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설거사 일가
<변산·월명암>
『부설수좌, 빨리 걸읍시다. 이렇게 가다간 해전에 마을에 이르기가 어려울 것 같소.』
『공부하는 수좌가 뭘 그리 마음이 바쁘오.』
때는 통일신라 신문왕 시절. 부설, 영희, 영조 등 세 수좌는 여름 안거에 들기 위해 전라도 변산을 거쳐 오대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 중 우리나라 거사선(禪)의 대표적 인물로 자주 거론되는 부설은 본래 불국사 스님이었다. 경주 태생으로 불국사에서 원경이란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후 전국 각지를 두루 돌며 열심히 수도하던 중 쌍선봉 아래 조그만 암자를 짓고 10년간 홀로 공부했다. 그러다 도반들이 찾아와 오대산에 들어가 대중과 함께 정진하자는 제의에 선뜻 자리를 털고 일어선 것이었다.
걸음을 재촉하는 두 도반과 함께 그날 밤 부설은 만경 고을 구씨란 사람 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음력 3월 보름달이 휘영청 밝은 밤. 부설이 잠시 뜰에 나와 거닐고 있으려니 어느새 다가왔는지 주인집 딸이 옆에 서 있었다.
『스님, 언제 떠나시나요?』
『내일 아침 일찍 떠납니다.』
18세쯤 되어 보이는 묘화는 스님에게 무슨 말인가 할 듯하면서 선뜻 말을 못한 채 망연히 달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아가씨, 소승에게 무슨 할말이 있으신지요?』
잠시 대답을 못하고 망설이던 묘화는 중대한 결심이나 한 듯 입을 열었다.
『스님, 떠나지 마옵소서.』
『아니, 떠나지 말라니요?』
『소녀 저녁 무렵 스님을 처음 뵙는 순간 평생 지아비로 모시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설은 뜻밖의 말에 내심 크게 놀랐으나 조용한 어조로 타일렀다.
『그 무슨 철없는 말이오. 소승은 큰 뜻을 품은 수도승이 아닙니까?』
『스님, 제가 어찌 그걸 모르겠사옵니까. 하오나….』
스님은 과년한 처녀의 심중을 헤아리는 듯 다시 일렀다.
『그대의 애끓는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 허나 이 사람은 도반과 함께 오대산으로 공부하러 가는 길인데 어찌 장부의 뜻을 굽혀 그대의 청을 받아들일 수 있겠소.』
『스님의 장하신 뜻을 꺾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 장차 도통하여 많은 중생을 구하실 스님이 작은 계집 하나 구해 주지 못한다면 어찌 큰 뜻을 이루실 수가 있겠습니까?』
단정한 용모에 재기와 덕기를 겸비한 묘화는 결사적으로 애원했다.
부설은 그녀의 끈덕진 호소에 감동하여 그녀와 혼인하기로 결심했다.
이튿날 아침 두 도반은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다는 듯 오대산을 향해 떠났다.
묘화의 부모도 하는 수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곳에서 청혼이 들어와도 들은 척도 않던 딸이 길가는 객승에게 빠져 시집을 가겠다고 막무가내니 어쩔 수가 없었다.
부설은 묘화와 결혼하여 지금의 김제군 성덕면 성덕리 고련부락에서 살았다. 그 마을에는 이상하게도 늘 눈이 떠돌아다니므로 부설은 마을 이름을 부설촌이라 했고, 자기 이름도 부설이라 불렀다.
부설은 아들 딸 남매를 낳고 살면서도 아내와 함께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대산으로 떠난 옛 도반들이 찾아왔다.
『우리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네. 가장 공부를 잘해 장래가 촉망되던 자네가 혹이 몇 씩이나 붙은 낙오자가 되다니….』
도반들은 부설이 안됐다는 듯 측은한 어조로 말했다.
옆에서 이 말을 들은 묘화 부인은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듯 말을 꺼냈다.
『두 분 스님께서 공부의 도가 높은 듯한데 그러면 저희집 어른과 한번 겨뤄 보시면 어떨까요?』
영희, 영조 스님은 어떻게 도를 겨루자는 것인지 의아해하면서도 한편 가소롭다는 듯 웃음을 지으며 선뜻 허락했다.
부인은 병 3개에 물을 가득히 담아 벽에 걸어놓고는 물만 벽에 매달려 있고 병은 땅에 떨어지게 하자는 문제를 냈다. 두 스님은 모두 실패했으나 부설만이 일을 해내니 두 스님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뒤 부설 내외는 남매를 데리고 옛날 공부하던 변산으로 들어가 전에 공부하던 자리에 부설암을 짓고, 부인을 위하여는 낙조대 올라가는 중간에 묘적암을, 그리고 그 딸을 위해 월명암을, 아들을 위해서는 등운암을 지어 각자 일생 동안 수도생활에 정진했다.
그의 딸 월명도 어머니를 닮아 15·6세가 되니 자태가 고울 뿐 아니라 글 공부에 능통하여 그를 따를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하루는 재색을 겸비한 그녀에게 그 절 상좌가 정을 구해 왔다. 월명이 오빠에게 상의하니 청을 들어주라고 했다. 오빠의 말에 따르고 나니 얼마 후 상좌는 다시 정을 구해 왔다. 오빠는 또 들어주라고 승낙했다. 이런 일이 자꾸 되풀이되자 오빠 등운은 그 일로 누이의 공부에 장애가 될 것을 염려하여 그 상좌를 부엌 아궁이에 넣어 불태워 죽였다.
그 상좌는 저승에 들어가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하소연하면서 등운을 잡아들여 보복해 줄 것을 해원했다. 저승에서는 사자를 보내 등운을 잡아들이게 했으나 등운의 경지가 워낙 높아 잡아들이지를 못했다.
세 번이나 헛걸음치고 돌아가는 저승 사자에게 등운은 말했다.
『공중에다 모래로 줄을 꼬아서 나를 묶는 재주가 있다면 나를 잡을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나를 잡을 수 없으리라.』
저승에서는 끝내 등운을 잡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의 누이동생 월명도 마침내 도통하여 육신이 있는 채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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