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문학(Britannica) - 송대의 중국문학

지식창고지기 2010. 2. 11. 10:35
개요(960~1279)
송나라는 문(文)을 숭상하고 무(武)를 경시한 나약한 제국이었지만 문학방면은 매우 발전했다. 이러한 문학의 발전은 주로 인쇄술의 발달과 많은 국립학교 설립에 따른 것이었다.
 
산문
당나라 때 한유가 제창한 고문운동은 북송에 이르러 고문의 대가인 구양수(歐陽修:1007~72)와 소동파(蘇東坡:1037~1101) 등에 의해 계속 이어져 더욱 활발해졌다. 송대의 고문운동은 그후에도 저명한 역사가이자 철학가인 사마광(司馬光:1019~86)과 이학가(理學家)인 주희(朱憙:1130~1200) 등의 지지를 받았는데, 그들은 모두 유미주의적인 문학에 반대하고 꾸밈없는 질박한 고문작품에 찬성했다.
소설방면에서는 판이하게 서로 다른 2가지 추세가 있었는데, 그것은 문언소설(文言小說:고문소설)·화본소설(話本小說)이다. 문언소설은 당의 전기를 답습하여 별다른 창의성이 없었다. 반면에 화본은 민간에서 구어로 이야기를 강창할 때 사용된 대본으로 송대 소설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이러한 백화체의 화본은 후대 중국소설의 발전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구술문학).
 
시가
송시는 우선 내용과 형식에서 그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는데, 당시(唐詩)와 비교하여 그 특징을 간추리면 철리화·산문화·평담화(平淡化)·통속화를 들 수 있다. 이 시대에는 탁월하게 일가를 이룬 시인들이 많이 나왔다. 북송에는 시문의 대가인 소동파와 강서시파(江西詩派)의 대표작가인 황정견(黃庭堅) 등이 있으며, 남송에는 우국충정을 노래한 애국시인 육유(陸游:1125~1210) 등이 있다. 특히 육유는 2만 여 수(현존하는 것은 약 9,0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작품을 남긴 보기 드문 다작가이다.
송대에는 시인들이 대부분 사를 짓는 데도 뛰어났는데, 사는 일반 문인들과 민간의 중시를 받아 마침내 당당히 송대 문학의 주류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사인(詞人)으로는 북송의 유영(柳永)·소동파·주방언(周邦彦)과 남송의 이청조(李淸照:1108~55?)·신기질(辛棄疾:1140~1207) 등이 있다. 그중 이청조는 중국문학사상 가장 널리 알려진 여류 사인이다. 그밖에 소동파와 신기질은 모두 사의 풍격이 호매(豪邁)하고 의경(意境)이 청신하여 '소·신'으로 병칭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