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전설 야담

호랑이의 불심

지식창고지기 2010. 12. 6. 13:31

호랑이의 불심

<풍기·희방사>

신라 선덕여왕 때, 덕망 높은 두운대사는 지금의 경북 소백산 기슭 천연동굴에서 혼자 기거하며 도를 닦고 있었다. 그곳 동굴에는 가끔 호랑이 한 마리가 찾아와 대사의 공부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가거나 어느 때는 스님과 벗하여 놀다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석양 무렵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찾아온 호랑이는 굴 입구에서 입을 딱 벌리고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이상히 여긴 두운대사가 가까이 다가가 호랑이 입 속을 들여다보니 금비녀가 목에 걸려 있는 것이 아닌가.

두운대사는 비녀를 뽑아준 뒤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산에도 네가 먹을 짐승이 많은데 사람을 잡아먹다니, 천벌을 바등ㄹ 것이니 앞으로는 절대 사람을 해치지 말라.』

목에 걸린 금비녀를 뽑아내니 후련해서 살 것 같았는데, 스님의 호령이 워낙 추상 같으니 호랑이는 인사도 못한 채 잘못을 알았다는 듯 슬며시 사라졌다.

그런 일이 있은 얼마 뒤 호랑이는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와서 놀다가곤 했다. 한번은 큰 맷돼지를 잡아 새끼들과 함께 스님이 계신 동굴로 먹이를 물고 왔다. 아마 호랑이 생각엔 그 멧돼지 고기를 스님에게 공양 올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두운대사는 또 호통을 쳤다.

『이 녀석아! 불도를 닦는 나보고 육식을 하란 말이냐? 어서 썩 물러가거라.』

호랑이는 또 새끼들을 데리고 고개를 숙인 채 슬그머니 꽁무니를 뺐다.

그 후 어느 봄날이었다. 혼자 찾아온 호랑이는 이번엔 두운대사의 옷자락을 물고 끌어당기는 것이었다. 예사롭지 않게 생각한 스님은 호랑이를 따라 나섰다. 바삐 달리는 호랑이를 앞세워 당도한 곳은 동굴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폭포 아래였는데, 그곳엔 아리따운 처녀가 정신을 잃고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두운대사는 급히 처녀를 업고 동굴로 돌아왔다.

물을 끊여 몸을 따뜻하게 하고 약풀을 달여 먹이는 등 스님이 극진히 간병하니 처녀는 이튿날 간신히 눈을 떴다.

『이제 정신이 드는가 보군.』

『아니, 이곳은 어디이며 스님은 뉘신지요?』

『여기는 소백산 중턱이고 나는 이곳에서 불도를 닦고 있는 두운이란 승려요. 한데 낭자는 어이하여 이 깊은 산중에서 변을 당했소?』

『소녀는 서라벌 유호장의 무남독녀 외딸이옵니다. 전날 밤 안방에서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는 제 침소로 돌아가려고 마루로 올라서는 순간 무엇이 등을 덮치는 것 같았는데 그만 정신을 잃었사옵니다.』

『음 저런! 아무튼 이렇게 소생한 것이 다행이오. 이 모두 부처님의 가피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목숨을 구해 주신 스님의 은혜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옵니다. 소녀, 집에 도착하는 즉시 아버님께 아뢰어 스님께 보답토록 할 것이옵니다.』

『원, 별소릴 다하는군. 지금 그 몸으로 서라벌까지 갈 수 없으니 불편하더라도 이곳에서 며칠 더 유하여 원기를 회복한 후 떠나도록 하오.』

소스님은 동굴 속에 싸리나무 울타리를 만들어 안쪽에 처녀를 거쳐케 하면서 정성껏 보살폈다.

그렇게 5일째 되던 날. 처녀의 얼굴에 생기가 돌자 스님은 처녀 앞에 남자옷 한 벌을 내 놓았다.

『스님, 웬 남자옷입니까?』

『곧 길을 떠날 터이니 어서 갈아입으시오. 수도승이 처녀와 먼 길을 가려면 불편한 점이 많을 뿐 아니라 길손은 남장을 하는 편이 훨씬 편하고 부담이 없을 것이오.』

두운 스님은 처녀를 남장시켜 서라벌 유호장 집으로 데리고 갔다. 막 대문을 들어서려는데 늙은 하인이 보고는 깜짝 놀라 소리친다.

『아이구! 이게 누구세요. 우리 아씨 아니세요?』

『예, 저예요.』

『마님! 아씨가 돌아오셨어요.』

『뭐, 뭐 뭐라고….』

유호장과 유호장 부인은 버선발로 뛰어나오며 딸을 반긴다.

어느 날 밤 소리없이 증발한 딸이 스님과 함께 남장을 하고 무사히 돌아왔으니 의아하면서도 마치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돌아온 듯 기쁘기 짝이 없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자.』

유호장 부인은 스님은 안중에도 없는 듯 딸을 앞세워 안으로 들어갔다. 딸로부터 자초지종 사연을 들은 유호장 내외는 그제서야 스님께 합장하고 큰절로 예를 올려 감사했다.

『스님! 스님의 크신 은혜 평생 동안 갚은들 어찌 다할 수 있겠습니까. 말로 헤아릴 수 없는 스님의 은혜에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코자 소인 가진 것은 많지 않으나 스님 토굴 옆에 공부하시는데 불편이 없도록 암자를 하나 창건토록 하겠습니다.』

『불도를 닦는 소승 그런 과한 인사받기 몹시 송구합니다. 이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일 뿐입니다. 나무관세음보살.』

두운 스님은 그저 할일을 했을 뿐이라는 듯 눈을 지그시 내려감고 굵은 염주를 굴릴 뿐 어디 하나 기쁜 표정을 보이지 않았다.

유호장은 그날 저녁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온 마을 사람들과 딸의 귀가를 축하하며 기쁘을 나눴다.

그 후 유호장은 사재를 들여 멀리 소백산 중턱에 암자를 세웠다.

정상의 3분의 2 지점이나 되는 높은 곳에서 어려운 대작 불사가 완성되자 유호장 내외는 딸과 함께 새로 건립된 절을 찾아 두운 스님을 뵈었다.

『스님, 이곳은 저의 가문에 기쁜 소식을 전해 준 방위이므로 절 이름을 「희방사」라 하면 어떠하올는지요?』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그렇게 합시다.』

두운 스님은 절 이름을 희방사라 명했으니 때는 선덕여왕 12년(643)이었다.

그 후 처녀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던 폭포 이름도 희방폭포라 불리우게 됐다. 길이 28m로서 물줄기가 두어 번 중간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져 장엄을 이루는 이 폭포는 내륙지방에선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더욱 유명하다. 소백산 최고봉인 연화봉(1439m) 가는 길목 해발 830m 지점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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