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와 산삼
<공주·월곡리>
지금의 충청남도 공주군 의당면 월곡리에 한 젊은 내외가 늙은 아버지와 일곱 살짜리 아들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살림은 넉넉치 않으나 마음씨 고운 내외는 열심히 일하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로하신 아버지가 갑자기 몸져눕게 되었다. 효성이 지극한 젊은 내외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좋다는 약은 다 써 보았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여보, 아무래도 아버님께서 속히 일어나시지 못할 중병에 걸리셨나봐요.』
『그래도 어디 좀더 노력해 봅시다.』
긴 병에 효자 없다지만 젊은 내외는 지극 정성으로 간병을 했다. 젊은이의 아내는 약으로 효험을 얻지 못하자 문득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릴 때 목욕재계하고 기도하시던 친정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내는 마치 훌륭한 영약이라도 얻은 듯 얼른 남편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그것 참 좋은 의견이구려. 왜 진즉 그 생각을 못했을까?』
젊은 부부는 매일 새벽 몸을 단정히 하고 관음기도를 올렸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내외는 마치 합창을 하듯 한마음 한목소리로 아버지의 회복을 기원나간 남편 점심을 챙기고 있는데 밖에서 목탁소리가 들렸다.
부인은 가난했지만 정성껏 쌀 한 되를 들고 나가 탁발 나오신 노스님께 공손히 절을 하고는 스님 바랑에 쌀을 부었다. 쌀을 받아 넣은 스님은 막 사립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젊은이의 아내를 불렀다.
『부인,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데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는지요?』
『네, 저의 시아버님께서 벌써 여러 달째 병환으로 고생하시고 계십니다.』
『거참 안되었구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있는데….』
스님은 무슨 말인지 하려다 그만 말끝을 흐리고 말았다.
『스님, 방법이 있으시다구요?』
『글쎄, 있긴 있으나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
『아버님을 구하는 일인데 어려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알려만 주시면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이 집 내외가 효자라는 소문은 들었으나 좀처럼 쉽지 않을 텐데….』
부인의 청이 하도 간곡하여 스님은 망설이면서 방법을 일러줬다.
『당신의 아들을 물에 삶아 아버님께 드리면 곧 일어나실 게요.』
『아들을요?』
놀라는 부인을 남겨둔 채 스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젊은 아낙은 잠시 꿈을 꾼 듯싶었다. 정신을 가다듬은 그녀는 남편 점심을 담은 함지를 이고 들로 나갔다. 그녀는 논둑길을 걸으면서 아버지를 위해 아들을 희생키로 결심했다.
다른 날보다 점심이 늦은 데다 아내의 안색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남편은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 어디가 아프오?』
『아니에요.』
아내는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하고 싶었으나 남편의 점심식사가 끝날 때까지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여보, 아무래도 무슨 일이 있나 본데 어서 이야기해 보구려.』
아내로부터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놀랄 뿐 아무 말도 못했다.
『여보, 아버님 병환을 고치는 일인데 주저할 일이겠어요? 아들은 또 낳을 수 있으나 부모님은 한번 돌아가시면 다시 뵐 수 없잖아요.』
아내의 결심이 고맙긴 했으나 남편은 차마 승낙을 못하고 하늘만 쳐다봤다.
아내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날 밤 일을 치르자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 칠성이는 그날도 밖에서 놀다가 들어와 저녁을 먹고는 곤하게 잠이 들었다. 잠든 아들을 끓는 물 속에 넣는 젊은 내외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근라 밤. 노인은 무슨 약인지도 모르고 며느리가 떨리는 손으로 들고 온 약을 먹기가 좋다며 두 그릇이나 마셨다.
이튿날 아침 노인은 언제 아팠느냐는 듯 거뜬히 일어났다.
젊은 내외에게 아버지 병환이 쾌차한 기쁨은 잠시였다. 아들을 생각하면 마냥 눈물만 쏟아질 뿐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저녁 무렵, 밖에서 칠성이가 「엄마」를 부르며 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내는 헛것이 보인다고 생각했다.
『엄마, 어젯밤에는 서당에서 공부하다 늦어서 그만 훈장님과 함께 자고 왔어요. 용서하세요.』
부부는 아무래도 꿈만 같았다. 그러나 눈앞에 서 있는 사내아이는 분명 자신들의 아들 칠성이었다.
엄마 아빠가 반기기는 커녕 오히려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칠성이는 이상했다.
『엄마, 왜 그러세요. 저 때문에 걱정하시다 화나셨어요?』
『아…아니다.』
넋 잃은 사람들처럼 제 정신을 못 가누고 있는 내외 앞에 이번엔 어제 다녀간 노스님이 나타났다.
『너무 놀랄 것 없소. 그대들의 효심이 하도 지극하여 부처님께서 산삼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내외는 즉시 부엌으로 달려가 솥뚜껑을 열어보았다. 솥 속엔 정말 커다란 산삼 한 뿌리가 들어있었다.
젊은 부부는 기뻐서 눈물을 흘리며 스님을 향해 합장을 했다. 그러나 스님은 어느새 간 곳이 없었다.
칠성이네 집에는 그날부터 다시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