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 고조(高祖)는 이름이 이연(李淵: 566 ~ 635), 자가 숙덕(叔德)이다. 태원(太原)에서 거병하여 장안(長安)으로 진격해 들어갔다가, 수(隋) 양제(煬帝)가 양주(揚州)에서 우문화급(宇文化及)에게 피살된 후에, 장안에서 스스로 황제에 올랐다. 9년간 재위하다가 그의 아들 당 태종(太宗) 이세민(李世民)의 강요로 황위를 선양한 후에 70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 장지는 헌릉(獻陵: 지금의 섬서성 삼원현<三原縣> 동북)에 있다. 이연(李淵)은 농서(陇西) 성기(成紀: 지금의 감숙성 진안현<秦安縣> 서북) 출신이다. 일설에는 농서 적도(狄道) 출신이라 하기도 하고, 거록군(鉅鹿郡) 출신이라 하기도 한다. 조부 이호(李虎)는 서위(西魏) 팔주국(八柱國) 사람이었고, 부친 이병(李昞)은 북주(北周) 안주총관(安州總管)이었다. 서기 617년 이연은 수나라 태원유수(太原留守)를 역임하였다. 당시 수나라 정권은 농민대봉기의 맹렬한 공격으로 이미 붕괴되어 있었다. 그는 차남 이세민과 부하 유문정(劉文靜) 등의 종용으로 수나라를 타도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11월에 장안을 점령한 후 대왕(代王) 양유(楊侑)를 황제로 옹립하고 양제를 태상황으로 추존하여 천하를 호령하였다. 서기 618년 5월 갑자일(甲子日)에 양유를 쫓아낸 다음 자신이 직접 황제에 올라 국호를 '당(唐)', 연호를 '무덕(武德)'이라 하고 장안에 도읍을 정했다. 이연은 주색을 좋아한데다 우둔하고 무능하여, 나라를 세울 뜻도 없었고, 그럴 만한 능력도 없었다. 태원(太原)에서 거병하여 당왕조를 건국하고 전국을 평정할 때까지, 주로 차남 이세민의 지략과 전투에 의존하였던 것이다. 그는 황제에 오른 후에 간신배들을 중용하고 공신들을 시기하였다. 수왕조에서 진양궁(晋陽宮) 부감(副監)을 지냈던 배적(裴寂)은 진양에 있을 때 이연과 술친구였다. 그는 궁녀를 몰래 이연에게 보내주고, 이연과 밤낮으로 주색잡기를 즐기며 황음무도한 생활을 하였다. 진양에서 군사를 일으켰을 때도 배적은 이연에게 궁녀 5백명을 데리고 행군하게 하였다. 이연은 황제에 오른 후에 배적의 공로를 가장 크게 여겨, 그에게 높은 작위와 많은 봉록을 내리고 측근으로 삼았다. 원래 진양령(晋陽令)이었던 유문정(劉文靜)은 이세민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각지를 전전하며 싸운 당왕조의 개국공신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이연의 의심과 시샘을 사서 모반을 했다는 죄명으로 억울하게 살해되었다. 이연의 장남 이건성(李建成)은 그와 더불어 주색을 즐기며 불량배와 악독한 호족들을 가까이 했는데도 이연은 그를 태자에 책봉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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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국에 노고가 많고 공적이 뛰어난 차남 이세민에 대해, 이연은 그의 위세와 명성이 날로 드높아지자 그를 더욱 의심하고 시기하였으며, 이건성 등이 그를 음해하려는 계획을 묵인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아 여전히 그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를 완전히 제거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한 번은 이건성, 이연의 애첩 장첩여(張婕妤)와 윤덕비(尹德妃)가 이세민이 황위를 찬탈하려 한다고 모함하였다. 이연은 그들의 말을 믿고 즉시 이세민을 불러들여 꾸짖었다. "천자는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지, 네가 술책을 부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아직 죽지 않았는데 어찌 이렇게 조급하게 구느냐!"
이세민은 여러 차례 결백을 주장하였지만 이연은 믿으려 하지 않고 탁자를 치면서 크게 욕설을 퍼부었다. 이 때 돌궐족이 침입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이연은 즉시 분노를 가라앉히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됐다, 됐어. 돌궐족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해서나 의논해 보자!"
서기 626년 6월 이세민이 '현무문(玄武門)의 변'을 일으켜 이건성과 넷째 동생 이원길(李元吉)을 죽이고,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였다. 8월 갑자일(甲子日) 이세민은 다시 이연을 협박하여 황위를 선양받고 이연을 태상황(太上皇)으로 추존하였다. 636년 10월 경인일(庚寅日) 이연은 지병으로 숨을 거두었다. 이연이 죽은 후 그의 묘호를 고조(高祖)라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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