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이 담긴 성경을 성도들이 이해하고 오늘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성경의 해석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그러나 성경이 기록되어 인간의 손에 들려진 이후 해석자들의 크고 작은 오류로 말미암아 교회는 큰 혼란을 겪어온 것도 사실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다른 여러 나라의 신학이 유입되어 함께 영향을 미치는 혼란에 처해 있고 종교나 종파, 교파와 신학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복잡하게 얽혀있다. 그 결과 한국교회의 성경해석은 일관성이 없고 해석된 말씀을 듣는 성도들은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그 경우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본다.
1. 지나친 해석으로 본래의 뜻을 흐리게 하는 해석.
2. 말씀을 혼잡하게 하는 해석.
3.성경보다 더 어렵게 하는 해석.
4. 읽어보지도 않고 연구부터 하는 사람들의 해석.
5. 목회 이기주의적인 해석.
6. 기복주의적인 해석.
7. 청중들의 욕구에 아부하는 해석.
8. 전체를 보지 못한 사람들의 해석.
9. 기록자의 본의와 다른 해석.
10. 현실을 보고 과거를 함부로 판단하는 해석.
11. 억지 해석(왜곡되고 비비꼬인 해석).
12. 경솔한 비평적 해석.
13. 우의적 해석.
14. 실천적인 순종이 없는 해석.
15. 신비주의적 해석.
16. 이데올로기에 편승하는 해석.
목회 현장에서 나타나는 이같은 성경해석의 경향들은 서로 엉켜서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똑같은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해도 설교자마다 그 해석이 천차만별이다.
예수님께서 한 율법사에게 반문하시기를,"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라고 했다(눅 10:26).여기서 "네가 어떻게 읽느냐" 하는 말씀은" 네가 어떻게 이해하느냐'고 질문하신 것이다.
오늘날 신학의 문제는 성경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는지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연구부터 하는 것이 문제다. 책을 연구하기 전에 적어도 몇 차례 읽어보아야 한다. 한번도 읽어보지 못한 채 불완전한 이성으로 경솔하게 비평하는 신학을 접하게 되면 학문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신학생들의 믿음을 뿌리까지 흔들어 놓게 된다.
성경을 읽는다 해도 욕심에 의하여 굴절된 시각으로 읽는다면 올바른 이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른 해석도 할 수가 없다. 적지 않은 수의 성도들이 성경을 전체로 읽지 못하고 있거나 요절 몇 구절 암송하는 것으로 그치고 있다. 암송한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유대인들은 외우면서 알지 못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다(행13:27). 성경을 통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몇 요절만 뽑아서 이기적으로 해석하거나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면 더욱 어려운 지경에 빠지게 되고 그런 것이 지나치면 바로 이단이 된다. 이단 종파들은 대개 전용으로 쓰는 요절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 요절들을 언제나 자기들의 교리에 억지로 해석하여 맞추는 것이다.
요즈음에는 발달된 인쇄술에 의하여 많은 주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성경을 해석한 책들이 성경보다 더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성경 주석들은 마치 구약시대에 유대교 랍비들이 탈무드를 기록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고 있다. 우리가 만약 성경을 이렇게 어렵고 혼잡하게 하면 사람들이 성경의 교훈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될 것이다.
성경은 가능하면 간명하게 해석해서 듣는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성경의 해석은 쉬워야 한다. 성경을 해석한 책이라면 읽어서 쉽게 이해가 되어야 하고 그 말씀을 오늘의 삶에 적용하여 실천함으로써 사람들의 삶이 거룩해지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성경 안에 있는 성경해석학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내려 주신 계시를 일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토록 해석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세우진 여러 해석자쁠을 정경안에서 만날 수 있다. 그들의 해석은 언제나듣는 사람들이 즉석에서 알아들을 수 있도록쉽게 해석한 것을 볼 수 있다.
1 . 꿈으로 주어진 계시를 해석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계시가 사람에게 전달될 때 알기 어려운 꿈이나 환상으로 주어진 경우에는 그 꿈을 해석하는 사람이 따로 있어야만 했던 경우가 많았다. 애굽의 술 맡은 관원장이나 떡맡은 관원장, 그리고 바로 왕은 꿈을 꾸기는 했지만 해석할 능력은 없었다.
반면 요셉은 꿈을 꾸기도 하고 해석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이러한 경우에는 해몽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보아아 할 것이다(창 40:12,16, 18,22; 창 41:8,12,13,15).다니엘은 꿈을 해석하는 것이나 문자를 해석하는 지혜의 은사를 받아서 해석하고 있다. 다니엘서에 나타난 해석이란 대개 꿈이나 환상을 본 뒤에 그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경우였다(단 2:4,5,16; 단 5:16,17,26; 단7:16).
2.율법을 해석한 사람들
율법의 해석을 처음으로 시도한 사랍은 모세로 보아야 할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레위기를 받아서 40년간 실천적인 훈련을 실시한 뒤 모압 평지에서 율법을 설명하였던 것이다(신 1:5).모세가 율법을 설명한 것이 바로 신명기라할 수 있다. 신명기의 내용은 광야 40년의 역사와 십계명과 궤위기를 비롯한 율법의 해석임을 알 수 있다. 모세는 자구에 매이지 않고 매우 자유스럽게 해석하고 있다. 신명기는 최초의 설교였으며 강해설교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사실에 있어서 신명기는 레위기에 대한 해석서라 할 수 있다. 모세는 레위기를 가지고 해석하면서 설교를 마치기 전에 아주 귀중한 지시를 했다. 그 지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되거든 반드시 매 7년마다 한 번씩 율법을 낭독하고 하나님 섬기는 법을 가르치라고 했던 것이다(신31:9-13).
그러나 그 명령은 그 뒤 약 천년동안 한번도 지켜지지 않았다(모세의 설교가 행해진 B.C.1423년에서 에스라가 수문 앞 광장에서 성경을 통독한 B.C.433년까지는 약 990년이다.)
3. 예수님의 해석
예수님께서 따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이나 사두개인들의 그것과는 현저하게 다른 것이었다.예수님께서는 자주'너희가…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신 경우가 많다(마 5:21, 27, 33,58,43). 이러한 말씀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못된 해석을 들어왔다는 것을 시사하고있는 것이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을 만나 성경을 풀어주실 때 그 제자들은 그분이 누군지도 모르고 동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나중에 그들이 깨달은 것은 말씀을 풀어(사물의 뜻을 나타내어 설명하다. 해설하다)주실 때에 마음이 뜨거웠다고 고백하고 있다(눅 24:5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성경을 해석하셨고(상세히 설명하다) 비유들을 상세하게 해석하시며 쉽게 설명하여 주셨다(막4:34).
4. 사도들의 해석
사도들은 대개 구약성경을 해석할 때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했다. 마태나 베드로가 시편이나 예레미야서, 이사야서를 해석하면서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부분은 듣는 자들의 수준이 낮고 듣는 것이 둔하여 해석(설명하기 어려운)하기 어려운 것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히5:11). 사도 바울이 쓴 글들 가운데 알기 어려운 말씀들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바을이 기록한 것을 베드로가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사사로이 풀거나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벧후 1:20, 벧후 3:16).
5. 바울 사도의 성경해석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 복잡하게 해석하여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어버렸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성경을 해석한답시고 지나치게 분석하고 과잉 해석하다시피 하여 말씀을 혼잡하게 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만들러 낸 유전들이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본래의 뜻에서 멀어지게 한 것이다. 유대교 랍비들이 만든 유전들에 대하여 주님은 매우 부정적인 말씀을 하셨다.
바울이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할 때는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예수님을 알게된 후로 그가 깨닫게 된 것은 자신을 비롯한 바리새인들과 많은 유대 랍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고린도 사람들에게 두 번씩이나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고 천명하고 있다(고후2:17; 고후4:2).
오늘날의 신학도 하나님의 말씀을 너무나도 혼잡하게 해석하고 있다. 유대교 랍비들의 유전이나 탈무드 이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복잡하고 혼잡하게 해석하여 성도들은 그 방대한 주석들을 볼 때 주눅이 들고 만다.
통전적인 해석
성경을 하루에 한장 두장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읽어서는 평생 동안 성경을 읽어도 성경 전체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가능하다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 조금씩 읽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것을 전체를 단시일에 집중적으로 읽을 때 더 잘 깨닫게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성경해석을 시작할 때는 반드시 먼저 구약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한다. 구약성경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신약성경의 해석은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까지의 신학이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해 온 것은 사실이다.
첫째로 교리적인 방법은 너무 간추려서 알기 어렵고, 둘째로 주석적인 방법은 너무 방대하게 확대하여 알기 어렵고, 셋째로 설교를 통하여 듣는 말씀은 평생 들어도 미흡하고, 넷째로 신학은 어렵기도 하고 시대에 따라 변동한다.
그러나 성경을 통독하면서 통전적인 안목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은 교리처럼 축약되지도 않았고 주석처럼 부풀리지도 않았고 설교처럼 미흡하지도 않고 시대를 따라 변동하지도 않는 방법이다.
그 옛날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오랫동안 성경을 읽지 않았고 깨닫지 못했다가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의하여 성경을 통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읽어 들려준 말씀을 밝히 알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통회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크게 즐거워했다. 그 방법은 신명기의 명령(신31:9∼13)대로 초막절 한 주간 동안 매일 새벽부터 오정까지 계속하여 성경을 읽고 설명했다(느 8:3,12).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는 밝히 드러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전적으로 읽어서 마침내 신의, 즉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성경은 이미 하나님의 뜻을 해석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할 수만 있다면 해석하지 말고 읽고 또 읽어서 이해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 사람들은 습관적으보 성경의 말씀 속에 무슨 숨겨진 의미가 있는가 하여 지나친 해석을 하게 되는 수가 많다. 성경을 과잉 해석하게 되면 본래의 뜻에서 멀어질 위험이 있다.
바울이 로마서를 써서 로마에 보낼 때 거기 아무런 주석이 없었다. 그 편지를 받은 로마교회 성도들은 특별한 해석이나 주석이 없어도 편지를 읽듯이 읽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복잡하게 해석을 하게 되면 오히려 성도들은 아예 성경은 알 수 없는 신비의 책으로 인식하게 된다. 성경은 하나님의 신비를 감추어 둔 책이 아니라 드러내신 계시의 책이다. 성경은 결코 비밀의 책이 아니다. 바리새인들이 유대교를 망쳐 놓은 것은 성경을 통전적으로 읽지 않고 지나치게 해석하여 가르쳤기 때문에 유대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을 구덩이에 빠지게 하였다.
유럽의 신학이 성경을 한없이 어렵게 했기 때문에 오늘날 유럽의 교회가 그 어려운 해석에 질식해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유대교 학자들이 성경을 가르치면서 얼마나 많은 오해를 했는지 모른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사두개인들의 오해에 관하여 말씀하셨다(마22:29).
성경을 해석하려는 사람은 해석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성경 전체를 충분히 읽어야한다. 신구약 전체의 내용이 파악될 때까지 적어도 10회 이상, 30회 정도는 읽어야 한다. 인본주의적인 해석이나 이기적인 해석은 극히 삼갈 일이다. 이기적인 생각을 품고 아전인수격으로 성경을 해석하게 되면 위험을 초래한다. 설교자들이 회중들의 욕구에만 편승하거나 기복신앙을 가진 성도들의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욕망에 아부하는 설교를 하게 되는 경우 교회는 온갖 종교 이기주의적인 모습으로 타락하게 된다. 성경을 이기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극히 삼갈 일이다.
부분적으로 해석하는 것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절씩을 따로 볼 수 있는 성경이 있다면 그것은 잠언뿐이다. 다른 책은 언제나 문맥과 문장을 따라 문법적으로 읽고 스토리를 먼저 파악하도록 해야 한다. 성경 해석의 결과는 마침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밝히 드러나게 해석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살았고 운동력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입이 있어서 분명한 음성으로 말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분별한 해석이나 비평에 앞서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보아야 한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 편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최소한의 해석으로 쉽게 전달되도록 성경을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성경해석에 있어서 통시적 시각을 갖기 위한 좋은 방법으로는 일주일 단위로 실시하는 성경통독의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효과적이다. 한 주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투자한다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평생을 흔자 연구한 것보다 더 많은 사실을 바르게 깨달을 수도 있다.
제시하고 싶은 성경해석을 위한 지침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아
1. 성경을 전체적, 즉 統全的, 統時的 혹은 統視的으로 보고 해석한다
2. 성경 66권 각 권을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찾는다.
3. 교리적 선입관에 지나치게 매이지 않고 성경이 본래적으로 말씀하시는 뜻을 찾아해석한다.
4. 불변적인 진리와 가변적 윤리 사이에서 책임성있는 해석을 원칙으로 한다.
5.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에 관싱을가지고 성경을 해석한다.
6. 성경을 인간의 언어를 통하여 계시된 신언이라는 관점에서 신 중심적인 해석을 원칙으로 한다.
7. 해석하지 않고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해석 없이 읽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손을 대지 않는다.
8. 성경을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하고 약속은 믿음으로 응답하도록 해석하고 명령은 순종과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해석한다.
9. 66권 가운데는 필요없는 성경이 없다는 관점에서 모든 성경이 모든 시대를 향하여 말씀하시는 음성으로 들리도록 해석한다.
10. 성경 66권을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해 성토들로 하여금 성경에 대한 통시적 안목을 갖는데 도움이 되도록 해석한다.
11.전체가 부분을 해석한다는 관점에서 성경을 가장 짧은 기간에 통독을 하면서 해석한다.
12.번역이 불완전한 부분에 대해서는 원어성경에서 직역하여 보완하고 그 밖의 부분에서도 번역된 성경의 자구보다는 전체를 흐르는 신의에 관심을 가지고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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