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lonian Captivity라고도 함.
BC 598(또는 597)년과 BC 587(또는 586)년 바빌로니아가 유대 왕국을 정복한 뒤
유대인을 바빌로니아에 강제로 억류시킨 사건.
바빌론 유수는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점령한 BC 538년에 공식적으로 끝났는데,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했다.
역사가들은 다음의 사실에 대해서는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① 팔레스타인에서 몇 차례 폭동이 일어나자 그때마다 추방 조치가 있었는데,
그렇다고 모든 유대인이 조국에서 강제로 추방된 것은 아니었다.
② 귀향이 허용된 후 돌아가고자 하는 유대인들은 수차례에 걸쳐 바빌로니아를 떠났고,
일부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에 계속 남아 있었으며, 이결과 최초로 많은 공동체가 형성되어
많은 학자들은 최초의 추방 시기를 BC 597년으로 추정하는데, 이해가 여호야긴 왕이 폐위되어 그의 가족, 신하, 수천의 부하들과 함께 포로로 잡혀간 해이기 때문이다.
또다른 학자들은 586년 네부카드네자르(느부갓네살)가 예루살렘을 파괴했던 직후를
최초의 추방시기로 보는데, 만일 이러한 주장에 따른다면 유대인의 바빌론 유수 기간이
48년 동안이라고 할 수 있다.
유수 기간이 70년이었다는 전승(예레 29:10)을 받아들이는 학자들 중 일부는 이 기간을
BC 608~538년으로, 또다른 학자들은 BC 586~516년경(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해)으로
보고 있다.
유대인들은 바빌로니아에서 심한 고통을 겪고 강력한 문화적 압력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의 민족정신과 종교적인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장로들이 유대인 공동체를 관리했고, 예언자 에제키엘은 언젠가 이루어질 귀향의 희망을
계속 일깨워주었다.
유대교 회당이 처음으로 세워진 것도 이 시기로 추정되는데, 왜냐하면 바로 이 시기에
유대인들은 안식일과 유대교 절기를 지켰고, 할례를 수행했으며, 성전에서는 그 이전에 했던
희생제물을 바치는 일 대신에 기도를 드렸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키루스 대왕을 은인이자 하느님의 종이라고 보는 견해가
히브리 성서 몇몇 구절에 반영되어 있는데, 〈이사야〉(45:1~3)에서는
실제 키루스 대왕을 하느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 보고 있다.
'관심 사 > 종교 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카베오 전쟁(하스몬 왕조) (0) | 2011.12.25 |
---|---|
구약성경에 나타난 놀이문화 (0) | 2011.12.25 |
길가메시 (메소포타미아 신화) [Gilgamesh] (0) | 2011.12.25 |
하누카 (유대교) [Hanukka, 마카베오 축제, 봉헌절, 빛의 축제, 차누카] (0) | 2011.12.25 |
하누카(Hanukka) (0) | 2011.1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