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도가학파의 창시자 노담(老聃)

지식창고지기 2009. 11. 6. 20:09

도가학파의 창시자 노담(老聃)

 

 

    노담의 성은 이(), 이름은 이(). 세인들은 그를 노자(老子)라고 부른다. 그의 출생일과 사망일은 분명치 않다. 노담은 춘추(기원전 770-기원전 476) 말년 초국(楚國) 사람이다. 전한데 의하면 노담은 귀와 눈이 크고 이마가 넓으며 입술이 두텁다. 노담은 주조(周朝)의 소장된 책을 관리하는 관리직을 맡은적이 있다. 직업상 관계로 노담은 지식면이 넓고 명성이 높았다. 공자는 젊은 시절 노담을 찾아가 그한테서 주조의 예의를 배웠다. 후에 노담은 주나라 왕실이 날이갈수로 쇠약해지는것을 보고 개국 수도인 낙양(洛陽)을 떠났다. 도중 함곡관(函谷關)을 경과시 노담은 <도덕경(道德經)> , 하편을 저술했다. 그후 기청우(騎靑牛)에서 주나라를 벗어난후 그 행적이 사라졌다. 어떤 사람은 노담이 60살까지 살았다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가 200여살까지 살았다고 하는데 어쨌든 그가 장수한것만은 사실이다. 노담이 장수한것은 그가 마음을 비우고 도덕수양에 정진한것과 관련된다.

 

     <도덕경>은 일명 <노자>라고 하는데 자수로 5천여자에 달하는데 내용이 방대하다. 이 저서는 중국 고대 문화의 중요한 유산이다. 노담은 소박한 유물주의 사상가이다. 중국에서 노담은 처음으로 도()를 철학의 최고 범주로 간주했다. 도는 사람이 가는 길을 뜻하며 사통팔달하다는 의미를 가지기에 당시 사람들은 도를 법규로 삼았다. 노담은 자연변화, 인간과 사물의 관계를 관찰하고 여기에 <>라는 새로운 함의를 부여했다. 노담은 <>는 가장 진실하고 가장 구체적인 것으로서 모든 구체적인 사물 산생의 최후 근원이 된다고 인정했다.

 

     <도덕경>은 소박한 변증적인 관점으로 일관되여 있는데 이는 노자 철학사상에서 가장 정채로운 부분이다. 노담은 사물의 존재는 고립된것이 아니며 호상 의존하고 연계를 갖고 있다고 인정했다.

 

노담은 <도덕경>에서 사물 전화 규율을 천명했다. 그는 복과 화는 서로 전화될수 있으며 화속에 복이 있고 복속에 화가 있다고 했다. 노담은 사물량의 축적은 질적인 변화를 일으킨다는것을 발견했다. 그는 아주 작은 종자도 큰 나무로 될수 있으며 널려있는 흙도 높은 대가 될수 있다고 했다. 또한 그는 곤난에 무릎 꿇지 말고 부지런히 노력하면 반드시 위대한 사업을 이룩할수 있다고 했다.

 

노담은 전쟁을 반대했다. 그는 군대가 주둔한 곳은 가시덤불만 자라며 큰 전쟁을 겪은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든다고 했다. 노담은 또한 통치계급의 무절제한 횡포와 폭행을 반대했다.

 

노담은 일찍 자신이 마음속에 담고 있는 이상사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즉 나라는 작고 백성도 적고 병기는 있으나 사용하지 않고 수레와 배가 있어도 타지 않으며 백성들은 잘 먹고 잘 입고 편히 자고 이웃 나라의 백성들과 내왕하지 않으며 문자 사용이 필요되지 않고 사람들이 끈으로 일을 기록하는 시대가 바로 이상적이 사회라고 했다. 노담의 이 리상은 소극적이고 보수적이지만 여기서 우리는 춘추시기 끊임없는 전란에 대한 노담의 염오감을 보아낼수 있으며 당시 자작농들이 평온하고 안정된 사회에 대한 지향을 알수 있다.

 

노담의 철학사상은 중국 철학사에서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의 정치사상은 후에와서 진보적인 사상가, 공상적인 사회개혁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