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역사(한국)

김병연 [김립, 김삿갓]

지식창고지기 2009. 6. 7. 09:12
1807(순조 7) 경기 양주~1863(철종 14) 전라 동복(同福).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性深), 별호는 난고(蘭皐), 호는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 그의 일생은 여러 가지 기록과 증언들이 뒤섞여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6세 때에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 평안도농민전쟁 때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자, 그는 황해도 곡산에 있는 종의 집으로 피했다가 사면되어 부친에게 돌아갔다. 아버지 안근(安根)이 화병으로 죽자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廢族)의 자식으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그는〈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과시(科詩)로 향시(鄕詩)에서 장원하게 되었다. 그뒤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의 자식이라는 세상의 멸시를 참지 못해 처자식을 버려두고 집을 떠났다. 자신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면서 삿갓을 쓰고 방랑했으며, 그의 아들이 안동·평강·익산에서 3번이나 그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매번 도망했다고 한다. 57세 때 전라도 동복현의 어느 땅(지금의 전남 화순군 동복면)에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살았고, 그뒤 지리산을 두루 살펴본 뒤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죽었다고 한다.

 

  


그의 시는 몰락양반의 정서를 대변한 것으로 당시 무너져가는 신분질서를 반영하고 있다. 풍자와 해학을 담은 한시의 희작(戱作)과, 한시의 형식에 우리말의 음과 뜻을 교묘히 구사한 언문풍월이 특징이다. 구전되어오던 그의 시를 모은 〈김립시집〉이 있다. 1978년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 기슭에 그의 시비(詩碑)를 세웠고, 강원도 영월에도 전국시가비동호회에서 시비를 세웠다.

 

 

아래의 내용은 귀중문화자료 2009에서 가져 옴 

 

 

 

김삿갓 김병연시인의 묘와 시비공원

 

나는 일찌기 정비석 작 "소설 김삿갓"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에 의하면 김삿갓의 묘는 오랫동안 세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다고 했다.

확실히 기억은 못하지만 정비석선생은 "도로에서 계곡을 따라  한참 올라가니 나무가 우거진 숲 속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는 외로운 김삿갓 묘를 발견하고 인생무삼함을 새롭게 느꼈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그 책을 읽고 언젠가는 꼭 그 김삿갓 묘를 참배하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 분의 묘 앞에 앉아 연민의 정을 느끼며 막걸리라도 한 잔 따라드려야 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이 몇 번 바뀌고서야 찾아가 본 김삿갓 묘와 유적지는 정비석선생이 말한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그곳은 주위의 자연경관은 너무나도 산자수명하고 청정할 뿐만 아니라 시비공원과, 복원된 김삿갓 주거지, 김삿갓문학관 등이

있있었으며, 게다가 그 주위에 많은 볼거리들이 자리잡고 있어 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명소가 되어 있었다.

 

 

 

 

-김삿갓 묘소를 찾아가는 길-

 

영월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어렸을 때 눈물을 흘리며 보았던 영화 '단종애사'다.

'한반도 지형'을 돌아보고 내려와 단종의 묘소인 장릉과 그의 유배지였던 창령포 앞을 통과하여  오른쪽으로

서강을 끼고 달리다 보니 경관이 무척 아름다웠다. 녹음이 짙은 장엄한 산 밑에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이

어찌나 맑은지 요산요수(樂山樂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영월시를 가로질러 흘러온 서강(西江)은

청령포 앞을지나 하송리에서 동강(東江)과 만나 흐르다가 고씨동굴 앞을 통과하여

단양, 영춘 쪽으로 빠지며 남한강을 이루어 유유히 흘허가고 있었다.

 

김삿갓유적지를 입구에 이르러 보니 '김삿갓 마을'이란 커다란 표지판이 보이고

연이어 온통 김삿갓 판이 전개되었다. '김삿갓식당' '김삿갓 식당' '김삿갓 주유소' '김삿갓카페'

'김삿갓 팬션' '김삿갓 농장' 등이 줄을 이었고 김삿갓상이 도처에 서서 반겨 주었다.  

 

 

 

  

 

 

김삿갓 유적지 입구

 

김삿갓 유적지 입구로 진입하는 곳에는 너덜대는 허름한 삿갓을 상징한듯한 조형물이 서 있고

오른쪽에는 방랑시인 김삿갓 노래비, 왼쪽에는  김삿갓이 호방하게 웃는 상이 서있다.

 

 

김삿갓 조형물

 

 1999년, 영월군이 난고 김병연선생의 천재적인 문학사상과 시대정신을

후세에 오래 기리고 영월이 문향과 충절의 고장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인간문화재인 여주 목아박물관 박찬수 관장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것이다.

 

김삿갓 계곡

 

입구에서 김삿갓 묘소까지는 6km정도가 되는데 이 계곡을 김삿갓계곡이라고 부른다.

아름다운 산과 길 옆에 흐르는 맑은 물을 보노라니 여름에 피서인파가 많이 몰려들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이곳은 또 '김삿갓유원지'라고도 불리운다.

 

 

 교각에 서서 환영해 주는 김삿갓

 

김삿갓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의 교각 내 군데에 김삿갓 상을 세워 놓았다.

김삿갓은 전국에 관광명소인 영월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심어주는 특수 브랜드가 되었다.

 

 

 

 다리를 지나 옆으로 명경지수 계곡물을 바라보며 계속 전진하다 보니 이번엔 오른쪽에 많은 시비를 세워 놓은 것이 보였다.

이름하여 .시비거리'이다. 시비거리 끝 오른쪽에 '김삿갓 묘소', '김삿갓 주거지'로 진입하는 이정표가 눈에 띄었다.

이 사진은 김삿갓 묘소 앞에 조성된 시비공원이라 하기엔 다소 규모가 작은 시비동산이다.

 

 

 묘소를 향해 건너는 다리

 

시비동산 끝지점에는 왼쪽으로는 '김삿갓 주거지'로 올라가고,

오른쪽으로는 다리를 건너 '김삿갓 묘소'로 올라가는 길로 연결되어 있다.

'김삿갓주거지'쪽에서 흘러내리는 물 역시 한없이 맑고 깨끗하다.

 

 

김삿갓 묘소

 

김삿갓 묘소 앞에는 자연석 상석이 놓여져 있고, 역시 자연석에

'시선난고김병연지묘(詩仙蘭皐金炳淵之墓)라고 새긴 비석 비석이 서 있다.

사진에는 나타나 있지 않으나 그 앞 양옆의 석등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석판 모형의 자연석 두 개가 서 있다.

 

 

 시 비 동 산

 

위 사진은 김삿갓 묘소 앞에서 건너다본 시비동산이다. 여기에는 작고한 서예대가 여초 김응현 선생과, 일붕 서경보 스님이

세운 석비가 있다. 김삿갓의 시와 함께 세워 놓은 조형물이 볼거리를 더해 주고 있다.

오른쪽 으로 길을 따라 오르면 '김삿갓 주거마을'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