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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만찬

지식창고지기 2011. 11. 30. 18:24

주님의 만찬

1. 예수께서 주의 만찬 의식을 제정하셨습니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 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 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는 죄사하다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 라" (마26:26-29).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제자들과 함께 보내고 계셨습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속박에서 풀려 난 것을 기념하는 연례 행사입니다.
세상 죄를 대신 담당하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요한1:29) 이제 인류를 죄악의 속박에서 해방시키시려는 장엄한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놓고,
무교병(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을 들어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 떡은 예수님의 몸을 대신하는 것이었고 제자들은 이것을 시행하여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식후에 예수께서는 포도나무에서 난 것의 잔을 들어 사례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면서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인류의 죄사함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흘리신 피를 기념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죽음의 재앙을 면할 수 있었던 유월절의 규례대로 예수님의 피는 죄를 대속 하는 새언약의 피였던 것입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는(히10:1)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주의 만찬은 이미 이스라엘의 출애굽 당시에 예표되었던 인류 구속을 선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장엄한 의식인 것입니다.

2. 우리는 어느 요일에 주님의 만찬을 행합니까?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20:7).
많은 사람들은 진지하게 "어떤 요일에 만찬을 실시하여야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성서가 우리에게 주는 답은 [안식 후 첫날]입니다.
사도행전 20장에서 사도 바울의 제 삼차 전도 여행 중에 일 주일을 머물기 위하여 월요일날 드로아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월요일)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20:7)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드로아 교인들과 함께 주님께서 명령하신 주의 만찬을 나누고, 말씀도 강론하려고 날짜를 맞추어서 도착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드로아 교인들이 안식후 첫날에 모인 목적은 떡을 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주의 만찬을 위하여 모였고 그 시간을 이용하여 바울은 긴 강론을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또한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고전16:2)라고 연보를 일요일에 하도록 권하였고, 이 날에 대하여 히브리서 10:25 말씀은"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라고 권면 하는 것입니다.
이 날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이며, 성령께서 강림하신 날이고, 교회가 세워진 날로서 이미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날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살아나신 후...."(막16:9).

"그리스도께서 다신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오순절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행2:1-47)  
"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을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 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레23:15-16).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행20: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 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11:18-29).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고전16:2).

"이 예수는 건축자들의 바린 돌로서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4:11-12)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이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날에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리로다"(시118:22-24).

3. 우리는 얼마나 자주 주의 만찬을 행하여야 하나?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11:26).
얼마나 자주 우리는 주의 만찬을 막어야할까요?
해 마다? 반년마다? 절기마다? 주마다?

성서는 우리의 질문에 답을 줍니다; "안식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하여 모였더니...."(행20:7). 예를 들면 구약 시대에 하나님께서 "너희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20:8)고 명령하셨을 때 유대인들은 얼마나 자주 안식일을 지켰습니까?
네 - 매주에 한번씩 돌아오는 안식일을 지켰고 하나님께서도 매주의 안식일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안식후 첫날"은 "주의 첫날"이고 "매주일의 첫날"이며 "매주 일요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4. "주의 만찬"은 꼭 먹어야 하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말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요6:53-58).

우리는 주님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도록특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5. "주의 만찬"은 누가 먹는가?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고전11:28).
누가 주님의 만찬을 먹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만찬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만 속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은 이 떡과 잔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마26:29)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왕국 안에 있는 사람 - 믿고 세례 받은 신자만이 주의 만찬에 참여할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만찬을 먹기전에 자기를 살피하고 사도 바울은 권면하고 있습니다(고전11:28).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찌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고전11:27-29).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1) 자기를 살피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 자신이 주의 만찬에 참여하기에 충분한 진지함과    존경심을 갖고있는가?
또는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진실로 기념하려는 마음의 상태가 되어있는지?
내가 참으로 죄를 후회하고 있는가?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경의를 표하려 하고 있는가?
자기 자신을 살피는 일은 하나님의 은혜가 나 자신에게 은혜가 되도록 해 줄 것입니다.
형제를 향한 증오와 악의를 발견해 제거하도록 해 줄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하도록해 줄 것입니다.  

2) 주의 만찬은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고전11:29,30).
어떤 사람이 무가치한 태도로 만찬에 참여한다면  
그는
(1)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고전11:27)하셨습니다.
나라의 깃발을 짓밟는 자는   그 나라를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살 찢기 우심과 피 흘리심의 의미를 모르고 경솔하게 혹은 무례하게 만찬에 참여하는 행위는 예수님을 죽인 자들의 정신에 협력하는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오용함으로 그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십자가 모독죄에 해당되는 죄를 범한 것이 됩니다.

(2) 자신 스스로가 자신의 죄에 대한 판결은 내리는 것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의미를 알고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행위는 죄의 용서와 축복이 되지만, 그 의미를 모르고 그냥 참여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불쾌함을 초래하여 만찬을 모독하는 자가 되어 그 영혼을 위험에 빠트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기의 죄를 씻는 것이 못되고 오히려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3) 약해지거나, 병에 걸리거나, 잠자는 자가 생겨날 것입니다.
이것이 육체적인 징벌인지    아니면, 영적인 징벌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것은 분명합니다. 주님의 만찬을 그 뜻을 모르고 혹은 정중하지 않은 자세로 참여하는 자는 분명히 영적인 위험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신앙이 약해 진 자, 신앙의 병든 자, 그리고 영적으로 잠자는 자들에게는 주의 만찬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게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6. "주의 만찬"은 성찬(친교)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10:16-17).
희랍어의 "성찬(친교)"이라는 단어는 "Koinonia(코이노니아)" 인데 요한도 이와 똑같은 단어를 우리와 하나님과의 "친교"에 사용하였습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게 하실 것이요" (요일1:7).
"성찬"은 "사귐" 곧 "친교"입니다.
주님의 만찬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내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처럼 모든 진실한 그리스도인들과 의 사귐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은혜의 보좌에 담대히 나아가는 것(히4:16)"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과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을 알고 받게 될 것입니다(엡3:18,19).

하나님의 수직적인 사랑과 이웃과의 수평적인 사랑이 교차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위대하고 은혜가 충만한 모임, 곧 천국 잔치가 될 것입니다.
주님의 상에서 "한 떡에 참예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빛 가운데 행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 주님의 만찬에 참여하지 않는 자들은 빛 가운데 행하는 것에서 탈출하는 것이며,
참 집회로부터의 벗어남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위대한 특권 행사를 거부하는 것이요,
이웃과의 친교는 물론 하나님과의 친교도 거부하는 행위를 선택하는 것임을 기억하여야 할 것입니다.

7. 이 의식에 대한 명칭은?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하는 것 같이 하고"(벧전4:11).

사도 바울은 "주의 만찬"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고전11:20, 11:21).
이 "주의 만찬"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의식 즉, 떡과 잔을 함께 합쳐서 표현한 말로서 가장 적절하고 확실한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의식을 가리키는 확실한 단어입니다.

다른 표현으로는 "떡을 떼는 것"이란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행2:42).
드로아 교회는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행20:7)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고전10:16)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예" 함을 뜻하며, 우리는 떡을 떼므로서 그리스도와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이웃과의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8. 화체설 (주님의 만찬을 축사하면 떡과 잔이 실제로 기적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떡이다"(요6:35),
"나는 양의 문이다"(요10:17),
"나는 포도나무요"(요15:5), 라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예수께서 실제로 "떡"으로 "문"으로 혹은 "나무"로 바뀌셨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상징적인 표현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믿는 자의 영혼을 만족시키는, 영혼의 생명을 유지 시켜주는 양식과 같은 분(십자가의 대속으로)이시라는 말씀이지 실제로 예수께서 먹는 떡으로 변하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양의 문이 양으로 하여금 안전한 은신처로 들어가게 해 주는 것처럼 사람이 안전하게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해야 한다는 말씀이지 실제로 예수께서 문으로 변하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가 포도나무와 그 가지와 같이 항상 붙어 있어야 하는 밀접한 관계라는 말씀이지 예수께서 실제로 포도나무로 변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또한 어디까지가 포도나무이고 어디서부터가 가지입니까?  
예수께서는 종종 환유 (다른 것을 위하여 한 단어를 사용하여 그 뜻을 제시하는 것)를 적용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롯을 "여우"라고 부르셨는데(눅12:32), 헤롯이 여우같은 사람이라는 말씀이셨지 실제로 여우로 변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14:6)라고 하셨다고 해서 실제로 예수께서 길바닥으로 변하셨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로 계실 때에,
떡을 들어 축사하시고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고전11:24),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마26:26),
"이것은 ....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8),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언약이니"(고전11:25) 라고 하셨다고 해서
예수께서 실제로 자기의 살의 일부분을 떼어 주셨고 자신의 피를 잔에 받아 주셨는가?
그렇다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식인종이나 흡혈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11:24,25) 하시면서 떡과 잔을 나누어 주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마26:29)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11:26)라고 했고,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고전10:16)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떼는 것은 분명히 떡(무교병 ;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이고 기념하는 것은 주님의 살 찢기 우심이고, 우리가 마시는 것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이며 기념하는 것은 주님의 피 흘리심입니다.

9.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그 자체가  죄사함을 준다는 가르침에 대하여.
"또 잔을 가지 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7,28).
ÀÌ "주의 만찬"에 대한 커다란 오해 중의 하나는 만찬을 먹는 것으로 사람이 실제적으로 자신의 죄를 사함 받는다는 교리입니다. 이것은 물론 잘 못된 화체설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는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려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라고 말씀하셨지
"너희가 모두 죄사함을 얻기 위하여 이 잔을 마셔라"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1) "주의 만찬"은 실제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아니라 살과 피를 대신 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는 "단번에"(히7:27),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서 한번 흘리신 역사적인 사건     입니다. "주의 만찬"은 그 의식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신 그 역사적인 사건을 다시 기억하게 해주고 그 단번에 이루신 구원의 역사를 감사하게 해 주는 의식인 것입니다.

3) 예수께서는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전11:25)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만찬은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리스도인이 참여하는 그 자체에 자치가 있는 것입니다.
"주의 만찬"을 해석하려 하는 것은 참 목적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10. 십자가의 고통.
"저들이 그를 십자가에 못 박고...."(막15:24).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땅에 놓인 십자가 형틀 위에 눕히고 두 손과 두 발을 단단히 묶은 다음,
두 손과 두 발에 커다란 못을 단단히 박았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는 높이 들리어 세워졌습니다.
그분의 육체는 충격에 꼬였고 사지를 찢어내는 고통의 엄습이 시작되었습니다.
뜨거운 태양은 벌거벗은 그분의 몸과 긴 머리 위에 작렬하였고,
군병들의 채찍에 만신창이가 된 그의 벌거벗은 몸의 상처는 이미 곪아 터져 염증을 일으켰습니다. 머리에 씌워진 가시 면류관을 통해 흘러내린 피는 이미 온 몸을 적셨고,
피 냄새를 맡고 달라붙은 개미떼와 날 파리들을 쳐다 볼 기력조차도 이미 잃어버린 그분,
하얗게 창백해진 얼굴에 바짝 말라 타버린 입술을 열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회개하는 강도에게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하셨고,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면서 사랑하는 제자를 양아글로 소개하셨고,
제자에게는 "보라 네 어머니라" 하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달래 드리는 효심을 보이셨습니다 (요19:26-27).
"엘리 엘리 라마 사박 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내가 목마르다"(요19:28).
"다 이루었다"(요19:30).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나이다"(눅23:46) …

무지목메한 로마 군병들은 그분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피가 더 많이 방출되도록 하였습니다. 군중들은 비웃기 시작하였습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 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마27:40),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찌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막15:30-32),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 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눅23:36-37).

그렇게 주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11. 당신은 거기 있었는가?
"....거기 앉아 지키더라"(마27:36).
저들이 나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당신은 그곳에 있었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마땅히 마음에 가져야 합니다.
"저들이 나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을 때 나는 거기에 있었는가?"
그곳에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군인들, 종교 지도자들, 도적들, 강도들, 장사꾼들, 행인들, 몇의 제자들, 몇 명의 여인들, 어머니 등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거기에 있었는가?
그 질문의 대답은  "예" 입니다.
나의 죄가 그분의 죽음을 필연적으로 몰고 갔으므로 나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나의 잘못들은 그 분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도왔습니다.
나의 죄가 그분을 무덤 속에 넣도록 한 것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길 로 갔거늘 여호와께서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5-6).
그분의 죽음은 나를 위한 죽음이었습니다.
나의 죄 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함이었으므로 나는 분명히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분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갈2:20)이시라는 사도 바울의 말을 우리는 복창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피로 나를 사셨습니다(행20:28).
그러므로 나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나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2:20)라는 하였으니,
나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고",
나는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고 그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것"입니다(롬6:4).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나는 그곳에 있었습니다.

12.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나?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고전6:1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시103:2).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엡1:7)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죄의 무거운 짐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주님을 아는 것은 나의 가장 위대한 축복중의 하나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나는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생의 소망을 갖고, 내가 그분과 함께하고, 내가 그분과 같아지는 그날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고전15:12-24, 살전4:13-18).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회평을 누리자"(롬5:1)는 말씀에 근거하여
나는 이제 하나님과 함께 평화할 수 있고,
이 하나님과의 평화 속에서 나 자신이 평화를 누릴 수가 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나의 축복은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주의 만찬"에 참여함으로 나는 나의 복을 세우고 또 그의 모든 은택(benefits)을 잊지 아니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