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 진, 5호16국 - 하/하夏 왕조계보/전진/전진前秦 왕조계보

지식창고지기 2009. 8. 9. 11:37

 

중국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의 하나(407∼431).

흉노(匈奴)의 혁련발발(赫連勃勃)은 산시성[陝西省]의 북부에서 세력을 얻어, 407년 천왕대선우(天王大單于)라 칭하고 나라를 대하(大夏)라 하였다.

417년 장안(長安)을 공략하였고, 418년 관중(關中)을 평정해서 제위(帝位)에 올랐다.

최대 판도는 산시 ·간쑤[甘肅]를 장악하여 북위(北魏)와 대립하였으나, 발발이 죽은 뒤 북위 태무제(太武帝)의 공격을 받고 멸망하였다.

 

 

16국(十六國)

하(夏)


무열제(武烈帝) 407~425

혁연창((赫連昌) 425~428

정(定) 428~431

 

 

전진

前秦


중국의 5호(五胡) 16국(十六國) 중 하나(351~394).


저족의 추장 부건(符健)이 세웠다.

부진이라고도 한다.

부건은 간쑤 성[甘肅省] 친안[秦安] 부근에 살던 백마저라는 종족의 추장이었다.

350년 아버지 포홍(蒲洪)이 죽자 부건이 대를 이어 무리를 통합했는데, 한때 왕호를 쓰지 않고 진조(晉朝)의 관작을 받았다.

당시 장안(長安)에서 진나라의 옹주자사(雍州刺史)를 자칭하며 세력을 갖고 있던 두홍(杜洪)을 공격하여 쫓아낸 뒤 장안에 들어가 그곳을 도읍으로 삼았다.

부건은 자신을 천왕대선우(天王大禪于)라고 칭하고 국호를 대진(大秦)으로 정했으며(351), 이듬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부건이 죽자 아들 부생(?生)이 대를 이었는데, 동족인 부견(?堅)이 그를 죽인 뒤 황제의 칭호를 버리고 대진천왕(大秦天王)으로 불렀다(357).

부견은 현명하고 중국의 학문에 정통하여, 한족 명문의 지지를 얻었다.

그는 한족 왕맹(王猛)을 중용하여 정무에 참여시켜 저족계 호족(豪族)의 횡포를 막았으며, 관제를 정비하고 상공업자를 억누르는 한편 농업을 장려했다.

또한 학교를 열었으며 종종 대학에 나와 학문을 장려했다.

또 수도 장안에서 각지에 이르는 도로를 만드는 등 국력을 증진시키는 데 노력하여, 전진은 한때 5호시대에 가장 융성한 왕조가 되었다.


382년 부견은 보병 60만과 기병 27만을 일으켜 동진(東晉)을 섬멸하고 강남을 병합하려고 했으나, 페이수이 전투에서 대패하여 장안으로 도주해왔다.

이때문에 강북의 통일이 깨지고, 부견은 후진(後秦)의 요장에게 사로잡혀 죽고 말았다(385).

 

 

16국(十六國)

전진(前秦)


명제(明帝) 351~355

폐제(廢帝) 355~357

선소제(宣昭帝) 357~385

애제(哀帝) 385~386

고제(高帝) 386~394

숭(崇) 394~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