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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목회

지식창고지기 2012. 3. 9. 11:26

선교와 목회

 

 

 

김태운/박봉철

 

 

 

Ⅰ선교에 대한 이해

 

 

A. 선교의 의미

 

 

 

선교란 한마디로 기독교 복음의 전파를 의미한다. 선교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를 계시하심으로부터 시작되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셨으며 그의 사도들을 보내셔서 계시의 증거자로 삼으셨다. 계시의 증거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신다. 교회는 계시의 증거자로 세상 가운데 보냄을 받았다. 계시의 증거 곧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전파가 선교이다. 물론 시대마다 문화적 환경에 따라 강조점이 다양할 수도 있을 것이나 복음을 전파한다는 본질적 의미는 결코 변할 수 없다. 선교라는 말 자체는 원래 그리스도 교회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는 의미로 중세 교회의 수도회에서부터 사용되어진 말이다. 이것은 요한복음 20장21절의 예수께서 말씀하신 두 헬라어 “아포스텔로”와 “펨포”에 기원을 두고 있다. 이 두 단어는 “보낸다”, “파송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물론 영어의 “mission" 이나 ”missionary"는 같은 뜻의 라틴어 “mitto"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말이 처음 쓰일 대의 의미는 가견교회의 통치밖에 있는 외국에 나아가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를 설립하는 특수한 임무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특수한 사명을 맡은 사람들을 지역 교회의 사제들과 구별하여 선교사라고 부르게 되었다. 따라서 선교라는 말의 본래적 어의는 국경을 넘어서 교권을 확장하기 위하여 파송 받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종교 개혁 시대를 거쳐서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있게 되면서 선교의 의미와 내용도 구체화되어 왔다. 그러나 선교가 그리스도 교회의 보냄을 받아서 비 기독교적인 사회에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라는 기본적 의도는 최근까지 견지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국가적 영역을 넘는 것보다는 좀더 문화적 영영과 관련해서 선교를 강조하기도 한다. 맥가브란은 선교를 문화적 경계를 넘어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따라서 오늘날에 있어서 선교의 의미는 타문화권에 나아가서 복음을 전파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교회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선교는 주님의 교회에 의해서 이루어지며 또한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행해지는 것이다. 만일 선교가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에 상관이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사회 봉사일 것이요 고유한 의미의 선교는 아니다. 선교와 또 다른 용어인 전도와의 의미는 본래적으로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하겠다. 과거에는 전도를 같은 문화권 속에서 복음 전파, 선교를 타문화권 속에서의 전도로 구별하여 이해하기로 하였으나 오늘날에 와서는 두 용어가 별다른 차이 없이 쓰여지고 있다. 왜냐하면 오늘의 복합 사회구조 속에서는 전도도 결국 문화적 장벽을 초월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Ⅱ목회에 대한 이해

 

 

A. 목회의 의미

 

 

목회란 개개인의 영혼의 삶의 전반적인 문제에 대해 직접 관심을 가지고 치료해 주는 것을 의미한다.1) 목회라는 말은 포멘에서 나온말로 “양떼를 돌보다”라는 의미를 지닌 말로서 18세기 이후에 와서야 목회라는 용어를 쓸 때 포이메닉스라는 말로써 표현하게 되었다.2) 독일어로 ‘목회’는 젤과 조르게의 합성어로서 ‘영혼에 대한 관심’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종교개혁 시대부터 목회는 영혼을 돌보는 것이라는 개념이 생겨났다. 라틴어로 는 쿠라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영어에서의 care(돌보다)라는 의미와 cure(치료한다)라는 두 가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목회는 영혼의 돌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처음부터 목회는 목자가 양을 치는 것 같이 영혼의 목자인 목사가 교회에서 성도들을 진리로 가르치며 돌보며 양육하는 것을 의미하여 왔다.3) 예수께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10:11)라고 하셨으며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또는 내양을 치라” (요 21:15-17)고 하셨다. 또 예수께서는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눅 15:4) 하시면서 목회란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의 마음과 같이 영혼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선교적 사역임을 표현하고 있다. 목회라 함은 광의로는 설교, 성례집행, 교회의 관리 및 운영, 평신도 지도훈련 및 교육을 뜻하고 있으며, 좁은 의미로는 설교와 성례 집행을 제외한 경우를 말하고 있다.4) 스위스의 투르나이젠은 말하기를 “목회란 개개인의 신자를 설교와 성례전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들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즉 목회의 중심은 설교와 성례전이며 훈련으로서 궁극적인 의미는 선교를 위한 제자화에 기초를 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렇게 목회라고 말할 때에 일반적으로 목양적인 차원에서만 그 의미를 말하고 있으나 목회에서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선교적인 중요한 의미를 도외시해서는 안된다. 목회가 교회를 떠나서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목회의 의미도 교회의 본질적인 입장에서 그 의미를 이해하여야 한다고 보며 목양의 궁극적인 목적도 결국은 선교에 있다고 본다. 최근 미국에서는 목회라는 용어보다는 교역이라는 말을 더 즐겨 사용하고 있다. 이 교역이라는 말은 목회라는 개념보다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말은 목회와 선교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의미로 쓰여 지고 있다. 이러한 의식으로 목회란 교회 자체를 어떻게 하면 잘 돌보고 잘 꾸려가느냐하는 관심보다는 어떻게 교회가 세상에서 역사에 참여하면서 선교적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즉, 교역의 의미에서 목회는 목회자 중심이기보다는 평신도의 대거 참여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즉, 평신도들을 훈련시켜서 교회의 선교적 사명에 동참케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5)

 

 

곽선희 목사는 목회의 본질적인 의미는 성경 전체를 통하여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사역 안에서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의 네 가지 의미로 말할 수 있다.6)

 

 

첫째로 목회는 선교적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본질상 교회는 선교적인 목적으로 세워졌다. 사람들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회개하고 그 복음을 믿고 그리스도를 그들의 구주로 고백하게 하며, 이로서 그를 섬기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교회의 목적이다. 목회의 본질은 복음의 선포이며 선교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다. 교회의 모든 조직과 기구들은 궁극적으로 선교를 가능케 하고 효율적으로 시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의 가장 근본적인 의미는 땅끝까지 증인이 되는 선교적 사명에 있다고 본다.

 

 

둘째로 목회는 성례적인 의미에서 생각하여야 한다.

 

 

제사는 하나님과 인간의 만남을 뜻하는 것임으로 하나님과 죄인의 화해를 실현시키는데 있어서 제사장은 이를 중재하고 가능케 하며 구현시키는 사역을 담당 하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가 하는 일 중에 중요한 일은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성도들에게 나누어주는 성례의 사역이며 이것이 바로 목회인 것이다.

 

 

셋째, 목회는 교육적인 의미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목회이다. 알도록 하고 듣도록 하며 감당하도록 하고 실천하게 하는 것이 목회이다. 구원받은 백성이 복음을 바로 소화시키며 그들의 문화권 안에서 복음을 본질의 변화 없이 바로 받아 드리고 해석하며 그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새로이 대두되는 문제들이 그때그때 성서적으로 소화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의 문제를 그들이 스스로 해석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런 뜻에서 목회는 가르치고 또 그리스도의 제자를 삼는 일이다.

 

 

넷째, 목회는 봉사적인 뜻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목회는 예수께서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려고 왔다고 하셨듯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사람을 섬기며 종이 되는 것이 목회이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서로 발을 씻기라” 하신 말씀대로 씻기는 일 자체가 목회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목회자는 본질에 있어서 종이다. 뜻으로는 그리스도의 종이고 구체적으로는 사람의 종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목회자를 통하여 나타나고 사람들은 그 목회자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그 몸으로 피부로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회를 봉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봉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깊은 사랑이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목회이다. 결국 목회는 목양적인 의미와 선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그 궁극적인 목적은 몸된 교회를 튼튼히 세우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데 있다고 본다.

 

 

Ⅲ. 선교 지향적인 목회

 

 

A. 신약성경을 통해 본 선교 지향적인 교회의 특징

 

 

1. 예루살렘 교회

 

 

예루살렘은 온 세계 기독교의 모든 교회들의 어머니 교회이다. 사도행전1장 8절의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은 복음의 시발지인 예루살렘을 통하여 복음이 어떻게 전 세계로 전파되어야 함을 함축한 것이다. 또한 이 말씀은 사도행전을 구성하고 있는 핵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는 오순절의 사건에서 시작이 되는데, 성령의 역사는 이 교회의 탄생을 가능케 했다. 성령이 임함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로 행동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뜻대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성령 체험을 하게 된 초대 교인들은 함께 모였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은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 2:44~47)”고 했다.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에 의해 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고 성도들이 서로 재산을 팔아 나누어 쓰며 상부상조하는 교회였다. 또한 이 교회는 선교사업과 더불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구제활동을 행하여 일반인들의 칭송을 받는 교회였다. 이와 같은 예루살렘 교회의 활동에서 우리는 성장하는 교회 선교지향적인 교회의 모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 안디옥 교회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전파된 복음은 이제 안디옥을 중심으로 하여 복음의 세계적 확장을 꾀하게 된다. 사도행전 11장 19절의 말씀과 13장 1절-3절의 말씀에서 우리는 세계선교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전형적인 교회의 모델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안디옥은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의 출발지다. 이 사실은 안디옥 교회가 아시아와 유럽의 선교의 출발지이며, 이것은 결국 세계 선교의 출발지가 되게 한 것이다. 안디옥 교회가 이방 선교의 중심지가 되고 세계선교의 기지가 될 수 있었던 요인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첫째, 안디옥 교회는 전도의 열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의 회생과 봉사가 있었다. 스데반의 순교로 기독교인들에게 가해진 박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베니게와 키프로스와 안디옥까지 가서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이들 가운데 키프로스 사람과 구레네 사람들이 안디옥에 가서 그리스 사람에게도 말을 붙여서 복음을 전했다. 이들의 복음전도의 열심은 결국 안디옥 교회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복음을 전한 때는 평안한 때가 아니라 환난과 박해를 받는 때였다. 설립자들의 이런 희생과 봉사정신으로 안디옥 교회의 성도들은 복음 전파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자원하여 희생적인 신앙으로 전도를 했고, 교회를 개척했고 교회를 섬겼다. 안디옥 교회는 난민들이 주축이 되어 세운 개척 교회로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았지만 선교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치르고 감수하였다.

 

 

둘째, 온전히 성령의 인도를 받는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금식하기까지 선교를 위해 성령의 인도를 받고자 하는 준비와 결의한 교회였다. 선교사 파송을 위해서도 그들은 특별한 예배를 드리고 금식을 하였다.

 

 

셋째, 구제활동에 헌신적인 교회였다. 그들은 모든 기독교인들은 머리인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성서적인 교회관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교회 한 부분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자신들의 고통으로 여긴 것은 당연한 것이었으며 이것을 모른 체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유대에 사는 신도들이 기근으로 위기에 처하여 있을 때 이들은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각각 자기 형편을 따라 몫을 정하여 구제 헌금을 드리고 이것을 바나바와 바울 편에 장로들에게 보낸 것이다. 안디옥 교회는 이 구제를 기독인의 의무 가운데 하나라는 차원보다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복스러운 특권이라 생각 한 것이다.

 

 

넷째, 불신자들에게 인정받는 교회였다. 안디옥에서 최초로 안디옥 교인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말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 안디옥에 살던 사람들이 안디옥 교회의 신자들을 비방하거나 조롱할 때 쓰던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한 단어였다. 이런 호칭 사용에서 안디옥 교인들은 안디옥의 타락한 문화를 배척하고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거룩한 삶과 믿음을 온전히 지켰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통하여 불신자들에게 인정을 받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다섯째, 선교사로서 자질을 가진 사람들을 선택하여 파송한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하였는데 이것은 그들 스스로의 결정이기보다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한 결과이다. 선교사는 사역지에서 예상 할 수 없는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어려움을 견디고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선교사의 자질을 가진 자라야 할 것이다. 이 자질을 가장 정확하게 판단하실 분은 인간이 아니라 성령이시다.

 

 

3. 빌립보 교회

 

 

빌립보 교회는 몇 가지 점에서 선교하는 교회로서 모범을 보이고 있다.

 

 

첫째, 빌립보 교회는 복음전파를 위한 열심에 변함이 없는 교회였다. 빌립보서 1장 5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은 처음 믿을 때부터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언급하였다. 빌립보 교회는 갈라디아 교회나 고린도 교회처럼 내부적인 문제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았다. 바울이 육에 갇혀 있어서 복음전파가 실제적으로 불가능할 때에도 바울을 대신하여 복음전파에 최선을 다했다.

 

 

둘째, 복음전파를 위해 재정적으로 최대한의 후원을 한 교회였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냈었도다” (빌 4:16)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의 선교사업을 위해 재정적으로 후원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할 때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을 도왔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빌립보 교회개척 직후에 세워졌다.

 

 

셋째, 구제에 앞장 선 교회였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옥에 갇혀 있을 때 선물을 에바브로디도 편에 바울에게 보냈다. 그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헌금에도 적극적이었다. 이것은 고린도후서 8장 1절-2절이 나타내 주고 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인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B. 선교 지향적인 목회

 

 

1. 선교지향적 목회의 당위성

 

 

1) 선교의 의무는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근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운 윌리암 캐리는 그의 저서 『이교도 회심을 위해 수단을 사용하는 그리스도인의 책임에 관한 조사』에서, 마태복음 28장 16절-20절에 나타난 선교의 대 사명을 종교 개혁자들은 사도들에게만 국한시키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하고 선교의 의무는 모든 시대, 모든 교회의 사명임을 강조한다.7) 선교는 지상 교회의 임무 중 하나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임무이며, 교회 존립자체와 직결된다. 선교와 교회의 관계는 전부 전무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선교는 오고 오는 세대에서 크리스천의 유일한 임무이며 인류의 가장 깊은 요구인 것이다.

 

 

2) 선교는 교회의 본질이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 공동체였다. 선교와 교회는 일치되어 있었다. 선교는 교회의 사역이었고, 교회는 선교적인 교회였다. 만일 교회가 처음부터 선교적인 공동체가 아니었더라면 기독교는 현재까지 생존해 오지 못했을 것이고, 당시 고대 종교의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선교의 주제는 하나님이지만, 선교는 사람들에 의해 수행되기에 교회 공동체를 선교에 사용하시는 것이다.

 

 

3) 선교는 교회에 생명력을 가져다 준다.

 

 

1세기에 팔레스틴에는 크리스챤 공동체와 매우 유사한 집단이 존재했었다. 이들은 엣세네파라고 했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교회와 비슷한 점들이 있었으나 1세기를 넘기지 못하고 멸절하였다. 이들은 크리스찬 공동체와 같이 유대교를 모태로 발생했으며 율법을 중요시했고 메시아 사상과 하나님 나라의 이념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다. 종말론적이며 공동체를 형성한 점에서도 교회와 흡사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1세기 말까지도 지탱하지 못하고 소멸된 반면 크리스챤 공동체는 주후 60년경에 이를 때부터 이미 여러 지역에 강력하게 확산되어 생동력을 가지고 번성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한 집단은 사라지고 크리스챤 공동체는 우후죽순처럼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쿰란 공동체가 비 선교적 공동체였던 것에 비하여 크리스챤 공동체는 선교적인 공동체였던 까닭이다.8) 여기에 교회가 선교 중심적이어야 하며 목회가 선교 지향적이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4) 선교지향적 목회는 다가오는 시대를 대처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조지 바나는 다가오는 21세기는 무엇보다도 경쟁적인 환경 속에 있다는 사실을 교회가 인식하지 못하게 되면 교회가 세상에서 경쟁력을 상실한 것임을 경고하였다.9) 다가오는 21세기는 다음과 같은 시대가 될 것임을 수많은 미래 학자들에 의해 예견되고 있다.

 

 

a. 국제화

 

 

이제는 세계가 하나의 “지구 공동체”가 되어 가고 있다. 지역교회가 이제는 세계 교회로 바뀌고 있으며 그것은 서양의 백인 중심에서 유색인종이 다수를 차지하는 교회 형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시골에 가보면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과 혼혈 아이들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다.

 

 

b. 다양화

 

 

부분적으로 역사성 있는 전통이 보존되고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 보다 다양화될 것이다. 이것은 곧 단일성과 유일성이 갖는 의미를 상실하기 쉽다는 것이다. 종교와 예술, 가족 관계 및 오락과 음식에 이르기까지 선택의 폭이 크게 넓어지는 것이다.

 

 

c. 세속화

 

 

퇴폐 문화의 확장, 마약 중독과 AIDS의 확산, 경제 우월적 사고 방식, 정신적 황폐화 및 그 속에서 거룩함과 경건의 능력을 상실해 가는 기성 교회들의 나약함과 부폐를 보게 될 것이다.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딤후4장 3-4)하신 말씀대로 종교까지 썩게 될 것으로 보인다.

 

 

d. 타종교의 확장

 

 

무엇보다도, 이슬람교는 매년 약 3% 수준의 성장률을 보이면서 지역에 따라 급성장을 나타내고 있는데, 그들을 위해 사역하는 선교사는 전 세계에 2,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단 사상이 교회와 사회 전반에 깊이 침투되면서 종교적 상대주의가 더욱 넓게 퍼질 것이다. 그로 인하여 신앙 고백에 혼란이 오고, 나아가서는 배교가 심각해 질 것으로 본다.

 

 

박광철은 한국교회가 직면할 현실들을 6가지로 정리했다.

 

① 교회성장의 둔화 현상

 

② 교회의 세속화 현상

 

③ 교회와 사회와의 접촉

 

④ 이단종교의 발흥

 

⑤ 사역의 전문화 현상

 

⑥ 새로운 세대의 지도력 등장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 속에서 교회가 적응하고 교회가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다각적인 노력을 경주해야만 한다.

 

 

첫째로, 선교 지향적 목회가 되어야 한다. ‘세계화’라는 단어가 구호에 끝나지 않고 피부에 와 닿은 시대에 우리는 돌입했다. 세계화시대에 교회가 살아나려면 교회는 내교회 성장 위주에서 벗어나 세계를 품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만 한다.

 

 

둘째로, 평신도를 적극 활용해야한다. 교회 교인 가운데 98%는 평신도이다. 평신도는 숫자적인 면에서나 사회적인 위치로 보아서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의 활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요한 웨슬레 같이 평신도를 훈련시켜 복음을 전달토록 하는 것이 다양화된 사회에 적응하는 바람직한 길이다.

 

 

셋째로, 가정을 중시하는 목회가 되어야 한다. 요즘 교계 일각에서 가정 사역의 중요성의 환기와 더불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사료된다. 우리 사회는 이혼율의 급증으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예견되고 있는데 이는 무엇보다도 교회가 가정에 중요점을 두고 목회해야 함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넷째로, 지역 사회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한다. 지역사회와 유리되어서는 결코 교회는 사회적 영향력을 기대할 수 없다. 오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서 필요를 찾아 충족시켜 주는 형태의 목회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교회는 본질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시대에 적응하려다 본질을 상실하면 교회는 생명을 잃고 말게 된다. 다양한 각도로 사회에 접촉해야 하지만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를 생명으로 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선교적 목회가 견지되어야만 할 것이다. 교회의 기능은 크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즉 하나님께 예배하는 기능(예배 공동체), 신앙을 교육하는 기능(교육 공동체), 믿음 안에서 사귀는 기능(교제 공동체), 서로 섬기는(봉사 공동체)및 복음을 전파하는 기능(증거 공동체)등이다. 이 모든 것이 중요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나 그 가운데서도 복음을 전하는 기능이야 말로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2. 선교 지향적 목회의 첫걸음

 

 

선교지형적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목회자의 의식에 변화가 와야만 한다. 선교하는 교회는 어느 나라이든지 선교의 비전을 가진 담임 목회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지도자가 방향 설정을 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그를 따르게 되어 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르게 마련이다. 선교에 있어서도 교인들이 담임목사보다 앞설 수는 없으며, 선교의 비전 없는 교인들은 담임목사의 목회 사역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시흥에 있는 S교회느 개척한지 12년이 되던해에 약 1,000여 명의 교인이 예산 중 4억원의 선교 예산을 세워 집행했다. 그 액수는 전체 예산의 57%라고 한다. 이 교회를 개척하여 현재도 시무하고 있는 (ㅅ)목사는 처음에는 교인들에게 선교를 말하기가 정말 어려웠다고 한다. 지역적으로 가난한 교인들이 대부분이어서 심방을 가면 지갑을 털어 얼마라도 도와주어야 할 형편이었던 그들에게 해외 선교를 이해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선교는 교회의 사명이요, 주님의 제일 기뻐하시는 일임을 확신하고 처음에는 예산의 10%부터 사용되어졌고 그 뒤로 교회당을 건축하면서도 선교비만은 절대로 삭감하지 않았다. 온 성도가 담임목사와 함께 세계 선교의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오늘은 민족에게 내일은 세계로”의 힘찬 구호와 함께 선교의 지경을 넓혀 가고 있다. 이 교회의 담임목사인 (ㅅ)목사는 결국 선교는 담임목사의 비전에 달려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Poul A. Beal 박사는 그의 저서 『A People for His Name』이라는 저서에서 담임목사의 선교적 역할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① 성경을 통해 선교에 관해 교인들을 가르쳐야 한다.

 

② 선교를 위해 기도의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

 

③ 교인들에게 선교 이해를 도와야 한다.

 

④ 선교 사역에 기본적인 조직을 해야 한다.

 

⑤ 선교사 선발을 도와야 한다.

 

⑥ 선교에 관해 상담자가 되어야 한다.

 

⑦ 선교 관계자를 도와야 한다.

 

 

Ⅳ. 선교 지향적인 목회 계획

 

 

A. 목회신학의 정립

 

 

힐트너에 의하면 목회신학이란 “목양의 관점에서 교회의 모든 활동과 기능을 보며, 그것을 위한 신학적 지식이나 연구” 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힐트너의 목회신학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목회신학은 목양의 관점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둘째, 목회신학은 신학의 한 분야로서 자신의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셋째, 목회신학은 논리 중심의 신학이라기보다는 활동 중심의, 또는 기능 중심의 신학이다.

 

넷재, 목회신학은 체계적이며 이 체계는 무엇보다도 목회의 관점이 가진 내용인 것이다.

 

 

목회신학은 목회자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신자의 생활에 실제로 적용하여 바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학문이다. 목회자의 목회신학은 목회에 있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목회신학은 목회자로 하여금 자기의 동질성을 지니게 하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며 또한 목회자의 생각을 분명히 하도록 한다. 이러한 명확한 목회신학은 목회의 방향을 확실하게 한다. 교회 지도자의 목회신학은 목회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프로그램의 방향과 성격을 결정 짓는다. 또한 이 목회신학은 교인들의 신앙적 유형을 결정지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과 인간관계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의 말과 행동은 교인들의 전반적인 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더 나아가 담임목사의 세계관과 가치관이 교회 내 뿐만 아니라 교회밖의 범주에도 영향력을 미치게 한다.

 

 

B. 선교에 대한 목회 계획

 

 

해리 보어는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어떤 공동체이기를 원하시는가’라고 질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교회가 선교를 본질로 하는 공체임을 밝히고 있다.

 

 

“지상 명령의 능력과 의미는 전적으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으로 말미암는다. 그것은 서로 관계가 깊다는 뜻이다...그러므로 복음 전파는 신약의 교회가 해야할 많은 활동 중의 하나가 아니라 교회 기본적이고 본질적인 활동이다. 이런 이유에서 말씀 전하는 사역이 교회의 중심 사역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1. 선교를 위한 교회의 체질 개선

 

 

군인은 군복을 입어야 하고 근로자는 작업복을 착용해야 하긋이 교회도 선교사역을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선교 구조의 옷을 입어야만 한다. 이를 위하여 제도적인 구조 갱신의 일환으로 선교위원회를 두고 이 선교위원회가 제정 지출을 포함한 모든 권한을 갖고서 전문성과 신성성을 갖고서 운영한다. 선교 위원회의 임무와 관련하여 선교위원회가 갖추어야 할 선교 정책과 규정은 개 교회의 특수한 상황에 맞게 문서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본다. 대부분의 경우는 전례에 따르거나 특수한 사항에 대해서는 몇 몇 지도자들의 결정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선교 위원들은 2-3년만 지나면 교체가 되고, 또 담임목사도 바뀔 수 있다는 점, 교회의 선교정책이 일관성 있게 추진되고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선교정책은 반드시 문서화시킬 필요가 있다. 선교정책에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것들로서는 선교 목적에 대한 진술, 선교위원회 조직, 선교의 전략, 선교 교육과 지원책, 선교사의 자격의 기준, 선교사의 지원 원리, 선교사의 보고조항, 사역에 대한 평가등을 꼽을 수 있다.

 

 

2. 예배를 통한 선교 정신의 고취

 

 

개 교회를 선교적 공동체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날을 정해 선교 헌신예배를 드리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따라서 가장 많은 교인이 모이는 주일 낮 예배를 비롯해서 모든 공식적인 예배를 통해 선교 정책을 고취시켜 나가야 한다. 그 방법은 강력한 선교 메시지를 선포하거나 가장 최근에 일어난 선교사의 기도제목들을 알려주고 함께 기도하는 방법, 기도편지등을 복사해서 주보에 넣어 주거나 주보의 한 면을 늘 선교 관련 기도 요청의 내용을 싣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특히, 수요 기도회 시간을 일상적인 예배의 틀을 벗어버리고 선교에 관련된 기도 요청을 소개해서 모든 예배 첨석자들이 자연스럽게 기도하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유익할 것이다. 주일 저녁 예배 때는 기회가 닿는 대로 귀국 중인 선교사들이나 선교회에서 일하는 사역자들을 초청해서 메시지와 슬라이드 등을 통해 도전 받고, 특정한 선교사나 선교 지역을 놓고 얼마 동안 집중적인 기도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더욱 더 효과적인 것은 1년이나 2년마다 정규적으로 전교인 선교 수련회를 개최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를 위해서 적어도 6개월 전부터 준비하여 전 교회가 총력적으로 축제적 분위기 가운데서 선교 수련회를 개최하고, 이때에는 이웃 지역 교회도 함께 참여하게 하고 찬송도 선교주제에 맞추고 강사도 선교사나 선교 지도자들을 내세워 진행하도록 한다. 무엇보다도 담임목사가 선교에 대해 설교를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으로 모든 교인들에게 선교의 정신을 불어넣어 주는 길은 없다고 본다.10) 이렇게 강단에서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풍요한 성경적 주제에 충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조직적으로 가르치면 선교의 주제는 현저히 전달되리라 본다.

 

 

C.선교교육의 강화

 

 

전재옥 교수는 개 교회와 기독교 가정에서 이루어져야 할 어린이 선교 교육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선교사 교육을 선교사 훈련원에서 단 기간 받는 것만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선교사의 자질 형성과 준비는 기독교 가정과 개교회에서 유년기부터 받는 교육으로 시작된다. 부모가 가정 예배에서 드리는 기도에서 한국이 아닌 타민족을 낯선 이들을 위해 기도할 때부터, 부모가 낯설고 가난한 이들에 대해 가지는 태도에서부터 선교사 교육은 시작된다.11)

 

 

무엇보다 교회 학교 어린이들에게까지도 선교를 가르쳐야 한다. 미국 교회에서 외국으로 나간 선교사들 중의 많은 수가 12세 미만에 선교사로 헌신했다는 통계가 있다. 앞으로 20년 동안 한국 교회가 보다 많은 선교사를 보내기 원한다면 지금 주일 학교에서부터 선교 교육을 잘 시켜야 할 것이다. 이런 면에서 주일학교에서부터 선교에 대한 의식을 갖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D. 평신도들의 참여를 위한 방안 수립

 

 

선교는 외국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의 손에만 맡겨 있는 것이 아니다. “나가는 선교사”도 중요하지민 “보내는 선교사”는 더 중요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후원교회의 기도와 재정적인 지원없이 선교사가 선교 현지에서 사역한다는 것은, 격렬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최전방에 나가 있는 군인과 같아서, 만약 후방의 화력지원(기도)과 병참기지(물질)가 없는 것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이처럼 국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나가는 선교사는 아니라 할 지라도 세계선교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바로 깨달아야 한다. 그들오 역시 그들의 최고 관심사는 자기 자신이나 가족, 혹은 부모가 아니고 세계 복음화이어야 한다. 평신도들의 선교적 역할을 증대하기 위하여 평신도 자신이 직접, 간접으로 선교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교인들을 훈련하고 후원하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또한 평신도를 위한 선교 학교 운영을 성경학교와 같은 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평신도 선교사를 교회가 적극 육성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부분의 비기독교 아시아 및 중동 지역과 구 공산권을 포함한 중국에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선교사를 거부하거나 입국 비자 발급에 많은 제한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서 해외여행이 과거보다 활발해 지고 국제간의 교류가 빈번해 짐에 따라 평신도 선교사의 사역범위는 더 한층 넓어지고 있는 추세이다. 여기에는 의사, 간호사, 수의사, 영어 교사, 기계 및 석유 기술자, 광부, 농업 기술자, 스포츠인 등이 있다. 이들을 훈련시켜서 평신도 선교사로 파송할 생각을 갖고 구체화 시키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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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득용, 『 현대목회신강』(서울:총신대출판부.1979), p.17.

 

2) 정성구, 『 실천신학개론』(서울:총신대출판부.1980), p.88.

 

3) 임택진, 『 목회자가 쓴 목회학』(서울:대한예수교장로회교육부.1979), p.13.

 

4) 김병운, 『 목회학』(서울:개혁주의신행협회.1988), p.12.

 

5) 이상운, 『 목회학』(서울:한국장로교출판사.1992), p.15.

 

6) 곽선희, “목회의 본질과 실제”『 복된 말씀』1973년 5월호, pp.12.

 

7) 신동우, 『 선교학』(서울:예루살렘.1993), pp.90-91.

 

8) 서정운, 『 교회와 선교』(서울:두란노.1988), p.27.

 

9) 조지바나, 『 21세기 교회를 잡아라』탁영철 역 (서울:베다니출판사.1993), p.92.

 

10) 김병원, 『목회학』(서울:개혁주의신행협회.1984), p.274.

 

11) 전재옥, “한국교회의 선교현황과 선교 전략,”『빛과 소금』1988년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