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습니다. 당시 신문에 가장 많이 나오던 외국인은 리비아의 권력자 카다피였습니다. 미국하고 계속 으르렁거리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1986년인가에 영국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F-111 장거리 전투 폭격기가 야간에 리비아의 여러 요충지를 폭격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때 카다피네 집도 폭격을 당했는데, 의도했던 카다피는 잡지 못하고, 카다피의 어린 양녀가 그만 숨을 거둡니다.
이 사건(?) 내지는 작전이 끝난 뒤 신문에 그 작전에 참여했던 조종사들의 증언(?) 내지는 기고가 실렸습니다. 아주 흥미롭게 읽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많은 대공 미사일이 7월 4일 미국 독립 기념일 때의 불꽃놀이처럼 날아올라 왔기 때문에 무척 겁이 났었더랍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리비아의 대공 미사일 부대에서는 미사일을 제대로 조작할 줄을 몰랐는지, 거의 lock-on도 없이 그냥 하늘로 미사일을 쏘아댔기 때문에 실제로 위협이 되었던 것은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대공 미사일 포대에서는 그냥 수직으로 미사일을 쏘아올렸다가, 그 미사일의 연료가 다 되어 다시 수직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그 포대에 사상자가 생겼다는 이야기도 씌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리비아 애들은 다 바보고, 미군이야 말로 정말 킹왕짱 세다고 생각했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거짓말 내지는 의도적인 과장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미군은 F-111을 단독으로 집어넣은 것이 아니었고, 전자전 항공기와 각종 대공망 제압용 공격기들을 투입하여 리비아의 효율적인 대응을 사전에 차단했었습니다. 실제 폭격에는 최종적으로 13대의 F-111이 참여했는데, 1대가 격추되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당시 미 국방부 발표로는 엔진 고장으로 인한 추락이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대공 미사일에 격추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니다. 결국 리비아 대공 미사일 부대 아저씨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아무래도 리비아는 대공 미사일에 들인 돈에 비해서는 허무하게 본진을 털린 셈이지요. 결국 미공군기가 한대 격추된 것을 보면 미공군의 전자전이 천하무적은 아니었던 모양인데, 리비아 대공 미사일 부대 아저씨들의 훈련 상태가 좀 더 잘 좋았더라면 미공군의 피해는 더 컸을 겁니다.
보통 사람들은 국방력을 병력이나 장비의 숫자로 따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전투력이라는 것은 그렇게 서류상의 숫자로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서류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 즉 병사들의 훈련 상태나 사기같은 것이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병사들을 훈련시키는 것은 악과 깡만 있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훈련에도, 무기 구입과 마찬가지로 돈이 들어갑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들어갑니다. "Bourne identifty"라는 명작 첩보 영화에서도, 그런 장면이 나오지요. 기억 상실증에 걸린 CIA 소속 암살자인 제이슨 본이 옛 상관을 만나서 자기가 대체 누구냐고 묻자, 옛 상관이 화를 벌컥 내며 말합니다. "넌 미합중국 소속 무기다, 그것도 몇천만 달러짜리 무기다" 라고요. (정확한 액수는 기억이 안나는데, 확실히 육백만불의 사나이보다 제이슨 본의 훈련에 들어간 돈이 더 많았습니다.)
일반 병사에게 수류탄 훈련을 시키는 데는 아마 수류탄 1개와 물 웅덩이, 그리고 한 2시간 정도만 있으면 충분할 겁니다. 그러나 스팅어 미사일 발사 훈련을 시키려면, 최초로 발사 방아쇠를 당길 때까지 무려 106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제가 알기로는 그 돈많은 미군조차도, 모든 병사들이 다 스팅어 미사일을 실제로 쏘아보지는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뭐 사실 미사일 재고가 충분하다고 해도, 날아다니는 실제 비행기에다가 쏠 수는 없겠지요.
제 다른 글, 머스켓 소총을 둘러싼 이야기 ( http://blog.daum.net/nasica/4768750 )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나폴레옹 전쟁 즈음에, 유럽의 군대 중에서 실탄으로 사격 연습을 한 군대는 영국군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영국군은 당시 유럽에서 가장 빠른 머스켓 사격 속도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프랑스군은, 화약과 탄약을 아끼는 것은 고사하고, 부싯돌조차 절약하기 위해 부싯돌 대신 나무 조각을 끼워놓고 사격 훈련을 했습니다.
영국 해군도 훈련을 무척 중요시하기는 했습니다만, 머스켓 탄약 몇발만 있으면 되는 육군과는 달리, 해군은 18 파운드나 24 파운드 짜리 대포를 쏘아야 했으므로, 역시 훈련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었습니다. 아무리 대영제국이 돈이 많다고 해도, 그 많은 비용을 다 댈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영국 해군성에서는 포격 훈련에 대해 엄격한 제한 규정을 만들어 두고 있었습니다. 즉, 군함이 출항을 한 이후, 첫 6개월 동안은 전체 포의 1/3에 해당하는 개수의 포탄만을 연습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다시 그 절반인 전체 포의 1/6에 해당하는 포탄만을 사용하도록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계산해보면, 38문의 대포를 장착한 프리깃 함의 경우, 첫 6개월 동안 총 13발의 포탄만 쏘아볼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터무니없이 적은 숫자였습니다. 특히 승선한 수병들의 질을 생각해보면 특히 그랬습니다. 당시 영국 해군의 생활은 너무나도 열악했기 때문에 해군에 자원 입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태반의 수병들은 그냥 길거리에서 끌고 온, 즉 press 된 어중이 떠중이였기 때문에, 뭐가 돛이고 뭐가 닻인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꼭 미리 실탄을 이용한 사격 훈련을 시켜 놓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포격 대상으로는 주로 염장 쇠고기를 담았던 빈 나무통을 띄워 놓고 과녁으로 삼았습니다.
규정은 그렇고, 훈련은 필요하고... 실제로 함장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 Money talks 라고, 돈의 힘은 여기서도 발휘되었습니다. 즉, 돈이 많은 함장의 경우는 자기 돈으로 포탄과 화약을 사서, 그걸로 수병들을 훈련시켰습니다. 나랏일 하는 데 사비를 들이는 것이 요즘 기준으로는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아직도 군대는 귀족의 전유물이라는 사고 방식이 통하던 당시로서는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나폴레옹에 맞서 스페인에서 싸웠던 영국군 중, Sir Thomas Graham 이라는 부유한 스코틀랜드인은, 순수하게 자기 돈으로 연대를 하나 새로 만들어서 군에 장군으로 입대할 정도였으니까요.
돈이 없는 함장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 운이 좋게 적 군함을 나포했는데, 그 안에 자기 함의 포에 맞는 구경의 포탄이 좀 있었다면 그걸로 포술 훈련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만, 대개는 그냥 실탄 없이, 차가운 대포에 밀대를 넣는 시늉을 하며 대포를 밀어냈다 당겼다 하며 장전하는 훈련만 죽어라고 했다고 합니다. 유전막강, 무전허약. 돈의 힘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말 막강합니다.
그래서 결국 영국 해군의 포격 솜씨는 괜찮은 편이었을까요 ? 글쎄요. 영국은 육군이나 해군이나, 빠른 사격/포격 속도로 유명했습니다만, 명중률은 언제나 바닥을 기었습니다. 아마도 돈 많은 함장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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