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秦始皇)의 죽음과 진(秦)왕조의 몰락
기원전 210년 진시황은 순행길에 올랐다.
회계(會稽)를 거쳐 낭야를 향했다.
이 순행길은 승상 이사와 환관 조고(趙高), 그리고 시황제의 차남 호해(胡亥)도
수행하였는데, 시황제는 낭야로 가던 도중 갑자기 병이들어 위독해졌다.
그러자 진시황은 조고를 시켜 맏아들 부소(扶蘇)에게줄 유서를 만들었는데, 조고가
이 편지를 사자에게 건네 주기전에 진시황은 숨을 거두었다.
그러자 유서와 옥새가 조고에게 있었고, 호해와 이사 및 환관 몇명만이 진시황의
죽음을 알뿐이었으므로, 그들은 시황제의 죽음을 발표할 경우 예기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여 시황제의 죽음을 비밀로 하고 함양으로 돌아왔다.
한편 조고와 승상 이사는 진시황의 유서를 위조하여 호해를 2세황제로 즉위시키고,
큰아들 부소와 장군 몽염에게 죄를 씌워 자결토록하는 명을 내렸다.
이를받은 부소는 곧바로 자살하려 하였으나, 몽염은 일의 내막을 알기전에 죽어서는
안된다하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받들겠다는 부소의 의지을 꺾지는 못하였다.
이에 부소는 자결하였으며, 몽염은 자결을 거부하여 체포되었다가 결국 조고에 의해
사약을 받아 죽게되었다.
그리하여 호해가 시황제의 뒤를 이어 2세황제가 되자 호해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포악한 정치를 일삼았다.
호해는 22명에 달하는 형제자매와 일족을 모조리 죽이고, 후에 승상 이사마저도
허리를 잘라 죽이는 형벌(斬刑)에 처했다.
뿐만아니라 시황제 시절부터 계속되던 건축에는 백성들의 착취와 압박에 대한 원성이
점점 커져 농민봉기로 번지게 되는데, 이는 209년 진승(陳勝), 오광(吳廣)의 난으로
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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