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의 분류 (3)
동양화의 분류 (3)
■ 축수도 ■
축수도란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동물들을 소재로 한 그림을 말한다. <동국세시기>에 보면 우리 나라 매년 정초가 되면 해태, 닭, 개, 호랑이를 그려 부엌문, 중문, 곳간문, 대문에 붙이는 풍속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도둑을 막는 그림인 신구도에서 개는 용맹스럽고 다소 과장된 모습을 하고 있다.
전통미술의 소재로 등장하는 동물들은 그 종류가 실로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동물은 호랑이이다. 호랑이는 단군신화에도 나올 정도로 우리 민족과는 밀접한 관련을 갖는 짐승으로 <삼국유사>를 비롯한 많은 문헌들에서 사납고 무섭게 묘사되기도 하고 혹은 은혜를 갚는 보은의 동물로도 묘사되기도 했다.
호랑이 이외에 축수도의 소재가 될 수 있는 동물들로는 사슴과 개, 토끼 등이 있다. 사슴 그림은 그 독음 때문에 복록을 의미한다. 사슴 그림에는 사슴이 한 마리나 두 마리, 혹은 떼지어 노는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사슴의 마리 수에 따라 쌍록도와 백록도라 불린다. 사슴을 한 마리만 그릴 때는 보통 흰사슴을 그려놓고 백록도라고 하는데 백마리가 그려졌다는 백록도나 군록도와 같은 뜻을 지닌 그림이다. 사슴은 불행과 질병을 막아주는 주력이 있고 복록을 의미하는 동물로 보았기에, 백록도는 백마리나 되는 사슴이 온갖 복록을 가져다주는 길상화가 되는 것이다. 쌍록도는 암수 한 쌍의 사슴이 소나무나 단풍나무를 배경으로 정답게 불로초를 입에 물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부부상화의 의미가 한층 강조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슴은 신선들이 타고 다니는 영물로 여겨져 민화의 신선도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사슴은 그 뿔이 봄에 돋아나 자라서 굳었다가 떨어지고 이듬해 봄에 다시 돋아나길 거듭하기에 장수, 재생, 영생을 상징하는 십장생의 하나로서 그 그림을 벽에 붙이기도 하고 베개에 수놓아 베고 자고, 주머니에도 수놓아 차고 다녔다. 또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르는 녹각이 신의 뜻을 감지하는 신성매체라하여 무당이나 족장 또는 임금의 머리장식에도 쓰였다. 사슴이 천년을 살면 청록이 되고 청록이 다시 500년을 더 살면 백록이 된다고 한다.
민화 속의 토끼는 귀엽고 연약한 모습으로 묘사되는 수가 많다. 호랑이의 담배 심부름꾼으로 저절로 웃음이 터져 나올 정도로 익살스럽게 그린 것도 있다. 화조도에서는 꽃을 배경으로 하여 암수 한 쌍이 조연으로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호랑이와 다정스럽게 숲 속을 거니는 모습을 하고 있다. 또 달에 있는 계수나무 아래에서 절구질을 하는 모습을 그리기도 한다. 달나라의 계수나무는 높이 300장에 이르는 엄청나게 큰 나무인데, 계수나무 아래에 사는 한 쌍의 토끼를 옥토라 한다. 훤한 달밤에 두 마리의 토끼가 절구방아를 찧는 그림은 밤새도록 불사약을 절구질하는 옥토의 모습에서 유래된 것이다.
■ 판화 ■
우리의 판화 역사는 매우 오래다. 경주 불국사 석탑에서 나온 유물 가운데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신라 경덕왕 10년에 목판으로 찍은 것이어서 중국이나 일본의 것보다 연대적으로 앞서고 있다. 751년 이전에 제작되었는데 이때부터 목판의 판각은 자리가 잡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판화로는 고려 초기의 「어제비장전」이 있다. 983년 완성된 20권본과 996년에 완성된 30권본이 있으며, 불도의 깊은 뜻을 내용으로 한 본문과 보리 도량을 그린 판화로 그 묘사 기법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그 비슷한 연대인 1007년 고려 목종 10년에 발간된 총지사 「보협인다라니경」의 판화도 고려 초기의 발달된 판화 기법을 보여주는 유물로 현재 완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길이 10cm, 폭 5.4cm의 삽화로서 정교하면서도 단순하게 표현되었으며 「보협인다라니경」의 내용을 압축시켜 놓은 것이다. 이렇듯 고려 시대의 판화는 대개 사찰에서 스님들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그 기법이 화려하면서도 장엄하고 판각이 섬세, 정교하여 중국보다도 발달된 목판본의 삽화를 보여주고 있다. 고려 고종 21년에는 목판 인쇄의 단점을 보완해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하여 새로운 인쇄 방법이 제시되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판화로는 「삼강행실도」, 「이륜행실도」, 「부모은중경도」 등이 있는데 이것은 인물, 풍속, 예악, 유학, 불화, 미술, 무예, 천문, 지리에 관한 것들을 도식화하여 삽화로 엮어 윤리 교과서의 내용을 설명하는 데에 사용하였다. 특히 동판으로 된 「부모은중경도」는 조선 후기의 것으로 경기도 화성군 용주사에 보관되어 있는데 글의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그림을 그려 찍어낸 동판화이다. 조선중기에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인하여 서적간행이 어려웠다. 때문에 고려 시대의 것보다 화려하고 정교하지는 않으나 대담하고 단순하게 처리된 공간의 화면을 볼 수 있다. 이는 자연스럽게 발전된 일상생활에서의 필요성과 미적가치를 높인 민속적인 내용의 민화와 부적 그리고 능화판 등에 이용되었다.
능화판에 사용된 판목은 거제도, 울릉도 등 섬에서 나온 '거제수'나 배나무, 감나무 등을 베어 수년간 시궁창이나 바닷물에 담그고 또 소금물에 쪄서 진을 뺀 다음 비바람에 3년여를 바래기한 연후에 사용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판목에 글이나 문양을 새기고 옻칠을 입혀 놓은 것은 오늘날까지도 좀이 슬지 않고 단단하게 보존되어 있다.
고려 시대에 제작되어 해인사에 보관중인 「팔만대장경」의 조판방법도 이와 같이 제작된 것이다. 우리 나라 옛판화의 특색은 다색판화가 거의 보이지 않고 주로 검정색과 붉은 색으로 찍은 것들이 보인다는 점이다.
우리 나라 판화는 조선말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거듭하였는데 개화후 활판술이 들어오면서부터 갑자기 쇠퇴의 양상을 보였다. 해방 이후의 혼란기와 6.25사변 등 국란을 겪으면서 서구문명이 밀려오고 우리 미술계도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한국의 현대 판화는 1950년에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몇몇 작가들의 헌신적 노력에 의해 미술분야의 한 장르로 자리잡혀가면서 1958년에 '한국판화가협회'가 결성된다. 창립회원은 박성삼, 박수근, 변종하, 유강열, 이항성, 최영림, 장리석, 정규, 임직순, 김정자, 전상범 등이었다. 1963년에는 미술대학에서 판화수업이 시작되었고, 1968년에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립되었다. 이때의 창립회원으로는 유강열, 이상욱, 김상유, 김정자, 강환섭, 배륭, 윤명로, 김종학, 서승원 등이 있다. 이 모임이 오늘날 국제 판화전과 공모전을 여는 명실상부한 모임으로 자라나기까지 회원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 화조화 ■
꽃 · 새 · 들풀 · 풀벌레 · 애완동물 등을 소재로 한 그림을 지칭하는 화조도는 화훼 · 초충 · 영모 · 절지 · 동물화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로 오늘날 사용되고 있다.
부려공교(풍성하고 화려하면서 치밀하고 교묘한 것)한 화조화의 특색을 몇 가지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연과 생물을 주도하고 정치한 관찰에 의하여 그렸으며, 색과 선도 주도하고 정치하였다. 둘째, 구성상의 역감에 따라서 색과 선도 역감에 넘쳤다. 셋째, 화면정위의 모양에서 특색이 뚜렷하다. 즉, 그림이 정세연려하면서도 침착하였다. 화조화에서는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새 한 마리, 벌레 한 마리까지 모두 유현한 뜻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즉, 일화일조를 통하여 삼라만상을 관조하는 것이 화조화의 예술세계라 하겠다.
화조화는 삼국 이래 꾸준히 발전하여 왔는데, 화단 전체 조류에 따라 서체와 황체가 교대로 성행하였다. 욕교반졸(교묘하게 하고자 하면 오히려 졸렬하게 됨)이라는 사상이 철저하였던 한국인의 회화관 탓인지 세기와 농채는 보기 드물고 조금은 거칠면서도 자연스럽고 생명력이 넘치는 맛을 주는 것이 우리 나라 화조화의 특징이다.
동양화, 특히 동양화 가운데에서도 화조화를 그릴 때 돌과 꽃과 새를 함께 그리는 것은 만고불변의 고담한 돌을 통하여 냉정하고 숙연한 아름다움과 생기발랄한 청기를 함께 표현하고자 함에서이다. 따라서, 화조화는 그 위치와 모습이 모두 골법적인 것을 선택하여야 하며, 그 주위의 자연에 둘러싸여 있지 않으면 안된다. 즉, 꽃이면 꽃, 새면 새 하나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어우러지고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에서의 꽃이고 새인 것이다. 그래서 화조화에는 동양인의 장수 . 복록 . 우수 . 궁합 . 범신 등 각종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다.
중국에서는 위진남북조시대에 시작되어 당말에서 북송대에 이르는 동안 성행되었다. 대표적인 화가를 열거하면 오대의 서희·황전, 북송의 서숭사·황거심, 원의 전무거, 명의 변문진·궁기, 청의 황신·운수평·양주팔괴 등이 있다.
송의 이홍린은 마도에서 원의 조맹부는 화조에서 채색의 사용없이 붓을 빨리 움직이면서 고른 선만으로 그리는 백묘법으로 그렸고, 서숭사는 선량의 효과로 필선을 숨기며 형태를 나타낸 몰골법의 화조도를 창시했다. 황전은 가늘고 고른 선으로 물체의 윤곽을 그리고 색을 칠하는 구륵법으로 그렸다.
고려이전은 전래된 작품이 없어서 구체적인 상황을 알기 힘드나, 고려말에 이르면 말이나 매그림 등 한가지 소재만으로 명성을 얻은 사인화가들을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간접자료로 도자기의 문양이나 송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이미 고려시대에 이 분야그림들은 크게 번성했으리라 여겨진다. 현존하는 조선중기 이후의 작품을 통해 산수화나 풍속화에 뒤지지 않는 한국적인 정취가 짙은 수작임을 알 수 있다.
화조도는 일반적으로 꽃과 새를 함께 그리는데 때로는 조그만한 편화로 새가 중시되는 경우, 꽃이 중시되는 화훼, 여러 종류의 꽃과 새를 함께 나타낸 장식적인 그림, 어해도의 상단이나 하단에 그린 꽃 등은 다양한 구성을 보인다. 조선후기에는 신명행이나 김수철같이 다양한 꽃그림을 많이 남긴 인물들도 있다.
이 분야 그림에 있어그 소재를 살펴보면 먼저 새그림에는 까치가 줄기차게 그려졌고 매, 독수리, 학, 꿩, 원앙새, 닭, 물오리를 포함은 물새들, 딱따구리, 메추리, 백로 등이 있다. 동물에 있어서는 개, 고양이, 양, 염소, 말, 호랑이, 용들이 있으며 이밖에 초충도에는 도마뱀, 풀벌레, 벌, 나비들을 찾아볼수 있다. 드문 소재이긴 하지만 원숭이나 쥐도 그려졌다.
이들 그림을 소재별로 살펴보면, 새그림은 15세기 유자미나 이종준의 傳稱作品을 통해 고려자기의 문양으로 크게 성했던 鶴을 살필 수 있다. 松鶴은 瑞祥的인 성격으로 후대 민화에 이르기까지 계속 그려졌다. 16세기에는 김정·신사임당·신세림·이경윤·영윤 여제 드을 열거할 수 있다. 새그림 소재중 까치는 비교적 여러 화가들에 의한 작품들이 전래된다. 중국에서도 喜鳥로 일찍부터 그려졌다. 조속의 「朝鵲圖」 외에 그의 아들 조지운을 비롯해 이함·조영우·심사정·홍세변 등의 사인화가들과 김홍도 등 다수의 畵員들도 까치그림을 남기고 있다. 매와 독수리는 특히 정홍래가 잘 아려져 있고 장승업도 수작을 남기고 있다. 이준(李濬)과 심사정의 딱따구리 그림이 있고, 이밖에 닭은 변상벽과 정선·신윤복 등의 그림이 전해진다.
소와 말은 일찍부터 그려진 소재로 특히 말의 경우 중국에서 당이래로 馬畵로 이름을 얻은 화가들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뿐만 아니라 신라의 천마도 등 삼국시대의 畵跡이 유존되고 있어 오랜 역사를 알 수 있다. 조선조에는 윤두서와 윤덕희 부자가 훌륭한 그림을 남기고 있다. 소그림 역시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그림이기도 하지만 동양에 있어서는 농사와도 떼어 놓을 수 없는 동물이다.
그림에 있어서는 단순히 소만을 소재로 한 경우 외에 도석인물화나 풍속화에도 나타난다. 김제와 김식이 소그림으로서 유명하며 김두량도 목우도의 일품을 남기고 있다.
조선후기에는 김홍도의 풍속화나 신선도에서 자주 등장한다.
일찍이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살필 수 있는 犬圖는 조선시대에도 줄기차게 그려졌다. 宗室출신 이암(1499∼?)은 「母犬圖」를 위시해 개와 고양이를 소재로 한 몇 폭의 그림을 남기고 있다. 뒷 배경으로 성근 나무를 포치시키고 그 아래 개를 그리는 구도는 隨代의 그림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경윤(1545∼?)의 「긁는개」는 특히 김두량(1696∼1763)의 「黑狗圖」와 관련이 있다. 소폭의 화면에 섬세한 필치로 터럭 하나에 이르기까지 잘 나타낸 「흑구도」는 또한 서양화법과의 강한 연결을 시사한다. 수법에 있어서는 차이가 크나 구도나 개의 자세는 이경연의 그림과 공통점이 크다. 김두량은 이외에도 몇 폭의 개그림을 남기고 있는바 이 분야에서 자못 접하는 위치가 크다. 1795년 연기가 있는 이희영의 「견도」 및 한때 김홍도의 그림으로 전칭되던 「猛犬圖」 등은 모두 수작이며 이밖에 김홍도나 신윤복의 그림들도 전래되고 있다.
虎圖는 민화에 있어 까치호랑이가 잘 알려져 후기의 민화가 주류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사실은 어엿한 화가들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매년 避邪의 의미로 그려진 세화(歲畵)이며, 이 그림의 시원은 고구려 고분벽화의 사냥장면이나 사신도의 백호도에서도 다소 변형된 형태이나 살필 수 있다. 이상좌傳稱作인 「우중맹호도」는 원초의 선승화가 법상의 호도와 연관이 보여진다. 고운(1495∼?)은 대소 두 폭의 호도를 남기고 있어 보기 드문 16세기 호랑이 그림의 면모를 보여준다. 18세기에는 정홍래(1720∼?)사 산수외에 매와 호랑이 그림에도 뛰어났다. 홍호도 호랑이를 잘 그린 인물로 전해진다.
강세황과 김홍도의 합작 호도가 있으며 김득신·이의량(1768∼?)과 유숙(1827∼1873)도 이 분야의 그림을 남기고 있다.
고양이 역시 생소하지 않은 영모화(翎毛畵)의 소재이다. 중국에서 宋 이래로 애완동물로 깜직하고 귀여운 모습으로, 때로는 고양이와 노니는 어린이를 함께 그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변고양이란 별명을 얻을 만큼 고양이의 그림의 대명사가 된 조선시대 숙종대의 변상벽은 생동감이 넘치는 사실적인 고양이 그림들을 남기고 있다. 고양이의 생리와 특징이 능숙한 필치로 잘 나타낸 그의 그림들은 단순히 畵本을 통해 익힌 것이 아니라 실물 뎃상을 통해 이룩한 묘사기법으로 생각된다. 심사정의 파초아래 오똑 앉아있는 모습의 고양이는 명대 대진(1388∼1462)의 그림에서 찾을 수 있어 그 연원을 짐작할 수 있고, 정선도 국화와 함께 그린 것이 있으며 이외에 신윤복이나 남계 우·장승업 등의 그림들과 김정희의 수묵으로 배경없이 그린 고양이 그림도 알려져 있다.
나비그림은 남계우(1811∼1888)가 「남나비」로 가장 잘 알려져 있으나 일찍이 신사임당 그림을 위시한 草蟲圖중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난다. 18세기 이명기도 공개된 작품은 없으나 문헌에 의하면 彩蝶에 능했고 이밖에 이교익(1807∼?)·조희룡·서병건(1850∼?)등이 이 소재의 그림으로 이름을 남긴 화가들이다.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중기이후의 그림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 분야에 있어서도 진경산수나 풍속화 등에서 분명히 보았던 한국화적인 정취가 짙은 수작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