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오랑 세오녀
이 설화는 박인량의 '수이전'에 실려 있었던 것인데 '삼국유사'와 서거정의 '필원잡기'에 전재되어 전한다. 이 설화는 우리나라에서 문헌에 전하는 거의 유일한 천제신화, 일월신화라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태양이 광명의 신으로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전 인류의 공통성이다. 어느 민족이나 해와 달에 관한 이야기는 풍부히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구비 전승에는 이런 유의 이야기가 많이 전하고 있으나, 문헌에선 이것이 거의 유일하다. 우리 선조들이라고 광명에 대한 동경, 신앙이 없을 리 없다. 더욱 농경 생활을 주로 해 온 우리에게 태양이나 달에 대한 신앙이 없었다는 것은 생각하기조차 어렵다. 단지 뜻있는 지식인들에 의해서 이것들이 옮겨지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첫째, 아내까지 나라를 떠나니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는 것은 아내가 태양을 상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내가 짠 명주를 제사하여 광명을 되찾았다는 것도 여성이 태양신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태양신이 여성으로 상징되는 것은 세계 신화의 공통점이다.
둘째 주목할 것은, 일본 신화에서도 태양신이 여성이라는 것이다. 소위 천조대신(天照大神)이라는 여신이다. 그렇다면 이 일본의 여신은 결국 신라에서 건너간 신이 아닌가 한다. 또 일본의 천조대신에 관한 신화와 우리의 '연오랑세오녀'는 옷감을 짰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또 일본과 우리의 신화가 무속과 관련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 설화에서는 이름 속에 들어 있는 글자 '오(烏)'가 문제가 된다. '오'는 까마귀이다. 까마귀는 우리에게 흉조, 죽음, 저승사자, 간신, 나쁜 무리 등으로 그 상징성이 알려져 있고, 서양에서는 탐욕이나 죽음, 지혜, 풍요, 창조자, 길조, 흉조 등 다양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신화에서는 까마귀가 '태양'을 상징하고 있다. 이것은 고대 중국의 신화나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나타나는데 태양 속에 사는 새로 알려져 있다.
해와 달의 생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설화는 일월신화(日月神話)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더구나 일본 측의 자료를 보면 이 설화가 일본의 건국신화와 관계 있음도 알 수 있다. 또 우리 나라의 영일(迎日)이란 지명도 이 이야기와 관계 있다.
신라 8대 임금 아달라(阿達羅) 왕 때의 일이다.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바다 위에 홀연히 바위 하나가 나타나자, 연오랑은 이것을 타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는 바위를 타고 온 이 사람을 왕으로 모셨다. 한편 아내인 세오녀는 아무리 기다려도 남편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궁금하여 바다에 나가 보았다. 남편이 벗어놓은 신발을 보고 자기도 그 바위에 올라탔다. 그리하여 세오녀도 일본으로 건너가 남편을 만나 왕비가 되었다.
그런데 이 부부가 신라땅을 떠나 뒤부터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왕은 천문을 맡은 신하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 신하는 "해와 달의 정(精)이 우리 나라에 있다가 이제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이런 변괴가 생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곧 사람의 사신을 일본에 파견하였다. 연오랑 부부을 귀국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연오랑은 "우리가 여기에 온 것은 하늘의 뜻이니, 어찌 홀홀히 돌아갈 수 있겠소. 그러나 나의 아내가 짠, 가는 명주를 줄 터이니 이것을 가지고 가서 하늘에 제사하면 해와 달이 다시 빛을 발할 것이요." 라고 말하며 그 비단을 주었다. 사신이 그 비단을 가지고 와서 하늘에 제사했더니 과연 해와 달이 옛날같이 빛났다고 한다.
그래서 그 명주를 국보로 모시고,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했고, 제사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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