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통하는 자의 복
애통하는 자의 복(마5:1-4)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여덟 가지 복의 말씀을 천국가는 사다리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사다리는 여덟 단계가 있는데 첫 단계를 밟아야 그 다음 단계를 밟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심령이 가난한 자의 복"에 대해 생각하였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대로 돈이 없는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요 사회적 지위나 지식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나는 부족한 사람이다 하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갖고,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은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오늘은 팔복 중 둘째 애통하는 자의 복에 대해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세상은 돈과 쾌락 등으로 애통을 망각하고 인생을 즐기라고 눈짓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풍조는 구경을 하여도 비극을 보기 원하는 사람은 적고 기왕이면 희극을 구경하려고 합니다. 눈물을 흘리는 대신 잠시나마 보고 듣고 웃으려 합니다. 일평생을 희극배우로 세계에 이름을 떨친 채플린의 고백을 들어보세요. "여러분을 웃게 만드는 것이 장사 속이지만 인생은 멋이요 농담은 아닙니다. "
1. 예수님이 말씀하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첫째는, 죄에 대한 애통입니다(눅18:13)
시편51편 이하레서 다윗은 이렇게 애통해 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시51:1∼3)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파하며 주께로 돌아가기를 열망합니다. 자신의 죄를 인하여 다윗은 아파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애통입니다(시51:17, 눅18:13). 곧, 죄에 대한 애통이란 곧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함에 대한 애통입니다. 고후7:10-11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 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7:10) 여기 예수님이 말씀하신 애통은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근심하는 가운데 하는 애통입니다. 이런 애통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마음은 원이지만 육이 약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해서 근심하는 애통, 믿음이 너무 약한 것을 생각해서 근심하는 애통, 주의 일에 좀 더 충성하지 못하는 자신을 생각할 때 근심하는 애통, 형제를좀 더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생각하는 애통, 자신을 이기지 못하고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때론 넘어짐으로서 근심하는 애통, 좀더 바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생각할 때 근심하는 애통, 이런 선한 고민 때문에 애통하는 애통을 가리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사람마다 애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죄 때문입니다. 세리의 애통(눅18:13), 사도 바울의 애통하는 마음(롬7:B4), 그리고 마26장에서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한 것이 생각나서 애통하는 애통들이 선한 고민 때문에 하는 애통입니다. 이들은 다 자기의 죄 때문에 애통한 사람들입니다. 한마디로 거룩한 애통,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애통이었습니다. 이 죄를 아프게 느껴 죄 때문에 눈물 흘리며 죄를 회개하느라고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단 말입니다(시32:3,66:18,시59:1∼2).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면 스스로 설 수 없는 인간은 지극한 불행에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모든 죄를 안타깝게 뉘우치고 애통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맺어지고 아울러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위로의 도우심을 받게됩니다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 한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화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요엘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 하시나니" 자신의 마음을 찢고 애통하며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십니다.
둘째는, 사랑의 애통입니다.
눅13:34에 보면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올라가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탄식하여 통곡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바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다" 또, 눅19:41이하에 보면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가라사대 너는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 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기웠도다". 요11:35절에 주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마르다와 여러 여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기독교는 눈물의 종교입니다. 자신의 죄를 위해 울고 남을 위하여 사랑으로 우는 눈물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눈물을 같이 나누고 십자가를 같이 집니다. 교회에 눈물이 없으면 사막과 같이 먼지만 쌓일 뿐 입니다.
옛날 예레미야 선지자는 자기 민족의 죄악과 조국의 장래를 생각하여 눈물이 마를 날이 없이 애통하며 기도했습니다(애1:1-2). 눅23:38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로 가실 때 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을 향하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의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먼저 내 자신의 죄를 위해 애통하며 기도해야 되겠지만 동시에 사랑하는 내 가족중에 있는 불신앙의 가족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f니다. 내 친척중에 있는 불신앙의 친족을 위해 기도해야 할 펏
친구 중에 불 신앙의 친구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내 믿는 형제 중, 교우 중에 서로 사랑치 못하고 불화 하는 것을 보면 애통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시대에 있는 청소년들의 탈선을 볼 때 저들이 바른길 가도록 하기 위해 애통하며 기도해야 마땅합니다. 내 민족이 우상을 섬기며 복음을 받지 않는 것을 볼 때, 이들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의 불의와 죄악을 볼 때 회개를 재촉하는 애통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현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의 형편이 어떤지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무관심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을 보세요! 친구 나사로의 무덤 옆에서 예루살렘성의 장래를 생각하시면서 그는 우셨습니다. 성 프란시스는 이런 기도를 하였습니다. "주여! 나로 하여금 위로를 받으려 하기보다는 위로하려 하며 이해하여 주기를 바라기보다는 이해하려 하며 사랑을 받으려 하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줌으로서 인간은 받으며 자기 자신을 잃어 버림으로서 찾으며 용서함으로서 용서 받으며 죽음으로서 영생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축복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다른 이를 사랑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아름답습니다. 자기를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약함에서 오는 눈물이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강함의 표시입니다.
2. 죄에 대한 애통, 사랑의 애통이 있는 사람에겐 어떤 복이 있을까요?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위로라는 말은 "곁으로 부른다"는 뜻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곁으로 우리를 불러 주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성령을 보혜사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보혜사라는 말이 바로 위로라는 말과 꼭 같은 말입니다. 곁으로 불러서 서 계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은 바로 우리 곁에 계신 분이십니다. 여기 "위로한다"는 말이 이와 똑같은 단어로 쓰여졌습니다. 여러분,주께서 곁에 계신 것을 경험하십니까? 진정한 주의 위로를 발견하십니까? 한 영혼이 자신의 죄를 직시하며 그 죄에 대면하여 참으로 아파하는 바로 그곳에 주님의 임재가 있습니다.
용서와 치유와 그리고 은혜의 중심이 우리 곁으로 다가 오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가 가져온 고통으로 말미암아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을 때 주님은 그를 용서하시어 치료해 주셨습니다."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어느 극작가는 회개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기도할 때 암에서 치료를 받았다고 간증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그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말했습니다.
한 성경학자는 '애통한다'는 말을 쉬운 말로 바꾸면 자신에 대하여 깨어지는 경험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 안에 없어야 할 것으로 우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야 할 그것은 없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앞에서 깨어질 때, 그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다시 만들기 시작합니다. 으깨어지는 체험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세상의 근심은 사망을 이루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회개와 구원을 가져온다고 말합니다.
현대인의 가장 커다란 고민은 근심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근심하고, 근심해야 할 중대한 문제에는 근심이 결핍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죄 문제로 고민해 보셨습니까? 성도의 애통은 마침네 죄를 버리게 만들고, 죄를 지배하여 우리를 거룩한 성화의 자리와 성숙의 자리에 이르게 합니다. 거룩한 위로의 손길로 우리를 다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 안에 사는 사람들은 주의 말씀에 공감하며 이렇게 고백할 수가 있습니다."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애통의 축복을 받으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