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20세기 중국문학'의 '조용한 혁명' : 진융(金庸)

지식창고지기 2010. 2. 11. 10:43

블로그 청송재에서 가져 옴

 

'20세기 중국문학'의 '조용한 혁명' : 진융(金庸)

(** 이 글은 <<위대한 아시아>>(황금가지, 2003)에 실린 글의 원본임)

 

                                                         

 


흩날리는 눈 하늘에 닿음에 흰 사슴을 쏘고
글을 비웃는 신비한 협객 푸른 원앙에 기대네
(飛雪連天射白鹿, 笑書神俠倚碧鴛)
--- 진융(金庸, Jin, Yong) ---


우리가 '중국 근현대문학'을 제대로 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1950년대 중엽, 그리고 대륙에서는 사회주의 개조 및 건설의 메아리가 '반우파(反右派) 투쟁'으로 변질되고 있을 무렵, 홍콩(香港, Hong Kong)에서는 '20세기 중국문학'의 '조용한 혁명'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중국의 연구자들조차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많은 독자들을 확보한 이 문학혁명은 통속문학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던 학자와 교수들을 강박(强迫)하여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도록 하였다. 그것은 다름아닌 진융의 무협소설이었다. 식민지 홍콩에서 싹을 틔워 분단의 땅 타이완(臺灣, Taiwan)을 휩쓴 진융의 무협소설은 1980년대에는 역으로 대륙에 상륙하였다. 중국 대륙에 불어닥친 '진융 열풍'은 그의 이름을 모르는 중국인이 거의 없게 할 정도로 강렬하였다. 이제 진융의 무협소설은 '중국인다움(Chineseness)'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가 되었다.
진융은 1924년 중국 저쟝(浙江, Zhejiang)성 하이닝(海寧, Haining)현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차량융(査良鏞, Cha Liang Yong)으로, 진융이라는 필명은 본명의 마지막 글자(鏞)를 둘로 나누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무협소설 작가 진융은 언론인이자 정치가인 차량융의 분신이다. 차량융은 1989년 맡고 있던 정계의 직책을 사직하였고, 1992년에는 자신이 창간하여 홍콩 최대의 언론으로 성장시킨 {명보(明報)}를 매각하였다. 그러나 무협소설만큼은 여전히 손에서 놓지 않고 최근(2002년 7월) 홍콩 명하사(明河社)에서 대자판(大字版)으로 3차 개정본을 출간하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보면 무협소설 작가인 진융은 언론인 차량융의 귀착지이기도 하다.
항일전쟁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낸 진융은 1941년 충칭(重慶, Chungqing) 국립정치대학 외문계(外文系)에 입학하여 많은 외국문학 명작을 섭렵하였고 쑤저우(蘇州, Suzhou)의 뚱우(東吳, Dongwu)대학(蘇州大學의 전신)에서 국제법을 전공하였다. 항일전쟁이 끝난 후 {동남일보}의 기자로 사회에 입문했으며 1948년 당시 전국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대공보(大公報)}에 1천 5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가 편집과 영어 국제방송 청취 일을 맡아 일했다. 그리고 같은 해 '홍콩판' 복간을 위해 홍콩으로 파견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고 홍콩은 다시 잉글랜드의 식민지가 되면서 진융은 홍콩에 남게 된다. 이후 영화제작사에서 각색과 감독 등을 거쳐 1959년 마침내 {명보(明報)}를 창간하였다. 그리고 {신조협려}를 연재하면서 무협소설 작가로서의 명성을 날리는 한편 {명보}의 지위를 안정시킨다.
진융은 1955년 첫 작품 {서검은구록}을 발표하면서 무협소설 애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듬해 {사조영웅전}의 발표는 그의 작가적 명성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1955년부터 약 16년간 진융은 '12편의 장편과 3편의 중편'을 발표하였다. 이 작품들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중복(重復)'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자기 자신의 작품도 중복시키지 않았다. 협객의 형상만 살펴보더라도, 초기의 유가 협객(陳家洛, 袁承志, 郭靖)으로부터 도가 협객(楊過, 張無忌), 불가 협객(石破天, 段譽)을 거쳐, 비협(非俠)의 경지(狄雲, 李文秀)로 나아가는가 하면, 심지어 반협(反俠)의 형상(韋小寶)도 창조하였다. 이로부터 미루어보건대, 15편의 작품은 각각 독특한 형상과 플롯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고 대협(大俠)이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명성을 누리던 1974년 그는 돌연 봉필(封筆)을 선언하여 세간을 놀라게 하였다. 그후 진융은 일반인의 고정관념을 깨고 10여년의 공력을 기울여 신문 연재시 미비했던 점들을 수정하였다. 1994년 그의 작품집 36권이 베이징(Beijing) 삼련(三聯)서점에서 출간되었다. 같은 해 진융은 베이징 대학에서 명예교수직을 수여받았고 아울러 '20세기 중국소설 대가' 서열에서 루쉰(魯迅, Lu, Xun), 선총원(沈從文, Shen, Cong-wen) 등에 이어 4위에 랭크되기도 하였다. 이듬해에는 베이징대학 중문학부에 '진융 소설 연구'라는 과목이 개설되기도 하였다.
그의 무협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대부분 구체적인 역사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실제의 역사 사건을 강호(江湖)라는 가상의 세계와 결합시켜 그 속에서 생활하고 성장하는 핍진(逼眞)한 형상들을 그려냈다. 우리에게 '영웅문 3부작'으로 알려진 작품들의 주인공, 궈징(郭靖)과 황롱(黃蓉), 양궈(楊過)와 샤오롱뉘(小龍女), 장우지(張無忌)와 자오민(趙敏) 등은 송(宋)-원(元) 교체기로부터 원(元)-명(明) 과도기라는 역사배경과, 동사(東邪)-서독(西毒)-남제(南帝)-북개(北 )-중신통(中神通)이라는 무림의 대종사(大宗師)들이라는 강호의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살아 숨쉬는 생생한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강호-인성'의 삼중구조는 진융 소설의 특징적인 측면이다. 이 외에도 여러 작품들이 명(明)-청(淸) 교체기를 배경으로 삼아 활발한 시대 분위기를 작품의 배경으로 삼고 있음도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그의 소설의 또다른 특징은 작품에서 묘사되는 강호와 협객(俠客)들이 '근현대적인(modern) 정보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대 중국인의 복장을 입고 과거의 시공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의 사유방식과 행동양식은 현대인의 그것과 유사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서 우리는 인생에 대한 우환(憂患)의식을 발견할 수 있고 20세기 인류 문명이 지닌 비관주의와 회의정신을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주인공들이 대부분 고아로 설정된 점은 위의 측면은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로 읽을 수 있다.
 또한 아울러 진융의 소설은 중국의 한자문학이 창조해낸 예술적 상상력이 극치에 이르렀음을 상징하고 있다. 번역본이 이 부분을 얼마나 구현해낼 수 있는지가 일반 독자들이 진융을 제대로 이해하는 관건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진융의 작품이 가지는 문학사적 의미는 통속문학과 엄숙문학 사이의 경계와 영역을 허물어버림으로써 무협소설을 순수예술의 전당에 올려놓았다는 사실이다. 아울러 5·4 신문학에 의해 억압되었던 '본토문학'의 전통을 부활(復活, revival)시킨 점도 함께 꼽아야 할 것이다.
1990년대에 이름있는 학자들이 진융에 관한 글들을 속속 발표하였고 전문 연구서가 출판되기도 하였다. 국제 규모의 '진융(金庸) 학술토론회'도 개최되었을 뿐만 아니라 '金學'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다. '진융 현상'은 신시기(新時期) 전기에 있었던 '왕쑤어(王朔, Wnag, Suo) 현상'이나 '{폐도(廢都)} 현상'과는 그 맥을 달리하는 문화사적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1956년 신문 연재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반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독자층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단순한 저널리즘적 흥미 유발에 그치지 않고 학문적 연구 대상으로 그 영역을 넓히고 있다. 우리는 진융의 작품을 재미있는 무협소설로만 볼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전통문화와 근현대인의 인성과 심리가 내재된 문화 텍스트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중국 문학의 전통 형식을 보유하면서도 근현대적인 내용을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는 '중국 본토문학'의 집대성자이면서, 타이완과 홍콩 그리고 대륙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독자를 보유함으로써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다.
진융의 작품은 대륙과 홍콩, 타이완 그리고 여러 지역의 화인(華人)들을 통합(統合, integration)시키는 기제(機制, mechanism)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1955년 신문에 연재되면서부터 수많은 중국인들이 그의 작품을 애독하였고, 작품들이 끊임없이 연속극과 영화로 재생산되는 것을 보면 중국인들이 진융을 매개로 하여 다시 통합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1998년 자매대학에 방문학자로 가 있을 때 만났던 교내외 인사 대부분이 진융을 읽었고 아울러 자신의 독특한 관점과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이런 현상들은 '국민문학(national literature)으로서의 진융 소설'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번역 현황에 대한 간략한 보고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국내에서는 1986년 '영웅문 3부작'이 번역 출간된 이후 3년만에 [월녀검]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번역 또는 번안되었다. 베이징 삼련본이 36권으로 나왔음을 감안할 때 단시일에 엄청난 분량이 번역된 것이다. 다만 국내 무협소설에 대한 인식과 맞물려 있어 진지한 번역보다는 줄거리 위주의 각색이 주류를 이룬 것으로 보인다. '영웅문'만 하더라도 '삼련본'과 목차의 대조가 불가능하다. 그리고 무협과 무관한, 역으로 보면 진융 소설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부분이 주로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진융의 진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의 판권에 기초하여 엄격한 번역이 새롭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진융 작품 목록(창작연도별) 및 작품집(출간년도별)
 1955년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
 1956년 벽혈검(碧血劍)
 1957년 설산비호(雪山飛虎),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1959년 신조협려(神雕俠侶), 비호외전(飛虎外傳)
 1961년 의천도룡기(依天屠龍記), 백마소서풍(白馬嘯西風), 원앙도(鴛鴦刀)
 1963년 천룡팔부(天龍八部), 연성결(連城訣)
 1965년 협객행(俠客行)
 1967년 소오강호(笑傲江湖)
 1969년 녹정기(鹿鼎記)
 1970년 월녀검(越女劍)
 1994년 {金庸作品集}(1∼36), 三聯書店, 北京.
 2002년 {大字版 金庸作品集 <1> 書劍恩仇錄}(1∼4), 明河社, 香港.

 

*  국내 번역본 현황(이치수, [중국무협소설의 번역 현황과 그 영향]을 참고하여 작성)
 {소설 영웅문 1부, 몽고의 별(射雕英雄傳)}, 김일강, 고려원, 1986.
 {소설 영웅문 2부, 영웅의 별(神雕俠侶)}, 김일강, 고려원, 1986.
 {소설 영웅문 3부, 중원의 별(依天屠龍記)}, 김일강, 고려원, 1986.
 {열웅지(笑傲江湖)}, 박영창, 태광문화사, 1986.
 {소설 녹정기 1부(鹿鼎記)}, 박영창, 중원문화사, 1986.
 {녹정기(鹿鼎記)}, 박영창, 우일문화사, 1986.
 {대막영웅기(射雕英雄傳)}, 선우인, 금하, 1986.
 {대륙의 별(天龍八部)}, 박영창, 우일문화사, 1986.
 {아! 만리성(笑傲江湖)}, 임화백, 언어문화사, 1986.
 {대평원(依天屠龍記)}, 임화백, 모음사, 1986.
 {대평원(依天屠龍記)}, 임화백, 복지, 1986.
 {대승부(碧血劍)}, 김종윤, 백양출판사, 1986.
 {협객행(俠客行)}, 하덕송, 영학출판사, 1986.
 {대륙의 별(天龍八部)}, 박영창, 중원문화사, 1987.
 {소오강호: 동방불패(笑傲江湖)}, 박영창, 중원문화사, 1987.
 {소오강호(笑傲江湖)}, 박영창, 시대정신, 1987.
 {비호검(飛虎外傳)}, 김영일, 백양출판사, 1987.
 {설산비호(雪山飛虎)}, 강승원, 우일문화사, 1987([白馬嘯西風], [鴛鴦刀] 수록).
 {비호외전(飛虎外傳)}, 박영창, 대륙, 1991.
 {녹정기(鹿鼎記)}, 박영창, 서적포, 1992.
 {천룡팔부(天龍八部)}, 박영창, 세계, 1992.
 {열하성(碧血劍)}, 황소산, 민중출판사, 1992.
 {천용문(飛虎外傳)}, 김영일, 반도기획, 1993.
 {천룡팔부(天龍八部)}(黃玉郞 그림), 투엔티세븐 편집부, 대원, 1998.
 대중문학연구회, {무협소설이란 무엇인가-대중문학⑥}, 예림기획,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