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 시황제 연보
기원전 259 정월, 조[趙]나라의 수도 한단[邯鄲]에서 출생.
성명은 영정[政], 소양왕[昭襄王]은 증조부, 조부는 효문왕[孝文王]
아버지는 훗날 장양왕[莊襄王]이 되는 이인[異人].
어머니인 주희[朱姬], 일명 조희[趙姬]는 ‘기화[奇貨]가 있을것’이라는
고사에서 이인을 도와준 호상 여불위[呂不韋]의 첩으로, 이인에게 시집가
정[政]을 낳아, 여불위가 실부[實父]라는 설도 있다.
기원전 257 진군[秦軍], 조[趙]나라의 한단을 포위.
정의 아버지인 이인, 여불위와 함께 조나라를 탈출.
이인, 자초[子楚]로 개명.
기원전 251 소양왕 사망, 그 아들 안국군[安國君]이 효문왕으로 즉위.
자초가 태자에 즉위.
조나라, 정과 그의 모친을 진[秦]나라로 보내다.
기원전 249 효문왕 사망, 자초가 장양왕으로 즉위.
여불위, 승상에 올라 문신후[文信侯]로 봉해지다.
기원전 246 장양왕 사망, 정이 열세살의 나이로 즉위.
여불위가 정치를 집행.
기원전 242 몽오[蒙?], 위[魏]의 20여개 성을 차지, 그지역에 평군[平郡]을 설치.
기원전 241 수릉[壽陵]을 공략한 한[韓], 위[魏], 조, 위[衛], 초[楚] 등 5개국
연합군을 함곡관[函谷關]에서 격퇴
기원전 239 동생인 장안군[長安君] 성교, 조[趙]나라 공략 중 반란을 일으켰다
실패하자 자살.
기원전 238 반란을 꾀한 노애(모친의 애인) 일족을 주살하고 모친인 태후를
잠시 연금.
기원전 237 여불위를 파면, ‘축객령[逐客令]’을 폐지하고 이사[李斯]를 등용
기원전 235 여불위 자살.
기원전 233 이사, 한[韓]나라의 사자 한비[韓非]를 억류하여 자살케 하다.
기원전 232 인질로 진[秦]나라에 가 있던 연[燕]나라 태자 단[丹] 귀국.
기원전 230 한[韓]나라를 멸망시키고 영천군[穎川郡]을 설치
기원전 228 장군 왕전[王?], 조나라를 멸망시키다.
진왕 정이 직접 한단으로 가서 외가와 원수지간인 자들을 갱살[坑殺] 하다.
모친인 태후 사망
기원전 227 연나라 태자 단이 파견한 형가[荊賈]의 정 암살 계획 실패.
연나라를 공격하여 이수[易水] 서쪽에서 격퇴
기원전 225 왕분[王賁], 위[魏]나라를 멸망시키다.
기원전 223 장군 왕전, 초왕[楚王]을 체포,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초군[楚郡]설치.
기원전 222 왕분, 연나라를 멸망시키다.
왕전, 강남[江南]일대를 평정, 회계군[會稽郡]설치
기원전 221 왕분, 임치[臨淄]를 공략하여 제왕[齊王]을 체포.
제[齊]나라를 멸망시켜 진나라의 중국 통일 실현.
시황제[始皇帝]라 칭하고 시호를 폐지.
왕명[王命]을 제[制], 왕령[王令]을 조[詔]라고 하고 짐[朕]이라고 자칭.
주[周] 왕조의 화덕[火德]을 이겼다고 하여 수덕[水德]을 채용, 수[水]의
숫자 6을 표준으로 삼고 흑[黑]을 진[秦]의 색깔로 함.
이사의 의견에 따라 전국을 36개 군[郡]으로 나누어 수[守](행정장관) ?
위[尉](군사장관), 감[監](감찰관)을 중앙에서 파견
무기를 몰수하고 범종과 종걸이 및 중량이 각각 1천 석[石]인 상[傷]을
12개 주조하여 궁정에 두다.
도량형을 통일, 마차 양 바퀴의 간격을 일정하게 하였고, 문자의 서체도
소전[小篆]으로 정하다.
전국의 호족, 부호 12만 호[戶]를 함양으로 강제 이주 시키다.
기원전 220 농서, 북지[北地]를 순행[巡幸](1차).
극묘[極廟], 감천군[甘泉宮] 을 조영.
인부들에게 작일위[爵一位]를 하사하여 함양을 중심으로 전 지역으로 뻗친
치도(전차 전용도로)를 완성시키다.
기원전 219 동방의 군현[郡縣]을 순행(2차). 태산[泰山]에 올라
봉선[封禪](하늘에 제사), 산기슭의 양보산에서 망제[望祭](산천에 제사)
의식을 거행.
지부산에 올라 비석을 세우고 낭야에서 3개월간 체류.
낭야대를 만들고 비석을 세우다.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에서 선약[仙藥]을 구하기 위해 서복[徐福]과 동자
수천명을 파견.
폭풍으로 상산사를 참배하지 못하게 되자 격분하여 상산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리다.
기원전 218 동방을 순행(3차), 양무현의 박랑사[博浪沙]에서 장량[張良]의 역사
여홍성이 던진 철퇴의 저격을 받았으나 다른 가마가 파괴되었다.
지부산에 올라 비석을 세우고 낭야를 거쳐 환궁하다.
기원전 215 갈석산[碣石山]에 올라 갈석문에 비문을 새기다.
‘진을 멸망시킬 자는 호[胡]이다’라는 예언서를 읽고, 몽염[蒙恬]에게
군대 30만을 내주어 흉노를 공격.
4차 순행
기원전 214 영남 지방을 정복하여 계림[桂林]?남해[南海]?상[象] 등 3개 군[郡]을 설치
유배자 등 50만명을 이주시킴
몽염, 흉노를 쫓아버리고 44개 현[縣]을 설치, 만리장성의 축조 시작
기원전 213 이사의 상주[上奏]에 따라 진나라의 역사, 의약, 점술, 수종원예 이외의
서적을 30일 이내에 소각하게 하다(분서[焚書])
기원전 212 죄수 70여만명을 동원하여 아방궁[阿房宮]과 여산릉[驪山陵]의 조영을 시작.
후생, 노생, 선약[仙藥]을 입수한다는 명목으로 시황제로부터 자금을
얻었으나 시황제를 비방하면서 도망.
이들을 찾아내기 위해 유학자 4백 60여 명을 체포하여 갱살(갱유[坑儒]).
이에 대해 간언한 장자[長子] 부소[扶蘇]를 몽염의 군대를 감독하라는
명목으로 상군에 좌천.
기원전 211 동군에 떨어진 운석에 ‘시황제 사망하고 땅이 나뉜다’라고 새겨진 것을 발견.
범인이 잡히지 않자 주변 주민 모두를 죽이고 운석을 녹여버리다.
5차 순행.
기원전 210 호해[胡亥]를 데리고 순행하던 도중, 평원진[平原津]에서 발병.
부소의 제위[帝位] 계승과 함양에서의 장례를 명령한 문서를 조고[趙高]
에게 맡기고 사구[沙丘]의 평대에서 50세의 일기로 사망.
시황제의 유해는 온량거에 실려 함양으로 돌아오나, 도중에 소금에 절인
생선을 넣어 시체 썩는 냄새를 감추었다.
여산능에 장사지냄.
조고는 이사와 짜고 부소에게 자살을 명하는 문서를 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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