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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회의 교리에 관한 성경적 비판

지식창고지기 2012. 1. 24. 09:45

천주교회의 교리에 관한 성경적 비판

김영채

전언(前言)
천주교에 관한 논의는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여러 형태의 논의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질문자께서 천주교의 교리적 이단성으로 한정해 주시므로 의제는 매우 명료(明瞭)해졌다고 하겠습니다. 저도 질문자와 같은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크리스챤들은 그렇게까지는 알고 있지 아니하고 그저 막연히 같은 하나님을 믿고 있는 기독교의 다른 형제 교파, 심지어는 우리 개신교의 모태로까지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과, 본 홈페이지가 불특정 다수를 향하여 열려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상기(上記)한 제목으로 접근하는 것이 보다 원만하고 겸손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먼저 본 논변(論辯)의 중요성을 상기(想起)하는 뜻으로 약간의 배경설명을 하겠습니다.


1.개신교와 천주교, 그리고 오늘과 내일
(1)개신교와 천주교
천주교인들은 “개신교는 천주교에서 떨어져 나간 열교(裂敎)이다” “천주교는 큰 집이고 개신교는 작은 집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러한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말은 천주교에 관한 실체를 똑똑히 파악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마귀가 쳐 놓은 장막(帳幕)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영원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구원의 도(道)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정하시고 이를 위하여 영계와 우주의 영원을 단번에 예정하시고, 예정대로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여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인간이 선악과 먹는 죄를 범하므로 타락하였고, 타락 즉시 예수님을 보내어 인간을 구속하실 것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후 아브라함을 세워 새로이 구속역사의 기초로 삼으시고 동 역사를 예표, 예약적으로 계속하시었읍니다.
때가 되매 구주 예수님이 오셔서 예표, 예약적으로 계속되어 오던 구속을 실상으로 완성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활(死活)의 대속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새로 시발된 기독교는 그 제자들로 말미암아 이방세계를 향하여, 특히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로 불길같이 번져 나갔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길은 좁은 길이었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피를 흘려야만 했습니다. 특히 당시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황제들은 수없이 많은 기독교 신자들을 탄압하고 죽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계속해서 흥왕해 갔고, 로마황제 콘스탄틴 대제는 마침내 기독교를 국가의 공인종교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주후313년)
그것은 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으니, 이때를 기하여 세상정권과 결탁한 사람들이 성경과는 많이 동떨어진 천주교를 만들어 순수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순수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가 막강한 교권을 갖기 시작한 천주교는 이후 성경대로 믿고 그대로 살고자 하는 참된 기독교도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종교재판이나 무력등을 통해 수 없이 죽였읍니다. 어떤 경우에는 한 달에 십만명을 죽였다고 하며 이렇게 해서 천주교에게 순교 당한 전체 숫자는 약5천 5백만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러한 일들은 천년을 넘게 계속되면서 종교적 암흑을 가져왔고, 천주교는 점점 더 성경과 멀어져 갔읍니다

그러다가 16c 초에 마침내 우리가 잘 아는대로 천주교회의 사제였던 마틴 루터가(물론 그 전에도 이름도 없이 죽어간 많은 개혁가들이 있었음) 성경을 바로 깨닫는 데에서 천주교의 엄청난 잘못을 알고 본래의 기독교로 다시 돌아오는 일이 일어났읍니다. 그 이후에 일어난 이 복귀 운동을 우리는 통칭 종교 개혁운동이라 부르고 그것으로 인하여 새로 시작된 교회를 개혁교, 혹은 개신교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의 전체 역사를 두고 관조(觀照)해 볼 때 개신교가 천주교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 아니고, 천주교가 본래의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간 것이요, 개신교는 하나님에게서 시발된 기독교가 여러 변하는 환경속에서도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계속되다가 소위 종교개혁시기에 새로운 힘으로 계속하게 된 그러한 도(道)인 것입니다. 이 점을 확실히 이해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바로 이해하는 것과 천주교 형제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입니다. 오히려 이것을 바로 이해하는 데에서 우리는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천주교형제들을 사랑하고, 돌아오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2)오늘과 내일
얼마 전에 감리교 신학교에서 있었던 종교다원주의 파동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에는 기독교 통합을 넘어 종교 통합이 주창되고 있습니다. 또 실제로 종교통합 운동이 힘있게 일어나고, 역사하고,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1994년3월29일 미국의 복음주의자들과 로마카톨릭간에 ‘복음주의자들과 카톨릭교도들의 연합(Evangelicals and Catholies Together=E.C.T)’이라는 타협성의 공동선언문이 체결된 것이나 그 외에 우리가 익히 들은 바 있는 1990년도 초반에 시작된 ‘빈야드 운동’이나 ‘오순절 주의’같은 은사주의 운동도 성질상 통합을 향해 나갈 수밖에 없고, 요즈음의 뉴 에이지 운동은 종교 비 종교의 통합주의 운동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성질의 통합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으며 세력 있게 활동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 자체가 우리에게는 마지막을 준비케 하는 의미 있는 일들이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종교통합운동의 배경에 혹은 중심에 누가 서 있느냐? 천주교가 서 있다는 점입니다. 당연히 그 통합운동들은 천주교 중심의 통합을 향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외국에서 시작되고 일어나고 있는 운동에서 그것을 실감하도록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뒤로 두고, 우리나라 종교와의 경우를 비교적 단순하게 살펴봅시다.

지금 천주교회는 석가가 태어난 날에 종을 치며 축하해주고 있고, 불교사찰의 상량(上樑)법회에 추기경이 참석해서 축사를 하고 있습니다. 또 유교를 믿는 사람들이 제례(祭禮)하는 곳에 가서 추기경이 절을 하는 모습이 방영된 것을 다 보았을 것입니다. 또 우리 개신교와는 ‘분리된 형제’라 하여 친근히 하고 있고 실제로 성경을 공동번역까지 하니 아니했습니까?
천주교 외에 어느 유력한 종파도 이렇게까지 활동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이것이 본란의 주제가 아니므로 길게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종교 통합의 중심에 천주교가 서 있다는 것을 이러한 몇가지 (예)로 실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종교통합운동이 내일은 어디로 갈 것인가?
기독교 통합에서 종교통합으로, 종교통합에서 종교와 이방세계와의 통합으로, 마지막에는 어린양과 그에게 속한 진실한 자들만 남긴 전세계세력의 통합으로 나아갈 것이고 여기에 수많은 형제들이 휩쓸려 갈 것은 (계시록17장)의 계시에 비추어 자명한 일입니다. 이것은 많은 성경학자와 선지자들의 거의 일치된 견해이며 故 백영희 목사님도 설교 중 그런 예감을 말씀하셨습니다. (목회설교록#90,199족)

진실하고자 하는 신자로서, 주님의 양을 책임지고 있는 자로서 이 사실은 매우 큰 두려움과 깨우침을 갖게 하는 바 있습니다. 우리가 천주교를 주목하고 확실히 알아야 하는 필요를 더욱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에 본란에서 한 장(章)을 할애하여 밝혀두는 바입니다.

2.판단의 최종권위
(1)판단의 최종권위
우리가 어떤 주제에 관하여 논변(論辯) 혹은 논쟁할 때에 그것에 관한 확실한 판단을 위해서는 최소한 양 당사자가 자기 논리의 최종권위로 삼는 것이 동일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 논의는 평행하여 달리고 있는 기차 레일과 같아서 접점을 찾는다거나 객관적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천주교 교리에 대하여 밝힌다는 것이 다소 무망(無望)한 측면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개신교에서는 모든 교리 논변의 최종권위를 오직 신구약성경66권에만 두고 있는데 반하여 천주교에서는 자기들 교리의 최종권위를 성경에만 두지 아니하고 성경과 함께 성전(聖傳)(=여러 시대를 통하여 전수된 가르침들), 교회의 교도권(=하나님 말씀에 대한 인증된 해석을 부여하는 것) 이 셋이 그 중요성에 있어서 동등하다고 합니다(1994년판 카토릭 교리문답서 계시헌장제10항)
그렇다면 동일한 것에 관하여 이 세 가지 다른 권위의 가르치는 바가 서로 맞지 아니할 때는 어떻게 하는가? 그 때는 당연히 교회의 교도권이 제일 우위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성경이나 성전에 대한 해석임무나 권한은 로마카토릭 교회에 최종적으로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천주교 교리의 최종권위는 성경도 아니고 성전도 아니고 현재 천주교회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성경에 위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의 명문 계시를 교리의 유일 무이한 최종권위로 믿는 개신교와 천주교회의 가르침을 최종권위로 믿는 천주교와의 교리논변이 의미가 있겠는가?하는 회의도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도 교리를 세울 때에나 선파할 때에 가능한한 성경적 근거를 의거(依據)하려고 애를 써왔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천주교회의 태도만을 상대한다면 교리에 관한 토론도 가능 할 것입니다.
본란에서는 이러한 범위에서 천주교 교리에 관하여 논증(論證)하므로 그 교리의 비성경성을 밝혀 보려고 합니다.

(2)몇 가지 원칙
본란의 논리전개의 원만한 이해를 위하여 부득이 몇 가지 원칙을 밝힙니다
(가)먼저 본란의 주제가 천주교의 교리의 성경적 비판이므로 천주교회의 행위를 중심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중심하여 논증할 것입니다.

(나)또한 사적인 논쟁이나, 개교회의 가르침에는 상황에 따라 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아니한 것이 있을 수 있고, 또 주관이 개입될 수 있으므로 천주교에서 공적으로 발표한 것을 중심하여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비판코자 하는 것은 성경의 명문에 명백히 위배된 점에 대해서입니다.

(라)성경의 옳은 깨달음에 명백히 위배된 것도 당연히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옳은 깨달음이 무엇인가 함은 역사적으로 보편 타당한 깨달음을 중심해서 말하는 것인데 이에 대하여는 더 설명할 필요가 있으므로 구체적 항목을 논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천주교에서 성경을 근거한 것이 아니고, 순전히 전승(傳乘)에 따라, 혹은 교회의 일방적인 깨달음에 따라 그것을 절대불변의 진리로 가르치는 것은 그 내용이 어떠하든 비판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본론
1.비판의 방향
(1)순교하신 백 영희 목사님은 설교 중에 종종 천주교의 잘 못된 점을 말씀 하셨는 바 그것을 정리하면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가)교황 무오를 주장하니 틀렸다. 이것이 천주교가 타락하게된 근본 윈인이다.
(목회설교록#177, 567쪽)
(나)성경보다도 교파(주:교회의 가르침)를 위에 두니 타락한 것이다.
(78년3월 공의회 설교)
(다)천주교는 사진이나 동상에 절하는 우상종교이다.(#90, 199쪽)
(라)자기교파, 자기교회에만 구원이 있으므로 천주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이 된다고 주장하니 틀렸다.
(마)성경을 못 읽게 하다가 이제야 읽게 하나 해석권을 교회에만 두고 있으니 잘못 되었다.
(바)마리아를 평생 동정녀로 인정, 숭배하고 있으니 성경에 위배된다.

(2) 처음에 이 글을 쓸 때에는 천주교 전반을 고찰, 비판해 보고자 하였으나 위의 백목사님이 지적하신 항목을 중심해서 논하기로 하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천주교의 잘못됨을 알기에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고, 또 본인의 실력이나 여건상 제약이 있기 때문입니다

(3)논변(論辯)의 순서는 해당항목에 관한 천주교의 공적주장(교황의 지시에 의해1992년 발행한 카톨릭교회 교리서-약400년 만에 새롭게 발행된 것임)을 먼저 소개하고, 이에 관하여 비판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비판 할 때에는 기독교 측의 기존의 비판에 대한 천주교회의 반론을 포함하여 논해야 할 것입니다. 혹 본 졸론(拙論)에 관하여 천주교인의 반론이 있으면 그에 응해서 더 상세히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2.敎皇無誤謬(교황무오류)에 관하여
(1)천주교의 주장
“주교단의 으뜸인 로마 교황이 모든 그리스도 신자들의 최고 목자와 스승으로서 형제들의 신앙을 견고케 하기 위하여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 교황은 직무상의 무류(無謬)성을 향유한다..........이러한 무류성은 하느님계시 유산의 범위와 동등하게 광범위하다”(교회헌장제25항,한국판교리서 제1편 344쪽)
이 교리에 따르면 로마교황은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는 언제나 전혀 잘못이 있을 수 없는, 하나님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2)비판
첫째로, 이 주장은 성경적으로 명백히 위배되는 것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사람에게는 옳은 것이 하나도 없다고 가르치고 있다. 또 만물보다 거짓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고 하셨다.(로마서3:10,23,예레미야17:9)
물론
우리가 천주교회 교리를 원만히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진다면 위의 교리는 인간 교황은 오류가 있을 수 있으나, ‘...교회의 머리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선포할 때’는 무오류하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천주교회에서는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한다고 해도 성경에 위배되는 것은 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인간은 중생되어 구원 받은 후에도 자유성을 가지고 성령을 배척하고 마귀의 종으로 행동할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로마서6:12-14, 7:18-23, 에베소서4:19-24)
그 증거로
예수님 당시 베드로(천주교회에서 제1대 교황으로 여기는 사람임)도 그가 성령에 충만했을 때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바로 알고 바로 발표하였지만, 잠시 후에는 사탄의 종이 되어 틀린 주장을 한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마태16:13-23)
성경이 이렇게 가르치고 있는데 ‘교리를 선포할 때’라고 해서 어떻게 무오하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 성경이 주지 아니했기에, 하나님도 줄 수 없는 무오의 권위를 누가 주었다는 말인가? 이는 명백히 성경에 위배되는 교리이다.

둘째로, 실제에 있어서 맞지 않는 교리이다.
우리가 이단이라고 할 때는 틀린 교리를 옳다고 주장할 때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들도 자기들은 성령으로 틀림이 없는 올바른 교리를 깨달아 주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분명히 성경에 맞지 아니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 마귀에게 주장을 당해서 그렇게 깨달은 것뿐이다.
이렇게 인간은 교리를 깨달아 선포할 때에도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는 것이다. 인간 교황을 여기에서 예외 시키는 것은 천주교의 인위적 설정이지, 성경 적 근거가 전혀 없는 아주 잘못된 교리이다.

결론적으로
교황이(교황제도의 옳고 그름은 나중에 논하기로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교리를 선포할 때에는 무오류하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때도 있는데 그 때는 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인들이 그가 교리에 대하여 무오하기를 소망할 수는 있으나
교황은 무오하다고 단정하여 교리화 한 것은 명백히 성경에 위배되는 이단적 사상이요, 주장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컨데**
교황 무 오류라는 이 잘못된 교리가 천주교 타락의 근본 윈인이고 그것 때문에 오늘까지 천주교가 이렇게 어두운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교황이 틀린 것을 주장하여도 아무도 다른 것을 주장할 수 없고 고칠 수가 없으니 타락할 것은 너무도 자명하지 아니한가?
또한
이는 사람이 하나님의 위치에 앉아 있는 것으로, 성경에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하신 그 일 중에 하나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하면 교황은 적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사실
교황을 “Holy Father!(거룩하신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나, 그의 ‘절대 무오성’을 주장하는 것이나 그에게(사제들 포함) ‘죄를 사하는 권세’가 주어졌으므로 그를 통하여만 죄가 사해진다고 주장하는 것은 분명히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이며 ‘자기를 가리켜 하나님이라’하는 것으로서 “적 그리스도‘로 규정해도 마땅하다고 보여진다.
이러함에도
천주교회에서는 오랜 세월 교황의 교리서나 요령 집이나 공의회의 결정으로 이를 더욱 공고히 해오고 있고, 그것으로 장구한 세월 교권을 유지해오고 있는 것을 자랑하고 있으니 심히 가증스럽고 두려운 일이다. 기독자라면 심각히 생각할 점이 있다.(요한복음17:11, 마태23:9, 마태복음24:15, 요한2서2:7, 데살로니가후서2:3-4, 계시록13:6, 막복음2:7,이사야1:18-20,요한1서1:9)

2.우상숭배(그림이나 동상을 향하여 십자를 긋고 절하는)문제에 관하여
(1)천주교회의 주장
(가)“...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우리 교부들의 가르침과 카톨릭 교회의 전승에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확실하고도 명백하게 결정한다. 그림으로 그려졌거나, 모자이크로 만들어 졌거나, 또는 다른 적절한 재료로 만들어진 유서 깊고 거룩한 그림들과 귀중하고 생명을 다시 주는 십자가상은 하느님의 성당과 제기들과 제의,
벽과 화판에, 그리고 집안과 거리에 모셔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이시며 구세주이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이나. 천주의 지극히 거룩하신 모친이신 동정 마리아의 성화상이나 거룩한 천사들과 성인들의 성화상도 마찬가지이다“(제2차 니케아 공의회,교리서 제2편 438쪽)
“성당과 집에 있는 성화상은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우리의 신앙을 일깨우고 기리기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 분의 구원사업에 관한 성화상을 우리가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흠숭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어머니와 천사와 성인들의 성화상을 소중히 하면서 그분들을 공경한다.(교리서제2편 448쪽)

(나)여기에 대한 천주교회측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첫째, 성경에 물상의 제작을 무조건 금하지 아니했다. 천사의 모양인 그룹을 만들라고 하셨고, 모세도 놋 뱀을 만들어 불 뱀에 물린 자가 그것을 봄으로 살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성경은 우상으로 경배하기 위해 물상을 제작하는 것만을 금하는 것이다.

둘째, 우리가 그림이나 동상에 절하고 경의를 표하고 그 앞에서 기도하는 것은 그 물상 자체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으로 표상하는 분(사람, 천주)에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글을 보고, 말을 듣고, 그 분들을 생각하며 하는 것보다 더 직감적이지 아니한가?

(2)비판
(가)구약성경에 제단에 제물을 놓고 제사하는 행위나, 지성소에 하나님을 상징하는 천사모양의 그룹을 세워놓고 속죄 제를 드린 것이나,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놓고 뱀에 물린 자로 하여금 그것을 쳐다보므로 구원받게 한 것은 전부 예수님의 대속을 예표한 모형적이요, 상징적인 것이다. 이것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완성되었고, 그 이후로는 당연히 폐지된 것이다.(히브리서9:1-28)
실상이 이러한데 신약시대에 와서도 그러한 형상을 만들고 그것들을 통한 어떠한 형식을 통하여 구원에 이르려고 시도한다는 것은 그 발상 자체가 예수님의 완전한 대속을 부인하거나 제한하는 행위가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신약성경에는 그렇게 한 일이 없고, 또 그런 것을 엄히 금하고 있다.(사도행전14:8-18, 15:10-21)

성경이 금하는 것은 우상으로 섬기기 위해서 물상을 제작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니
이는 맞는 말이요, 천주교회에서도 그러한 경우는 잘못이라고 인정하는 것인데 사실 천주교회에서 그림이나 동상을 제작하는 본 의도가 무엇인가?
그것을 집이나 성당에 모셔놓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에게 절하고, 그 앞에서 기도하기 위해서이지 무슨 장식품이나, 관람용이나 기타의 용도로 제작하는 것이 본 의도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그것이 바로 우상으로 섬기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므로 천주교회에서 그림이나 동상을 제작하는 것은 그 발상이나 행위 자체가 십계명중 제2계명의 명문을 범하는 우상숭배가 되는 것이다.

(나)천주교인들이 그림이나 동상에 경배하는 것은 그 물상에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물상이 표시하는 사람이나 천주에게 하는 것이요, 이는 다른 경우보다 더 직감적이요, 효과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점이다.
이 설명은 명백히 성경의 명문을 범하고 있는 죄요, 교인들을 우상숭배의 구렁텅이로 더 깊이 인도하고 있는 실상에 대한 양심적 성찰이 없는 무책임한 말이다.

(ㄱ)천주교회의 설명은 이방종교(불교나 유교등)나 미신을 섬기는 자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어떠한가? 사람이 만든 하늘과 땅과 땅아래의 아무 형상에게도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명문으로 엄금하셨다. 이 말씀을 어기고 분명히 절하며 섬기고 있으면서 무슨 다른 설명을 한다는 말인가?(출애급기20:4-5)
(ㄴ)실상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보자!
너나 할 것 없이 그렇게 신령하지 못하고 육신적인 우리들이 어느 그림이나 동상을 모셔 놓고, 매주 혹은 매일 그것을 소중히 여겨 간수하고, 바라보고, 그 앞에서 기도하는 행위를 반복할 때, 과연 우리 심령을 차지하는 것이 보이지 않는 주님이 실존적으로 더 강해지겠는가? 보이는 형상이 더 실존적으로 강해지겠는가?
보이는 형상이 더 우리의 심령을 강하게 차지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본 의도야 어떠하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로 향하여야 할 소망이나, 의지나, 믿음을 가로막고 그 형상으로 향하도록 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실상적인 우상숭배가 아니겠는가?
실제로 (열왕기하18:4)에 보면 유다 히스기야 왕 때에 모세가 만든 놋 뱀을 사람들이 우상으로 섬기므로 부셔버렸고, 예수님도 그의 육신에 관한 것은 아무것도, 글씨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것을 소중히 여기다가 우상이 될 것이 너무 뻔하기 때문이었음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8:3-9)

이것이 인정이 안된다면 천주교인 누구든지 지금이라도 그러한 형상을 다 치워버리고, 보이지는 않으나 더 확실하게 실존하시는 하나님과 마주 앉아 보라! 처음에는 무엇인가 허전할 것이고, 그렇게 얼마를 계속하다 보면 이전과는 확실히 다르게 더 강하게 하나님을 대하게 될 것이다. 그것으로서 보이는 형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향한다고 하는 일이 우상숭배요, 스스로 속는 일임을 체험 할 것이다.

(ㄷ)보이는 형상들을 통하여 주님을 대하는 것이 더 직감적이라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천주교회가 빠진 함정임을 알아야 한다.
첫째로,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다. 그 속성의 깊이나 넓이나 능력적으로 무한하신 분이다. 이러한 분을 유치하고 제한된 그림이나 동상을 통하여 접하도록 하는 것은 무한하신 분을 제한된 물상에 고정시켜 버리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생각해보자!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의 형상이란 것을 앞에 놓고 “천주님이시여!”할 때 그 사람의 심령에 무엇이 뚜렷이 자리하겠는가? 앞에 있는 형상이 아니겠는가? 많이 노력한다고 해봐야 그 형상과 오버랲되는 그 무엇일 것이다. 그러니 그 형상은 결국 무한하신 하나님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가로막아 유한으로 제한시켜 버리는 것이요, 흐리게 하는 마귀 역사이다.

둘째로, 하나님은 하나님 당신이 어떠하신 분임을 성경으로 기록하여 나타내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알되 성경대로의 하나님으로 알아야 한다. 다른 성경인물들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성경에 그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인물을 그대로 그리는 일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게 절하거나 섬기는 일은 할 수 없다. 또 집이나 성당에 두는 것도 안 하는 것이 좋다. 우상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우에도 안 하는 것이 좋다.
하물며 성경에는 나타나 있지도 않은 예수님의 모습이나 신앙인물들의 모습을 상상해서 그림이나 형상으로 만들어 놓고, 그것에게 경배하고 그것을 통하여 주님이나 신앙인물을 접하도록 한다는 것은 성경대로의 주님이 아니라 화가, 혹은 조각가, 혹은 신자 각자의 상상대로의 주님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성당에 설치 되어 있는 그림이나 동상과 같은 모습의 주님이요, 신앙인물이라고 성경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그러므로 천주교회에서 물상을 설치해 놓고 그것에게 경배하고, 그것을 통하여 그것이 표상하는 주님이나 인물을 접하도록 한다는 것은 성경대로의 주님을 접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인간 상상대로의 조작된 주님을 상대하게 만드는 큰 죄임을 알아야 한다.

**생각컨데**
구약교회는 유치한 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들을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면을 주로 하여 상대해 주셨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사실적 느낌은 신약의 우리보다 더 강한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와서는 영적이고 신령한 면을 주로 하여 우리를 상대하고 계시고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은 부수적인 것이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는 그 지식의 깊이나 넓이나 높이 적으로 구약성도는 신약성도에게 도저히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신약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을 신령한 면으로 아는 일에 더욱 자라가야 하고, 이를 실생활에서 경험적으로 체험적으로 확신하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천주교회는
그림이나 동상같은 물상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 직감적으로 섬기도록 한다 하나
실은 첫째로, 명문적으로나, 실상적으로 우상숭배를 하고 있고
둘째로, 주님을 성경대로의 주님으로 대하는 것을 가로막고, 인간 상상대로의 조작 된 주님으로 상대하게 만드는 것이요,
셋째로,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치한 물상으로 제한시킴으로서 신약성도를 향
한 하나님의 인도를 방해하고 있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3.마리아 숭배에 관하여
(1)천주교회의 주장
(가)천주교회의 교리서에서는 마리아에 관하여 상당히 많이 언급하고 있다. 그만큼 천주교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뜻일 것이다. 여기서 그것을 다 기록하기가 어려우므로 그 핵심 되는 것만 정리하여 소개하고 비판해 보겠다.
(ㄱ)마리아는 원죄도 없고, 평생 죄없이 살았다.(제일편185쪽, 190쪽)
(ㄴ)마리아는 평생 동정녀였다.(제일편188쪽, 191쪽)
(ㄷ)육체를 갖고 승천했으며, 천지의 모후(여왕)로 추대 받았다.(제일편366쪽)
(ㄹ)하느님의 어머니요, 교회전체의 어머니이다.(제2편442쪽, 제일편367쪽)
(ㅁ)우리 구원의 윈인이요, 영원한 중재자이다.(제일편185쪽, 367-368쪽, 교회헌장제62항)

(나)이러한 천주교회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마치 마리아가 예수님과 동등한 거룩한 인물이요, 그가 없이는 예수님의 구속사역이 불가능 한 것처럼 느끼게 한다. 나아가서는 통상 아들보다 어머니가 더 크고 자애로운 것처럼 마리아가 예수님보다 더 크고 자비로운 인물로 여겨지고, 실제로 천주교인들은 그렇게 느끼며 대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성경에 관한 상식만 가지고 보아도 얼토당토 않는, 명백히 틀린 주장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주장이 가능한가? 그것은 교황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이다. 천주교회는 성경은 틀릴 수 있어도 교황의 교리는 틀릴 수 없다고 가르치고 믿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믿는 것이다. 또 일반인들은 성경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볼 수 없었고, 최근에야 보는 것을 허락했는데 그나마 그 해석은 전적 교회에만 권한 되어 있는 것으로 하고 있다.
이러하니 일반인들은 교회의 잘못을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미개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천주교회의 교리 체계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천주교회가 성행하는 나라가 대개는 미개한 국가임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2)비판
(가)개별 비판
(ㄱ)마리아가 죄가 없다는 것은 성경을 명백히 무시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님외의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며 사람에게는 옳은 것이 없다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5:21, 전도서7:20, 로마서3:10-12, 23, 로마서5:12)
또 마리아 자신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라고 한 일이 있는데 이는 그가 구원주가 필요한 죄인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누가복음1:46-47) 그 이후 마리아의 행적을 살펴봐도 그가 연약한 죄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ㄴ)마리아가 평생 동정녀였다는 것도 천주교회에서 가설(假設)한 것이지 성경적 실상이 아니다. 성경을 보면 그가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을 때까지는 분명히 동정녀였으나 그 이후에는 요셉과 동침하고 자녀를 많이 낳았음을 보여주고 있다.(마태복음1:25, 13:55-56) 이는 성경 상 너무 명백한데도 예수님의 동생들을 사촌동생들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그대로 믿고 있으니 이는 참 웃을 수밖에 없다.

(ㄷ)성경에 육체를 가지고 승천한 분으로는 예수님과 에녹, 엘리야뿐이다.(사도행전1:9, 창세기5:24, 열왕기하2:11)마리아가 육체를 가지고 승천했다는 말씀은 성경어디에도 없다. 또 마리아가 천지의 여왕으로 추대 받았다는 말씀도 없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너무 荒唐無軌(황당무궤)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오히려 마리아를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늘의 황후같이 만들어 섬김으로 하나님의 격노하심을 받는 일이 될 것이다(예레미야7:18, 44:17)

(ㄹ)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것도 아주 가증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이 어찌 어머니가 있을 수 있는가? 마리아는 신인 양성 일위이신 예수님의 인성의 어머니일 뿐이다. 정확히 말하면 예수님이 성령으로 마리아의 몸에 잉태된 것이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신 것뿐이다.(누가1:35) 또 성경에는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하나님만이 교회의 아버지로 부를 수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에배소서1:22-23, 마태23:9)
성경이 이러한데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이는 하나님을 범하는 망령된 범성죄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에게 저주받을 가증스러운 일일 것이다.
(ㅁ)마리아가 우리 구원의 원인이라고 할 때 그를 통하여 구주 예수님이 오신 것을 의미한다고 하면 맞는 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원인이라고 하는 용어는 그런 경우에 쓰는 것이 아님을 감안해 볼 때 의문이 간다.
또 마리아가 우리 구원의 중재자라고 하는 것도 성경에는 없는 것이다. 이 교리가 바로 천주교에서 마리아와 관련하여 성행하고 있는 모든 신앙행위의 근간이 되고 있는 중요한 교리이다. 그를 경배하고, 그를 사모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것이 다 이 교리에 근거하고 있다.
마리아는 자애로운 분으로서 지금도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변호하고, 보조하고, 협조하고, 중재하려고 힘쓰고 있으니, 그분에게 부탁하면 우리를 구원하도록 힘써 주실 것이고, 또 마리아에게 우리 사정을 예수님께 아뢰어 달라고 부탁하면 그가 예수님에게 부탁할 것이고, 그는 예수님의 어머니이니 예수님이 거절하지 못하고 잘 들어 주신다는 것이다. 이에 관하여는 항을 바꾸어 조금 상세히 비판하겠다

(나)중재성에 관한 상세 비판
(ㄱ)성경에는 마리아가 주님과 우리 사이에 구원의 협조자나, 변호자나,중재자가 된다는 말씀이 없다. 특히 죽은 마리아가 하늘에서도 예수님의 모친으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예수님과 우리사이를 연결, 구원토록 한다는 것은 성경을 너무 오해하고 있는 것이든지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상속하지 못한다고 하셨고, 그 나라는 시집도 장가도 아니 간다고 하셨다(고린도 전서15:50, 마태22:30)
마리아가 예수님의 모친으로서의 위치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뿐이다. 마리아가 하늘나라에서까지 예수님의 모친의 지위를 가진다고 하는 것은 전혀 성경에 위배되는 것이다.

마리아가 자애롭고, 열심이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께 직접 구해서 안 될 것도 마리아에게 구하면 마리아가 힘써서(중보기도등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고 한다면 이는 마리아가 예수님보다 더 우리 사정을 잘 알아주고, 더 힘써주고, 더 협조해 준다는 것이니 이는 전혀 성경 적인 사실이 아니며, 예수님을 깎아 내리고 우리와 예수님 사이를 벌어지게 하는 것이요, 마리아를 우상화시키는 것이다.

(ㄴ)성경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 뿐이요, 이 분만이 지금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변호자로 중보자로 힘쓰고 있다고 하셨다.(요한일서2:1, 히브리서13:6, 디모데전서2:5, 히브리서9:24, 7:25, 8:6,로마서8:34)

또 그분은 나를 가장 잘 알고 계시며 나를 사랑하사 죽으신 분이시다. 전능하신 분이다. 홀로 주권자이시다.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내게 구하면 들어 주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 기도하면 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면 되는 것이다(야고보1:5, 요한복음14:13-14)

이러함에도 마리아를 중재자로 세워 놓고 그를 통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있는 마리아 중재의 교리는 전혀 성경적이지 못한 인간적이요, 감정적인 사변(思辨)논리로 밖에 볼 수 없다.

(ㄷ)특히 알아야 할 것은 마리아가 살아 있을 때에는 그에게 우리의 사정을 두고 우리 기도에 협조하는 것으로 기도해 달라고 부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천주교에서 마리아에게 하는 행위는 낙원에 있는 그를 상대하여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니, 이는 기도의 상대를 하나님에게 한정하고 있는 성경에 명백히 위배되는 것이요, 우상숭배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다.(미태6:6, 9, 빌립보서4:6) 성경에는 한군데에도 하나님 외에 다른 존재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곳이 없다. 기도는 오직 하나님께만 하는 것이다.

(천주교의 주장을 종합하면)
첫째로,예수님이 다니시던 곳을 성지라 하는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요,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사람으로 위에 열거한 특성을 가진 특별한 분이요, 순종으로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신 분이요, 인류중 복된 분이니 마리아를 성모(聖母)라 하여 공경함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째로, 그의 구원의 중재성으로 볼 때 그를 경배하고, 그를 가까이 하고, 그에게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비판을 종합하면)
첫째로,마리아가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이요, 구속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복된 분인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보면 가브리엘 천사나, 요셉을 비롯한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구속사역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수종자의 역할을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생전에 예수님은 그의 모친 마리아에 대하여 특별한 대우를 하신 일이 없다. 또 성경에 그를 특별히 높여 공경하라고 하신 곳도 없다.

천주교회에서는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이 마리아의 청을 들어 물로 포도주 되게 한 사건을 두고 “봐라! 예수님이 어머니의 청을 못 이겨 들어 주지 아니하였느냐?”하며 마리아를 예수님이 특별히 높여 대우하신 것처럼 설명하고 지금도 그렇다! 고 해석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의 청만 들어준 것이 아니고, 그 후 제자들의 청도, 유대인들의 청도, 심지어 이방인들의 청도 다 들어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오히려 그 사건에서 (요한복음2:4)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모친 마리아를 “여자여!”라고 호칭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무엇을 나타내고 있는가?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도 신앙의 세계에서는 한낱 여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 때문에 달리 대우받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마태12:47-50)에 보면 한 사람이 예수님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이 밖에 섰습니다”라고 말했을 때에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또 성경(누가11:27-28)에 보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자중 한 여자가“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고 마리아를 높였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대답하셨다.
이런 것은 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육신의 모친이라 하여 특별히 다른 사람과 달리 여겨지는 것을 부인하신 것이요, 금하신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육신의 모친을 무시하고 내 몰라 라 하신 것은 아니다. 모친으로서 공경하며 끝까지 그를 돌보셨다.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전에 마리아를 자기 제자에게 부탁하신 것을 보면 알 수 있다.(요한복음19:26-27)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상에서 육신의 모친에 대한 도리였지 그 이상이 아니다. 어느 자식이 그 정도의 도리를 하지 아니하겠는가?
성경에는 마리아에게뿐 아니고 심지어 천사에게도 높여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계시록19:10)

이렇게 볼 때 천주교에서 이미 죽은 마리아를 특별히 높이고, 경배하는 것은 성경어디에도 없는 것이요, 예수님의 가르치심에도 위배되는 것이요, 혈육을 초월해 가야하는 기독교 정신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특히 마리아를 상대하여 기도하는 것은 명백한 우상 숭배로서 천주교가 마리아 숭배의 우상종교임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일 것이다.

둘째로, 마리아의 평생 동정녀설, 원죄와 본죄가 없다고 하는 것, 육체와 함께 승천 해서 천지의 여왕이 되었다는 것, 하느님의 어머니요, 교회의 어머니라는 것은 예수님에게만 적용해야 될 교리를 마리아에게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서 위에서 살펴 본대로 전혀 성경에 없는 교리이다. 천주교에서 마리아를 높이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조작(造作)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교리이다. 이는 너무도 반 성경 적인 것이요, 이교도적이다.
이것을 두고 볼 때 천주교를 과연 기독교라고 할 수 있을까? 기독교를 빙자한 마리아 숭배교가 아닌가? 생각할 수밖에 없게 한다.

셋째로, 마리아의 중재성에 관한 것인데 이것도 위에서 설명한 대로 성경에는 없는 것이요, 인정(人情)적인 사변(思辨)으로 조작해 내서 오늘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으로 반성경적 교리이다. 이 교리로 인하여 마리아 숭배를 실상 적으로 성행케 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이다.

4.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고 하는 점에 관하여
(1)천주교회의 주장
“제2차 공의회에 관한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은 다음과 같이 천명하고 있다. ‘구원의 보편적 보조 수단인 그리스도의 카톨릭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방법의 모든 충족에 도달 할 수 있다’..” (일치교령제3항, 제일편316 쪽)

“.......그리스도의 모든 구원이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 주어진다...........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카톨릭교회를 필요한 것으로 세우신 사실을 알면서도 이 교회에 들어오기를 거부하거나 끝까지 그 안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구원될 수 없을 것이다(교회헌장14항)”(제일편328쪽)
천주교회에서 이렇게 주장하는 것은 (마태16:15-20)에서 예수님이 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고 했고, 그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했는데, 그 베드로가 천주교회를 세운 인물이니 천주교회를 통해서만 구원이 된다고 하는 것이다.

(2)비판
(가)(마태16장)에 예수님이 베드로위에 교회를 세우고, 그에게 천국열쇠를 주겠다고 하신 것은 베드로라는 인간 개인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다. 그 성경을 계속 보면 잠시후(마태16:23)에 베드로는 사탄의 자식이 되어 예수님에게 꾸중을 듣고 있다. 이러한 인간 베드로에게 어떻게 천국 열쇠를 주며, 그 위에 교회를 세우겠는가? 그 말씀은 베드로로 하여금 예수님에 대하여 바로 알고 고백하게한 그 영감신앙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이요, 영감신앙 그것에게 매고 푸는 천국 열쇠의 권위가 있는 것을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베드로가 어찌 천주교회만의 인물인가?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는 인물중의 한 사람이다. 한 분 하나님의 영감신앙으로 세워지는 모든 교회는 다 베드로와 같은 단일교회에 속하는 것이다. 이를 천주교회만이 베드로를 계승한 교회라 하는 것은 성경을 곡해하여 억지로 조작한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

베드로를 통한 교회만이 유일의 참 교회라면 바울 사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세운 것으로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신약의 모든 교회, 그것에서 번져 온 모든 이방교회를 부인하는 것인데, 로마 카톨릭이야 말로 바울이 세운 교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지 아니한가? 이 모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성경은 사람이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천주교회를 통해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있지 아니하다. 구원은 모든 택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공로를 인하여 값 없이 주시는 것인데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 과정을 보면 단체교회를 통하여 복음을 접하므로 구원될 수도 있고, 개인의 전도를 통하여 구원받을 수도 있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영감역사로 구원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교회 생활은 구원받은 자의 성화를 위한 필요한 방편으로 주신 것이다.
(로마서6:23, 사도행전4:12, 로마서3:24, 에배소서2:8-9,누가복음23:43 요한복음3:36, 5:24, 로마서1:16, 사도행전15:11)

**결론**
천주교회를 통하여만 구원이 된다고 하는 것은 성경에 없는 교리요, 성경을 왜곡하여 억지로 천주교회에 집중케 하려는 일방적 주장이다.


5.죄사함에 관한 교리
(1)천주교회의 주장
(가)교리서 소개
(ㄱ)“아무리 중대한 잘못이라 해도 거룩한 교회가 사해줄 수 없는 죄는 없다”(제1편372쪽)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회는 세례 받은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제일편373쪽) “주교와 사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해 주는 교회는..”(제2편530-531쪽)

(ㄴ)“..교회는 영원한 행복에 들기 위한 확실한 보증으로 세례이외의 다른 방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제2편468쪽)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죄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며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어 교회와 한 몸을 이루어 그 사명에 참여하게 된다”(제2편455쪽)

(ㄷ)“교회는 신약의 聖事(성사)들이 신자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말한다“(트리엔트 공의회, 제2편426쪽) ”교회에는 일곱 가지 성사가 있다. 즉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신품성사, 혼인성사“(제2편421쪽)

(ㄹ)“하느님과 교회와 화해 하고자 하는 사람은 진지하게 양심을 성찰해서 기억해낸 아직 고백하지 않은 모든 대죄를 사제에게 고백하여야 한다”(제2편544쪽)
“교회의 계명에 따라 모든 신자는 사리를 분별할 나이에 이른 후에는 매년 적어도 한번 자기의 대죄를 성실히 고백할 의무가 있다”(교회법제989조,제2편533쪽) “교회의 권위자에게 사죄권을 받은 신부들만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할 수 있다”(제2편544쪽)

(나)천주교회의 주장은 (마태16장)에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고, 그 열쇠로 땅에서 푸면 하늘에서도 풀리고,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사죄권이다. 이 사죄권은 다른 제자에게도 주어졌다
그 베드로나 제자들이 천주교 인물이고(베드로는 제1대 교황), 그들로부터 그 이후 교황에게 그 사죄권이 계대되어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천주교회에만 사죄의 권한이 있고, 그 교황을 통하여 사죄권이 주어진 신부들의 여러 성사(聖事)들을 통해서만 신자들의 죄가 사해지고 구원을 받게 된다 하는 논리이다.

(다)참고로 일곱 성사(聖事)들을 설명하면
(ㄱ)세례성사는 기독교의 세례식과 같은 것인데 중요한 점은 이 세례성사를 통해서만 신자의 원죄가 사해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ㄴ)성체성사는 성찬식을 말하는데 이것으로 자범죄가 사해진다고 한다
(ㄷ)신품성사는 신부되는 의식이고,
(ㄹ)혼인성사는 결혼식을 말한다. 이 둘은 택일이다.
(ㅁ)고해성사는 고백성사라고도 하는 것으로 신부에게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인데 천주교회에서는 자범죄를 대죄와 소제로 구별하여 대죄는 반드시 신부에게 고백해야 하고, 그 신부를 통해서만 사해진다고 가르친다.
(ㅂ)견진(堅振)성사는 유아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장성하게 되면 신부가 기름을 바르며 기도해 주는 의식인데, 이로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 교회와 더 가까워지고 결합된다는 뜻이다.
(ㅅ)병자성사는 종부성사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죽을 때 눈,코,귀,손,발에 기름을 바르고 기도해 주는 의식으로서,일평생 그 지체로 지은 죄를 용서해 주는 의식이다.

(2) 소감
(가)천주교회의 교리를 살펴보면서 계속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신자들을 하나님에게서 끌어 내려서 천주교회에게, 더 정확히는 인간(마리아, 성인,사제등)들에게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 사죄의 교리에 이르러 극치를 이루고 있다. 천주교회의 사죄의 교리는 극단적으로 말하면 범죄하여 불안한 인간의 심리를 적절히 이용하여 신자들을 교회에 종속시키고 있을 뿐, 실제는 죄 사함을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아주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있는 기막힌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마태23:14)에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고 말씀하신 그 실제를 여기서 본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나)천주교회가 이렇게 어두운 교리를 오랫동안 가지고 내려올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성경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다. 이는 천주교회가 인간적 수준이 낮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교리 체계상 모든 것의 최종권위를 교황의 가르침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그것에 집중하는 만큼은 성경에 소흘히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신부님들의 말을 들어 보면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미안한 말이지만 성경의 영적해석에 어두운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평교인들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평교인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성경을 못 읽게 했고, 미사에도 설교가 없었다. 얼마 전부터 성경을 잃게 하고 있고, 미사에도 강론이라고 하여 기독교를 본 떠서 하고는 있지만 10분을 넘기지 앉는다.

이런 천주교회의 사제였던 마틴 루터가 성경을 직접 읽고 깨달은 결과 천주교회의 개혁을 부르짖은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성경을 조금만 깨달아도 천주교회의 교리가 틀린 것은 다 알 수가 있고, 바로 알고 보면 천주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할 만큼 느끼게 되는 것이다.

(3) 비판
(가)(마가2:1-12)에 예수님이 중풍병자의 죄를 사해 주었고, 이를 보고 서기관들이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분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했는데 이것을 안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부인하지 아니하셨다. 인정하신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직접 중풍병자의 병만 낫게 하는 것이 쉽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시고, 그 병자의 죄를 사해주셔서 낫게 하시는 어려운 방편을 취하신 것은 예수님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요, 사죄권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예수님에게 사죄권이 있음은 당연하고 분명하다. 그 분이 하나님이요, 대속주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요, 대속주이신 주님만이 인간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다. 그 어느 누구도 죄를 사해줄 권세는 없는 것이다. 전 성경은 이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천주교회에서도 인정하는 것이니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천주교회의 주장은 이 예수님의 사죄권이 제자들에게, 또 그것이 천주교회의 사제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인데, 그것이 성경 어디에 있는가?

(ㄱ)천주교회에서 말하는 근거중 첫째는 (마태16장)에 나와 있는 대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 천국 열쇠를 주었고, 그 베드로에게로부터 계통되어 내려오는 사람이 천주교회의 교황이니 그에게 사죄권이 있고, 그로부터 사죄권을 받은 천주교회의 신부만이 사죄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16장)에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었다는 것은 그 인간 개인에게 준 것이 아님은 먼저 항목에서 설명했다. 얼마 있어 사탄의 자식이 되는 그에게 무슨 천국 열쇠를 준다는 말인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대답하게 한 그 영감, 그 영감신앙이 터가 되어 교회는 세위지고, 그 영감신앙에 풀고 매는 권위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즉 그 영감신앙으로 나아갈 때에 자타가 주님과 연결되어 그분으로 인하여 죄사함의 역사, 곧 죄로부터 해방받는 역사가 있어지고, 교회가 서고 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의 많은 다른 곳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영이 바로 교회의 터가 되는 반석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마태16:18, 로마서9:33, 고린도전서10;4, 베드로전서2:8)
**또 천주교회만이 베드로계통의 유일한 교회라고 하는 것은 무슨 근거에서인가? 베드로에게 임했던 성령의 감화와 감동, 그 한분이신 성령의 역사로 세워지고 진행되는 역사이래 천하의 모든 교회는 다 같은 하나의 단일 교회인 것이다.(로마서12:3절이하) 이 비밀을 모르고 천주교회만이 베드로계통을 받은 유일한 교회요, 천주교회 사제만이 사죄권을 받은자라 하는 것은 천주교회가 인위로 조작한 교리일 뿐이다.

(ㄴ)또 천주교회에서는(요한복음20:22-23)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하시고,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요,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신 것을 근거 삼아 사죄권이 제자들에게 계승되었다고 주장한다. 일견 그럴 듯 하다. 그러나 성경은 전체를 보고 부분을 해석해야 하는 것이다. 귀를 보는 의사가 전 신체에 관하여 잘 알고 전 신체와 관련하여 귀를 진찰하고 치료해야 되지, 귀만 보고 귀를 진찰 치료했다가는 귀는 물론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 성경해석도 그와 같다.

**성경의 다른 곳을 보자!
먼저 성경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죄를 사해 줄수 있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것은 위에서 살펴 본바와 같다. 그러기에 우리 각자가 직접 이 하나님을 상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공로를 믿고, 회개하면 모든 죄는 사해지는 것이다. 누구를 통하여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요한일서1:9)에 보면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말씀했다. 이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에게 직접 죄를 자백하면 저가 들으시고 우리 죄를 직접 사해준다는 말씀이다. 앞 뒤를 읽어 보면 더 확실해 진다. 결코 신부를 통해서, 신부가 사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누가복음18:9-14)에 보면 세리의 기도가 나오는데, 세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기도했고, 그 결과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어느 인간을 통하여, 어느 인간이 사해 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직접 자백하고, 하나님이 직접 사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 셨을 때에
그 옆의 십자가에 달려 있던 한 강도는 예수님을 믿은 것 하나로 죄 사함을 받고 그날 낙원에 갔다. 어느 인간을 통하여, 어느 인간이 죄를 사해 준 것이 아니고 주님과의 직접적인 관계에서 되어진 것이다.(누가복음23:39-43)

(사도행전16:31)에도 보면 바울이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했다. 그리고 간수와 그 식구들은 믿어 구원받은 후에 세례를 받았다. 바울에게 세례 받은 후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 것이지 결코 사제들의 성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죄사함 받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다.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죄를 용서받고 구원에 이르는 방편은 전적 주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되는 것이다. 원죄도 전적 주님의 은혜로 사해지는데, 자기가 그 분과 그분의 대속 공로를 믿음으로만 되는 것이고, 자범 죄도 전적 그분의 은혜로 사해지는데, 이도 자기가 그분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함으로만 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그 외에 다른 절차를 두고 있지 아니하다. 주님이 우리 죄를 사하기에 충분한 완전 대속을 하셨기 때문이다.(에베소서2:8-9, 로마서4:16, 요한1서1:9)

실제로
예수님 당시나 사후에 이루어진 죄 사함 즉 구원의 역사는 다 이렇게 개인이 복음을 들은 후 주님을 상대하여 믿고, 회개하는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 진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사도들이나, 복음의 일꾼들은 개인이 그렇게 주님을 만나 구원받을 수 있도록 도우는 사역을 한 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도움을 받아 주님을 만난 자들이 많고, 도움 없이도 주님과 직접 교통하여 구원받은 자도 많이 있는 것이다.(사도행전2:38, 3:16, 10:1-2, 10:43-48)

그렇기 때문에
주님이 부활 후에 주님이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며 “누구에게든지 죄를 사해 주면 사해주고, 그렇지 아니하면 그대로 있으리라”하신 말씀을 성경전체와 조화시켜 해석하면 이 말씀은 (사도행전1:8)의 말씀처럼 성령의 권능을 받아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을 증거하여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므로 죄 사함을 받게 하라는 말씀이요, 그 일을 하면 곧바로 죄를 사해 주는 일이 되고, 안 하면 그를 그대로 죄인으로 두는 것이니 심각히 여겨 힘쓰라는 말씀인 것이다. 이렇게 해석을 할 때 전 성경과 모순이 되지 아니하고 일치한다.
실제로
예수님에게 그 명령을 받은 제자들의 행동을 보라! 그들이 무엇에 집중하여 힘썼는가? 사람들에게 천주교에서 말하는 성사를 행하기에 힘을 썼는가? 자기들이 직접 다른 이의 죄를 사해 줄려고 힘을 썼는가? 그들이 관심을 갖고 힘쓴 것은 성령 받아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주님이 자기들에게 명하신 것임을 바로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복음을 받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여 회개하고 죄 사함의 구원을 받았던 것이다(사도행전20:24, 고린도전서1:17)

**생각컨데**
만일 신부를 통해서, 신부가 주관하는 성사를 통해서만 죄를 사해 줄 수 있다면 신부를 만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은 죄 사함 받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말인데 그렇게 무리하고 불공평하고 무자비한 하나님이란 말인가?
예수님의 대속이 그런 중재자나, 중재의 행위를 통하여만 효력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예수님의 대속의 완전성을 제한하는 것이니 이런 교리를 어떻게 인정할 수 있겠는가?
(만일 가정해서)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사죄권을 주었다면 그것이 천주교 사제에게만 다시 주어졌다는 근거가 성경 어디에 있는가?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성경이 명백히 가르치는 대로 죄 사함과 구원의 문제는 개인과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복음을 듣고 주님을 믿을 때, 주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할 때, 우리의 죄는 사해지고 구원을 받는 것이다. 이는 주님이 우리의 사죄에 필요한 조건을 더 요구할 것 없이 완전하게 이루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감사함으로 믿고 나가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천주교 사제들의 성사를 통해서만 죄가 사해지고,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하는 교리는 성경에 없는, 성경을 곡해한 교리요, 주님의 완전 대속을 제한하는 아주 탈선된 교리이다. 이러한 교리로 천주교회가 어떠한 유익과 권위를 향유한다 할지라도 이는 결국 신자들이 어떠한 환경에서도 주님께 나아가 죄 사함 받을 수 있는 은혜의 길을 차단하고 있는 무서운 죄임을 알아야 한다.

결론-소고(小考)를 그치며
1.(마태15:3)에 예수님이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 遺傳(유전)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뇨?”하셨고, (골로새서2:8)에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하셨다. 천주교회의 교리를 살펴본 결과 이런 말씀이 생각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歸結(귀결)인 것 같다

2.순교하신 백영희 목사님이 천주교에 관하여 교리 적으로는 이단이다, 우상종교다, 마귀종교다고까지 하셨는데, 너무 과격한 것이었을까? 천주교를 정확히 파악하고 계셨기에 하신 말씀이었음을 알 것 같다.

3.결론적으로 천주교는 기독교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첫째로, 교황의 가르침에 제일의 권위를 두고 있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것으로 성경이 가르치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구원교리를 왜곡하고 부인하고 있 기 때문이다.
**향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천주교회의 교리에 관하여 더 논하지 않으려고 한다
따라서 본론에 관하여 반론코자 하는 분이 계신다 할지라도 그 분이 신구약66권 성경 에 최종권위를 두고 논변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면 응하지 않을 것임을 밝혀둔다.

4.본의 아니게 본론이 정죄 적으로 보일 소지가 있게 쓰여졌는지 모르겠다. 論旨(논지)를 확실하게 하기 위함이니 양해하기 바란다. 처음부터 밝혔지만 교리변론과 천주교인들을 사랑하는 것과는 별개의 것이다. 본인은 천주교인인 친척과 知人(지인)들이 많다. 그들과 함께 천주교인 형제들을 변함 없이 사랑한다. 이 글을 마치면서 그들을 사람 함에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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