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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인들의 거부와 예수의 관용

지식창고지기 2011. 11. 30. 19:24

 

사마리아인들의 거부와 예수의 관용

 

오늘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을 거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했는데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일행의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이때 야고보요한이 불같이 화를 내며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하고 매우 주제넘고 건방진 질문을 예수님께 드렸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조용히 꾸짖으시고 나서 일행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들의 마음보예수님의 마음씨를 쉽게 대조해 볼 수 있다. 첫째 사마리아 사람들의 태도 부터 보면 역시 인간적 속성이 잘 들어나고 있다. 자기 동네가 목적이 아니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잠깐 들리겠다는데 심사가 꼬였던 것이다. 예수님이 만일 자기 동네에 들러서 여러 가지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치유를 해주시겠다고 했으면 두말할 나위도 없이 환영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최종 목적지는 사마리아가 아니고 예루살렘이라는 것을 알고 기분이 언짢았던 것이다. 이것이 인간들의 심보다. 스스로 화를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냥 지나가시도록 길을 열어 들였으면 주님께서 그냥 지나칠 분이 아니고 분명히 은혜를 베풀고 가셨을 터인데 인간의 질투와 시기심 때문에 그들은 깨빡을 치고 만 것이다.

둘째 야고보와 요한의 불같은 성미도 우리 인간 사회에서 종종 찾아 볼 수 있는 아주 어리석고 철딱서니 없는 성미다. 반대나 거부를 당했다고 해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다가 사마리아 동네를 불살라 버리겠다는 으름장도 상식적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주제넘은 생각이었다. 완전히 제 분수를 모르고 자제력을 잃은 사고방식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들을 꾸짖고 나서 다른 마을로 가셨다고 했는데 바로 이 대목이 예수님의 폭넓은 이해와 아량이 돋보이는 관용의 정신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처단을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이 잘 드러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대통령 링컨이 자기 원수에 대해서 너무나 관대한 것이 아니냐 하는 비난을 들었을 때 대답하기를“내 원수를 친구로 만드는 것이 곧 원수를 없애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대답했단다. Westler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이를 반대할 권리가 내게 없는 것은 마치 나는 검은 머리털을 가졌는데 너는 왜 노랑 머리털을 가졌느냐고 트집을 잡을 권리가 내게 없는 거와 같다.”고 했다. 관용이란 결코 무관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이 간단한 기사를 통해서도 예수님의 사려 깊으신 관용의 정신과 넓으신 도량을 엄두도 못 내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인간의 속성은 언제나 너무 성급한 판단과 보복과 처단을 요구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너그러우시고 자비로우신 이해와 관용을 통해서 회개와 구원의 기회를 만들어 주신다.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