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삼국(촉한) - 마속/마초/맹달/미방

지식창고지기 2009. 8. 9. 07:29

마속 馬謖

190 ∼ 228


촉한의 대장.

양양 의성사람으로 자는 유상(幼常).

마씨 5형제 중의 한 사람으로 제갈량과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던 마량의 아우다.

관직은 참군.


유비를 따라 촉에 들어가 각지의 요직을 역임했다.

유비는 임종이 '저자는 말이 실속보다 앞서니 중용하지 말라'고 하였던 것인데, 맹획 정벌 중에 칙사로 온 것을 만나 그의 식견을 듣고는 매사에 신임하고 부렸다.

제 1차로 위를 치러 출병할 때 사마의를 거짓소문으로 한 때 물러나게 함.


228년 봄, 가정의 요충을 지키게 해서 위의 명장 장합과 대결했다.

이것은 촉의 중원 진출을 좌우하는 중요한 싸움이었으나, 제갈량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가 대패하게 된 죄로 군율에 의해 처형되었다.

당시 촉한으로서는 인재가 모자라 그만한 장수도 아쉬운 형편이었으나,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그를 베니 39세의 아까운 나이였다.

그래, 그의 심경을 동정하여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유명한 성어가 생겼다.

 

 

마초 馬超

176 ∼222


촉의 장군.

서량태수 마등의 큰아들. 무릉 사람. 자는 맹기(孟起).

얼굴은 분을 바른 듯이 희고 늘씬한 키에 허리는 가늘고 어깨통이 넓어 '비단 마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무용은 절륜했으나 성질이 사납고 지모가 모자랐다.

 

아버지가 조조에게 속아 패하여 죽자, 양주에 근거하여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기동력있는 기마대를 소유하여 211년, 한수와 함께 장안을 뺏고 동관을 떨구어 용명을 날렸다.

적벽대전에서 패해 서쪽으로 온 조조군과 동관에서 싸움에서는 허저와는 백여 합을 싸워 승부 나지 않았으며 조조를 추격하여 붙잡을 뻔 도 하였으나 경륜이 모자란 때문에, 친삼촌같이 여겨오던 한수를 조조의 반간을 받고 의심하여 죽이려다, 이루지 못하고, 방덕, 마대만을 데리고 도망하여 농서의 임조를 향해 갔다.

 

오랑캐 땅에서 힘을 길러 2년만에 다시 재기해 왔으나, 하후연의 대군에게 패하여 또다시 방덕·마대만을 데리고 한중으로 장로를 의지해 갔다.

그리고 거기서 가맹관을 지키던 장비와 마주쳐 수백 싸워 또다시 용명을 떨쳤으며, 그를 아낀 제갈량이 뒤로 장로의 모사 양송을 매수하여 난처한 입장에 세우고 이회가 항복을 권하는 바람에 마침내 성도를 포위한 유비군에게 항복했다.

마초가 항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 용맹을 무서워하던 성도성내가 동요되어 10일도 되지 전에 성을 내주었다고 한다.

 

이때 형주를 수비하고 있던 관우가 그가 어떤 인물인지 가르쳐 달라고 제갈량에게 편지를 보내자 제갈량은 마초를 장비와 겨룰 만한 용장이라고 칭찬했다.

소위 오호대장(五虎大將)의 한 사람으로 극진히 대우받았으나 제갈량이 위를 치기에 앞서 서평관을 지키다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호는 위후(威侯).

 

 

맹달 孟達

? ∼ 228


유비 수하의 장수. 자는 자경(子慶).

익주의 유장의 수하였으나 주인이 암약하여 부지 못할 것을 한탄하고, 장송, 법정과 함께 외부에서 영웅을 불러들일 것을 획책하였다.

법정과 같이 우부 풍미현사람. 유봉, 이엄과 사이가 좋았다.

유비에게 협력하여 의도태수가 되어 곽준을 천거하고 가맹관에서 장로의 침입을 막았다.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자 상용관의 수비를 맡았는데 관우가 형주에서 패해 궁지에 들었을 때, 구해 주지 않은 죄를 추궁 당하게 되자 조조군에 항복하여 신성태수에 임명되었다.

그랬다가 뒤에, 사마의가 동병 하여 촉한을 칠 때, 내응 하여 옛 죄를 씻으려 하였으나 도리어 사마의에게 간파되고 동지로 믿었던 신탐의 손에 죽었다.

 

 

미방

? ~ 222


미축의 아우로 역시 유비의 처남이다.

관우 막하에서 남군태수가 되었으나, 양양 공격을 앞두고 실화한 죄로 매를 맞고 강릉(江陵)의 수비로 좌천되었다.

형주가 함락되자 부사인과 함께 동오 손권에게 항복하였다가, 유비가 복수의 군대를 일으켜 연전연승해 나오자, 관우 잡은 장본인인 마충의 목을 베어 가지고 다시 그에게로 돌아갔으나, 관우를 구하지 않은 죄로, 세자의 외숙이건만 죽음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