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원자바오 중국 국무원 총리

지식창고지기 2009. 12. 27. 10:20

원자바오 중국 국무원 총리

 

멜라민 파동으로 시험대 선 '親民총리'
'우유마시기' 캠페인 선도… 사태 간접 빌미제공 입장 곤혹
국내외 잇단 사과·장관급 국장 문책 해임등 진화 동분서주
쓰촨성 대지진·사스등 이은 거센 파고 어떻게 넘을지 주목

클릭하시면 확대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확대 이미지를 보실수 있습니다

베이징=문성진특파원
 
"중국의 올해는 정말 평범하지 않은 한 해였습니다."

국경절 연휴가 시작된 지난달 29일 국경절 59주년 기념 연설을 위해 인민대회당 연단에 선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국무원 총리의 표정은 굳어있었고, 목소리는 비장했다.

"올해는 중국 남부지역의 대폭설과 쓰촨(四川) 대지진 등 대형 재해가 잇따랐지요." 그의 머리 속엔 올해 들어 끊임 없이 중국을 괴롭혔던 갖가지 재난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졌을 것이다.

그러나 원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전세계를 중국산 식품에 대한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은 '멜라민 파동'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 최대의 경축일인 국경절에 중국의 자존심을 스스로 깎아 내리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의 발로였겠지만, 지금 중국 정부와 원 총리 앞에 놓여진 가장 큰 난제는 누가 뭐래도 '멜라민 파동'의 해결이다.

요즘 원 총리는 멜라민 분유사태로 체면이 말이 아니다.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중국의 발전상을 국제사회에 널리 과시했다고 믿었는데, 후진국형 불량식품 사태로 한 순간에 그 믿음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 총리는 최근 수년간 기회 있을 때마다 "모든 중국인들이 하루에 500그램의 우유를 마시게 하는 꿈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우유 마시기' 캠페인을 선도한 장본인으로, 멜라민 분유 파동에 간접적인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입장이 난처하게 됐다.

그래도 원 총리는 '멜라민 파동' 발생 이후,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국내외를 종횡무진으로 뛰고 있다. 그는 지난달 27일 톈진(天津) 빈하이(濱海)국제회의센터에서 열린 제2회 세계경제포럼(WEFㆍ하계 다보스포럼) 개막식에서 "중국은 모든 중국산 제품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양질의 제품을 중국인과 세계인에게 공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에 앞서 23일(현지시간) 뉴욕에서는 "중국에서 발생한 멜라민 분유 파동으로 소비자와 어린이들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사회적인 악영향을 끼친 데 대해 중국 정부의 책임자로서 매우 참담함을 느끼고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국제사회에 사과의 뜻을 밝혔다.

원 총리는 멜라민 파동의 내부진화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달 21일 베이징의 소아과 병원을 방문해서, "정부를 책임진 사람으로서 심히 부끄럽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하면서 "일부 기업의 직업도덕과 사회공덕 의식 결여는 한마디로 비양심적"이라고 개탄했다.

그리고 이튿날인 22일에는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물어 장관급인 리창장(李長江) 국가품질감독검사검역총국(질검총국) 국장을 해임했다.

중국 지도부는 원 총리가 이번 멜라민 사태도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올해 66세인 원 총리는 중국 지도자들 가운데서 보기 드물게 국민들로부터 '서민 총리', '눈물의 총리', '원 할아버지' 등의 애칭으로 불리며 두터운 신망과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평소 현장을 발로 뛰는 성실함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근면함으로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으며, 현장을 다닐 때는 늘 낡은 신발이나 점퍼를 사용하는 검소함이 돋보여 '친민(親民) 총리'로 각인돼 있다.

특히 올해 5월 중국 쓰촨성을 강타한 대지진 때 원 총리의 헌신적인 모습은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는 지진 발발 즉시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가 구조작업을 지휘하며 폐허 속에 깔려있던 중학생에게 눈물을 흘리며 직접 물을 먹여주는가 하면, 지진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에겐 "울지 마라. 마음을 놓으렴. 정부가 너희를 돌보고 공부도 봐줄게"라고 말하며 '친할아버지'같은 다정함을 보여줬다.

또한 지난 2003년 4월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사태 위기 때는 신속한 책임자 문책과 병원 방문 등을 통해 흔들리는 민심을 다잡았고, 2004년에는 경제가 과열 조짐을 보이자 상하이(上海) 등 일부 지방과 경제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하게 긴축 정책을 도입해 결국 경기 연착륙을 성공시키는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원 총리는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테크노크라트다. 1942년 톈진(天津)에서 출생한 원자바오는 1968년 베이징 지질학원 광산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간쑤(甘肅)성 지질국에서 14년 동안 근무했다. 이 때 해박한 지식과 현장 경험, 탁월한 논리로 당시 간쑤성을 시찰 중이던 쑨다광(孫大光) 지질부장(장관)이 '살아 있는 간쑤성 지도(地圖)'라고 감탄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이후 후진타오 차기 총서기를 발탁한 송핑(宋平)의 추천으로 중앙에 진출해, 중앙판공청(청와대 비서실 격)의 부주임과 주임, 국무원 부총리 등을 거쳐 2003년 이후 6년째 중국의 권력서열 3위인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

원자바오는 후야오방(胡耀邦)과 자오쯔양(趙紫陽) 계열의 급진 개혁적인 성향으로 분류됐던 인물로 정치적 성장과정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았다. 특히 자오쯔양 총서기 시절에는 천안문 사태로 정치생명이 영원히 끊어질 위기를 맞았었다.

그러나 탁월한 업무 능력과 적을 만들지 않는 현명한 처세로 풍파를 이겨내면서 덩샤오핑에 이은 또 하나의 '부도옹(不倒翁ㆍ오뚝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처럼 수 많은 풍파를 거침 없이 헤쳐온 원자바오가 지금 '멜라민 파동의 해결'이라는 중대한 시험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멜라민 파동은 13억 중국 인구는 물론, 전세계 인류의 건강에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측면에서 그가 '소방수' 역할을 맡았던 다른 시련들에 비해 파괴력이 더욱 클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멜라민 파동이 중국 지도부의 리더십에 커다란 타격을 가할 '화약고'나 다름 없다는 분석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원 총리와 중국 정부는 사태 진화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불구하고 멜라민 파동은 오히려 요원의 불길처럼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중국 사람들은 쓰촨 대지진으로 중국 대륙이 깊은 슬픔에 빠졌을 당시, 원자바오를 그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저우언라이(周恩來)에 견줄 만큼 훌륭한 총리라고 칭송했었다. 그런데 요즘 시중에서는 극히 일부이지만 "원자바오가 눈물 흘리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냐"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아무래도 이번 멜라민파동의 터널은 아주 길 것 같다. 그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뒤 원자바오가 어떤 총리로 중국인들의 마음 속에 남게 될지 전세계인들이 깊은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 원자바오 총리는 대학서 지질학 전공 '테크노크라트'

그는 대학에서 지질학을 전공한 테크노크라트다. 1942년 톈진(天津)에서 출생한 원자바오는 1968년 베이징 지질학원 광산과 석사 과정을 마치고 간쑤(甘肅)성 지질국에서 14년 동안 근무했다.

이 때 해박한 지식과 현장 경험, 탁월한 논리로 당시 간쑤성을 시찰 중이던 쑨다광(孫大光) 지질부장(장관)이 '살아 있는 간쑤성 지도(地圖)'라고 감탄했다는 일화도 있다.

그는 이후 후진타오 차기 총서기를 발탁한 송핑(宋平)의 추천으로 중앙에 진출해, 중앙판공청(청와대 비서실 격)의 부주임과 주임, 국무원 부총리 등을 거쳐 2003년 이후 6년째 중국의 권력서열 3위인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