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사/종교 관련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본질이다. (1)

지식창고지기 2011. 11. 19. 10:41

디아코니아는 교회의 본질이다. (1)

홍주민 목사

홍주민목사는 한신대학 신학대학원(1990)을 졸업하고 1994년 9월 독일로 유학, 마인츠대학에서(Uni. Mainz) 수학하고 이어서 하이델베르크대학(Uni. Heidelberg)에 있는 디아코니학 연구소(Das Diakoniewissenschaftliche Institut)에서 석사학위(Diplom. Diakoniewissenschaftler)를 마치고, 동 대학의 신학부에서 테오도아 슈트롬 교수(Prof. Dr. Dr. Theodor Strohm)의 지도아래 ?한국기독교장로회의 디아코니아적 책임을 위한 민중신학의 의미-급변하는 한국사회속에서 교회의 역할을 위한 디아코니학적인 연구(Die Bedeutung der Minjungtheologie fur die diakonische Verantwortung der Presbyterianischen Kirche der Republik Korea-Diakoniewissenschaftliche Studien zum Auftrag der Kirche im raschen sozialen Wandel Koreas)라는 주제로 2004년 2월에 박사학위 (Dr.theol.)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신대 신학부에서 신학독일어,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디아코니아 이론과 실재´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들어 가면서

나의 학문의 관심은 한신에서 신학의 문을 들어설 때부터 민중신학에 있었다. 한신대 신학대학원 시절 민중신학회를 통해 동료들과 수많은 토론과 발제 그리고 실천을 향한 의지형성에 많은 시간들을 할애하였다. 졸업 후 민중신학회 회원이 많아지고 발전적 형태로 모양세를 바꾼 것이 바로 민중신학연구소였다. 유학을 가기 전까지 근 4년여를 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었다. 그 기간 동안 연구소에서의 연구활동을 통해 나는 민중신학이 민중신학의 실천현장인 민중교회와 민중현장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고 하여야 하는 것에 계속된 물음이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연구소에서 조사한 민중교회의 의식조사와 현황조사에서 하나의 중요한 신학적 물음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조사결과에 의하면, 당시의 민중신학이 실천 현장인 민중교회의 실천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민중교회 목회자들의 비판으로 요약되었다. 이론과 실천에 대한 관계설정은 모든 신학의 중요한 근거가 되어야 한다는 화두는 그때 이후로 나의 신학방향의 결정적 명제로 자리하게 되었다.

이러한 물음과 함께 나는 독일로 가서 좀더 신학의 수련을 쌓고자 1994년 말 독일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 인간에게 있어 운명의 시간은 살아가는 동안 몇번 찾아온다는 말이 있는데, 나의 삶에 있어 아주 중대한 전환기가 마인츠 대학에서 독일어 어학수련 기간중 있었다. 한국에 있을때 별로 듣지도 알지도 못했던 독일의 디아코니아와 디아코니아학을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되었고 그에 관한 서적을 읽어 나가면서 나의 학문에 대한 방향이 결정되었다. 그동안 고민해왔던 실천과 이론의 관계성들에 대한 고민들이 바로 디아코니아학을 통해 좀더 접근할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학시험을 통과한 후 나는 지체않고 디아코니아학의 본산지인 하이델베르크 디아코니아학 연구소로 가서 디아코니아의 실천과 디아코니아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디아코니아학 석사를 마치고 이어서 하이델베르크 대학 신학부에서 디아코니아학과 민중신학의 상관관계를 주제로 신학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안병무 선생님은 그분의 독일유학에서 돌아오셨을때, 그분의 독일유학 10년간 오로지 추구하셨던 역사적 예수를 모르겠다는 결론밖에는 못가지고 왔다고 선언하였다. 나는 학위를 마치고 그리운 고국으로 오는 비행기안에서 그간의 독일 생활을 정리하며 줄곧 이런 생각을 하였다: 독일에 예수사랑의 실천의 역사는 있었고 지금도 거대한 하나님의 섬김 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독일의 디아코니아 실천

1998년 9월 독일 Wittenberg에서는 독일 디아코니아운동 150년을 기념하는 행사와 축제가 약 1주일간 진행이 되었다. 나는 디아코니학연구소 동료들과 함께 그 행사에 참여하는 소중한 기회를 가졌다. 흥미있는 것은 근 500년전 M. Luther가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고 95개조의 반박문을 내세우며 당시 중세의 카톨릭신학에 당당히 도전하였던 그 교회(Schloßkirche)에서 바로 150년전 J. H. Wichern의 즉흥연설과 함께 디아코니아운동의 거대한 화산이 분출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종교개혁의 핵심사상인 만인사제설의 전통을 다시금 회복시키려는 독일 디아코니아운동은 150여년전 산업혁명의 결과로 생긴 수많은 사회문제에 무방비와 무관심으로 일관한 기존교회에 대항하여 생긴 개혁운동이었다. ?사랑은 신앙이다(Die Liebe gehort mir wie der Glaube)“, 이 운동의 기폭제의 역할을 한 J. H. Wichern의 이 말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신앙과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큼 작게 시작한 그 운동이 이제 하나의 거대한 공룡으로 비교될 정도로 그 규모가 대단하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사랑의 힘이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사랑의 기적을 다음의 수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즉 현재 독일의 디아코니아 기관은 약 31,000개이고 42만여명의 직원이 그곳에서 일하고 있고 40만명정도의 자원봉사자 들과 100만이상의 의료침대를 제공하는 등, 예수사랑의 실천운동은 거대한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 또한 4300여개의 자원봉사 동아리들이 움직이고 있고 18,000개의 교회가 이 섬김의 사역에 연대하며 나아가고 있다.

구체적으로 독일의 디아코니아 실천의 내용을 살펴보자. 크게보면 디아코니아는 국내와 국외의 영역에서 이루어 지고 있다. 국내에서의 섬김활동을 살펴보면, 노인들을 섬기는 일(예를 들면: 양로원, 디아코니아 무료숙식소, 만남의 집), 노동자와 실업자들을 섬기는 일(예를 들면: 고용-자격증취득 회사, 청소년 일자리를 위한 도움처소), 디아코니아기관 직원들을 위한 계속교육, 사회적 군복무하는 젊은이들을 촉진 양성하는 일, 장애인을 섬기는 일(예를 들면: 상담소, 학교, 직업교육소, 거처 제공), 가족을 섬기는 일(예를 들면: 가족교육, 어머니 휴양소, 어머니들과 아이를 위한 기관, 여성들의 집, 결혼-,가족-,인생 그리고 임신분쟁을 위한 상담소), 특별한 사회적 어려움에 직면한 이들을 섬기는 일(예를 들면: 집없는 이들을 위한 상담소와 이들에게 실제적 도움을 주는 일, 감옥 출소자들을 위한 상담소, 기차역 선교회, 창녀들을 위한 상담소), 병원, 죽음을 앞둔 이들을 섬기는 호스피츠 아르바이트, 청소년들을 섬기는 일(예를 들면: 고아 장애자 아동 청소년을 위한 보호시설, 유치원, 자녀와 청소년을 위한 사회사업), 병든 환자들을 돌보는 일(디아코니아-무료숙식소), 이주자들을 섬기는 일(예를 들면: 이주자들을 위한 상담소, 망명자 피난민 강제 이주자들을 위한 상담소), 정신병원(예를 들면: 정신병 크리닉, 그들을 위한 특정한 거처와 일거리 제공, 사회적 정신병을 위한 봉사단), 도착증에 시달리는 이들을 돌보는 일(예를 들어: 상담소, 전문 크리닉, 재활시설), 전화상담목회등을 말할 수 있다.

이외에도 각 개교회나 노회단위차원에서 이루어 지고 있는 교회디아코니아 프로그램 들은 일일이 여기에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하나의 예로, 나는 디아코니아학 연구소에서 석사과정을 하면서 필수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디아코니아 실습을 한달간 한적이 있다. 나의 실습현장은 만하임에 있는 교회에서 추운 겨울기간동안 집없는 이들과 알콜중독자들 에이즈환자들 홀로 사는 노인들 등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이들과 함께 밥상공동체(Vesperkirche)를 한 달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교회의 문턱을 낮추고 교회본당안에서 그들과 함께 식사와 대화, 기도회, 그리고 실제적 도움을 제공하는 이 디아코니아 프로그램은 노회와 디아콘위원회등 여러기관의 연대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끄신 분은 다른 분이 아니라 우리교단에서 약 8년동안 선교사로 봉사하셨던 도여수(Lutz Drescher) 디아콘이셨다. 그분은 독일에도 민중교회가 생겼다고 아주 기쁘게 말씀하셨는데, 그분이 한국에 계셨을때 민중신학과 민중교회에서 받은 인상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음을 지속적인 만남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밥상공동체운동이 지금 독일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또한 국외적인 디아코니아실천으로는 유럽디아코니아와의 연대기관인 ?유로 디아코니아“, 1959년부터 시작하여 제3세계의 민중들을 섬기는 ?세계를 위한 빵(Brot fur die Welt)“운동, 에큐메니칼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교회가 교회를 돕는다(Kirchen helfen Kirchen)“ 프로젝트는 주로 개신교가 약한 유럽지역의 교회들과 정교회 그리고 다른 세계교회와의 연대사업을 위한 것이다. 또한 ?대참사의 희생자들을 위한 디아코니아(Diakonie Katastrophenhilfe)“에서는 갑작스런 곤경에 빠진 이들을 위해 음식과 천막 의복등 단기 중기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한 외국학생들이 독일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장학사업도 하고 있다. 그리고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유럽연대를 통해 개발도상국이나 산업사회의 폐해로 생기는 전세계의 길거리에 방치된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관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구동구권의 교회들을 위한 기부금 모금운동인 ?개신교 파트너 도움(Evangelische Partnerhilfe)“과 1994년부터 시작된 동구권을 위한 기부금 모금운동인 “동구권을 위한 희망(Hoffnung fur Osteuropa)“등이 있다.

이러한 독일의 디아코니아실천은 1848년 9월 Wittenberg에서 있었던 교회지도자 모임에서 J. H. Wichern에 의해 고무되어 시작되었다. 그를 통해 당시 산재하여 있었던 동아리 단위의 디아코니아실천들이 하나로 연대하게 되었고 이듬해 1849년 바로 내적선교(Innere Mission) 중앙위원회를 구성하고 구체화시켜 나갔다. 처음 이 운동에 가담한 이들은 신앙각성운동에 헌신적으로 자신을 던졌던 여성들과, 당시의 화석화된 교회에 환멸을 느끼고 살아있는 신앙의 회복과 종교개혁의 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즉 이들은 당시의 사회문제를 바로 교회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강하게 천명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밖을 향한 선교가 아닌 교회안에 있는 이들의 각성을 요구하게 되었고, 교회의 본질인 디아코니아가 회복되어야 할 것을 주창하였다. 또한 제3제국의 국가사회주의 폭압아래 독일의 교회는 다시금 진정한 의미에 있어 교회가 무엇인가에 대해 거듭 질문을 하게 되었다. 특히 고백교회에서 저항운동을 하였던 이들을 중심으로 전쟁이후의 새로운 교회에 대한 구상을 실현해 나간다. 그리고 종전이후 고백교회운동의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개신교 원조국 (Evangelisches Hilfswerk)를 세워 전후의 복구작업을 교회가 전면에 나서 신속하게 해나간다. 이후 1957년 내적선교회와 개신교원조국은 하나의 기관으로 융합하기로 합의하고 서로의 폭을 좁혀 나아가다가 1975년 오늘의 디아코니쉐스베르크로 합치된다.
독일의 디아코니아운동의 기폭제역할을 한 J. H. Wichern은 디아코니아의 실천을 다음의 세가지의 형태로 구분한다. 그는 개인적(자율적), 교회적 그리고 국가적인 디아코니아로 구분한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가정과 그들이 속한 모임속에서 사랑의 자율적 섬김을 강화시킨다. 그리고 그들은 어려운 이웃들의 곤경을 보며 사회적 과제를 찾아낸다. 이러한 개별적이고 자생적인 디아코니아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나타난다. 다른 한편 모든 지역교회에서의 섬김직(Diakonat)에서도 나타난다. 이 교회에서의 섬김직은 사회안에서 디아코니아의 의지를 형성해 나가며 공동체로서의 국가에 밀접한 연결고리를 이루는 핵심적 역할을 한다. 또한 국가는 이에 상응하는 제도를 설정,유지 그리고 관리, (예를 들어 빈민구제, 공공 병원, 빈민주택, 학교)할 섬김직의 의무를 부여 받는다. 비헤른에게 있어 국가는 지배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이처럼 독일 디아코니아의 실천은 개인과 교회 그리고 국가의 세 범주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 지고 있다. 또한 각기 나누어진 지역과 기관에서 이루어지고 있지만 디아코니쉐스베르크를 통해 하나의 유기체적이고 통일된 구조속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