 단계는 제의회복이며, 성전의 완성과 성전회복이며, 이어서 느헤미야가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신명기 정신에 따라 공동체의 건설을 이루는 개혁을 추진한다. 에스라 7-8 장은 이와 같이 에스라-느헤미야 전체 안에서 개혁의 일부인 완성된 성전의 회복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개혁이란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회복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며, 신앙인들의 과제는 개혁의 제 단계가운데 당대에 절실하게 요구되는 개혁을 완수하는 것이다.
2. 개혁은 한계와 공동체의 삶의 정황에 맞는 전통에 따라 추진된다. 종종 개혁이 한계를 무시하고 일시적인 감정이나 급진주의를 표방하다가 개혁이 다시 개혁의 대상이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에스라-느헤미야의 개혁은 고레스의 조서로부터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60-70년에 걸려 이루어진 것이다. 제국의 지배를 받는 입장에서 개혁은 제국의 의심이 제거되어야 가능하다. 그리하여 제국으로부터 합법성을 얻기 위해 노력하였다. 에스라는 왕과 그 모사들의 앞과 왕의 권세 있는 모든 방백의 앞에서 은혜를 얻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에스라는 개혁이 제국으로부터 오해받지 않도록 노력하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레스의 조서의 연속성가운데 개혁을 추진한다. 또한 제국의 법과 유다의 종교법을 동일화시킨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에스라는 제국의 한계 안에서 종교적인 전통에 따라 개혁을 추진한다. 개혁의 성공을 위해 개혁의 한계와 가능한 종교적인 전통을 면밀하게 조합해야 한다.
3. 개혁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전통아래, 하나님이 선택한 주체자의 지도력을 따라 모든 백성이 참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에스라는 성전회복의 주체자로 선택받는다. 그의 자격은 바로 제사장이요 학사이다. 제사장의 족보를 나열하는 것이 형식적인 혈통만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제사장이 오랜 전통아래 담지해온 성결과 중보자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성전이 회복되지 않음으로 나타나는 백성의 죄와 허물을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중보자로 나아갈 수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학사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능통한 자가 되어야 한다. 학사는 신앙이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진리를 가르치고, 행하도록 돕는 일에 유능한 사람이어야 한다. 제사장과 학사로서의 기능을 능숙하게 수행할 수 있는 자야말로 거리낌 없이 성전회복을 인도할 수 있는 자이다. 또한 개혁은 모든 백성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를 나누는 파당정신으로는 개혁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레위인들이 빠진 개혁은 제사장들의 특권을 조장하는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레위인들이 공감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모든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지체로 동참하고 모든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져야 한다.
4. 개혁은 상황을 보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생명을 걸고 나아가는 것이다. 개혁의 한계로서 공동체의 정서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반면에, 개혁의 때가 왔다는 확신이 오면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던져야 한다. 개혁공동체가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서야 하는 절대 절명의 자리가 있는 것이다. 그 자리가 바로 공동체의 믿음을 보이는 자리인 것이다. 그 순종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세상이 우리를 바라보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만드는 자리이다. 에스라는 왕의 허락을 받고 왕의 보병과 마병을 거느릴 수도 있었으나 그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여 안전하게 귀환에 성공한다. 개혁은 바로 하나님의 기적과 동행하는 자리이다. 그분이 역사하시도록 자리를 비워드리고 믿음의 결단을 행하는 자리이다. 인간의 눈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그 자리는 우리가 좌절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요구하는 자리이며, 우리의 믿음에 응답하는 하나님의 기적은 공동체에게 개혁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하고, 세상을 향하여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만드는 살아있는 신앙의 공동체를 만드는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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