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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재해는 하나님의 심판인가? (송인규 목사)

지식창고지기 2011. 8. 12. 06:02

자연 재해는 하나님의 심판인가?

 

Q: 최근의 자연 재해 사태 (쓰나미, 카트리나, 동남아 해일 등)를 보고 하나님의 심판을 운운하는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있는데, 과연 그것이 합당한 반응인가요?

 

A: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음의 글 내용을 참조하십시요.

 

요즈음 지구촌에 지진, 해일, 허리케인, 홍수 등이 속출하면서 사람들은 그런 자연 재해의 원인을 찾느라 부심하고 있다. 물론 자연 재해는 시공간 내에서의 인과 관계에 의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 해수 온도의 상승, 늪지대 난개발 등 자연 내의 요인들을 재해의 원인으로 규명해 마땅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관심은 그 이상의 것 -- 초자연적 원인 규명 -- 에 쏠려 있다. 그리하여, 재난 지역 주민들이 예수를 믿지 않아서 그렇다는 둥, 그리스도인을 핍박한 것이 주 요인이 아니냐는 둥, 도덕적으로 방탕해서 심판하신 것으로 여겨진다는 둥 하나님의 심판적 개입 여부를 알고 싶어 한다. 우리는 이러한 판단 행위를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우선,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 또 동의해야 하는 -- 몇 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S1].

 

둘째, 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악에 대해 반드시 심판을 하신다 [S2].

 

셋째, 이 세상에서 겪는 모든 고통 -- 자연 재해 포함 -- 인간의 타락 때문이다 [S3]. 그러나 S1, S2 S3가 사실이라고 하여, “오늘날 겪는 자연 재해는 어떤 특정한 대상의 특정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다”[S4] 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다.


만일 어떤 이가 S4의 주장을 구약 시대와 연관지어서 했더라면 시의적절했을 것이다.

 

즉, 구약 시대의 심판은 두 가지 특징을 띠고 있었다.

 

첫째, 구약 시대의 심판은 상응적(corresponding)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특정인과 심판 -- 이 경우 자연 재해 --을 당하는 대상이 대체로 상응했다.

 

둘째, 구약 시대의 심판은 즉각적(instant)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후 얼마 있지 않아서 그 범죄자가 심판을 당하는 식이었다. 이러한 두 가지 특징은 노아의 홍수 (창 6:5-7),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창 18:20; 겔 16:49-50), 하나님의 저주 예고(신 28:20-24), 이스라엘의 메뚜기 재앙(욜 1:4-7 및 2:12-13a) 등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는 바이다 [심지어 예수께서 언급한 실로암 망대 사건(눅 13:4-5)도 옛 언약의 시기에 속하는 것으로 보아 이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약 시대는 하나님께서 신정 통치적 섭리 방식을 취하셨기 때문에 자연 재해를 통한 심판이 상응적이고 즉각적이었으나, 신약 시대로 넘어오면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중보자적 통치가 도입되면서 심판의 시여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cf. 요 5:22). 다시 말해서, 오늘날에는 자연 재해를 통한 하나님의 심판 방식이 비(非)상응적이고 유보적이라는 것이다. 우선, 죄를 범한 이와 자연 재해 피해자 사이에 일치가 되지 않는다. 산사태가 나면 근처의 절과 기도원이 함께 피해를 입는다. 또, 처참하게도 그 기도원으로 수양회를 갔던 중고등부 학생들이 목숨을 잃기도 한다. 지진, 해일, 허리케인 등 자연 재해는 기독교인이라고 해서 비켜가지 않는다. 반대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도덕한 일을 자행하면서도 평생 자연 재해를 겪지 않는 개인, 집단은 지구촌 곳곳에 얼마든지 있다.


그러면 그렇다고 하여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악인의 죄를 심판하시지 않는다는 말인가? 답변은 물론 “아니다!” 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악을 반드시 심판하시지만 단지 유보적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그냥 넘어간 모든 죄의 행동은 반드시 최후 심판에서 낱낱이 다루어질 것이다 (롬 14:11-12; 고후 5:10; 계 20:11-12).


따라서 우리는 자연 재해를 당한 지역의 사람들에 대해서 함부로 -- 우리가 하나님인 것처럼 -- 정죄의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모르는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 편에서는 기도와 구호를 통해 사랑의 손길을 펼쳐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스라엘의 범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물론 이 경우 자연 재해는 아님)을 알고 계셨지만, 그들을 위해 우셨고(눅 19:41-44), 심지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도 못을 박는 그 군병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으셨던가? (눅 2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