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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의 그리스도인 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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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2. 16. 09:54
헬라의 그리스도인 디도 |
II. 다메섹에서 안디옥으로(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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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레데 섬의 디도교회 유적. |
가족과 열성적인 바리새인들은 바울을 외면하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그의 친구 중에는 바울보다 먼저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그들이었다(롬 16:7).
이 두 사람은 어느 유월절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갔다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을 것이다. 다소에서는 주위의 압력이 심하여 새 신앙을 드러내지 못하다가, 바울을 만나고서 신앙이 다져져 훗날 그리스도 신앙 때문에 바울과 함께 옥살이를 한 신앙인들이다.
세월이 지난 후 다소 대학에서 바울을 강사로 초청했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다소 대학은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대학과 더불어 헬레니즘 세계의 3대 대학 중 하나였다. 당시 대학에서는 스토아 철학이 학문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바울은 다소 대학에서 회심을 통하여 새로 믿게 된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도'를 힘있게 강의하였을 것이다. 그 대학 수강생 중에 헬라 청년 한 명이 있었다. 디도였다.
디도는 바울의 강의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는 개인적으로도 바울에게서 신앙 지도를 받아, 마침내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다. 이방인의 사도 바울이 얻게 된 헬라인 신도 제1호였다(갈 2:3).
디도는 바울 가까이 있으면서 신앙 지도를 받았다. 훗날 바울이 바나바의 권유에 따라서 시리아 안디옥에 갔을 때에 디도가 동행하였다. 바울이 안디옥에서 일 년 동안 복음을 전할 때에 디도는 바울을 모시며 신앙이 성장하였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행 11:25~26).
바울 당시의 대학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학과는 달라서, 특별히 임명된 교수가 없었다. 각 지방을 순회하는 교사들에게도 자유롭게 개방되어, 자기 자신의 학문을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사례비는 수강생들이 자발적으로 사례하였다.
바울이 고향 다소에서 가족과 유대교도들에게서 비난을 받고 있을 때에, 오로지 다소 대학에서의 자유로운 강연 활동만이 그의 주장과 그리스도 신앙을 간증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리고 디도를 얻은 것은 바울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안디옥에서 바울과 함께 지낸 디도는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바울과 동행하여 예루살렘에 가게 되었다.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행 11:29) 그 일을 바나바와 바울에게 맡겼던 것이다. 바울은 디도가 동행한 사실을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갈 2:1~3).
김희보 / 목사ㆍ서울장신 명예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