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경 | 2009.11.24
미국은 대외채무에 의존해 국내경제를 지탱해 왔다. 달러화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수출주도 성장을 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로 흘러 들어가고, 아시아 국가들은 그 달러화로 외환보유고 확대를 위해 미 재무부 채권을 매입하여 미국의 재정 적자를 보전해주는 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무한정 유지될 수 없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성장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를 대폭 감축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균형을 달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출 증대를 위해 달러 가치를 절하할 필요성이 있다. 미국은 달러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면서 달러를 평가절하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달러가치가 “급격히 무질서하게” 조정되는 위기 상황을 피할 수 있는가는 미국 정부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는가에 달려 있다.
< 목 차 >
Ⅰ. 위기의 구조 : 글로벌 불균형
Ⅱ. 달러화가 직면한 모순적 상황
Ⅲ. 위기의 완화 요인과 촉진 요인
Ⅳ. 새로운 질서를 위한 모색
세계경제는 2010년부터 경기침체에서 벗어나 미진하나마 성장세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의 경제위기가 미국 금융시장의 파열이라는 예상하지 못한 충격에 의해 본격화된 만큼, “또 다른 뜻 밖의 충격이 다시 오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 우려를 낳고 있는 여러 사안 중에서 가장 논쟁적인 것은 미국경제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에 큰 타격을 준 금융위기가 달러 위기로 이어져 국제통화질서가 급변할 가능성에 대한 논의이다.
Ⅰ. 위기의 구조 : 글로벌 불균형
불균형의 두 측면
달러 위기론의 대체적인 내용은 미국 재정적자의 자본조달원인 미국으로의 순자본유입이 급격히 감소하거나 역전되어 달러 가치가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세계경제의 가장 큰 구조적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s)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글로벌 불균형이란 21세기 들어 한층 심화된 미국과 나머지 세계간의 심각한 경상수지 불균형을 지칭하는데, 미국의 국가채무의 과도한 누적과 수출 주도성장을 추진하는 아시아 국가들의 막대한 외환보유고의 축적이라는 비대칭적 상황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미국은 만성적으로 재정적자에 허덕여 왔지만, 2001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등장 이후 재정적자가 더 악화되었고 가계저축률도 크게 하락하여 경상수지 적자폭도 크게 늘어났다. 더욱이 금융위기는 재정적자를 급격히 악화시켰는데 2009년에는 GDP대비 11.2%라는 기록적인 수준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시장이 안정을 회복하고 경제가 회복국면으로 접어들더라도, 사회보장, 의료보험 부문에서 지출 증가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특별한 개혁이 없는 한 재정위기는 장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초에는 균형에 가까웠던 미국의 경상수지는 2006년 적자 규모가 GDP 대비 6%에 이르렀고 2008년에는 약간 회복되었으나 4.9%에 달한다.
다른 한편, 아시아의 신흥 경제국은 1997~98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이후, 자본 자유화에 따른 세계금융시장의 높은 변동성에 대비하여 외환시장을 통제하며 수출 증대에 힘써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축적하였다.
글로벌 불균형의 순환과 종착점
글로벌 불균형은 달러화가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수출주도 성장을 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들로 흘러 들어가고, 아시아 국가들은 그 달러화로 외환보유고 확대를 위해 미국 재무부 채권을 매입하여 미국의 재정 적자를 보전해주는 순환구조를 통해 유지되고 있다.
이 같은 비대칭적 균형이 유지되는 것은 달러화가 미국의 정치-경제적 리더십에 힘 입어 세계경제의 기축통화로서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외 국가들의 외환보유고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갚을 것을 재촉 받지 않는 부채”인 셈이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의 특권에 힘입어 재정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주는 당장의 제약에서 벗어나 확장적인 대내외 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다.
대외부채를 통해 국내경제를 지탱해 나가는 미국 경제의 이 순환구조는 무한정 유지될 수는 없다. 이와 관련하여 MIT 교수인 L. 써로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한 나라에서 경상수지가 적자가 계속되면 다른 나라에서 돈을 빌려와야 한다. 빚이 증가하면 이자가 늘어나고,… 시간이 흐르면 빚이 쌓이는 속도는 빨라진다,… 마침내 부채와 이자의 규모가 너무 커져서 다른 나라는 필요한 만큼의 돈을 빌려주지 못한다. 바로 그때 극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극적인 변화가 시작되는 때, 글로벌 불균형의 순환이 한계에 달하는 시점이 언제냐에 있다. 극단적인 위기론자들은 심판의 날이 목전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Ⅱ. 달러화가 직면한 모순적 상황
오바마 미 행정부도 쌍둥이 적자의 누적이 안고 있는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 오바마 미 대통령은 더 이상 세계 상품의 최종소비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정책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L.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도 파이낸셜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경제의 동력이 “소비에서 수출로”, “금융 공학에서 생명·소프트웨어·토목 공학 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미 달러화는 제로에 가까운 연방기금금리 등의 요인으로 인해 약세 기조를 지속하고 있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성장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경상수지를 대폭 감축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재정균형을 달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수출 증대를 위해 달러 가치를 절하할 필요성이 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의 위험성을 오랫동안 지적해 온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소장인 F. 버그스텐은 “미국의 정책담당자들은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 달러의 패권, 그리고 대규모 자본 유입은 더 이상 미국의 이해와 맞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달러 패권의 포기와 평가 절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달러 평가절하 정책은 정책적 딜레마를 야기한다. 미국은 경기침체로 인해 확장적인 재정-통화정책을 취해야 하며, 사회보장지출 등 재정지출수요가 증대하고 있어 재정 적자 보전을 위해 추가적으로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그런데, 경상수지 개선을 위한 달러의 지속적인 절하는 미국 국채의 자산 손실과 달러화에 대한 신뢰 훼손을 가져올 수밖에 없어 국채발행을 어렵게 한다. 미국은 달러에 대한 신뢰를 심어주면서 달러를 평가절하해야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직면해 있다. 달러가치가 “급격히 무질서하게” 조정되는 위기 상황을 피할 수 있는가는 미국 정부가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는가에 달려있다.
위기의 메커니즘
폴 크루그만은 1995년에 발간한 저서 “Currencies and Crises”에서 “무역 적자가 엄청나고, 다른 한편으로 외국투자자들이 달러 약세 덕택에 싼 값에 많은 미국 자산을 매수했다…. 해외로부터의 자본유입이 중단되어 미국경제가 금융경색(financial squeeze)에 빠지는 것은 단순한 현실적인 가능성이 아니다. 그 과정은 이미 진행되고 있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쌍둥이 적자가 지금에 비할 바 못 되는 때의 언급은 금융위기로 미국경제가 더한층 취약해진 현 시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1990년대 말 이후 수출주도 경제성장을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의 신흥경제국들과 석유수출국들은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수출 둔화와 달러표기 보유자산의 자본손실을 우려하여 달러 가치를 지지해왔다. 그런데, 미국이 경상수지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약한 달러 정책을 지속한다면 미국 국채의 대량 보유국인 아시아 국가들은 자본 손실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달러 위기론은 이 같은 상황에서 채권국가들이 달러가치가 더 떨어지기 전에 외환보유고의 자산구성을 달러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변화한다면 달러 가치 하락이 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만약 미국으로의 자본 유입액의 2/3를 차지하는 민간투자자들도 손실을 예상하고 미국경제에서 탈출한다면 위기는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하나의 극단적인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나 달러의 약세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각국 중앙은행과 민간투자자들에게 달러자산의 손실을 회피하려는 유인을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Ⅲ. 위기의 완화 요인과 촉진 요인
공동의 이해관계와 정책공조 난점
글로벌의 두 대칭점에 있는 미국과 아시아 국가간에는 공동의 이해관계가 존재한다.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보유고에서 달러 비중을 급격히 줄인다면, 자신들의 최대 수출대상국인 미국 경제는 즉각적으로 타격을 입게 된다. 국채가격은 하락하고 이자율이 급등하면서 민간 투자는 위축되고 경제성장은 가로막힐 것이다. 최대 교역국의 위기는 아시아 국가들도 위기로 몰아갈 것이다. 따라서 중국, 일본 등이 “황금을 낳는 거위의 목을 비트는 것”과 같은 행동을 선택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오히려 달러화가 위기에 직면하면 관련국가들이 공조하여 달러를 구제할 수도 있다.
공동의 이해관계가 중장기적으로 유지되기 어렵게 하는 요인들도 상존한다. 우선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라는 역사적 체험은 국가간 협력이 무척 어렵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아래의 박스 기사 참조). 공동이해관계는 유동적인 것이며, 국가간 협력은 무척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상황 역시 많은 불안정 요인을 안고 있다.
중앙은행의 행동방식과 시장에 대한 영향력의 제약
중앙은행은 장기투자자로서의 성격이 강하여 자본 손실도 상당히 감내한다. 또한 관성에 따라 자산관리를 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앙은행들도 특정한 대세가 뚜렷하다면 자산구성의 조정 속도를 높이는 것도 예상할 수 있지만, 한 순간에 자산구성을 큰 폭으로 조정하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다. 이 같은 중앙은행 행동방식도 급격한 변화를 완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반면, 1980년대 이후 자본이동에 대한 탈규제화가 진행되어 민간 투자자들이 이익실현을 위해 자산구성을 조정하는 데 대한 정책당국의 영향력이 매우 제한적이다. 정책당국이 외환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민간 투자자들의 자산의 재구성을 통제하거나 상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기에는 민간 자본의 규모가 너무 크다.
미국으로 유입되는 자본의 소유권 구성을 보면 외국 중앙은행의 투자금액은 총 자본유입의 1/3 정도에 불과하다. 민간투자가들이 금융자산의 가격변동을 예상하고 먼저 움직이면 정책당국에 대한 압력은 위력적이다. 따라서 각국 중앙은행이 정책 협조를 통해 달러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노력이 민간의 움직임에 의해 효과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달러화에 도전하는 통화들의 경쟁력
브레튼 우즈 체제의 붕괴는 달러를 금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달러는 더 이상 금에 의해 뒷받침되는 통화가 아니었다. 하지만 세계 최대의 단일 통화 경제이자 정치-군사적 초강대국의 화폐라는 데 대한 신뢰에 기초하여 달러는 비공식적이지만 세계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견고히 유지해 왔다. 달러 중심 통화체제의 위기를 논하기 위해서는 달러를 대체할 대안이 있는가를 검토해보아야 한다.
달러화 가치에 대한 불확실성이 점증하고 있는 까닭에 달러 중심체제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자주 관찰된다. 인도 정부는 최근 달러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며 IMF로부터 200톤의 금을 67억 달러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는 2006년 루블 강화와 탈-달러화(de-dollarization)를 결정하고 외환준비통화를 다양화하고 있다. 시장 개혁 초기 외환보유고의 80% 이상이었던 달러화 비중을 최근 40%이하로 낮추고 그 자리를 유로화로 대체하고 있다.
한편, 중국은 위안화의 국제화 전략을 점차 구체화하고 있다.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지난 3월 IMF의 SDR(특별인출권)에 기초를 둔 새로운 기축통화체제 구축을 제안하여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SDR 표기 채권시장의 활성화와 같은 사안은 장시간을 요하는 제도개혁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제안은 미국 달러패권에 대한 문제를 국제적으로 환기시키기 위한 정도의 발언인 것 같다.
중국이 의도하는 바대로 위안화를 국제적인 준비통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경제불안정을 야기하지 않으면서 자본통제를 해제할 수 방안을 마련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본수출국이 되어 중국 외 거주자들의 위안화 보유를 늘여야 한다. 또한 위안화가 대외준비자산이 되기 위해서는 높은 유동성을 보장하는 위안화 표기 채권시장의 발달이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이 모두 현실과는 아직 거리가 멀기 때문에 중국의 위안화 국제화 전략도 단기간 내 실현되기는 힘들다.
달러화를 위협하는 대체 통화는 미국경제에 맞먹는 경제권의 화폐인 유로화이다. 유로화는 10년간에 걸쳐 유로화는 상당한 신임을 얻었고 유럽연합 및 지중해 연안의 인접경제권에서 유로화 사용이 증가하고 있다. 달러 위기론이 분분하면서 지위가 더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1999년 유로가 처음 등장할 때 유로에 걸었던 일반적인 기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다. 외환보유고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감소했고 유로의 비중의 증가가 눈에 띄지만 달러의 독보적 지위에는 아직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
기축통화는 단지 경제규모, 금융시장의 심도와 유동성 등 경제적 요인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 전략에 의해서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유럽중앙은행의 정책의 정당성이 국가주권이 아닌 협약에 기초해 있고, 정치-외교적 대외전략은 개별 국가단위에서 추진되고 있다. 또한 유럽중앙은행은 유로 국제화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회원국들간의 견해가 통일되어 있지 않다.
기축통화에 대한 진입 장벽 : 신뢰, 네트워크 외부성
달러의 위기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가장 잘 뒷받침하는 것은 2008년 미국 금융위기가 촉발된 이후에도 달러화가 안정자산으로 인정받으면서 달러가 오히려 상당기간 강세를 보였다는 점일 것이다. 예견하지 못한 대 위기 속에서도 달러화와 미국 재무성에 대한 신뢰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뢰를 만들어가는 것이 힘든 만큼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일정 정도 하락해도 달러를 선호할 경제적 유인은 존재한다. 각국 정부는 자국의 부채나 주요 결제수단과 동일한 화폐단위의 외환준비자산을 선호한다. 각국 중앙은행이 외환시장에 원활하게 개입하기 위해서도 달러를 보유할 유인은 아직 분명하다. 이 같은 네트워크 외부성은 신뢰와 더불어 다른 경쟁통화가 기축통화로 부상하는 데 있어 진입장벽의 역할을 하고 있다.
Ⅳ. 새로운 질서를 위한 모색
다기축 통화제도로의 점진적 전환 예상
현재의 국제통화체제에 큰 충격이 온다 하더라도 달러화가 일순간에 다른 통화에 의해 대체되는 상황이 올 것이라는 전망은 비현실적이다. 미국 경제는 2차대전 직후의 압도적 경제력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여전히 세계 1위의 경제대국이며, 달러화가 가진 국제통화로서의 기반을 고려하면 달러화는 상당기간 그 역할을 상실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미국에 맞먹는 경제규모와 발달된 자본시장을 가진 유로화도 국제통화로서의 지위를 높여갈 것이며, 세계적인 경제강국으로 부상한 중국도 위안화의 국제화에 일정 정도 성과를 이룰 것이다. 따라서 달러를 비롯한 몇 개의 강세통화가 기축통화의 역할을 분점하는 상황이 예견된다.
준비통화는 오직 하나라는 이론적 주장도 있다. 그 이론의 핵심은 다른 사람들이 국제거래에 상용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 사용하는 것이 비용을 최소화한다는 것이다. 윈도우는 운영시스템의 달러라는 비유를 들기도 한다. 이 주장에 의하면 일순간에 다른 표준으로 옮겨갈 정도의 큰 충격이 없다면 기존 기축통화는 그 지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그리 설득력이 없다. 스털링이 기축통화의 역할을 할 시기에도 유럽 내부에서만 보면 스털링은 세번째 통화였으며, 1920-30년에도 프랑, 스털링, 달러가 역할을 나눠가지고 있었다. 또한 유동성이 높은 시장에 준비금을 예치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다른 감안요인이 있다면 낮은 유동성을 감수하고 다른 시장에 투자를 할 수도 있다.
국제적인 합의에 의한 대안적 국제통화체제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현재의 달러주도체제가 점차적으로 다기축통화체제로 진화해 갈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의 문제점에서 교훈을 찾아야
달러가 폭락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만큼 세계경제 특히 미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취약성은 심각한 상태이다. 현재 달러화가 직면한 상황은 R. 트리핀 (Triffin)이 1960년 브레튼 우즈 체제의 내적 모순으로 지적한 이른바 트리핀 딜레마와 정확히 일치한다. 트리핀은 국제적인 기축통화로서 특정 단일 국가의 통화를 사용하는 체제가 부딪힌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기축통화국은 국제유동성을 제공하기 위해 국제수지의 적자를 지속해야 하는데, 이 적자는 기축통화에 대란 신뢰도를 떨어뜨리게 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긴축정책으로 유동성을 흡수하면 경제침체를 낳게 되어 통화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단일 국가의 통화가 기축통화체제가 되면 기축통화국이 공공지출에 엄격한 규율을 가해야 할 당장의 압력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J. 코르나이(Kornai)는 연성예산제약(soft budget constraint)이라는 개념으로 국유기업이 비효율성에 빠질 가능성을 지적했다. 국유기업은 파산의 위험이 적기 때문에 예산제약이 엄격히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비효율성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축통화국으로서의 지위는 미국 연방예산에 대한 제약을 연성화한 셈이다. 미국은 세금인상에 의존하지 않고도 국방과 사회보장지출을 할 수 있었고, 미국경제의 구조적 위기는 그에 따른 대가인 셈이다.
경제학자들과 정책담당자들간에 특정 국가의 통화를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시스템의 허점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IMF 특별인출권(SDR)을 확충하여 대외준비자산으로서의 활용도를 높이자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이 방안은 대외준비금을 절약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장차 초국가적 국제통화 마련의 기초를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전향적인 것이다.
달러위기론은 달러 폭락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보다는 세계경제가 현재 어떤 문제점에 봉착해 있는지를 현실감있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달러 폭락은 더 심각한 경제위기의 재발을 의미하기 때문에, 가능성 여부를 따지기보다는 그러한 우려들이 나오게 되는 세계경제 내부의 문제점들의 해결책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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