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중국)

중국의 공연예술 잡기(雜技: 서커스)

지식창고지기 2010. 3. 15. 09:09

중국의 공연예술 잡기(雜技: 서커스)

 

 

잡기(雜技: 서커스)는 세계적인 공연예술이며 중국에서의 역사는 더욱 유구할 뿐만 아니라 민족적 특색도 가지고 있다.

중국에서의 잡기예술은 일찍이 석기시대부터 그 싹이 트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현대 잡기의 무대상에서 자주 출현되는 수기(手技) 프로그램인 "비기판(飛技板)"은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잡기 항목으로 그것은 신석기시대에 기원을 두고 있다. 그때에는 원시부락의 사람들이 항상 수렵 도구를 사용하여 짐승을 잡았는데, 이 도구는 고고학자들에 의해 "비거래기(飛去來器)"라 칭해졌다. 사냥꾼이 짐승을 발견한 후에 그것을 던지면 "비거래기(飛去來器)"는 빙빙 돌면서 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데, 적중시키기 못하면 자동적으로 빙빙 돌면서 사냥꾼의 손으로 되돌아온다. 이 "비거래기(飛去來器)"는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여전히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등의 어떤 부락에서는 사용되고 있다. 후에 "비거래기(飛去來器)"를 투척하는 기술이 전문적인 잡기 항목이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비기판(飛技板)"이다. 이외에도 "비차(飛叉)" "납궁(拉弓)" "무유성(舞流星: 긴줄 두 끝에 물그릇이나 불뭉치를 달아서 돌리는 묘기)" "순수(馴獸: 짐승 부리기)" 등이 있는데 모두 상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때의 잡기 맹아는 원시 인류의 노동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잡기가 중국에서 하나의 독립된 공연예술의 한 영역이 된 것은 춘추시대에 비롯된다. 그때에 각지에서 "역사거정(力士擧鼎: 역사의 솥들기)" "주유파간(侏儒爬杆: 난쟁이 장대오르기)" "투계포구(鬪鷄 狗: 닭싸움과 개 묘기)" "구상루구(球上壘球: 공위에 공쌓기)" "구기(口技: 성대모사)" 등과 같은 몇몇 잡기성의 공연 항목이 출현하였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이후에 6국의 잡기 가무 등의 예인(藝人)들을 함양(咸陽)에 모아 놓고 통칭 "각저배우지희(角抵俳優之戱)"라 하였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경제 문화의 번영과 함께 잡기예술도 고조되었다. 그때에는 악무(樂舞)와 잡기를 포괄하여 "백희(百戱)"라 통칭하였다. 위로는 궁정 귀족으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백희(百戱)" 공연을 구경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기원전 108년 봄에 한 무제가 서역의 각국 사신들을 초대하여 장안(長安)에서 "백희(百戱)" 공연을 열었다. 그 때에 공연한 항목으로는 "각저(角抵: 씨름)" "파간(爬竿: 장대오르기)" 주대승"(走大繩: 밧줄타기)" "포건(抛鍵: 제기차기)" "농환(弄丸: 공 묘기)" "찬화권(鑽火圈: 불 굴렁쇠 빠져나가기)" "도립(倒立: 물구나무서기)" "거희(車戱: 자전거 묘기)" "마희(馬戱)" "환술(幻術: 마술)" 등이 있었는데 그 종류가 매우 풍부하고 다양하였다. 1954년 산동(山東) 기남(沂南)의 동한(東漢)시대 고분 발굴 중에 돌에 새긴 "백희도(百戱圖)"가 발견되었는데, 그림은 한대 잡기공연의 멋있고 번화한 장면을 매우 생동감있게 재현하였다. 이것은 한대에 중국의 잡기가 이미 상당히 높은 수준에 도달하였으며 성숙한 공연예술의 하나로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번영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말해 준다.

 

수당(隋唐) 시대는 중국 잡기예술의 또 한 번의 번영시기이다. 수(隋) 양제(煬帝)는 매년 설날마다 잡기 예인(藝人)들을 경성(京城)으로 불러들여 공연을 하게 하고 각국의 귀빈들을 초대하였다. 사서의 기록에 의하면, 서기 610년에 돌궐(突厥)의 군주인 칸(可汗, khan)을 초대한 "백희(百戱)"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3만여명이 동원되어 규모가 광대하고 장면이 장관이었고 음악 소리가 수 리에까지 울려 퍼졌으며 반 개월간 성황리에 계속되었다. 성당(盛唐) 때에는 궁정 예인의 수가 만명에 이르렀으며 그 중에는 잡기 예인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唐) 현종(玄宗) 이륭기(李隆基)는 자주 연회를 베풀면서 언제나 대규모의 잡기 "무마(武馬)" "순서우대상(馴犀牛大象: 무소와 코끼리 다루기)"을 마지막에서 두번째로 공연하는 압축희(壓軸戱)로 삼고 그도 직접 "무마(武馬)"를 길들여 100필의 준마를 동시에 춤추게 할 수 있었다.

 

중국의 잡기는 민간에서 발생하였으며 그 후에 궁정으로 유입되어 흥성을 누렸다. 송대부터 희극(戱劇)의 흥기로 말미암아 잡기가 궁정에서 차지하는 위치도 쇠락하기 시작하였으며, 예인들도 점차 스스로 살길을 찾는 민간 예인으로 전락하여 보통 "구란(勾欄) 와사(瓦舍)"나 마을 어귀 막다른 골목에서만 공연하였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하에서 잡기에는 작고 정교한 형식들이 많이 출현하였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잡기는 기본적으로 소규모의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잡기 예인의 지위는 특히 근대에 갈수록 낮아져 대다수는 기예를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매우 곤궁한 처지에서도 잡기 예인들은 비록 새로운 것을 많이 창조하였지만, 고대의 우수한 항목들 중에서 사라진 것도 많다.

 

신중국 성립 이후에 중국의 잡기는 새롭게 부흥하였다. 1950년 최초의 국가 잡기단인 중국잡기단(中國雜技團)이 설립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잡기단은 신중국의 잡기예술을 대표하여 유럽 각국을 순방하고 외국 관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 후에 중국의 각 성시(省市)에서도 잡기단(雜技團)이 잇달아 설립되었다. 그 중에서 비교적 일찍 설립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명성을 날리고 있는 잡기단으로는 상해잡기단(上海雜技團) 광주잡기단(廣州雜技團) 무한잡기단(武漢雜技團) 중경잡기단(重慶雜技團) 심양잡기단(沈陽雜技團) 서안잡기단(西安雜技團) 등이 있다. 지금 중국에는 모두 현(縣) 이상의 전문 잡기단이 100여개가 있고 잡기 관계자는 1만여명에 이른다. 전문 잡기단 외에도 많은 지방에 아마추어 잡기단체나 민간 예인으로 구성된 잡기단체가 있다. 예를 들면, 하북성(河北省)에는 오교현(吳橋縣)이 있는데 그곳은 중국의 "잡기의 고향(雜技之鄕)"이라 불린다. 그곳의 사람들은 예로부터 잡기를 연습하고 공연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에 이르러서도 매년 잡기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많은 가정이 "잡기세가(雜技世家)"이고 몇 대에 걸친 사람들과 온가족이 모두 잡기를 공연한다. 이 "잡기의 고향"은 중국 잡기계를 위해 많은 잡기 인재를 양성 공급하였다. 종합적으로 말하면, 신중국 성립 이후에 정부의 지원하에서 중국의 잡기는 장대해지기 시작하였으며, 이에 중국의 잡기예술은 새 생명을 얻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번영으로 나아갔다.

 

신중국의 잡기예술은 형식과 내용상에서 먼저 과거의 "탄도(呑刀: 칼 삼키기)" "조소변아(吊小 兒: 변발을 공중에 매달고 부리는 묘기)" "곤정판(滾釘板: 못판 구르기)" "유추관정(油錘貫頂: 철퇴로 머리치기)" 등과 같은 너무 잔인하고 무서운 항목을 없앴다. 동시에 전통 항목에 대한 발굴과 정리 개조 작업을 벌여 새로운 종류와 기교를 추가했다.

 

예를 들면, 원래의 "주대승(走大繩: 밧줄타기)"은 이미 기술 고난도 스릴의 특징을 더욱 잘 보여줄 수 있는 "주강사(走鋼絲: 강철 줄타기)"로 발전하였으며, 배우들의 기술도 50년대의 밧줄 위의 앞으로 구르기에서 오늘날의 연속 앞으로 구르기, 뒤로 구르기, 공중회전, 대선전체(大旋轉體: 공중에 뜬 상태에서 몸을 평행으로 회전하는 묘기) 등의 고난도 동작으로 발전하였다.

 

원래의 "오안(五案)"은 5층으로 쌓은 탁자 위에서 각종 동작을 공연하는 것인데, 지금은 이미 7층이나 10층으로 비스듬히 쌓은 의자 위에서 고난도의 조형을 완성하는 것으로 발전하였다.

 

원래의 "전접(轉 : 접시 돌리기)"은 두 손으로 4 6개의 접시를 돌리는 것인데, 지금은 이미 접시가 늘어나서 12 14개를 돌리는 동시에 몸을 회전하는 등의 고난도 동작을 함께 할 수 있다.

 

구기(口技: 성대모사)는 원래의 30여종에서 지금은 이미 100여종으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찬권(鑽圈: 굴렁쇠 사이 빠져나가기)" "정완(頂碗: 머리에 사발을 쌓아놓고 균형잡기)" "솨화단( 花壇: 작은 단지 묘기)" "솨유성( 流星: 긴줄 끝에 물그릇이나 불뭉치를 묶어 돌리는 묘기)" "수기(手技: 손으로 하는 묘기)" "거기(車技: 자전거 묘기)" "정간(頂杆: 머리위에 장대를 올리고 하는 묘기)" "등기( 技: 발로써 항아리 등을 돌리는 묘기)" 등은 공연 기술이 모두 전통을 계승한 기초 위에서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하였다.

 

이 외에도 "공중비인(空中飛人: 공중 그네타기)" "대도판(大跳板)" "붕상비인( 床飛人: 점프판위에서 공중 점프하며 벌이는 묘기)" "고거척완(高車 碗: 높은 자전거를 타고 사발을 차는 묘기)" "단체 자전거 곡예(集體車技)" "대수곤배(對手滾杯)" "비거정간(飛車頂杆: 자전거를 타고 머리위에 장대를 올리고 하는 묘기)" "등궁조형( 弓造型)" 등의 많은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었다. 현재 중국의 잡기 항목은 이미 그 수가 100여개에 달할 뿐만 아니라 무대미술 복장 음악반주 등의 방면에서도 모두 새로운 발전과 창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