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og·Cafe/Nasica의 뜻은 ?

Sharpe의 외국어 실력

지식창고지기 2009. 7. 30. 10:03

제가 자주 인용하는 Bernard Cornwell의 Sharpe 시리즈의 주인공인 리처드 샤프는 원래 출신 성분이 런던 최하류층입니다.  막장 인생 중에서도 막장이지요.  20세가 훨씬 넘어서까지 까막눈이기도 했습니다.  비록 계급은 중령까지 올라갔지만, 학교라고 이름 붙은 곳에는, 일생 동안 단 한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그의 외국어 실력은 어떨까요 ?

 


 

Sharpe's Devil by Bernard Cornwell (배경 1820년 세인트 헬레나 섬) ----------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 과부인 루실과 결혼하여 노르망디에서 농사를 짓던 샤프는, 칠레에서 실종된 옛 친구를 찾아 칠레로 가는 스페인 군함을 얻어탑니다.  항해 도중, 스페인 장교들은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유배 중인 나폴레옹을 방문하게 되고, 샤프와 하퍼도 이 자리에 동행합니다.)

 

시계 종이 울리자마자, 초라하게 변색된 금색 띠를 두른 프랑스 군복을 입은 두명의 장교가 당구실로 들어왔다.  한명은 프랑스어로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다른 한명은 서투른 스페인어로 통역을 해주었다.

 

...중략...

 

황제를 만날 때의 예의범절에 대해 스페인어로 통역해주던 프랑스 장교는 거드름을 피우며 샤프와 하퍼를 쳐다보았다.  "알아 들은 것이 있소 ?"  그는 서투른 영어로 말했다.

 

"우리 둘다 잘 알아들었소, 고맙소.  또 지시 사항을 기꺼이 따르겠소."  샤프는 일상 회화체의 프랑스어로 대답했다.  그 장교는 놀란 듯 하더니, 아주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샤프도 그렇지만 하퍼도 스페인어를 잘 합니다.  스페인 여자하고 결혼했거든요. 역주)

 

...중략...

 

(일행은 나폴레옹을 알현합니다.)

 

"아 ! 나도 지루함이라는 건 아주 잘 알지. 할 일이라고는 체중 불리는 것 밖에는 없으니까."  황제는 그의 배를 가볍게 두들기고는, 샤프를 쳐다보았다.  "자네는 프랑스어를 아주 잘 하는군.  영국인치고는 말이야."

 

"저는 영광스럽게도 프랑스에서 살고 있습니다, 폐하."

 

"그런가 ?" 황제는 상처를 받은 듯 했다.  그리고, 일행이 방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진정한 감정이 보나파르트의 얼굴을 스쳐갔다.  황제는 친절한 미소를 지어 그의 부러움을 억지로 감추었다.  "내게는 거부된 특권을 자네는 누리고 있군. 프랑스 어디인가 ?"

 

"노르망디입니다, 폐하."

 

"왜지 ?"

 

샤프는 약간 주저하고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Une femme. (A woman)"

 

황제는 아주 천연스럽게 웃었으므로, 마치 방 안의 긴장이 탁 풀린 듯 했다.  심지어 보나파르트의 거만한 부관조차도 웃었다.  "훌륭한 이유군."  황제는 말했다.  "아주 뛰어난 이유야 !  사실, 그럴 만한 오직 하나 뿐인 이유지. 남자는 여자를 조종하지는 못하니까 말이야.  귀하의 이름은 어떻게 되지 ?"

 

"샤프입니다, 폐하."  샤프는 잠시 멈추고는, 보나파르트와 좀더 친밀해질 수 있는지 운을 시험해보기로 했다.  "저는 폐하 휘하의 칼베 장군의 친구였습니다.  전에 제가 나폴리에서 칼베 장군에게 작은 봉사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

 

일자무식의 샤프가 어떻게 프랑스어를 저렇게 잘하게 되었을까요 ?  어렸을 때 조기유학을 한 것도 아니고, 빨간펜이나 튼튼불어 주니어를 한 것도 아닐텐데요.

 

답은 저기 본문에 나와있습니다.  프랑스 여자인 루실과 함께 산 덕분입니다.  샤프는 Sharpe's Revenge 편에서 루실과 인연을 맺게 되는데, 거기에서는 샤프가 부상을 치료하는 몇 달 만에 프랑스어를 배우는 것으로 나옵니다 ! 

 

Sharpe's Revenge by Bernard Cornwell (배경 : 1814년, 프랑스) ------------

 

(샤프와 그의 친구이자 부하인 프레데릭슨 대위는 복잡한 누명을 쓰고 도망자 신세입니다.  그들은 루실의 집에 갔다가, 역시 오해하고 있는 루실의 총에 샤프가 큰 부상을 입습니다.  이들은 한동안 루실의 집에서 신세를 집니다.  프레데릭슨은 루실에게 반해서 그녀에게 구애하다가, 거절당하고는 심통이 난 상태입니다.)

 

프레데릭슨은 해자 너머로 담배 연기를 뿜었다.  "게다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것보다는 낫지요.  뭔가는 해야하쟎습니까 !"  그는 갑자기 사납게 말했다.

 

"그래서 날 여기 혼자 남겨두겠다고 ?"

 

프레데릭슨은 샤프를 경멸하듯이 쳐다보았다.  "징징거리지 마세요 !"

 

"여기 혼자 있는 게 무섭다는게 아니야."  샤프도 슬슬 화가 났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말고 영어를 하는 사람이 없쟎아 !"

 

"그럼 불어를 배우세요, 젠장 !"

 

"난 그딴 외국어 하고 싶지 않아 !"

 

"불어는 아주 완벽하게 고상한 언어라구요.  게다가, 마담 카스티노(루실)도 영어를 조금은 한다구요."

 

"나에게는 안하쟎아." 샤프는 우울하게 말했다.

 

"그건 소령님에게 겁이 나서 그런거에요.  소령님은 맨날 으르렁거리기만 한다고 하던데요."

 

(중략)

 

6월말이 되자, 샤프는 잡초로 가득찬 수로를 청소했고, 오랫동안 버려졌던 관개용 수문을 수리했다.  목동은 무척 기뻐서 마담 카스티노를 불러왔고, 그녀도 물래방아에서 목초지로 물이 흐르는 것을 보고는 손뼉을 쳤다.  "물, (영어로) 뭐라고 하지요 ?  몇년간 물이 없었어요, 맞지요 ?"

 

"몇년간이요 ?"  샤프는 농사용 긴낫에 기대섰다.  그의 긴 머리와 더러운 옷으로 인해, 그는 농장 일꾼처럼 보였다.  "Vingt, quarante ?  (20, 40  저도 고딩 때 불어 택했었습니다. 역주) "

 

샤프의 프랑스어는 발전이 느렸다.  하지만 매일 밤마다 저녁 식탁에서, 샤프는 마담 카스티노와 거북하게나마 대화를 나눠야 했다.  6월이 끝날 때 즈음에는 그는 프랑스어로 대화가 가능했지만, 아직 이해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7월 중순에는 스페인어만큼 프랑스어가 능숙해졌다.  그와 루실은 이제 모든 것에 대해 토론을 했다. 최근의 전쟁, 날씨, 신, 증기 기관, 인도, 아메리카, 나폴레옹, 정원일, 군인의 일, 영국과 프랑스의 장점에 대해, 채소 밭에서 벌레를 없애는 방법, 딸기 재배법, 그리고 과거와 미래, 귀족 등등.

 

-------------------------------------------------------------

 

결국 샤프도 현지 적응, 그것도 여자와의 현지 적응을 통해 불어를 익혔군요.  영국인들이 홍콩에서 중국어를 익힐 때, 일종의 현지처로 데리고 살던 중국 여자들을 'sleeping dictionary'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Walking dictionary'라는 말을 변형시킨거지요.  제가 카투사로 군복무할 때도 그랬는데,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도 주한 미군을 'sleeping dictionary'로 삼는 분들이 꽤 있지요.  다만 언어를 배우려는 것은 미군들이 아니라 우리나라 여성들이라는 점만 다르네요. 

 

샤프의 불어 학습 과정을 보면, 외국어 취득에 가장 필요한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1. 모국어를 쓰는 사람은 자기 외에는 없어야 한다.

 

저는 사실 어린이들 조기 유학 반대입니다.  영어 유치원도 반대입니다.  애초에, 한국말로 떠들 수 있는 친구들이 잔뜩 있는 환경에서, 조기 유학이나 영어 유치원은 비용 대비 효율성이 너무나 떨어지는 돈 낭비입니다.  차라리 그것보다는 EBS 영어 회화 시간때 강제로 TV 앞에 앉혀놓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영어 유치원에 대해서는 제 와이프도 심각하게 고려했었는데, 결국 포기했습니다.  와이프가 수강하던 영어 클래스 강사가 (한국말 못하는 재미교포였는데) 하는 말을 듣고 포기했는데, 그 강사 왈 '나도 첨 한국와서 한 것이 영어 유치원 강사다. 세상에 그런 꼬마들이 배운다고 몇마디를 배우겠냐 ?  한국어 단어를 가르쳐도 몇마디 못배우겠다.  물론 몇마디 배우는 거야 있겠지만, 그에 비해 들이는 돈이 너무 많지 않냐 ?  그건 미친 짓이다.' 라고 했답니다.  저는 그 친구 덕분에 한달에 100만원이 굳었습니다.

 

2. 해당 외국어로 집중적으로 대화해야 한다.

 

프랑스건 영국이건, 그런 곳에 10년을 있으면 뭐합니까 ?  거기 가서 그 나라 말을 써야 합니다.  그러자면 사실 이야기꺼리가 있어야 하는데... 외국인 친구가 있다고 해도, 워낙 문화적 차이가 크다보니, 'How are you doing ?  I'm fine.  Thank you, and you ?' 하고 나면 도통 더 할 말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외국어를 배우려면 그 나라 여자를 사귀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이, 원래 연애하는 사이끼리는 할 말이 참 많지 않습니까 ?  그러자면 자연히 외국어로 할 말이 많아지겠지요.

 

그나저나, 저 소설대로라면, 샤프는 불과 3개월만에 불어를 거의 마스터합니다.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지 않습니까 ?  확실히 저 전광석화와 같은 불어 습득 과정은 (제가 볼 때는 거의 매트릭스에서 무술 실력 다운로드 받는 네오 수준인데) 소설의 스케쥴을 맞추기 위한 억지가 많이 섞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실 유럽인들의 외국어 습득 능력은 좀 독특한 바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대학 다닐 때, 태권도 동아리에 잠깐 있었는데, 거기에 독일에서 온 여학생들이 몇 있었습니다.  간단한 한국말은 잘 하더군요.  그런데, 한국에 온지 몇달 되었냐고 물으니 불과 '6개월 되었다'고 한국말로 대답하더라니까요.  혹시 독일에서부터 한국말을 배웠냐고 하니까 그건 아니라고 하고요.  흠흠...  어순이 비슷하고 단어가 비슷한 것이 많다고는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참 대단해 보였어요.  축구선수 송종국이 네덜란드에 진출해 있을 때, 현지에서 송종국에게 상당히 불만이었던 것 중 하나가 '어떻게 네덜란드에 온지 1년이 넘도록 현지어 습득이 저렇게 안되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걔들은 그 정도면 유창하게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되야한다고 생각들 하나봐요.  특히 네덜란드 애들이 역사적, 지리적 특성 때문에 외국어 2~3개는 기본으로 한다고 하지요.

 

저는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 대학 졸업할 때 쯤이면 영어는 당연히 CNN을 자연스럽게 들을 정도가 되고, 또 일본어도 당연히 잘하게 될 줄 알았습니다.  어순이 비슷하니까 일본어는 정말 쉽게 배울 줄 알았지요.   현실은 ?  흥흥...  여전히 자막없으면 영화 제대로 못 봅니다.  일본어 ?  포기한지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못난 저 개인 문제이고, 우리 민족이 원래 외국어 취득 실력이 떨어지는 건 아닌 모양입니다.  고려말 공민왕 시절에 편찬되어 조선시대 정조시대까지도 개정판이 나왔던, 소위 조선시대의 '성문종합영어'에 해당하는 '노걸대'라는 중국어 교본이 있습니다.  이 책은 회화체로 되어 있는데, 그 중 내용을 보면 고려상인과 중국상인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즘으로 따지면 철수와 John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지요.)  그 대화 내용 중, 중국상인이 고려상인의 유창한 중국어 실력에 놀라 어떻게 중국어를 배웠냐고 묻는 장면이 있는데, 그 대답이 부모님 권유로 중국인 학당에서 '6개월'을 배웠다고 대답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6개월'이라... 

 

 

 

작년에 본 영화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것은 제이슨 본 시리즈인 'Bourne Ultimatum'이었는데, 그 본 시리즈를 보면서 정말 부러웠던 것은 주인공이 불어나 독일어, 심지어 러시아어까지 자유자재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간지좔좔이라는 것은 그거 아니겠습니까 ?  근데 정말 CIA 같은 곳에서 돈을 막 처발라 요원들 훈련시키면 그렇게 몇개국어에 능통해지는 것이 가능한가봐요 ?  저에게는 얼마를 처발라야 저도 그렇게 잘하게 될까요 ?

 

(Bourne Ultimatum을 보면서 궁금한 점 한가지 더 - 그런 요원 양성 코스에는 꼭 오토바이 운전도 있나봐요 ?  영화에 나오는 첩보원 중에 모터싸이클 못타는 요원은 한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아무튼 외국어가 정말 중요한 건 맞습니다.  저는 민노당 권영길씨 주장대로 대학 평준화를 해야 한다고 믿는데, 사실 저는 지금 IT 엔지니어 일을 하고 있지만, 제가 대학에서 배운 것 중 현재 업무에 활용하는 것은 영어 빼놓고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정말 1%도 없습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저도 설대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름있는 대학 나왔고, 학점도 아주 좋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제가 사회 나와서보니, 고딩때부터 대학까지 배운 것 중 쓸모 있는 것은 정말 외국어 빼놓고는 없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제 아들이 나중에 학교들어가면, 정말 학교 성적 별로 안좋아도 되고, 일류 대학 안가도 되니까, 부디 책 많이 읽고 외국어는 좀 잘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사회 나와서 실력으로 승부하는데는 전혀 지장없을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