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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지구촌현장]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살란 말인가”

지식창고지기 2009. 7. 8. 16:28

[2005지구촌현장]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살란 말인가”

 

1. 뉴올리언스

 

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지나가고 있다. 지난 여름 미국의 허리케인 참사, 가을 한복판에서 벌어진 파키스탄의 지진 재앙 등 올해는 유난히도 대형 자연재해가 많았다. 또 런던 지하철테러와 파리 방화시위는 평온한 사회 내부에 얼마나 큰 폭발력이 잠재돼 있는지를 보여줬다. 올 한 해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됐던 뉴스의 현장들은 지금 어떻게 변해 있는지, 그곳에선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는 무엇인지를 살펴본다.

지난 3일 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은 조지아 애틀랜타를 찾았다. 이곳에 피난와 있는 뉴올리언스 시민 2200여명에게 고향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뉴올리언스는 당신들을 기다린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한 주민은 “어디로 돌아간단 말인가. 나는 이제 집도 없고 차도 없다.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뭘 하면서 살아간단 말인가”라고 항의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8월30일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를 물에 잠기게 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영향은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뉴올리언스 권역 인구의 절반 가량인 50여만명이 고향을 떠나 미 전역에 흩어져 있다. 일단 외관상으로는 모든 지역의 물이 빠졌다. 마지막까지 물에 잠겨 있던 시내 동쪽의 제9구역은 지난 1일 처음으로 주민들에게 개방됐다. 그러나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지역이 남아 있다. 수돗물이 공급되지만 얼마나 안전한지 장담할 수 없다. 지금까지 공식 사망자는 1300여명, 이중 200여명의 시신은 신원확인을 위한 디엔에이(DNA) 검사가 진행중이다.

뉴올리언스 시민들은 여전히 카트리나 상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루지애나대학 여론조사를 보면, 주민의 39%가 아직 분노를 삭이지 못하고 있고 53%는 우울함을 느낀다고 대답했다. 올 가을 뉴올리언스의 자살률이 전년에 비해 두배나 뛰었다는 통계도 있다.

카트리라는 미국사회 전체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을 계기로 1980년대 이후 미국사회가 외면해온 빈부격차와 인종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 6일 미 하원에선 카트리나 피해복구를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다섯명의 현지 주민들이 증인으로 나왔다. 모두 흑인들이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홍수가 날 때까지) 시내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흑인들이었다. 이들은 무관심 속에 비참하게 죽었다. 이것을 어찌 인종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의원들에게 대들었다.

 

뉴올리언스 침수와 함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집권 2기도 물에 잠겼다. 이라크 뿐 아니라 국내 현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그의 지지율을 곤두박질치게 했다. 전세계에 미국의 치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부시는 참사 직후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뉴올리언스를 반드시 재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 남은 건 숱한 논란 뿐이다.

얼마나 강력한 허리케인을 견딜 수 있는 제방을 쌓을 것인가, 침수지역의 중금속 오염은 어느 정도인가, 침수지역을 모두 헐고 새로 집을 지어야 하나 아니면 보수를 해야 하나, 이런 모든 것들이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가장 강력한 5등급짜리 허리케인을 견딜 수 있는 제방을 지으려면 무려 320억달러가 든다. 의회는 벌써 천문학적 복구비용을 지원하는 데 조심스런 태도를 보인다. 지난 몇개월 만큼이나 불확실한 미래를 뉴올리언스는 헤쳐가려고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