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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고 인기 뛰어넘은 자율고는 입시교육 올인 중

지식창고지기 2010. 4. 20. 15:35

135호] 2010년 04월 19일 (월) 22:38:37 김은남 기자 ken@sisain.co.kr

올해 출발한 자율형 사립고가 여러 모로 화제이다. 자율고 입학을 위해 불법도 서슴지 않는 학부모가 있는가 하면, 자율고가 무한경쟁과 타율의 온상이 되고 있다며 학교를 그만둔 교사도 있다. 자율고 안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글 싣는 순서
1) 외고 인기 뛰어넘은 자율고는 입시교육 올인 중
2) 자율고의 이면, ‘한 지붕 두 학교’
3) 외고 사교육, 자율고로 옮겨가나
4) 강남 학교는 여유만만, 강북 학교는 전전긍긍
5) “학교가 미쳤다, 살려면 떠나야했다”

 

“아이 외고 보내고 싶으신 분, 손들어보세요.”
지난 4월8일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한 입시학원이 중학생 학부모를 상대로 연 강좌. 강사의 질문에 20명 남짓한 엄마가 쭈뼛쭈뼛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같은 질문에 절반 이상은 다투어 손을 들던 1년 전과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외국어고등학교(외고)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서울 지역 6개 외고의 경우 2010학년도 경쟁률은 3.13대1로 2009학년도 4.76대1보다 저조했다. 올해부터 경기도 등 다른 지역 학생이 서울 지역 외고에 지원할 수 없게 된 것 등이 원인으로 거론됐지만 입시 전문가들은 그중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 이른바 외고 개선안을 포함한 입시 개선안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한마디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로 가는 지름길’로서 외고의 매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다.

   
ⓒ시사IN 조남진
학생들은 일반고에서 자율고로 바뀐 뒤 '학교가 빡세졌다'고 말했다. 사진은 밤 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한 자율고 교실.
그와 대조적으로 ‘뜨고’ 있는 것이 자율고이다. 이름 때문에 자립형 사립고(자사고)와 혼동되기도 하는 자율형 사립고(자율고)는 올해 전국 25곳으로 출발했다. 자체 시험을 통해 학생 선발권을 행사할 수 있으되 학교 운영비의 25% 이상을 재단 전입금으로 충당해야 하는 자사고와 달리, 자율고는 중학교 내신 상위 50%(비평준화 지역은 예외)를 대상자로 추첨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며 학교 운영비의 5% 이상을 재단 전입금으로 충당해야 한다.

자율고의 상승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도 있었다. 최근 자율고 특별전형(사회적 배려 대상자)에서 부정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학교장 등 연루자 239명이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은 자율고 등록금이 일반고의 3배에 이르는 등 ‘귀족학교’ 논란이 일자 이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는 취지에서 도입했다. 그런데 자율고가 관심을 끌면서 이것이 편법·부정입학의 통로로 악용된 것이다.

최근에는 다니던 학교가 자율고로 바뀐 데 반발해 한 교사가 사표를 쓴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율고가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ㅇ고 이형빈 교사가 그 주인공이다. 이씨는 학교가 자율고로 바뀌면서 “일반인의 상식이나 교육자의 양심으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것들이 ‘생존’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되는 일이 벌어졌다”라며, 이를 견딜 수 없어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고 밝혔다.

도대체 자율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궁금증을 풀기 위해 먼저 이씨가 다녔던 ㅇ고를 찾아가보았다. 교정에서 만난 아이들은 한결같이 자율고 전환 이후 학교가 달라진 점으로 “빡세졌다”를 꼽았다. “수업도 빡세지고, 야자(야간 자율학습)도 빡세졌다”라는 것이다. 한 2학년 여학생은 “1학년(자율고 1기)들이 들어오고 나서 본래 7교시였던 수업이 8교시로 늘었다. 야자도 새로 생겼다. 작년까지는 전교 100등 안에 들던 애들만 학교에 남아 야자를 했는데, 올해부터는 나머지 애들도 10시까지 남아 야자를 한다”라고 말했다.

그나마 야간학습이 자율인 2·3학년 일반고생들과 달리 자율고생으로 입학한 1학년은 전원 의무적으로 야간학습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한 1학년생은 “오후 5시10분에 수업 마치고 10시까지 야자를 한다.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 힘들었지만 지금은 견딜 만하다”라고 말했다.

국·영·수 시간을 대폭 늘린 것도 자율고 전환 이후 특징이다. 외고를 갈까 하다가 이 학교를 택했다는 한 1학년생은 “영어에 치중하는 외고와 달리 학교에서 주요 과목을 고루 다뤄주어서 좋다. 수학이 일주일에 8시간인 것도 맘에 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아이는 인근에 있는 또 다른 자율고인 ㅇ고를 언급하기도 했다. “ㅇ고에 간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그 학교가 더 빡세게 가르치는 것 같다. 은근히 신경 쓰인다.”

서울 시내 자율고 13곳 운영 실태를 조사 중이라는 김용섭 전교조 서울지부 사립위원장은 모든 자율고에 입시 위주 교육을 강화하는 흐름이 공통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국·영·수 수업 시수를 강화하는 것은 기본이고, 통상 고2 단계에서 이뤄지던 계열별 분리를 1학년으로 앞당긴 학교도 여럿 있다는 것이다. 강남의 ㅈ고는 아예 입학 직후 계열을 나누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지난 2월 외부 기관 도움을 받아 예비 신입생 전원에 대한 적성검사를 실시하고 학부모 면접을 거쳐 문과·이과를 나눴다. 그 결과를 갖고 1학년 반 편성을 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율고에 올 정도 아이들이면 중학교 때 일찌감치 자기 진로를 정한다. 학교는 그걸 돕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그러나 김용섭 위원장이 보기에 자율고들이 이렇게 계열별 분리를 앞당기는 이유는 하나. 입시에서 좀 더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서이다. 자율고는 학교가 교과과정을 자유롭게 짤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런데 이렇게 주어진 자율이 결국 학교를 입시학원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것이 그의 비판이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김성천 부소장은 "입시에만 목 매는 학교를 만들라고 우리 사회가 자율고를 허락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