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고대사 -명, 청시대/봉건사회의 쇠락시기

지식창고지기 2010. 2. 18. 09:07

(A·D 1368년 ~ 1840년)

 

1368년 주원장(朱元璋)이 명(明)왕조를 건립한 후에 중국은 또다시 한인(漢人)의 통치를 회복하여 276년간 지속되다가 명대 말기에 이자성(李自成)이 이끄는 농민봉기가 발발하였다. 1644년에 명왕조가 농민봉기에 의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을 무렵, 날로 강성해진 동북의 소수민족인 만주족이 기회를 틈타 산해관(山海關)으로부터 북경을 공격하여 명왕조를 붕괴시키고 청(淸)왕조를 건립하였다. 청왕조는 중국 역사상 마지막 봉건왕조가 되었으며, 1911년 손문(孫文)을 중심으로 한 혁명파의 '신해혁명(辛亥革命)'에 의해 완전히 붕괴되었다.

명대(明代) 초기부터 청대(淸代) 중기까지 약 470년간 중국은 줄곧 통일된 다민족 국가였다. 청왕조의 국경은 서로는 파미르고원, 북으로는 시베리아, 동북으로는 외흥안령(外興安嶺)을 따라서 대해(大海)에 이르고, 동으로는 태평양의 대만과 거기에 소속된 섬들에까지 이르며, 남으로는 남사군도(南沙群島), 서남으로는 티베트(西藏) 운남(雲南)에 이르렀는데, 청왕조의 면적은 지금보다도 더 광대하였다. 이 기간 동안 중국은 광대한 영토를 가진 통일된 다민족 국가이면서도 각 민족의 관계는 더욱 긴밀하였으며, 사회 경제 문화적인 면에서도 계속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또한 명대의 농업과 수공업은 현격하게 진보하여 명대 말기에 이미 많은 방직업과 제철업 등의 수공업 공장이 있었다. 이들의 생산규모는 매우 크고 기술분업도 세분화되어 있었으며 고용노동을 실행하였으니, 이는 당시 중국에 이미 자본주의의 싹이 출현하였음을 의미한다. 청대에 접어든 이후에 중국의 자본주의 요소는 계속적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명 청 시기에 중국의 봉건사회는 이미 후기에 진입하여 쇠락의 길로 향하고 있었다.

봉건사회의 말기에 이르자 지배층은 갈수록 부패해지고 계층간의 갈등도 날로 첨예해졌다. 명대 말기와 청대 말기의 농민봉기는 규모나 발생 빈도 및 사회 각 계층이 참여하는 범위면에서 모두 과거 어떤 왕조보다도 훨씬 더 심각했다. 이러한 농민봉기의 새로운 형세는 중국의 봉건제도가 이미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의 명대 후기와 청대, 즉 서기 17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서방에서는 이미 자본주의가 신속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중국은 비록 우수한 고대의 과학기술 문화를 지니고 있었으나, 기존의 봉건통치 역량이 너무 완고하고 강대했기 때문에 봉건통치가 이미 몰락과 쇠망을 향해 가속화되고 있으면서도 정치·경제·사상 등의 방면에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봉건통치에 반대하는 신흥세력의 성장과 도전에 대해서 가혹한 진압을 하였다. 여기에 서방 자본주의 열강의 침략과 압박으로 인하여 중국의 자본주의는 결코 신속하게 발전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청대 중기부터 중국은 차츰차츰 반식민지(半植民地) 반봉건(半封建) 사회로 변하여 마침내는 강대한 봉건제국에서 침략당하고 모욕을 받는 빈곤하고 낙후된 국가로 전락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