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업이 어렵습니다.
사실은 요즘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농경 사회가 산업 사회로 바뀌면서부터,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가면서 오게 되었고, 그럴 때마다 노동 계급은 실업으로 내몰렸습니다. 어디까지가 중산층이고 어디까지가 서민인지에 대해서는 항상 말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당장 직업을 잃어도 기본적인 생계에 걱정이 없는 사람들을 중산층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저를 포함한 여러분 대부분은 서민층이지요. 설령 여러분이 강남 40평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원래 한 나라의 70%~80% 정도는 서민층이 맞습니다.
모병제인 나라는 불황일 수록 군대가 인기있는 직장으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여군 입대 경쟁률이 장난 아니라고 하지요 ? 미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카투사로 복무하던 90년대 초반에도 미국에 불경기가 닥쳤는데, 그 결과 나이 30이 넘어서 신병으로 입대하는 친구들이 종종 보이곤 했습니다. 왜 군대왔냐고 물어보면, "으응, 우리 동네 우체국이 감원했어" 같은 대답을 듣곤 했습니다.
전에도 쓴 바가 있었습니다만,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의 실업자들이 굶지 않기 위해 육군에 입대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해군에 입대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해군은 워낙 힘들고 위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사병들 이야기고, 장교들은 이야기가 물론 달랐습니다. 육해군 모두, 장교가 되고 싶어 줄을 선 청년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당시 유럽 사회에서, 왕실의 정규 육해군 장교는 사회에서 상당한 지위를 가지는 멋진 직업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흠... 간지는 나 보이는데, 급여는 어떨까 ? 4대 보험은 되나 ?)
다만, 귀족이나 명문가 자제들에게는 육군이 좀더 인기가 있었고, 해군은 주로 평범한 중산층 출신에게 좀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유는, 육군의 경우 기술적인 전문성이 그리 중요하지 않아서인지, 계급을 돈주고 살 수 있는, purchase system이라고 하는 훈훈한 제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Half-pay란 무엇인가 ( http://blog.daum.net/nasica/6356192 ) 편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대개 가문이 좋은 젊은 장교들은 계급도 높았습니다. 나폴레옹과 워털루에서 맞짱을 뜬 웰링턴 공작도, 바로 그 매관매직 제도 덕택에 20대에 이미 대령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돈을 써가면서 장교가 되려고 했냐고요 ? 글쎄요, 요즘 우리나라 경우를 봐도 대학에 "나무 좀 심고" 교수로 채용되는 사람들 있쟎습니까 ?
(저, 저기요... 총장님이 말씀하신 나무는 그 나무가 아니거든요 ?)
그에 비해, 전문 기술직에 해당했던 해군 장교들은 그런 매관매직 제도가 없어서, 결국은 몸으로 고생을 하지 않으면 높은 지위에 올라가기가 힘들었습니다. 하긴, 일찍부터 소위-중위-대위-소령-중령-대령의 세분화된 계급이 있던 육군에 비해, 해군은 그냥 부관(lieutenant)-함장(captain)이라는 단순한 계급 밖에 없었기 때문에, 어차피 돈주고 살 계급이 그리 많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해군에서도 함장이 되기 위해서는 역시 가문과 인맥 같은 요인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다만, 육군처럼 쥐뿔도 모르는 무능한 인간들이 돈과 가문의 힘만으로 함장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하네요. 일단 해군 장교가 되려면 대개 12~13세의 나이 때부터 시작하여 약 6년 간을 수습사관 (Midshipman)이라는 이름으로 군함에서 복무해야 했습니다. 그러고난 뒤 기술 시험에 합격해야 겨우 부관(lieutenant)으로 임관이 가능했습니다. 이렇게 어린 나이부터 온갖 위험과 고생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기 때문에, 대개 "돈과 빽"이 되는 집안에서는 잘 아는 함장에게 부탁해서, 2~3년만 군함에서 복무하고, 실제로는 고향에서 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서류상으로만 군함에서 수습사관 복무를 하고 있는 것처럼 꾸미는 일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난 6년간 꽉 채워서 실제 함상 근무를 섰다"라는 장교가 있다면 그건 정말 "돈도 빽"도 없는 집안 출신이라고 광고를 하는 셈이었답니다.
아무튼 일단 정규 장교(Commissioned Officer)가 된다는 것은, 신분이 바뀌는 일이었습니다. 장교가 된다는 것을 King's Commission을 받았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사실상 평생직장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King's Commission을 받은 장교는 그 누구도, 심지어 그 상관이라고 할 지라도 함부로 대할 수 없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고를 쳐서 군법회의에 지대로 걸리지 않는 한 부당한 해임도 있을 수 없어고, 쪼인트를 깐다든가 하는 신체적인 폭행 등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차피 당시 장교들은 모두 '신사'로 인정되었기 때문에,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중위나 대령이나 다 같은 사회 계층으로 같은 클럽에 소속된 정도로 서로를 인식했습니다. 무엇보다 요즘 일반 대기업과는 달리, 불황이라고 해고를 당한다든가 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공무원이나 군인이나, 해고는 아닐지라도 보직 해임은 엄청난 문책이지요 ? 그때도 그런 것이 있았습니다. 저 위에 이미 언급된 half-pay였습니다.
육군의 매관매직 제도가 좋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즉, 돈주고 팔 수 있는 장교직의 숫자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최소한 인사 적체는 별로 없었습니다. 공석이 없으면 돈주고도 장교직을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 장교가 되었다고 하면, 항상 어딘가에 실제 보직이 주어졌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냥 장교직은 명예로운 간판으로만 쥐고 있고, 무보직 장교로서 half-pay를 받으며, 그냥 고향집이나 런던 사교계에서 노닥거리는 청년들도 있었겠지요.
(흠... 이렇게 ?)
하지만 해군의 경우는 이야기가 좀 달랐습니다. 수병들은 항상 인원이 부족했던 것에 비해, 장교들은 인원이 항상 넘쳐났습니다. 육군 장교직을 살 수 없었던 가난한 젊은이들이 어떻게든 출세해보겠다고 해군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보니, 힘들게 부관이나 함장이 되었는데도, 군함이든 지상 근무든 자리가 없어 무보직으로 허송세월해야 하는 장교들이 허다했습니다. 즉, half-pay 장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Half-pay 장교는 보직이 없으니까, 당연히 공로를 세울 수도 없었고, 그러다보면 멋진 전공을 올린 현역 장교들에게 밀려 점점 더 보직을 받을 기회가 멀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돈도 빽도 없는 장교는, 한번 경쟁에서 밀리면 거의 끝장이라고 봐야지요. 게다가, 그런 식으로 자꾸 밀려나다 보면, 누구나 돈을 내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것을 자꾸 먹게 됩니다. 즉, 나이를 먹게 됩니다.
The Ionian Mission by Patrick O'Brian (배경 : 1813년 이오니아 해) -------------------
(잭은 자신의 선임 사관이자 가장 아끼는 부하인 톰 풀링스의 승진에 대해 걱정합니다.)
"특히 내가 걱정하는 것은 (내가 함장 보직을 잃게 되면) 톰 풀링스에게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이 완전히 막혀 버린다는 걸세. 이 친구의 임시 함장 승진이 결국 되기는 될 것이라면, 정말 빨리 되어야 하거든. 해군 내에서는 아무도 수염이 희끗희끗한 나이 먹은 장교가 슬룹 함의 함장이 되는 것을 원치는 않네. 35세가 넘어서는 건 곤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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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 대기업에서는 사오정이라는 말이 있지요 ? 제가 다니는 회사도 체감 정년은 45세 정도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군대에도 계급 정년이라는 것이 있어서 같은 계급에 일정 기간 있으면서 승진이 안되면 결국 전역을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넬슨의 시대, 영국 해군에서도 비슷한 비공식적인 개념이 있어서, 부관에서 다음 단계인 함장으로 가기 위한 중간 단계인 임시 함장 (commander)로의 승진은, 아무리 늦어도 35세 이전에 이루어져야 했었나 봅니다. 그런 거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사회는 다 비숫한 것 같아요.
귀족이나 명문가 출신의 "명예형 장교" 양반들에게야, 사실 보직 문제는, 생계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평민 가정 출신의 "생계형 장교"들에게는 보직 문제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특히 무보직 장교들은 대개 무보직이었던 이유가 "돈과 빽"이 부족해서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사람들일 수록 half-pay는 더욱 처절한 의미로 다가 왔습니다. Half-pay 만으로는 먹고 살기가 빡빡하다는 현실적인 이유였습니다.
Post Captain by Patrick O'brian (배경 : 1803년 영국) -------------
"좋은 소식이 있다네, 땅과 바다 모두에서 평화가 왔다네
대포들은 이제 쓸모가 없다네, 이제 우리는 모두 제대하니까"
제독님이 말씀하신다네.
"그거 참 나쁜 소식이군" 함장님이 말한다네, "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아"
중위는 소리친다네, "난 이제 뭘 한다지 ? 이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
군의관이 말한다네, "나도 신사야, 일급 신사지
나는 어느 시골 장터에서 돌팔이 의사나 돼야지"
사관생도가 말한다네, "난 직업도 없다네, 내게 고를 직업이 있다면,
성 제임스 공원 문 앞에 가서, 구두를 닦아야지
거기서 하루 종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구두를 닦으라고 소리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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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인용한 것은, "Post captain (정규 함장)" 편에서, 주인공 잭 오브리가 친구인 군의관 스티븐 매투어린에게 들려주는 수병들의 노래입니다.
잭 오브리와 스티븐 매투어린은 다른 함장이 지휘하는 군함에 승객으로 탔다가, 그 배 위에서 평화의 소식(1802년인가 1803년에 잠시 종전했었습니다)을 접합니다. 일반 수병들이 환호하는 것에 비해, 장교들은 약간 넋나간 표정을 하고, 특히 그 군함의 군의관은 완전히 낙담하는 것을 보고, 아직 해군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는 매투어린이 어리둥절해하자, 오브리가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해주면서, 수병들의 노래를 하나 들려주는 장면입니다.
당시는 나폴레옹 전쟁이 한창이라서, 영국 해군은 크게 몸집을 불린 상태였습니다. (그 유지비는 유태인, 정확하게는 독일 출신의 로스차일드 가문이 댔다고 하지요 ? 이 덕분에 영국, 더 나아가 미국에 유태인 세력이 뿌리를 내리며 안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평화가 오면, 그렇게 큰 해군을 유지할 이유가 없어지므로, 대개의 군함들은 pay off, 즉 예비역으로 항구에 묶이게 되고, 수병들은 제대를 하게 되며, 장교들은 half-pay 신세가 됩니다.
사실 제가 볼 때는 half-pay가 전혀 나빠 보이지 않는데, 이는 당시 함장들에게는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였다고 합니다.
함장의 경우는, 이미 pay 자체가 어느 정도 높기 때문에, half-pay 보직이 되어 집에 있게 된다고 하더라도, 하루에 10실링이 꼬박꼬박 나왔습니다. 당시 일반 병사의 일당이 1실링인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형편없는 액수는 아니지요. 당시 현역 육군 대위의 경우, 일당이 10실링 6펜스였습니다.
게다가, 함장은, 비록 half-pay 신세라고 해도, 해군성에 보관된 함장 명부에서, 늙은 함장이 죽어나갈 때마다, 자신의 서열은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야말로 물구나무를 서도 해군성 시계는 돌아간다는 거지요. 게다가 어느 정도 운이 있었던 함장은, 적선을 나포해서 받은 prize money가 있었기 때문에, 그걸로 시골에 집과 땅을 사서, 유복한 생활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함장은, 어느 정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당장 부관(lieutenant) 계급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여기서 부관, 또는 중위라는 것은 제대로 된 번역은 아닙니다. Lieutenant 라는 것은, 원래 지휘관이 아닌 장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해군에서는 함장이 아니라면 모두 lieutenant 였습니다. 그들 사이에는 뭔가 계급이 없냐고요 ? 없었습니다. 다만 서열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군함에서 lieutenant가 새로 오게 되면, 서로서로 언제 임관했는지 물어보고 서열을 정해야 했습니다. First lieutenant는 사실상 부함장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정도로 중대한 직책이었습니다. 문제는, first이건 third이건, lieutenant의 급료는 그리 넉넉하지가 못해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나마 얼마 안되는 급료에서 절반이 없어진다면, 가정을 꾸려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개 lieutenant 계급에서는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이 상례였다고 합니다. 물론 집에 돈이 많은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지요. 예나 지금이나...
가장 불쌍한 것은 수습사관(midshipman)이었습니다. 이들은 오직 하나의 희망, 즉 King's commission (장교 임관)을 바라고 서럽고 고달픈 사관생도 생활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평화 ? 있던 장교들도 half-pay로 쫓겨나는 판에, 새로 임관을 해주는 경우는 그야말로 빽이 튼튼한 경우가 아니면 불가능했습니다. 이들에게는 half-pay도 전혀 없었습니다. 원래 pay도 거의 있으나마나 해서, 대개의 사관생도들은 집에서 용돈을 부쳐받아 쓰는 수준이었거든요.
(나도 집에 돈만 있었으면 그냥 육군에 가는건데...)
Lieutenant 정도되면, 군함에서의 경력을 살려, 일반 상선에 항해사나 선장으로 취직하면 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혼블로워 시리즈 제2편인 'Lieutenant Hornblower'에서 그런 상황이 나옵니다. 혼블로워의 부관인 부시 중위가, half-pay가 되어 생활이 어려워지자, 동인도 회사 상선에 항법사 자리라도 얻으려 해보지만, 먼저 군함의 항법사로 징발되었던 원래 동인도 회사 소속 항해사들이 복직하려고 줄은 선데다, 또 군함을 타던 장교는 상선에서는 그리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어서 결국 취직을 결국 못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상선에서는 1명이서 할 일을 군함에서는 5~6명이서 한다는 것이지요. (이 말은 사실 어느 정도 맞는 말입니다. 군함에는 나포된 선박을 조종할 인원, 백병전에서 전투원으로 싸울 인원 등등을 포함해서, 선원이 엄청나게 많이 타지요.)
이런 직업 해군 장교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나폴레옹과의 평화는 불과 1년여만에 깨져버리고, 다시 전쟁이 시작됩니다. 위의 Post Captain은 전체 오브리-매투어린 시리즈 중 2권인데, 전체 시리즈는 20편이나 이어지게 되는 것을 보면 나폴레옹 전쟁이 얼마나 긴 전쟁이었는지 아실 겁니다.
그나저나, 우리의 세계적인 경기 후퇴는 언제까지 후퇴를 하려는 것일까요 ? 내년이 올해보다 더 힘들거라는데, 휴, 걱정이 태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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