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907년 ~ 1368년)
907년부터 오대십국(五代十國)의 분열 국면이 거의 60연간 지속되었으며, 960년에 중국은 다시 통일을 이룩하면서 송(宋)왕조가 건립되었다. 이후로 중국은 비록 계층간의 갈등과 민족적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계속하여 왕조가 교체되긴 하였지만 이전과 같은 그러한 대분열의 혼란 국면은 발생되지 않았는데, 이것은 많은 왕조들의 흥망이 반복되는 과정을 거치는 동안 중국은 이미 확고한 통일의 기초를 다짐으로써 더 이상 동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대십국(五代十國)으로부터 송(宋) 요(遼) 금(金)서하(西夏) 시기의 한족(漢族)과 기타 민족의 융합을 거쳐 원(元)왕조에 의한 통일이 실현되기까지는 약 460년이 걸렸다. 이 기간에 중국의 봉건사회는 비록 당(唐)왕조와 같은 번영과 부강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농업 수공업 상업 과학 문화 국제무역 등의 방면에서 모두 새로운 성과를 이룩하였다. 이 시기에 중국의 경제 중심은 이미 황하유역에서 장강유역으로 바뀌어 있었으며, 많은 외국상인들과 여행자들이 중국으로 들어왔다. 이탈리아 베니스 상인 마르코폴로는 일찍이 중국의 광대한 지역을 유람하였는데, 그의 여행기 속에는 당시 중국의 상공업이 번영한 모습이 구체적이고도 생동감있게 묘사되어 있다.
송(宋)·원(元) 시기에는 민족간의 갈등이 심각하게 대립했던 시기이다. 송(宋)왕조 시기에 중국 북부와 서부의 소수민족은 매우 강대해져 요(遼) 금(金) 서하(西夏) 정권이 연속적으로 건립되면서 송(宋)왕조를 끊임없이 침범하였다. 서기 1127년에 여진족의 금(金)나라가 송(宋)의 수도 동경(東京: 지금의 개봉 開封)을 공격하여 송나라의 황제를 사로잡게 됨으로써 북송(北宋)은 멸망하였다. 같은 해에 송나라의 황족 조구(趙構)는 정권을 다시 세워 도읍을 임안(臨安: 지금의 항주 杭州)에 정하였는데, 이를 역사에서는 남송(南宋)이라 칭한다.
1279년 북방에서 금나라를 계승하여 건립된 원나라는 군사력이 강대하였다. 그리하여 징기스칸(成吉思汗)의 손자 쿠빌라이(忽必烈)가 군대를 거느리고 남송을 멸망시킴으로써 중국에는 처음으로 소수민족에 의해 전국이 통치되는 왕조, 즉 원(元)왕조가 건립되었다. 원왕조는 중국의 영토가 확장된 시대였고, 각 민족이 더욱더 융합되었으며 아시아 유럽과의 관계도 강화되었다. 그러나 몽고족의 민족차별정책이 심화되고 이에 대한 한족의 반감과 저항이 가속화되어 원왕조의 통치는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1368년에 주원장(朱元璋)이 이끄는 농민봉기에 의해 붕괴되면서 명(明)왕조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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