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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秘史 미래전략가 박정희 .1] 허먼 칸 제자들의 증언

지식창고지기 2010. 11. 10. 09:32

[발굴秘史 미래전략가 박정희 .1] 허먼 칸 제자들의 증언
 "박정희는 60년대초 이미 미래학자 허먼 칸과 한국의 미래 논했다"
제롬 글렌 회장과 이경숙 前 숙대총장, 두 제자 만남서 秘史 세상에 알려져

박정희 전 대통령(1917~79) 이름 앞에 혁명가, 새마을운동의 창시자,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실천자, 개발독재자 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미래전략가로 조명된 적은 없다. 그런데 그가 당대 최대의 전략이론가이자 미래학자였던 허먼 칸 허드슨 연구소장(1922~83)과 교우하면서 우리나라에 새로운 미래를 열기위한 끊임없는 도전을 시도하였다는 사실이 최근 우연히 한국에 알려졌다. 2010년, 현재도 한국에서 미래학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한참 앞선, 그야말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지구촌에 미래학이 막 똬리를 틀기 시작한 1960년대초에 이미 미래학자들과 교우한 박 전 대통령의 면모를 조명한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과 허먼 칸의 만남은 박 전 대통령 시대에 대한 몇몇 증언에서 간단하게 언급된 것을 볼 수 있었다. 조갑제씨가 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 따르면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최대의 미래석학인 허먼 칸을 소개시켜준 사람은 고 김성진 문공부장관이었다. 허먼 칸은 1960년대 초반부터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나 일본 총리 등과 절친한 관계로 자주 동양을 들락거렸고, 한국도 방문했다는 것이다. 또 전국경제인협회의 간부였던 김입삼씨는 전경련 초청으로 허먼 칸이 한국에서 강의를 가졌다는 기고를 한국경제신문쓰기도 했다.

그러나 허먼 칸의 저서나 그의 제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두 사람은 한국의 미래에 대한 보다 깊은 대화를 나눴고, 서로 존경하는 사이였음을 알 수 있다.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묻혀버릴 두 사람의 비사(秘史)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허먼 칸의 두 제자 덕분이다. 한사람은 허먼 칸의 수제자인 유엔미래포럼 제롬 글렌 회장이요, 다른 한 사람은 이경숙 한국장학재단 이사장(전 숙명여대총장)이다.

2008년말에 '미래 전망'이란 특강차 한국을 방문한 제롬 글렌 회장은 유엔미래포럼 한국대표인 박영숙 회장의 안내로 숙명여대를 찾아 당시 총장으로 재직중이던 이경숙 이사장과 간담회를 갖게 됐다. 그 자리에서 이 이사장은 제롬 글렌 회장이 칸 박사의 제자라는 소개를 듣고 자신이 60년대 미국 유학시절 허먼 칸 박사에게 강의를 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이사장은 강의에서 칸 박사는 세계속에서 한국의 부상을 예측했다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강의를 들으면서 미국에서 수만리 떨어져 있는 조그만 동양의 나라, 한국을 그가 어떻게 알고 저렇게 이야기를 하나 의아해 했다는 것이다. 더구나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가난을 면하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조국이 세계10위 경제대국이 된다니 믿을 수 없었고, 허황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지금 그의 말대로 대부분 현실이 된 것을 생각해 보면 놀랍다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롬 글렌 박사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는 자신이 당시 허드슨 연구소 조교로 칸 박사를 돕고 있었으며, 칸 박사가 한국으로 갈 때마다 자료준비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아울러 그는 허먼 칸 소장의 함구 명령에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박정희 대통령이 호놀룰루에서 존슨 미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 한국의 방위력강화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다짐받았다 1968.4.18 연합뉴스2
박정희 대통령이 호놀룰루에서 존슨 미 대통령과 회담하는 모습. 한국의 방위력강화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다짐받았다 1968.4.18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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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칸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여의도 시민환영대회에서 오픈카에 나란히 탑승해 육해공군 의장대를 사열하고있다. 1979.6.30 연합뉴스4
박정희 대통령과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이 여의도 시민환영대회에서 오픈카에 나란히 탑승해 육해공군 의장대를 사열하고있다. 1979.6.30 연합뉴스
털어놓지 않았지만 칸 박사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많은 아이디어를 제공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칸 소장이 한국을 자주 왕래하는 가운데 그 어떤 외국인보다 한국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그의 저서인 '1979년 이후의 세계경제'를 통해서 명백히 드러난다. 66년경에 집필을 시작하여 76년에 출판된 저서에서 그는 한국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나 새마을운동 등을 언급하면서 한국이 10대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같은 예측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그가 운명적으로 박정희와 만날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실 과학적인 미래학자들은 미래예측이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가는 작업이라고 규정한다. 아무런 사실적인 토대없이 앞날을 예견하는 것은 점술이요, 현재의 과학과 기술을 토대로 원하는 미래를 열어나가는 게 미래예측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허먼 칸 박사는 선진국의 산업 발전과정을 토대로 한국에서 전개돼야 할 '미래 청사진'을 박 전 대통령에게 보여주었을 것이고, 그리고 '박정희'라는 인물을 보면서 그것을 실현해 낼 사람이라는 믿음을 가졌을 법하다. 칸 박사는 이런 배경에서 70년대 중반에 당당하게 한국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측하지 않았을까.

허먼 칸은 60년대에 이미 아시아로의 권력이동이 80년에 시작된다고도 예견했고, 박정희는 이런 이론에도 매료되었을 법하다. 자존심이 강했던 박정희는 미국과 유럽에 비해 월등히 열등한 아시아가 조만간 그들을 앞서게 될 것이라는 지구촌권력구조분석의 대가와 죽이 맞았다. 여러 증언에 의하면 두 사람은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몇날 며칠을 토론하며 즐거워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대통령 박정희는 늘 새로운 개혁을 꿈꾸고, 진부함을 깨려고 애를 썼고, 과학입국의 바탕을 마련하기위해 지구촌의 새로운 것, 심지어 허황된 소리처럼 들리는 미래학자들의 발전 논리에도 귀를 기울였던 것 같다. 얼마전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책이 출판되기도 했지만, 아무리 큰 것을 성취했다 하더라도 그 다음날 또 다른 미래를 생각하고 끊임없는 도전을 시도하는 타고난 미래전략가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허먼 칸, 앨빈 토플러 이전 미래학의 대가…IQ 세계최고로 알려진 천재

미국의 전략이론가 ·미래학자. 캘리포니아공과대학 졸업 후 계속해서 물리 ·공학 ·수학 등을 전공한 뒤 1947∼61년 란드 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 연구원, 61년 허드슨 연구소를 설립 ·주재했다. 국방총성과 원자력위원회 등의 위탁으로 전략연구와 미래학 연구에 종사했다. 저서에 '열핵전쟁 on Thermonuclear War'(1960),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한다 (Thinking About the Unthinkable)'(1962)등이 유명하다.

특히 지구촌에서 IQ테스트라는 것이 나온 이래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사람, 즉 기록상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으로 기록이 되는 세기에 한번 나올까 말까하는 천재로 알려져 있다. 당시 지구촌을 돌면서 강연을 열어 성공한 사람은 허먼 칸밖에 없었다고 한다. 앨빈 토플러가 1980년대 유명해졌지만 60~70년대 대부분 각국의 국제행사의 기조연설자는 허먼 칸 박사였다.

2010-09-16 07:47:54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