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가 중국을 분할하는 시대적 조류 속에서 무술변법이 실패한 후, 1900년에 중국의 농민들은 다시 장렬한 반제애국(反帝愛國) 운동인 의화단운동(義和團運動)을 일으켰다.
의화단운동은 먼저 산동(山東)에서 흥기하여 하북(河北), 북경(北京), 천진(天津), 산서(山西), 하남(河南), 내몽고(內蒙古), 동북(東北) 등의 지역으로 신속히 확대되었다. 그들은 '부청멸양(扶淸滅洋: 청나라를 도와 서양세력을 물리친다)'의 구호를 제창하였다. '부청멸양(扶淸滅洋)'이란 사실상 국가를 보위하고 침략자를 물리친다는 뜻이다. 의화단은 도처에서 교회를 공격하여 간악한 행위를 저지르는 서양 선교사들을 처단하였다. 이는 외국 열강들이 중국을 마음대로 멸시하고 약탈하는데 대한 중국 국민들의 분노와, 그들을 중국에서 몰아내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출한 것이었다. 의화단운동은 전중국을 뒤흔들고 세계를 깜짝 놀라게한 사건이었다.
의화단운동의 심각한 타격에 직면한 제국주의 열강(영국, 미국, 일본, 러시아,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들은 8개국 연합군을 구성하여 직접적으로 중국에 대한 무력 침공을 개시하였다. 강력한 화력을 지닌 총과 포로 무장한 외국 침략군을 맞이하여 큰 칼과 긴 창을 손에 잡은 의화단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반격하였다. 결국 8개국 연합군은 북경과 천진을 함락시키고 야만적인 도살과 약탈 행위를 자행하였다. 의화단운동은 제국주의의 연합공격하에서 마침내 진압되었으며 자희태후는 광서황제와 소수의 측근들을 데리고 북경에서 서안(西安)으로 탈출하였다.
1901년 9월 청 정부는 외국 침략자들에게 투항하여 그들과 '신축조약(辛丑條約)'을 체결하였으며, 조약의 내용은, 중국은 각국에 대하여 백은(白銀) 4억 5천만량(兩)을 배상하고, 각국은 북경에 대사관을 설립하여 군대를 주둔시켜 중국인의 출입을 통제할 수 있으며, 북경 천진 지역에 있는 중국의 포대와 천진 주변에 있는 중국의 주둔 군대를 철수시키고, 북경에서 산해관(山海關)에 이르는 철로 연선의 전략 요충지에 외국 군대의 주둔을 허락한다는 것 등등이다. 신축조약은 서양 제국주의가 중국의 정치 경제 군사 등의 주권에 대하여 재차 무력을 행사한 침략과 유린 행위이며, 청 정부 역시 또 한번의 굴욕적이고 추악한 매국행위를 한 것이다.
의화단운동은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그것은 중국 국민의 영웅적인 기개를 드러낸 것으로, 제국주의의 중국 분할 야욕에 대하여 심각한 타격을 가한 민족운동이었다.
'역사의 숨결 > 역사(중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국현대사-5·4 운동(五四運動: 1919) (0) | 2010.02.18 |
---|---|
중국근대사-신해혁명(辛亥革命: 1911) (0) | 2010.02.18 |
중국근대사-백일유신(百日維新: 1898) (0) | 2010.02.18 |
중국근대사-청일전쟁(淸日戰爭: 1894) (0) | 2010.02.18 |
중국근대사-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 1851~1864) (0) | 2010.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