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일본어에는 중대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존대말입니다. 우리말이나 일본어처럼 존대말이 발달된 나라가 드물다고 하지요 ? 우리가 조선 시대 이후 문화 대국으로 사대해온 중국에서도 존대말이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유럽 쪽은 어떨까요 ? 저는 고딩때 불어를 잠깐 했었는데, 불어에는 약하긴 하지만 존대말이 분명히 있습니다. 가령 Je t'aime 는 '널 사랑해'이고 Je vous aime 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정도로, 존대말이 있기는 하더군요.
(와, 제가 상상하던 프랑스 여인치고는 손이 예술입니다... 거의 닌자 거북이 손 같은데요 ?)
그런데, 영어에는 존대말이 없습니다. 없나요 ? 흠... 제가 아는 바로는 없습니다. 하지만 영문학 전공하신 분이나, 또는 영어에 능통하신 분들은 영어에도 존대말이 분명히 있다고 주장하십니다. 하긴 'What's up, buddy ?' 라고 하는 것과, 'How are you doing, sir ?' 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번역할 때도 분명히 '안녕, 친구 ?' 와 '안녕하십니까 ?' 로 구분되어 번역이 될 겁니다.
존대말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바로 상대에 대한 호칭일 것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프랑스어의 경우도, '너'를 그냥 부르면 tu 이고, 존대하면 vous 가 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입니다. 하지만 영어의 경우에는 상대가 길거리의 거렁뱅이이든, 영국 여왕이든 you 밖에 없지요... 라고 하면 그 영문학 전공하신 분들이 무식한 소리하지 말라고 하실 겁니다.
사실 불어의 경우도 vous 라는 것은 별도의 단어가 아니고 tu 의 복수형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어도 you에 대응하는 별도의 존칭 단어는 없지만, 분명히 영국 여왕을 you 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전에 영국 귀족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도 잠깐 나왔습니다만 ( 웰링턴 공작의 이름이 웰링턴이 아니라고 ?? http://blog.daum.net/nasica/6751480 ), 귀족들을 부를 때는 원래 'my lord' 또는 'my lady' 같은 식의 호칭을 붙여야 합니다. 상대가 왕족이라면 his highness, 높은 성직자면 his eminence 뭐 이런 식으로 분명히 뭔가 불러줘야 하는 존칭이 있습니다.
다음은 저를 나폴레옹 시대물로 이끈 소설 시리즈인 Hornblower 시리즈의 최종판 중 일부입니다. 이번에는 특별히 영한 대역입니다.
Hornblower in the West Indies by C.S.Forester (배경 : 1821년 미국 뉴오올리언즈) -------
"And now, My Lord," said Sharpe, "it is my duty to discuss the details of Your Lordship's stay here in New Orleans. I have arranged a programme of official calls for Your Lordship. Does Your Lordship speak French?"
샤프가 말했다. "자, 남작님, 남작님께서 여기 뉴오올리언즈에 머무시는 동안의 세부 일정을 논의드려야 합니다. 남작님의 공식 방문 일정을 제가 미리 수배해 놓았습니다. 남작님께서는 프랑스어를 하시는지요 ?"
"Yes," said Hornblower, fighting down the urge to say, 'My Lordship does.'
"그렇소." 라고 혼블로워는 대답했다. 그는 '남작님께서는 할 줄 아신다오'라는 말을 덧붙이려는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That is excellent, because French is commonly spoken among good society here. Your Lordship will, of course, be calling upon the naval authorities here, and upon the Governor. There is an evening reception planned for Your Lordship. My carriage is, of course, at Your Lordship's disposition."
"그것 참 잘되었군요. 여기 상류 사회에서는 프랑스어가 공용어이거든요. 남작님께서는 물론 이곳의 해군 당국자들과, 주지사를 방문하시게 될 것입니다. 남작님을 위한 환영 만찬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제 마차는 물론 남작님께서 마음대로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That is extremely kind of you, sir."
"친절을 베풀어주어 무척 고맙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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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저 Sharpe라는 인물은 제가 좋아하는 소설 Sharpe 시리즈의 그 Sharpe가 물론 아닙니다. 이 작품은 1958년도에 씌여진 것이거든요. 좀 아쉽기는 하지만, C.S. Forester에게 있어서 Bernard Cornwell 정도의 작가는 수많은 듣보잡에 불과합니다. 그만큼 Forester가 대단한 작가라는 뜻입니다.
아무튼 저 위의 씌인 영문을 보면, 혼블로워를 you 라고는 한번도 부르지 않고, 자꾸 3인칭의 'Your Lordship'이라는 칭호를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Do you speak French ?'라고 2인칭으로 묻지 않고, 'Does Your Lordship speak French ?' 라고 3인칭 취급을 합니다. 혼블로워는 원래 출신이 평민이고, 아직도 그런 귀족 사회의 관습이 우스꽝스럽게 여겨지는지라, 'Yes, My Lordship does' 라고 3인칭 대답을 하려다 참는 것이지요. 저럴 때 자기가 스스로를 3인칭으로 대답하는 것은 좀 우스운 일인 모양이네요.
(His lordship then smiled, and said: ‘This is too warm work, Hardy, to last long')
(넬슨 경께서는 미소를 지으시고는 말했다. '길게 끌기에는 너무 치열한 전투군, 하디 함장.')
그런데 적어도 왕이나 뭐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3인칭으로 썼나 봐요 ? 우리나라나 중국의 왕, 황제 등은 '과인'이라든가 '짐'이라든가 하는 용어를 썼쟎아요. 유럽의 왕들도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3인칭으로 썼나 봅니다. 실은 제가 직접 읽거나 한 것은 아니고, 이원복 교수의 '먼나라 이웃나라 - 미국편'을 보면, 3인칭 이야기가 나옵니다. 즉, 미국 독립 초기, 조지 워싱턴을 대통령으로 뽑아는 놓았는데, 미국인들도 대체 대통령이라는 것이 뭐하는 것이지 잘 몰랐고, 왕 비슷한 것이라고 알았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조지 워싱턴 스스로도 뭔가 귀족인 듯이 행동을 했다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스스로를 '3인칭'으로 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령 하인에게 물한잔 갖다달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나 봐요 ?
"His Presidency would like to have a glass of water." (각하께서 물 한잔 드시고 싶다네.)
우스운 건 좀 그렇다치고, 좀 재수없지 않습니까 ?
재수없다는 말이 나온 김에, 참고로,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라는 제목의 설문 결과를 어디서 읽어보았는데, 3위는 모르겠고, 2위까지는 기억이 납니다.
1위 : 잘난체 하는 남자
2위 : 키작은 남자
흠... 우리 1위에만 집중하고, 2위에는 신경쓰지 말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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