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황 徐晃
? ∼ 227
조조 막하의 용장.
하동 양군사람으로 자는 공명(公明).
큰 도끼를 잘 썼다.
이각, 곽사의 무리들이 어가를 낙양을 옮길 때 양봉의 수하로서 나타나 용명을 떨쳐, 이를 본 조조가 꾀로 사로잡아 수하에 넣었다.
제법 사태를 볼 줄도 알아, 마초가 장안성을 뺏고 동관을 쳤을 때 적의 구원병이 왔다고 할 적마다 조조가 좋아하였는데, 그 뜻을 알아차린 사람은 그밖에 없었다.
과연 일선에만 몰린 마초의 병력은 뒤에 방비가 없어, 그는 후방의 퇴로를 쳐서 공을 세운 것이다.
관도 싸움에서는 사환과 함께 원소의 병량 수송대를 급습했다.
적벽대전 후 패배한 조조가 허도로 후퇴하자 조인과 함께 강릉을 지키며 추격군에 대비하였다.
219년, 관우가 형주에서 출병하여 조인이 지키던 번성을 에워쌌을 때도 지력과 무용으로 그를 쫓고 명성을 날렸다.
사마의를 따라 제갈량을 막으러 가는 도중, 맹달을 치다가 그가 쏜 화살에 이마를 맞아서 죽으니 그때 59세였다.
관직은 우장군.
사마소 司馬昭
? ~ 265
사마의의 둘째 아들. 자는 자상(子尙).
권모에 뛰어났으며 간흉하고 오만하기가 그 부형들보다 더 하였다.
군사 지위에도 역량이 있어, 형 사마사가 죽은 뒤 대장군이 되어 국정을 손아귀에 넣었다.
진왕이 되어 천자의 예악을 누렸는데, 담을 앓아 죽었다.
사마염이 진의 황제가 된 후 문제(文帝)로 추존되었다
사마사 司馬師
? ~ 255
위의 승상. 사마의의 장자로 자는 자원(子元).
얼굴이 둥글고 키가 크며 입은 모나고 입술이 두터웠다 왼쪽 눈 밑에 검은 혹이 도졌는데 그 위에 털이 숭숭 하게 나 있었다.
성질이 침착하고 병서에 통효하여 아비의 대를 이어 위의 정권을 잡아, 먼저는 강유와 국산에서 싸웠고, 동오를 원정하였다가 혹을 짼 자리가 터져 진중에서 죽었다.
사마염이 나라를 뺏은 뒤 경제(景帝)로 시호하였다.
방덕 龐德
? ~ 219
조조의 수하 장군.
본시 마초의 부하였다가 뒤에 조조 수하에 든 용장.
남안군 항도사람으로 자는 영명(令明). 용맹이 뛰어나 위교 싸움에서 조조를 위기에 몰아넣은 적도 있었고, 마초가 패하여 장로에게 의지했을 때도 행동을 함께 했다.
마침 병이 들어 그가 유비에게 항복할 때는 따로 떨어져 남아 있다가, 조조의 한중 침공 때 또다시 용감하게 항전하였다.
조조는 그의 용맹을 아껴 장로의 모사 양수를 뇌물로 매수하여 반간계로 고립시킨 뒤 꾀로 사로잡았다.
조조가 관우와 형주 양양성을 두고 싸울 때, 자원하여 관을 짜 지워 가지고 나가 싸우다,
주창에게 사로잡혔으나 굽히지 않고 죽음을 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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