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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ica BLOG-최초의 기업 군대 - 영국 동인도 회사군(軍)

지식창고지기 2009. 7. 27. 08:57

사실 제목은 낚시에 가깝습니다.  동인도 회사 군대가 최초의 기업 소속 군대는 아닐 겁니다.  중세 한자 동맹이나, 이탈리아 자유 도시 소속의 군대도 어떻게 생각하면 기업 소속 군대니까요.  뭐 그때는 사실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좀 모호했으니까, 당연히 군대라는 개념도 그냥 무장 세력과 구별이 애매했겠지요.

 

 

(이것이 동인도 회사 문장)


아시다시피,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는 네덜란드 것도 있었고, 영국 것도 있었습니다만, 여기서는 영국 것을 이야기합니다.  영국의 동인도 회사 (East India Company, 이하 EIC)는 1600년에 결성된, 아주 유서깊은 조직입니다.  국유화된 것이 1874년이고, 해산된 것이 1876년이니까 장장 270여년간 인도의 자원을 쪽쪽 빨아먹은 셈이지요.  당시 인도는 대영제국에 있어서, 사실 영국 본토보다도 더 짭짤한 영토였으며, '왕관의 보석'이라고 불리웠습니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매야 보배라고, 영국도 인도라는 보석을 꿰기 위해서는 동인도 회사라는 무자비할 정도로 효율적인 착취 기관이 필요했었지요.  이 기간 중 인도에서 빨아 먹은 자본으로 대영제국의 기초가 마련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제국주의의 도구로서의 동인도 회사의 수탈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 독특한 회사 성격에 따른 특이한 조직, 즉 동인도 회사의 군대에 대해서입니다.

 

동인도 회사는 영국의 내노라하는 귀족 및 부르조아들이 '한몫 벌어보자'는 모토 하에, 인도로 가는 배에 투자를 한 것에서 시작합니다. 당시 대양 항해에 들어가는 비용은, 요즘으로 따지자면 우주 왕복선 쏘아올리는 것에 비할 만큼 엄청난 금액이었으므로, 사실상 국왕 외에는 인도행 배를 띄우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보내는 배가 값진 육두구 열매를 싣고 돌아오기만 한다면야 영지를 팔아서라도 배를 띄우는 것이 좋겠지만, 문제는 워낙 당시의 항해 기술이 낙후해서, 투자한 돈을 건질지 여부가 매우 불투명했습니다.  이에 따라, 위험을 분산하기 위해서, 여러 자본가들이 돈을 모아서 주식회사를 만들고, 또 보험이라는 것도 만든 것입니다.  왜 아직도 보험하면 영국인지, 그 유래를 짐작하시겠지요 ?

 

 

(동인도 회사 소속의 항구)

 

아뭏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와의 무역은 너무나도 위험성이 많은 것이라서, 경쟁적으로 여러 회사가 달려들면 죽도밥도안된다 라는 주장을 일부 대상인들이 제기했습니다.  이 주장이 먹혀들어서 (또는 동인도 회사의 대주주였던 당시 권력층과 짜고 치기가 성공해서) 영국 정부는 동인도 회사에게 독점 라이센스를 주게 됩니다.  당시 인도는 여러개의 소왕국으로 나뉘어 치고박고 싸우는 중이었으므로, 치안도 몹시 안좋았고, 또 제국주의의 본질상, 여차하면 주판 걷어치우고 총을 꺼내드는 것이 일상다반사이다보니, 영국 정부는 동인도 회사에게, 경찰권 및 군대 조직권까지 부여합니다.  제가 잘 기억이 안납니다만, 사법권도 주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해서, 당시 영국령 인도에는 두가지 영국군, 즉, 국왕의 군대(King's army)와 회사의 군대(Company army)가 공존하게 되었습니다.

 

 

(동인도 회사 군의 모습)

 

그럼 누가 회사의 군대를 구성했을까요 ?  여기서 나오는 것이 유명한 세포이들입니다.  세포이는 영국 정부를 위한 용병이 아니고, 동인도 회사를 위한 용병이었던 것입니다. 그럼 누가 이 세포이들을 지휘했을까요 ?  당연히 영국인 장교들이 지휘했습니다만, 인도인 장교들도 꽤 많았습니다.  인도인 장교는 jemadar 라고 하는 중위급 장교부터 시작해서, 딱 한단계 더, subadar라고 하는 대위급에 해당하는 계급까지만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세포이 장교들은 일평생 딱 한번만 승진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이에 비해, 영국인 장교는 대령 계급까지 있었고, 당연히(?) 같은 위관급 장교라고 해도 봉급 등에 있어서 영국인이 거의 10배 정도 우대를 받았습니다. 

 

 

(그래도 영국 정규군보다 세포이가 좋은 점.  세포이는 채찍질 형벌은 당하지 않았고, 또 반바지 착용이 허용되었습니다.)


그러면, 국왕의 군대와 회사의 군대 장교들 간의 관계는 어떠했을까요 ? 일반적으로는, 국왕의 군대 장교가 회사 군대의 장교를 깔보는 형태였습니다. 일단, 같은 계급이면, 국왕의 군대 장교가 나이가 훨씬 어렸습니다.  즉, 나이가 비슷하면, 국왕 군대의 장교가 계급이 훨씬 높았습니다. 


이는 당시 영국군의 매관매직, 즉 장교직을 돈으로 사고 팔고 하는 관습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보면 아주 말도 안되는 관습이었고, 프랑스군 같은 경우에는 이런 관습이 아예 없었습니다만, 당시 영국의 계급 사회에서는 당연히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다보니, 국왕의 군대에 있는 장교는 대부분 돈푼께나 있는 집안의 차남이나 삼남 등으로 가득 채워졌고, 이들은 의무 복무 기간만 채우고나면 또 돈을 더 내고 승진을 '샀습니다'.  그에 비해, 회사 군대의 장교들은 글자 그대로 연공서열제였습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아무리 집에 돈이 많아도, 승진을 하려면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 회사 군대의 장교들은 거의 할아버지 정도가 되어서야 대령 계급에 오를 수 있었고, 30~40대의 한창 나이를 대위 정도의 계급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동인도회사의 군대가 세운 공적을 보면, 대부분이 대위급 장교가 이룬 것이 많습니다.  대령 정도 올라갈 나이가 되면, 인도의 날씨와 그리고 음주로 인해, 거의 폐인이 되는 것이 보통이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젊은 시절 웰링턴 공작이 인도에서 마라타 연합과 싸운 아사예 전투에서, 동인도 회사의 대대를 지휘했던 오록 중령은 약간 머리가 이상해진 상태에서 지휘를 했기 때문에, 많은 전사자를 냈다고 합니다.

 

 

(웰링턴 공작이 훗날 워털루 전투보다도 더 자랑스러운 전투라고 회상했다는 아사예 전투)

 

동인도 회사 군대는 순수하게 동인도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했습니다.  즉, 대영제국의 다른 수많은 전쟁들, 즉 나폴레옹 전쟁이나, 아메리카 독립전쟁 등에는 일체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1,2차 세계대전에 인도인 부대가 참전한 것은 1876년에 동인도회사가 해체된 이후입니다.) 동인도 회사 군대가 나폴레옹 전쟁 내내 프랑스 육군에게 발포했던 것은 딱 한번, 아프리카 동해안 마다가스카르 섬 옆에 있는 작은 프랑스령 섬, 모리셔스 제도를 침공할 때였습니다.  당시 영국과 인도 사이를 왕복하던 동인도 회사 소속 상선 (소위 Indiaman) 들이 모리셔스 섬에 본거지를 둔 프랑스 소함대에게 종종 나포당하자, 영국 해군이 그 섬을 공략할 계획을 세우는데, 이 일에는 동인도 회사 군대가 동원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Patrick O'Brian 작 'The Mauritius Command' 편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동인도 회사가 인도 내에서 자기 마음대로 전쟁을 수행했던 것은 아니고, 항상 영국 정규군 장군의 지휘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영국군이 인도 내에서 수행했던 많은 침공 작전은 대부분 영국군 장군의 통합 지휘 하에, 병력의 대다수는 동인도 회사의 세포이로 채워지고, 일부 영국 육군 정규군이 참전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런 작전에서 나오는 사상자의 절반 이상은 항상 정규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영국 장군들은 세포이들을 믿지 않고, 중요한 격전지에는 항상 영국군 정규군을 투입했던 것 같습니다.

 

동인도회사 군대가 국왕의 군대에 비해, 적어도 비용면에서는 더 효율적이었던 것은 확실합니다.  그것은 Bernard Cornwell 작 'Sharpe's Fortress' 편에 나오는 다음 대화를 보면 이해를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 대화는 영국군 정규군인 샤프 소위와 동인도 회사군의 공병 장교들인 피크니 대위 및 시몬스 소령의 대화입니다.  피크니나 시몬스는 자신들의 기술로도 충분히 포격 진지를 구축할 수 있는데 자기들이 꼭 정규군 공병 장교의 지휘 하에서 일해야 하는 것에 불만이 많습니다.

 

Sharpe's Fortress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02년 인도 ) ---------------------------------------

 

"살아있는 공병 장교가 아직 남아있다면요." 샤프가 말했다. 이번 작전은 공병 장교들에게 매우 치명적인 결과를 낳았다. 두명의 공병 장교가 아사예 전투 이후, 노획한 적의 대포를 폭파하는 과정에서 사고로 죽었고, 세명이 열병으로 병사했고, 이제 엘리엇 소령이 적의 라이플 소총에 저격당해 죽은 것이다.

 

"한명 정도야 찾아낼 걸 ?" 피크니 대위가 툴툴거렸다.

 

"국왕의 군대에 필요없는 것이 있다면, 꼭 그런 것들은 아주 넘쳐나더라고."

 

"회사 군대에서는 더 괜찮은가 보죠 ?" 샤프가 물었다.

 

"그럼." 시몬스 소령이 대답했다.

 

"국왕군 소속인 자네보다, 우리는 더 엄격한 주인을 모시고 있거든, 샤프. 그건 바로 회계 장부라네. 자넨 승리를 위해 싸우지만, 우리는 이익을 위해 싸우는거지. 리든홀 가(동인도회사 본사가 있는 거리: 역주)에서는 청색 군복(영국군 공병 장교의 군복 색깔)을 입은 멋진 엔지니어는 고용 안하거든. 우리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반값에 고용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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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스 소령이 언급한 리든홀 가 동인도 회사 본사)

 

당시 영국 전체 정규군보다 동인도 회사 군대 소속 병력이 훨씬 더 많았던 것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인도는 사실상 하나의 대륙에 가까운데, 그런 넓은 땅을 착취하려면 당연히 그래야 했겠지요. 동인도 회사의 병력 규모와 그 역량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1799년, 주로 인도 남부에 본거지를 두고 있던 영국은 점차 인도 중부를 향해 마수를 뻗칩니다.  당시 인도 중부의 실력자인 마이소르 소왕국의 군주인 티푸 술탄이 공격 목표가 되었습니다.  이 때도, 영국의 전형적인 전략대로, 영국은 단독으로 티푸를 공격하지 않고, 티푸와 원수 관계에 있던 니잠이라고 하는 옆 소왕국 군주의 병력과 연합해서 쳐들어 갔습니다.  이때 영국군의 주축은 당연히 동인도 회사군이었습니다. 

 

 

 

이때 영국군이 행군할 때, 평균적으로 머스켓 소총을 든 병사 1명당 5명의 '비전투 종군자'들이 따라다녔습니다.  이 '비전투 종군자'이라는 것은 camp follower라는 단어의 투박한 번역입니다 (더 나은 번역이 있다면 추천바람). 이들은 자발적으로 군부대를 따라다니며 장사도 하고 생활을 영위했습니다만, 사실 군대도 이들을 필요로 했습니다.  즉, 이들은 무기와 탄약 빼고, 군대가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것, 그러니까 식량, 군마, 군복, 술, 수송용 황소와 수레, 일꾼, 창녀 등등을 제공했습니다. 심지어는 장교 및 일부 사병을 위한 무기들도 일부 거래했습니다. 일부 사병들은 탄약이나 부싯돌 등 소모품을 팔아먹었고, 또 상인들은 이런 것들을 사다가 다른 곳에 팔거나, 검열을 앞두고 급박해진 사병들에게 비싼 값에 되팔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영국군...이라기보다는 동인도 회사 군대가 마이소르 지방을 침공할 때, 동인도 회사군은 길이 7마일, 폭 3마일의 거대한 사각형을 이루어 전진했습니다.  보병들이 측면을 이루고, 기병이 전방과 후방의 면을 구성했습니다.  그 사각형 진영 안에는 포병과 짐수레, 곡물 상인들, 하인들, '비전투 종군자'들, 그리고 군인 및 상인들의 가족들, 마부들 등등이 행군했습니다.  거기에 정말 상상할 수 없이 많은 숫자의 동물들이 함께 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도살하여 식용으로 쓸 소와 양이었고, 많은 숫자가 짐을 실을 가축이었습니다. 수송용 가축에는 코끼리, 낙타, 말도 있었습니다만 대부분은 거세한 황소였습니다. 이 황소들은 등에 짐을 싣는 일보다는 주로 수레를 끄는데 사용되었는데, 이 짐승들의 소유권은 동인도 회사가 아니고 주변의 인도인 상인들로부터 그 소몰이꾼과 함께 고용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동인도회사는 정말 거대하고도 (당시 수준에 비하면) 매우 효율적인 조직으로서, 요즘 유행하는 아웃소싱(outsourcing)을 일찍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지요.  즉, 핵심 부서 외에는, 모조리 외주로 돌려서 비용을 절감했던 것입니다.

 

위에서 말한, 마이소르 지방을 침공하는 동인도 회사군이 고용한 짐수레용 황소의 숫자는 무려 6만 마리였습니다. 여기에 곡물 상인이 데리고 온 황소가 추가로 2만 마리 더 있었습니다. 무려 8만 마리의 황소입니다 !!  거기에다, 위에서 말한, 니잠이라는 인도 소왕국 군주의 군대가 데리고 온 황소가 3만6천마리나 되었습니다.  군인은 젖혀두고서라도, 일단 황소의 숫자만 12만 마리라니 믿어지십니까 ? 이 거대한 집단이 움직이면 메마른 인도의 허허벌판은 그야말로 황색 먼지가 몇 마일에 걸쳐 피어올랐다고 합니다.

 

결국 이 미소르 침공군이 마이소르 지방의 수도인 세링가파탐에 도착했을 때, 동인도 회사 소속 군인의 숫자는 5만 명이었던 것에 비해, 비전투 종군자는 12만 명, 그리고 황소의 수도 12만 마리에 달했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그 이외의 하인들이나 가족들, 장교들의 하인들 숫자는 포함되지 않은 숫자입니다.


요즘 상식으로는, 일반 사기업이 이렇게 거대한 군대를 보유하고, 필요할 경우 전쟁에도 참전한다는 것이 이해가 안가겠지만, 어차피 나폴레옹 등장 이전에는, 대부분의 전쟁은 용병을 고용하고, 이런저런 귀족들의 사병들을 동원해서 치루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요즘에 다시 군대가 점점 민간 회사의 통제 속으로 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Corporate warriors'라는 책을 읽어보니, 현재 미해군의 잠수함을 운용하려면 GE의 기술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들었습니다.  또, B2 스텔스 폭격기 정비팀의 상당수가 민간인 기술자라고 들었습니다.  앙골라 내전에서는 남아프리카의 어떤 보안회사 소속의 군대가 앙골라 반군을 물리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더군요.  헬리콥터와 장갑차까지 갖춘 중무장 병력을 동원해서요.  또 현재 이라크에는 미군 정규군 못지 않게, 블랙 워터라고 하는 민간 군사 기업의 용병들이 우글거리고 있다고 하지요 ?


이런 이야기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대한민국 경찰이 하던 일을 에스원 같은 사립 경찰조직이 맡게 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습니까 ?  하긴, 요즘처럼 경찰이 불법 시위 진압한답시고 온갖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것을 보면, 차라리 경찰도 모조리 민영화해서 좀더 법 앞에 취약한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불법 시위 진압한다고 불법 행위를 하면, 그건 공권력이 아닙니다.  범법자 집단일 뿐이고, 사법 대상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