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문학(Britannica) - 현대의 중국문학

지식창고지기 2010. 2. 11. 10:40
5·4시기(1912~27)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다음해 중화민국이 정식으로 수립되자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문학을 개혁하자는 주장이 일어났다. 신문학혁명을 주장한 첫번째 주자는 후스[胡適]였다. 그는 1917년 1월 〈신청년 新靑年〉이란 잡지에 〈문학개량추의 文學改良芻議〉를 발표하여 구문학의 병폐를 지적한 이른바 '팔불주의'(八不主義)를 주장했다. 다음달 천두슈[陳獨秀]는 〈신청년〉 2월호에 〈문학혁명론〉을 발표하여 후스의 주장을 발전시켰다. 1918년 7월 후스는 다시 〈건설적 문학혁명론〉을 발표하여 '국어의 문학, 문학의 국어'(國語的文學文學的國語)를 주장하고 신문학운동의 요지와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신문학운동은 1919년 5월 4일에 일어난 5·4운동의 영향으로 급속히 전파되어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5·4운동은 정치적으로는 제1차 세계대전 후의 굴욕적인 외교에 대한 항의가 발단이 된 학생운동이었으나, 그 정신적인 배경은 문학혁명을 포함한 신문화운동이었다. 1920년대 초기에는 뜻을 같이 하는 작가들이 모여 문학단체를 결성했는데, 그중 문학연구회(1921. 1 설립)와 창조사(1921. 7 설립)가 대표적이다. 문학연구회는 저우쭤런[周作人]·마오둔[茅盾] 등이 발기하여 '인생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고 사실주의적 문학을 제창했다. 창조사는 궈모뤄[郭沫若]·위다푸[郁達夫] 등이 발기하여 초기에는 '예술을 위한 예술'을 표방하고 낭만주의적 문학을 제창했으나, 후기에는 중심인물 가운데 하나인 궈모뤄가 마르크스주의에 입각하여 문학의 계급성을 논한 '혁명문학'을 주장했다. 이로써 창조사는 중국 최초로 마르크스 문학이론을 수용한 문학단체가 되었다. 이 시기는 사실상 이 두 문학단체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 시기의 소설은 루쉰[魯迅]의 〈광인일기 狂人日記〉(1918)·〈아큐정전 阿Q正傳〉(1921)을 비롯해 위다푸의 〈침륜 沈淪〉(1922) 등 주목할 만한 작품들이 창작되었다. 〈광인일기〉는 한 정신병자의 일기를 빌려 중국사회를 비판한 문학혁명운동 최초의 결실이며, 〈아큐정전〉은 우매한 주인공 아큐를 통해 중국 민족성의 약점을 폭로하고 중국혁명의 근본적인 과제를 파헤친 작품으로 중국 현대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시에서는 최초의 백화시집인 후스의 〈상시집 嘗試集〉(1920)이 나온 이래 주쯔칭[朱自淸]·궈모뤄·쉬즈모[徐志摩] 등이 각자 시집을 발표하여 신시의 내용과 형식을 발전시켰다. 연극에서는 톈한[田漢]이 수준 높은 많은 극본을 창작하여 신극 발전에 공헌했다.
 
좌련시기(1927~37)
1927~28년 일본에서 돌아온 신진문인들을 중심으로 한 제3기 창조사와 1928년에 결성된 태양사(太陽社)가 혁명문학의 창작방법과 문학의 대중화 문제를 둘러싸고 루쉰·마오둔 등의 진보파를 포함한 기성문단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이런 와중에서 1927년부터 국민당이 좌익세력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자, 1930년 마침내 혁명문학파와 기성문단의 진보파가 연합하여 루쉰을 대표로 하는 중국좌익작가연맹(中國左翼作家聯盟:약칭 좌련)을 결성했다. 좌련은 '문예대중화논쟁'과 같은 내부의 논쟁과 '문예자유논쟁'과 같은 외부와의 논쟁을 거치면서 1930년대 중국문학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소설작품은 다음과 같다. 마오둔은 1930년대 상하이[上海]를 무대로 기업자본가들의 행태를 통해 당시 중국사회의 경제적·사회적 혼란상을 묘사한 〈자야 子夜〉(1933)를 발표했다. 라오서[老舍]는 군벌통치하의 베이징[北京]을 무대로 한 젊고 순박한 인력거꾼의 비극적 생애와 몰락을 묘사하여 냉혹하고 암담한 현실의 구조적 모순을 고발한 〈낙타상자 駱駝祥子〉(1936)를 발표했다. 바진[巴金]은 5·4시기 봉건대지주 가정의 구세대와 신세대 간의 갈등을 묘사하여 봉건예교를 비판한 〈집 家〉(1931)을 발표했다. 이 시기의 시는 쉬즈모·량스추[梁實秋]·원이둬[聞一多] 등을 대표로 한 신월파(新月派:1928 〈신월〉 창간)와 다이왕수[戴望舒]를 대표로 한 현대파(現代派:1932 〈현대〉 창간)의 시인들이 크게 활약했다. 신월파는 시의 음률미와 형식미를 추구했으며, 현대파는 프랑스 상징파의 영향을 받아 암시성이 강한 창작경향을 보였다. 그후 신월파의 영향을 받은 장커자[臧克家]와 아이칭[艾靑]은 아름다운 음률과 형식 속에 현실문제를 과감하게 투영하여 중국 현대시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연극에서는 1928년부터 남국사(南國社)라는 연극단체를 결성하여 연극운동을 직접 실천하면서 많은 극본을 창작한 톈한, 관료자본가 가정의 몰락을 통해 착취계급의 죄악과 빈민의 비참한 운명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뇌우〉의 작자 차오위[曹禺]가 대표적이다. 특히 〈뇌우〉는 중국 현대연극사상 불후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 산문에서는 루쉰이 이른바 '루쉰 필법'이라고 부르는 비수처럼 예리한 필봉으로 수많은 잡문(雜文)을 써내어 현실을 비판·풍자했다.
 
항전시기(1937~49)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국민당과 공산당은 제2차 국공합작을 맺고 항일민족통일전선을 결성했다. 이에 따라 문인들도 1938년 중화전국문예계항적협회(中華全國文藝界抗敵協會:약칭 문협)를 조직하여 항일투쟁에 나서게 되었다. 그러나 1939년 국공합작이 결렬됨에 따라 중국은 국민당 통치구와 옌안[延安]을 중심으로 한 공산당 통치구로 나뉘었다. 중일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초기의 항일열기가 점차 시들어가자, 1942년 5월 마오쩌둥[毛澤東]은 '옌안 문예좌담회상의 강화'[在延安文藝座談會上的講話:약칭 문예강화]에서 예술성과 정치성의 통일을 전제로 노동자·농민·병사를 위한 문학을 창조해야 한다는 문예노선을 확정하여 공산혁명을 위한 문예활동을 전개했다. 이후 중국의 문학은 문예강화의 노선을 따르게 되었다.
이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창작되고 전투적인 임무를 수행한 것은 보고문학(reportage)으로, 국민들에게 항일의식과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민당 통치구에서는 아이칭·마오둔·바진·라오서·차오위 등이 시·소설·연극 분야에서 대부분 항일을 주제로 한 작품을 창작했다. 공산당 통치구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오수리[趙樹理]·딩링[丁玲]·저우리보[周立波]를 들 수 있다. 자오수리는 문예강화의 정신을 최초로 실현해낸 작가로 농촌의 계급투쟁을 진실되게 반영한 〈리유차이의 노래 李有才板話〉(1943)를 창작했으며, 딩링과 저우리보는 1946년에 시행된 공산당의 대대적인 토지개혁을 제재로 하여 장편소설 〈태양은 쌍간 강에서 빛난다 太陽照在桑乾河上〉(1949)·〈폭풍취우 暴風驟雨〉(1949)를 지었다. 또한 중국 고유의 민족풍격을 지닌 최초의 대형가극 〈백발의 아가씨 白毛女〉가 창작되었는데, 이것은 중국 서북부의 농촌에 전해오던 '백발선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1949년 이후의 중국문학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의 중국문학을 보통 당대문학(當代文學)이라 부르는데, 당대문학은 다시 제1기(1949~66)·제2기(1966~76)·제3기(1976~)로 나누어볼 수 있다. 제1기는 사회주의 문학의 개척과 전진시기이다. 1949년 제1차 전국문학예술공작자대표대회에서 마오쩌둥의 문예강화가 정치와 문학을 결합한 최고의 문예방침으로 확인되었다. 1953년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제창되었고, 1957년에는 '백화제방, 백가쟁명'(百花齊放百家爭鳴)이라는 정책이 시행되었으나 곧 반우파투쟁으로 이어졌다(→ 백화제방). 1960년에는 '혁명적 리얼리즘과 혁명적 로맨티시즘'이 문학과 예술의 일반적·보편적인 법칙으로 제기되었다. 제2기는 문화대혁명 기간으로 문학의 불모시기였으며 다만 혁명적 현대 경극만이 성행했다. 제3기는 이른바 신시기문학의 시기이다. 옛 작가들의 복귀와 함께 류신우[劉心武]의 〈담임선생 班主任〉(1977), 루신화[盧新華]의 〈상흔 傷痕〉(1978)과 같은 단편소설이 일제히 나와 문화대혁명 기간에 당했던 상처와 비극을 폭로함으로써 '상흔문학'이라는 새로운 흐름을 조성했다. 1981년부터는 신시기 개혁운동을 고취시키는 일련의 작품이 또하나의 조류를 형성하기도 했으며, 1980년대 중기부터는 개방이라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문단에서도 다양한 창작방법과 조류가 대두되고 있다.
 
1949년 이후의 타이완 문학
국민정부가 타이완으로 옮겨온 이후 10년 동안은 전형적인 반공문학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시기의 대표작품에는 장아이링[張愛玲]의 〈앙가 秧歌〉(1954)와 창궤이[姜貴]의 〈선풍 旋風〉(1959) 등이 있다. 1960년대에 이르러서는 프란츠 카프카,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 등의 영향을 받아 서유럽 모더니즘 문학이 문단의 주류를 형성하여 1980년대 중반까지 계속 영향을 미쳤다. 바이셴융[白先勇]의 〈유원경몽 遊園驚夢〉(1982)이 이 시기의 대표작품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이른바 '향토문학'(鄕土文學)이 등장하기 시작하여 1970년대의 문학조류를 형성했다. 향토문학은 본래 향토성·소박성·민속성을 띤 따뜻하고 흙 냄새 풍기는 문학으로 출발했으나, 1970년대 초기 국내외의 정치적·사회적 여러 요인으로 말미암아 현실참여와 비판을 주장하는 문학으로 변모했다. 황춘밍[黃春明]의 〈한 마리 고양이의 익사 溺死一隻老猫〉(1980)가 대표작이다. 한편 1970년대 후반부터는 중국 본토의 문학작품이 타이완의 잡지에 때때로 등장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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