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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과 악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 7. 불교의 도덕 판단

지식창고지기 2010. 1. 17. 19:55

2. 선과 악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7. 불교의 도덕 판단

     

      윤리학에서 어떤 것이 좋다 나쁘다 혹은 옳다 그르다고 도덕판단을 내릴 때, 그 대상이 되는 어떤 것에는 개인의 행동이나 사회의 구조 등이 해당된다. 이처럼 도덕판단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행위를 불교에서는 업이라는 관점에서 다룬다.

    업(業, karma)의 산스크리트 어원 kr.는 ‘하다’ 또는 ‘만들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만든다는 것에는 만드는 의도와 만들어진 결과물 등이 관련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kr.에서의 ‘하다’도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하다’이고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하다’이다. 그래서 이러한 뜻을 함축하고 있는 업도 의도나 동기로서의 ‘의지’, 그런 의지를 동반한 활동인 ‘행위’, 그런 행동에 의해 남겨진 ‘영향력’이라는 의미들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불교에서 업은 단순히 ‘행위’ 뿐만 아니라, 그것과 관련된 원인의 측면[의지]과 결과의 측면[영향력]을 모두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의지를 동반하지 않은 활동은 단순한 운동일 뿐, ‘행위’나 행동은 아니다. 따라서 불교적 도덕판단의 대상은 반드시 의지를 동반한 활동이며, 이 ‘의지(cetana 思)’야말로 업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불교적으로 보자면, 고의로 범하지 않은 살인은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으며, 처음에 거론한 한강의 자살자의 경우에서 A의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이처럼 의지의 발동으로 인해 업이 일단 이루어지면, 반드시 ‘영향력’을 미쳐 그 과보를 받는다. 업은 마치 식물과도 같아서, 일단 씨앗이 뿌려지면 과보라는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의지를 지닌 인간이 업을 일으켜 자신의 선악(善惡)업에 따라 생사를 유전하면서 고락(苦樂)의 과보를 받는다는 것이 곧 업설의 취지이다.

    이러한 업설에는 두 가지의 중요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첫째,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사는 신의 뜻이나 숙명이나 우연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스스로가 이루어가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자업자득(自業自得)을 강조하는 이유는, 현실에서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신도 숙명도 우연도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행위뿐이며, 또 이처럼 자유의지를 인정할 경우에만 도덕적 책임의 소재지도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둘째, 업(業)과 보(報) 사이에는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선악의 행위는 세력이 강하므로 행위가 그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 그 행위자에게 여력을 남기는데, 이런 업보의 인과관계는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걸쳐 계속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고의로 업을 짓는 것에 대해서는 현세가 아니면 후세에라도 반드시 그 보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선한 행위는 언젠가는 꼭 행복한 결과를 맺으리라는 확신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확신이야말로 선한 행위를 한 자가 불행을 당하기도 하는 우리 주변의 현실에 대한 의미있는 처방이 될 수 있다. 어떤 일을 할 것이냐를 결단하는 것은 자기 의지의 자유이지만, 일단 지어진 업은 그에 해당하는 과보를 반드시 받는다고 하는 업설의 두 가지 의미는 자유와 필연 사이의 불교적인 조화를 잘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인과업보의 사상을 다룸에 있어 꼭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인과에 어둡지 않아야 하지만, 인과에 떨어져서도 안된다(不昧因果 不落因果)”는 점이다. 좋은 업에는 즐거운 과보가 따르고 나쁜 업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를 수밖에 없다는 인과업보의 필연적 관계성을 잘 인식하여 언제나 선업을 쌓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즐거운 과보에 대한 목마른 기대는 집착과 번뇌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인과업보에 속박되지 않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하는 상대적 선의 세계와 선과 악 모두를 초월하는 절대적 선의 세계가 원융 상통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러한 조화의 관점에 바탕을 둔 인과업보의 사상이 선과 악에 대한 불교적 도덕판단의 기초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