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과 아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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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11장 4절부터 이제 믿음의 선진들을 한 인물씩 하나님께서 나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을 시작하여 이 리스트를 주시는데 우리는 여기서 질문해 봐야 하는 것이 있다. 왜 하나님께서는 아담부터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한 우리가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는 부분은 바로 더 나은 제사가 무엇인지 그리고 아벨과 가인이 드린 예물의 틀린 점이다.
아담과 하와는 인류 중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거하시던 에덴 동산에서 살았던 사람들이다. 비록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나중에 쫓겨났지만 에덴 동산에 거하였을 때에는 하나님과 대면하며 교제를 나누었던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나누었던 것처럼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지 이미 우리 눈에 보였다면 이는 무엇인가 있다고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믿음이 필요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둘은 이미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에덴 동산에서 거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약속은 창세기 3장 15절인데 여자의 후손으로 역사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직접 귀로 들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그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창세기 3:15)
그래서인지 아담과 하와가 가인을 낳았을 때 하나님께서 나로 득남하게 하셨다는 뜻으로 가인이라고 이름을 지어준다.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했던 첫번째 세대였던 것이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 중에서 오직 아벨만이 제사를 통해 의로운 자라고 하나님께서 칭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가인과 아벨이 드렸던 제사를 가지고 비교를 하시는데 과연 아벨이 어떻게 제사를 드렸길래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가 더 의롭다고 하셨을까? 성경 주석을 읽어보면 이렇게 해석하는 분들이 있다. 제사는 원어로 sacrifice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물이라고 가르쳐 준다. 그러기에 어떤 분들은 아벨은 양의 피로 제사를 드렸기 때문에 땅의 소산으로 드렸던 가인의 제사보다 더 의롭다고 하나님께서 성경에 말씀하신 거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제사에 대해서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먼저 자세히 살펴보고 과연 이 주장이 옳은가 판단해 보자.
신기하게도 제사는 가인과 아벨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성경에서는 다루어 지지 않지만 이는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들은 것을 그대로 행하였을 거라고 추측할 수가 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지만 내보내시면서 가죽옷을 지어 입히신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가죽을 말씀으로 만드실 수 있지만 예측할 건데 동물을 잡아 직접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을 경우가 더 크다. 하나님께서는 반영구적으로 아담과 하와를 지켜주시고 교제를 나누시겠다는 의미로 무화과나무잎으로 만들었던 옷 대신 가죽옷을 주신 것인데 이를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짐승을 제물로 하여 아담과 하와에게 언약을 주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아담과 하와가 가인과 아벨을 낳았을 때 이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을 것이고 가인과 아벨 또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제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다. 그 내용이 바로 사람들이 가장 지루해 하는 부분인 레위기이다. 레위기 처음 부분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제사의 규례를 상세하게 기록하였는데 그 중에 속죄제라는 것이 있다. 레위기 4장부터 하나님께서는 속죄제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상세하게 기록하셨는데 속죄제를 위해서 수송아지를 제물로 드렸다. 그리고 만약 족장이 죄를 범하면 흠없는 수염소를 예물로 가져다가 드렸다. 평민이 죄를 범하면 암염소 새끼를 끌고 와서 예물로 삼았고 만일 없으면 어린 암컷 양을 가져와서 희생을 잡았다. 만일 힘이 어린양에 미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오게 하셨고 그것도 힘이 못 미치면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의 일을 예물로 가져다가 하나님 앞에 속죄제물로 드리라고 하셨다 (레위기 4-5장) 그리고 레위기 2장에서는 소제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동물의 피 제사뿐만이 아니라 식물의 제사도 받으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가인이 비록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동물과 식물의 차이 때문에 아벨의 제사는 의롭고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것이 아니다. 만약에 레위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오직 동물의 제사만 받는다고 하셨으면 위의 주장은 타당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식물제사 곧 소제도 받으셨기 때문에 다른 관점으로 봐야하는 것이 옳다. 또한 하나님께서 언제나 동물 제사를 기쁘게 받으신 것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냐? 나는 수양의 태움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누가 그것을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예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새 달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이사야 1:11-13)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일러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 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너희는 대답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의 말에 ‘여호와의 상은 멸시해도 된다’ 함이니라.” (말라기 1:6-7)
어떤 분들은 가인이 드렸던 땅의 소산은 자신의 행위의 열매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았다고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 어떤 주장들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 곧 지금의 예배가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알면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았는지 성경에 써져 있는 내용을 살펴보자.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그가 왜 죽였느냐? 이는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웠음이니라.” (요한1서 3:12)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그릇된 길로 달려갔고,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유다서 1:11)
가인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만약 가인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었으면 행위 또한 하나님 앞에서 의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온전한 제사를 드리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제사 역시 온전한 마음 즉 참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받지 않으셨다고 해야 더 타당한 이유이다. 제사는 하나님 앞에 바르게 드려야 하나님의 진노를 풀 수 있다. 바르게 드리지 않으면 이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멸시했다고 하여 이를 가증하게 생각하시고 받지 않으셨다.
가인과 아벨의 때에는 농사가 가장 중요한 직업이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 노아의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채소만 음식으로 허락하셨기 때문에 (물론 죄를 지어 동물을 먹을 수도 있어겠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던 것은 아니다) 가인과 아벨의 세대에는 농사가 가장 중요했던 것이다. 창세기 4장 말씀처럼 가인은 농사를 지었고 아벨은 양을 쳤는데 주의깊게 읽어야 할 구절이 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 자신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창세기 4:3-5)
가인과 아벨이 드렸던 제물의 틀린 점 중 하나는 아벨은 첫 소산을 드렸고 가인은 그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얻은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므로 우리는 수확한 모든 것의 처음 것으로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드리는 것이 옳은 것이다. 아벨은 하나님을 참된 믿음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으므로 첫 소산으로 하나님께 드린 것이고 가인은 그렇지 않았기에 그저 형식적으로만 제사를 드린 것이다. 한 가지 더 추측을 해 본다면 가인은 아벨에게 못되게 대했을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아벨은 농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양을 치고 가죽으로 옷을 지어 가인에게 주어 식량을 얻었을 것이다. 성경에는 써져 있지 않지만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부분은 가인이 아벨에게 충분한 식량을 주지 않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특권을 남용하여 동생에게 못되게 굴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제사를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던 것이다. 반면에 아벨은 하나님께 첫 소산을 드리며 충성된 마음으로 참된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왔기에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지금으로 온전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주일에만 나아가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주중에는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께 삶을 드리지 않는다면 그게 무슨 예배인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신 분이다. 아무 것도 이 세상에 가져온 것이 없는 우리에게 의식주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충족시켜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 것이다.
"예수께서 헌금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헌금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궤에 넣은 사람 누구보다 더 많이 넣었도다. 그들 모두가 그 풍족한 중에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마가복음 12:41-44)
아벨은 자신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 믿고 그 고백으로 양의 첫 새끼로 하나님께 제물을 드린 것이다. 아벨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배의 정의를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아버지께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하리니 아버지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3-24)
하나님 앞에 참된 믿음을 가지고 로마서 12장 1절 말씀처럼 우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참된 영적 예배를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