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전설시대-삼황오제 /태호 복희씨

지식창고지기 2010. 2. 19. 13:03

태호 복희씨는 중화민족 문화의 시조이고, 염제황제 보다 빠른 "삼황의 으뜸"이며, 성씨는 풍(風)이다. 전설에 의하면 150년간 재위하였으며 진(陳: 지금의 하남성 회양현<淮陽縣>)에서 죽었다고 한다. 장지는 회양성(淮陽城: 지금의 하남성 회양현 서남) 북쪽 3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태호 복희씨는 고대 동이족(東夷族: 고대 중국의 동방에 있는 각 부족의 총칭)의 유명한 우두머리였으며, 위수(渭水) 유역의 성기(成紀: 지금의 감숙성 진안현<秦安縣> 북쪽)에서 태어나 진(陳)에서 살았다. 그는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일설에는 용의 몸)을 하고 있었으니, 그가 다스린 부족은 뱀이나 용을 토템으로 삼았을 것이다.

고대 복희 전신화상

복희는 중화민족의 지혜를 밝혀 준 선구자이고, 인류가 원시상태에서 문명시대로 진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준 개척자이다. 복희를 대표로 한 집단 부락은 위수 유역(황하 상류 지류)에서 황하 중류로 이주하는 고달픈 과정을 거쳤다.

그는 음양의 변화 원리에 근거하여 팔괘(八卦)를 창제하고, 8종의 간단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부호를 사용하여 천지간의 만사만물을 개괄하였다고 한다. 팔괘가 나타내는 여덟가지 부호는 각각 하늘(天), 땅(地), 물(水), 불(火), 바람(豊), 천둥(雷), 산(山), 못(澤)을 대표하는데, 복희는 이 팔괘를 이용하여 길흉화복을 점쳐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랬다. 이것은 바로 세계에 대한 초보적 인식 방식으로 여기에 중국철학의 싹이 배태되어 있다. 중국 혹은 동양 문화의 중요한 특징이 여기에서 마련되었으며, <<주역>>의 사상적 기초가 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는 거미가 거미줄을 치는 것을 보고 그물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고기잡이와 목축을 가르쳤다. 그는 또 "슬(瑟)"이라는 악기와 <가변(駕辯)>이라는 악곡을 만들었다. 이는 그당시에 인류문화의 서광을 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대(漢代)의 고전 ≪회남자(淮南子)≫「천문훈(天文訓)」에 의하면, 후대에 태호 복희씨는 동방의 천제가 되었으며, 나무의 신 구망(句芒)이 그를 보좌하였다고 한다. 복희는 손에 컴퍼스를 들고 봄과 생명을 관장하였다. 그가 나타날 때는 대지가 다시 소생하고 만물이 생장하는 봄이 도래하였다. 고대의 중국학자들은 수(水), 화(火), 목(木), 금(金), 토(土)라는 다섯 가지 사물로써 만물의 기원과 변화를 설명하였는데, 역대 제왕들은 항상 그 중에 하나를 취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여씨춘추(呂氏春秋)≫「맹춘기(孟春紀)」 고유주(高誘注)에 의하면, 복희는 살아서는 목덕(木德)으로써 천하의 왕이 되었고, 죽어서는 그를 동방에서 제사지내어 목덕(木德)의 천제가 되었다고 한다. 도교에서도 그를 동방의 천제라 일컫는다.

전설상으로는 원래 태호와 복희가 별개의 인물이었는데 선진(先秦)의 사관이 편찬한 ≪세본(世本)≫에서 처음으로 그 둘을 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태호 복희씨가 죽은 후에 그의 자손들은 회화(淮河) 북쪽 기슭을 따라서 동으로 뻗어나가, 황하 하류를 따라서 제수(濟水) 유역 일대를 장악하였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복희릉(태호릉)

복희 여와(중국 돈황석굴 제285호)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謝謝!!

고대 복희 반신화상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복희 여와(唐)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복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