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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지 않고 기독교를 믿다가 후회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지식창고지기 2011. 11. 2. 21:56

물어보고 종교를 믿으면 괜한 돈, 시간, 정력등을 낭비하지 않을텐데...물어보고 꼼꼼히 믿도록 하기 위해서...종교 상담사 제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기독교(개신교) 불교 가톨릭 유교...그냥 취미삼아 옮겨 다니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혼란스럽지 않나요?

 

 

신앙생활은 시간이 남아 하는 것도 아니고, 취미 삼아, 도덕, 윤리 말씀과 비슷하다하여 하는 것도 아닙니다.

천지를 만드시고, 사람을 지으신 전능자를 믿고, 천국에 가기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님과 같은 생각으로, 취미삼아 나쁘게 살지 말고, 착하게 살라 가르치니

도덕적, 윤리적으로 착하게 살고 싶어서 다니는 사람들도 있을것입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목표가 있습니다.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씻음을 받고 구원받아 천국 본향을 찾아가는 것이지요.

이러한 신앙적 목표가 없이 습관적으로 신앙생활한 사람들이라도 후회할리는 없지요.

고통 받을리도 없는 것이고요.

 

다만, 그 분들은 믿음이 있어 신앙생활을 한 것이 아니기에, 온전히 구원받는다 라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목표가 없는 신앙생활은 다만 불쌍한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불신자들은 이 땅에서 사는 동안이라도, 마음껏 누리고, 취하고, 즐기기나 했지 않습니까.

그러나, 신실하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천국을 소망하고, 구원받게 될 것이니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간접적인 답변이 될 듯하여 [디르사나무] 네이버까페에서 퍼온 글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따라가지 말고 오직 성경 말씀 안에서 구원의 길을 찾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읽어보시고 과연 그러한가, 하나님을 찾는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하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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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위에서 만들어진 교파는 맨 먼저 유태교가 있고, 그 다음이 구교이며, 개신교가 그 뒤를 잇습니다.

유태교는 자신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구약 성경으로 유태교를 유지하고 있고, 기독교는 그리스도와 신약 성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종교는 각각 다른 두 개의 구원론을 뼈대로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두 종교 모두에 이 뼈대가 없습니다. 

성경 위에 형성되어 있는 모든 종교에 이 뼈대가 없는 상태입니다.

 

유태교에는 그들의 성서에 예고된 '메시아'가 없고, 그리스도교에는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성경적 논증이 없습니다. 

그나마 유태교는 모세율법이라는 구원의 법, 즉 '구원론의 기초'인 구원의 '방법론'은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에는 '구원' 에 대한 '주장'은 있을지언정 그 방법론도 없고 그리스도가 메시아라는 성경적 논증도 없습니다. 

기독교에 종교 성립의 기본 조건인 '구원론'이 없을 것이라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만, 사실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려 어떤 철학자가 "신학 대학엘 가서 공부를 해봤는데 거기에는 구원의 길이 없더라." 라고 주장한 것이 '학문적 논리'의 견지에서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 철학자는 구체적으로 기독교에 구원론이 어떻게 없는지를 논증하지는 못했습니다. 

만약 논증을 했다면 지금쯤 기독교는 사멸되었을 것입니다.  

 

기독교신앙은 신학이라는 학문적 논리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학은 복음서와 사도들이 쓴 서신 안에 있는 내용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복음서와 서신의 내용을 뜯어보면 알맹이가 되는 구원론의 핵심이 빠져 있다는 것이 발견됩니다.

그리고 그 허점은 유태교인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많은 신학자가 있지만 신학은 그 허점을 막을 논리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따라서 현재의 기독교는 가설 위에, 모래 위에 지은 집과도 같은 상태입니다. 

정설이 나타나면 가설은 사멸되는 것과 같이 단순한 논증만으로도 무너질 수 있는 위태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믿어야 하는 무속 종교로 남을 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무속적인 부분은 이미 유태교가 점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간단한 내용으로 모래위에 세운 유태교와 기독교라는 두 집의 문제가 무엇인지 지적하고 그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시하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이라는 66권으로 구성된 책은 다섯 부분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1, 창세기부터 에스더까지는 역사적 기록입니다.

2, 다음 욥기부터 아가까지는 유태와 신, 구교가 공히 '성문서' 로 분류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3, 이어서 선지자들을 통해 기록된 예언서가 이사야부터 말라기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4, 그 다음이 예수님의 육성이 담긴 '4복음서' 이며,

5, 나머지는 사도들의 편지글과 요한 사도가 쓴 계시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태인들은 3번까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나름의 교리를 말하며, 기독교는 복음서와 서신을 추가하여 교리를 만들어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는 서신의 마지막책인 계시록내용을 바탕으로 한 많은 사이비 종교도 낳아져 있는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유태교는 '예수'를 일개 사이비 랍비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 근거는 다음 세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유태교의 탈무드는 이것을 문제 삼아 그리스도교를 "구멍 난 배"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기독교 신학의 구멍 1 ] 

- 복음서의 차이와 상반에 대한 필연성 증명의 부재 - 

 

복음서는 4권의 책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그 중에 마태, 마가, 누가복음, 이렇게 3권을 일컬어 '공관복음' 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공관복음' 이라는 세 책에 '비유'로 함축되어 있습니다.

기독교 신학은 이 기록들이 세 사람이 각각 자기의 시각에서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기록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문제는 이 세 책들이 동일한 인물에 대한 행적과 가르침에 대하여, 사소한 기록뿐만 아니라 핵심이 되는 가르침까지도 서로 상반되어 있거나 큰 차이를 안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경을 '완전한 계시' 라고 말하려면 이 차이와 상반된 내용의 문제는 반드시 논리적으로 그 필연성이 증명되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라는 틀은 무논리라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차이와 상반의 필연성은 지금까지도 증명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유태교는 이점을 문제 삼아 그리스도가 '메시아' 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부의 사이비 종파들은 이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서 "성경은 완전한 계시가 아니다." 라고 말하며 또 다른 경전을 가져다 붙이고 자신들만의 교리의 타당성을 만들어 개별적 종교로 자리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다원주의나 초교파주의 같은 이념은 이러한 논리적 문제가 양산한 변종들인 것입니다. 

만일 복음서의 차이와 상반의 문제에 대한 필연성이 논리적으로 합당하게 입증된 상태라면 여러 교리나 주장이 있을 수도 없거니와 있었어도 자연히 사멸되었을 것입니다.   

 

[구멍 2 ]

- 유태교제사장인 '레위' 에 대한 기독교의 '만인제사장제' 성립의 논증 부재-

 

유태교도 기독교도 모두 변경할 수 없는 직제가 있는데 그것이 '제사장 제도' 입니다. 

유태교의 제사장직에 대한 규례는 모세율법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바탕논리가 있는 상태입니다. 

하지만 한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 신학은 제사장 직이 이월되었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논증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성경적으로 보자면 합당한 성경적 논증이 없는 상태에서 '제사장' 이라는 직위를 주거나 받는 것이 '성경적' 으로는 '불법'에 해당합니다.

 

유태인에게는 모세의 율법이 있고 '레위' 라는 제사 직분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증거'가 성경 내용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반해 '기독교'는 '만인 제사장제' 라는 이론을 주장하지만 이것은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유태인의 관점에서보자면 기독교인들은 작위적으로 바탕 없는 하나님을 만들어 믿는 사이비종교인들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모세율법에 보면 이 제사장 직의 '이월' 에는 '규례'가 있습니다.

'선민'이라는 기득권을 가진 유태인의 관점에서 예수가 정말 메시아라면 기독교는 모세율법의 '이월규례'에 따른 '만인 제사장제'를 주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구약에 이은 신약적 구원론이 논리적 타당성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타당성이 확보되어 있으면 유태교가 인정을 하든 말든 일단 '종교'로서의 기본 요건은 갖추고 있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신약이라는 성경 안에는 예수님이 모세율법의 뒤를 이어 제사장으로 삼아졌다는 것을 논증할 자료가 없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 구멍 3 ]

- 신약이 주장하는 마음의 법으로서의 온전한 율법의 부재 -

 

제사장이란 하나님의 율법을 관장하는 직책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이 만인 제사장 제를 주창하려면 마땅히 그 제사장이 관할하는 '율법' 이 있어야 합니다.

유태교의 제사장인 레위족속에게는 모세율법이 있지만 기독교에는 그들이 만든 '교리'나 ‘교회법’은 있을지언정 서신에 언급하고 있는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율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이란 율법을 주관하는 사람인데 율법이 없으니 제사장도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인 제사장제' 는 신약의 서신 내용을 바탕으로 한 것이지만 용어만 언급을 하고 있을 뿐이지 정작 그 율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논리적 근거가 없기 때문에 만인 제사장 제는 학문적으로 보자면 사실상 '가설'도 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현재 기독교 신학의 범위 안에서 만인 제사장제의 성경적 논증은 불가능합니다. 이 사실을 신약 성경의 내용으로 간단히 확인시켜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한글 개역성경의 본문이며 성경배열 순서대로 게재하겠습니다.

 

* 요한복음

 이것을 비사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 비사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복음서의 가르침은 모두 비사, 즉 비유로 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위 내용으로 보아 복음서의 내용은 밝히 이르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 요한복음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요한복음은 복음서의 마지막 책인데 감당치 못하므로 다 이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 사도행전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사도행전 초반의 부활이후 첫 전도 때 베드로가 한 말입니다. '보고 듣는 이것'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지만 '이것'의 실체가 복음서 다음인 사도행전부터 요한계시록 이전의 서신에 있느냐하면 없습니다.)

 

* 고린도전서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온전한 것이 아직 안 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에베소서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에베소서의 기록은 '비밀'을 '대강' 기록한 것에 지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말이 적혀 있는 에베소서에 뿐만 아니라 바울 서신 전체에 바울이 계시로 알게 된 비밀에 관한 기록내용은 없습니다.)

 

* 야고보서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베드로도 ‘보고 듣는 이것’이라고 말했는데 야고보는 이렇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온전한 율법, 즉 불완전한 모세율법이 아닌 또 다른 '들여다보는' 율법이 있다고 말하고 있고 그것을 보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 이 들여다볼 수 있는 온전한 율법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세율법이 여기에서 말하는 온전한 율법이 될 수도 없습니다. 바울은 모세율법을 죄 있게 하는 법이라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약에는 온전한 것의 '예고'나 혹은 '이미 있는 것'에 대한 '간접적' 서술만 있을 뿐이며, 이 외에도 그 실체가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있는 문구는 매우 많습니다. 

그러면 결국 예수님께서 모세의 율법을 완전하게 하신 것의 실체인, 완성된 '들여다보는 율법'이 있기는 있는데 신약 성경에는 없다는 것이 됩니다.  

기독교 신학 안에는 이 '들여다보는 율법' 이 분명히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 신학은 그리스도의 '공의 실현'이라는 논리를 핵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학에는 '공의실현 논리'는 있는데 그 실현의 '과정'에 관한 논리만 있고 '결과'에 대한 논증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대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들이 무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무속적인 주장들입니다.

"십자가로 다 이루어 졌으니 그것을 믿으면 구원 받는다",

"하나님은 사랑이니 사랑하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무 논리적 주장들이 공의 실현의 '결과' 인 '온전한 율법'이 없다는 사실을 가리는 수단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결과'는 없고 과정논리만 가지고 있는 신학이 종국에 "그냥 믿어" 라는 결론을 도출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어 환상, 환청과 같은 무속적 신비주의에 힘을 실어 주게 되었던 것입니다.

 

# 세 가지 구멍 난 논리를 채울 수 있는 내용이 신학 안에는 없으나 성경 안에는 있다.

 

유태교도 구교도 신교도 모두 동일하게 “성문서” 로 구분하는 책이 있습니다.

그것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입니다.

 

하지만 이 책들은 세 종교에서 동일하게 그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유태교인이든, 천주교인이든, 개신교인이든, 혹은 여타의 종교인이든 성경을 바탕으로 한 종교인 이라면 당신은 반드시 언급한 다섯 권의 책 내용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아가에는 노래 중의 노래라는 찬사가 붙어 있고, 전도서에는 염세사상이 있다고 하며 욥기는 지혜문학의 꽃이라 하지만 그 내용은 모르며, 잠언은 인생살이에 참고가 되는 지혜가 들어 있는 책이고 시편은 그저 다윗이 쓴 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누구도 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욥기에 만인제사장제 이월의 내용이 들어 있고, 잠언은 마음의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신학을 하는 자들이 그것을 알았다면 위의 구멍을 메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가는 그 마음의 율법을 따라가는 자들을 환영하는 예수님의 환영사이며, 시편은 예수님을 따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자들을 예수님과 성령이 도우시는 말씀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도서는 그 길을 다 가서 십자가 앞에서 죽은 자들이 받는 “흰 두루마기”입니다.

이 주장이 타당성을 확보하려면 성경적으로 논증이 되어야하므로 이제부터 신구약 성경의 내용만으로 그 논리를 전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논증자료로 사용하고 있는 성경 본문은 한글 개역성경입니다.

복음서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신약 성경이 생기기 이전에 이미, 부여 될 '완전한 법'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누가복음

*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이 제자들과 계실 때에 신약이라는 성경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풀어주신 성경, 그리고 깨닫게 하신 성경은 반드시 ‘구약’ 이 됩니다.

그리고 위 내용으로 보았을 때 모세율법, 선지서, 시편의 내용도 이 깨닫게 하신 내용에서 제외 됩니다. 그것들을 제외한 것 중에 “이것이라 하시고”의 ‘이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약 빼고, 구약에서 시편 빼고, 선지서 빼고, 모세율법 빼면 남는 것은 필자가 언급한, 그리고 세 종교에서 공히 ‘성문서’라고 분류하고 있는 네 권의 책 뿐입니다.  

 

이 속에 바울이 계시를 받은 비밀한 것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만인제사장제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 삼아진 자는 마음의 율법, 바울이 말하는 [성령의 법] 으로 그 백성을 다스리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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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완성하신 마음의 율법, 성령의 법에 관하여 성경적으로 증명한 글이 [디르사나무] 네이버까페 [필독게시판]에 게재되어 있으며, 성경 말씀을 알기 쉽게 풀어쓴 글들이 있사오니 직접 까페에 가보시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