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7월 7일, 중국의 동북을 점령하고 다시 화북으로 진격한 일본 침략군은 북경 부근에서 '노구교사변(蘆溝橋事變)'을 일으켜 전면적으로 중국을 침공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중국의 군대도 강력한 저항을 하게 됨으로써 마침내 전면적인 항일전쟁이 발발하였다.
항일전쟁이 일어나기 이전 1936년 12월에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서안사변(西安事變)'이 발생하였는데, 그 결과 장개석은 강제적으로 공산당과 항일 공조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제2차 국공합작을 실현하게 되었다.
그러나 장개석은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화민족이 망국의 위험에 직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산당을 적으로 간주하였다. 그는 '반공적극, 항일소극(積極反共, 消極抗日)'의 방침을 취하여 단지 일부의 군대만 항일에 투입하고, 주력부대는 공산당이 이끄는 군대와 항일혁명근거지를 소탕하는데 투입하였다. 결과적으로 항일의 주요 책임은 공산당이 이끄는 팔로군(八路軍)과 민중에게로 부여되었으며, 항일전쟁의 마지막 1년 동안에 공산당이 이끄는 군대와 민중들은 일본 침략군을 반격하는데 전력하였다.
중국공산당의 영도하에서 중국 인민들이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됨으로써 가장 광범위한 항일 민족통일전선을 실현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항일 무장역량과 항일혁명근거지는 점차 확대 발전되었다. 중국 인민들은 8년간의 어려운 항전을 거치면서 많은 피를 흘리며 희생되었으나, 1945년 8월에 마침내 항일전쟁의 승리를 쟁취하였다.
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후, 중국공산당과 중국 인민들은 한결같이 국 공 양당과 각 당파가 참여하는 민중연합 정부를 구성하여 민주개혁을 실행하고, 독립 자유 민주 통일 부강의 신중국을 건설할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다. 그러나 국민당은 미국의 지지하에서 표면적으로는 공산당과 평화회담을 진행하였지만, 실제로는 적극적으로 내전을 준비하면서 항일 승리의 성과를 독점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통치를 유지하려고 기도하였다. 1946년 6월에 국민당은 공산당이 영도하는 해방구(解放區)에 대하여 전면적인 진격을 개시하였다. 이에 중국에는 제2차 국공내전이 발발하게 되었다.
1946년부터 1949년까지 제2차 국 공내전은 3년간 계속되었다. 전쟁 초기에 장개석의 국민당 군대는 미제 무기의 우세에 힘입어 기세가 등등하였다. 그러나 공산당의 영도하에서, 그리고 해방구와 국민당통치구(國民黨統治區) 민중들의 지지하에서, 중국인민해방군은 탁월한 전략전술을 운용하여 국민당 군대의 진공을 매우 신속하게 분쇄하였다. 3년의 내전을 거치면서 중국인민해방군은 국민당의 800만 군대를 섬멸하였으며 장개석이 영도하는 국민당 군대는 대만(臺灣)으로 도피하였다. 그리하여 대만과 몇몇 작은 섬들을 제외하고 전중국은 모두 중국공산당에 의해 장악되었으며,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을 국내외에 선포함으로써 중국 대륙에는 중국역사상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가 탄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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