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서정민의 '인샬라 중동'] "한국도 다시 일어서지 않았는가"
기사입력 2009-12-26 오후 1:48:23
지난 12일 두바이에 들렀다. 11월 말 채무상환 유예를 신청하면서 두바이가 세계 경제에 파동을 일으킨 지 보름 만이었다. 두바이의 미래에 대한 국내외 언론의 비관적인 전망을 현지에서 확인하고 싶었다.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신출귀몰의 개발 신화가 이대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재기할 수 있을까?
두바이에 대해 이미 두 권의 책을 집필한 필자로서 현지에서 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현재 진행중인 세 번째 책을 마무리할 수 없었다. 이미 이 책의 원고를 거의 집필한 상태에서 발생한 두바이 금융위기였다. 책의 내용과 상충되는 부분을 짚고 넘어갈 필요도 있었다.
12월 찬 바람을 뚫고 인천공항에서 출발한 항공기는 이날도 만원이었다. 2008년 중반 금융위기 이후 중동에서 가장 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나라 두바이. 그러나 그곳으로 향하는 사람은 크게 줄지 않았다.
한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의 가장 큰 특징은 커플 티셔츠를 입은 승객이 많다는 점이다. 신혼부부들이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현상이다. 그러나 이제는 세계 최고급 호텔, 세계 최대 인공섬, 사막위의 실내스키장 등을 구경하고 쇼핑을 즐기려는 한국인 관광객이 적지 않다. 7성 최고급 호텔에서 '공주처럼' 신혼의 첫날밤을 보내려는 신부의 발길은 가볍기만 하다.
얼마 전보다는 한산한 분위기이고, 부동산 가격의 폭락으로 많은 건설 사업이 중단된 두바이 시내. 그러나 사람들의 모습에 생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도 'IMF 금융위기'를 극복하고 현재의 위치에 와 있지 않는가? 두바이도 충분히 이번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적지 않은 두바이 지도층은 이렇게 말했다.
'두바이경제정책연구소'의 압둘 라자크 알-파리스 소장은 "그동안 지나치게 무리한 투자를 한 것에 대한 반성도 분명히 하고 있다"며 "두바이 정부는 이 위기를 향후 더욱 탄탄한 경제를 일구는 계기로 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두바이 사태를 지켜보는 아랍 세계는 두 가지 큰 시각으로 나뉜다. 일부에서는 두바이가 다시 일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미 중동의 허브로서 자리매김 했기 때문이다.
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두바이의 지난 성장이 구조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로 인해 두바이는 총체적인 위기에 빠져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후자의 시각에 따르면 두바이는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 두바이 거주민들이 지난 11월 27일 마리나워크에서 산책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연합뉴스 |
"지나친 자신감이 화 불렀다"
아랍 언론조차 두바이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에 동정을 보내지 않고 있다. 이유는 있다. 두바이 지도자의 상징은 자신감이었다. 지나칠 정도이기도 했다. 두바이 위기설은 사실상 지난해 10월부터 나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셰이크 무함마드는 이를 과소평가했다는 지적이다.
올해 4월 셰이크 무함마드 국왕은 특별 기자회견을 갖고 "두바이 경제에 최악의 시기는 지났다"고 선언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다른 지역들이 큰 피해를 입은 데 비해 두바이 경제는 상대적으로 적은 영향을 받았다"며 "앞으로 어떠한 위기가 닥치더라도 확신을 갖고 적절하게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의 사업 규모 축소 및 지연 발표가 잇따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건설 프로젝트들은 모두 완수될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셰이크 무함마드는 오히려 두바이 경제에 대한 우려를 반박하기도 했다. 채무 의존도가 높은 두바이 경제의 취약성을 거론해 왔던 많은 서방과 아랍 언론의 보도에 대해 그는 "해외 언론들의 '융단폭격'에도 두바이 경제는 굳건한 상태"라며 "아랍권에서의 경제적 발전은 해외 언론으로부터 흔히 그런 대접을 받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언론의 보도 내용, 그리고 국제 및 아랍권의 우려에도 콧방귀를 뀌는 그의 지나친 자신감에 아랍 언론도 등을 돌린 것이다.
사실 두바이의 고속 성장에 대해 아랍권은 내심 불만과 우려를 표명했었다. '지나친' 개방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이슬람 전통의 휴일인 금요일에도 업무가 이루어졌고, 술집과 디스코텍에서는 매춘도 성행했다.
사우디는 두바이와 접한 샤르자 토호국이 두바이의 지나친 개방 모델을 따르지 않도록 매년 수억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술과 매춘을 허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빚을 얻어 고작 하는 것이 화려한 건물과 외국 여성을 불러들여 술을 팔고 있다"고 두바이를 비난하는 발언을 주변국 아랍인들로부터 쉽게 들을 수 있다.
공급주도형 성장의 한계
두바이의 성장 전략은 외부로부터 마련된 자금을 이용한 공급주도형 모델이다. 수요를 정확히 예측하려는 노력보다는 우선 공급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면서 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실물 없는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공급이 지나치게 부동산 개발에 편향되면서, 거품 붕괴라는 큰 위기와 맞닥뜨리고 있는 것이다. 두바이는 자국 국민총생산(GDP)의 5배에 가까운 3000억 달러에 달하는 개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추진했다.
사막 속 스키장, 7성급 초호화 호텔, 세계 최고층 빌딩, 세계최대 인공섬 등을 건설했다. 또 세계 최대의 수중호텔, 놀이동산, 연간 1억 명을 소화하는 세계 최대 공항 등도 진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공급 전략의 밑바탕에는 외자 조달이 놓여 있다. 두바이 금융위기의 가장 직접적인 배경은 리먼 브라더스 사태로 시작된 국제 금융위기다.
두바이의 성장은 오일머니 덕이 아니다. 두바이 GDP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이하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전체의 원유 생산량은 하루 260만 배럴 내외이지만 대부분 아부다비의 몫이고, 두바이는 그 가운데 20만 배럴 정도만을 생산한다. 그리고 대략 20년 이내에 두바이의 매장량은 고갈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두바이 지도자들이 석유가 아닌 다른 부문으로 경제의 활로를 찾고자 고민해 온 이유는 바로 이처럼 석유 매장량 자체가 극히 적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결국 외부로부터의 투자에 의존한 성장 전략을 추진하게 됐다. 다행히 9.11 테러 이후 서방의 금융 제재를 우려한 아랍의 오일머니가 두바이로 몰려들었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초대형 건설 사업을 대규모로 발주해온 것은 아부다비, 사우디, 쿠웨이트, 이란 등 인근의 산유국들로부터 고유가에 따라 폭발적으로 늘어난 석유 수입이 대거 유입된 데 힘입었다.
특히 아부다비가 가장 큰 투자자였다. 아부다비에서 두바이로 흘러온 자금은 국가간 거래가 아니므로 국제수지에 잡히지 않지만 두바이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외자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 등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도 경제개발 초기에 외자에 의존해 개발을 추진해왔다. 이것이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는 개도국 외채 위기의 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두바이의 경우처럼 짧은 시간에 자국 경제 규모의 몇 배가 넘는 개발 사업을 추진한 나라는 없다.
최근의 국제금융위기 속에서 두바이경제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큰 충격을 받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처럼 수요를 예측하지 않고 외자를 들여와 사업을 먼저 벌여놓고 보는 공급주도형 전략의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아랍권 오일머니가 집중 투자된 미국에서 시작된 국제 금융위기로 추가적인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것이다. 막대한 차관을 들여 추진되던 공사의 대금 및 이자 상환이 불가능해진 것이 두바이 위기의 본질이다.
두바이 재기 긍정적
현지인들의 강한 의지, 그리고 두바이가 이미 구축해놓은 인프라와 허브 역할을 다시 확인하면서 필자는 두바이의 미래가 부정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었다. 이 판단의 근거는 두바이의 허브 역할이 아직은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또 다른 중동 국가에 비해 십여 년 이상 앞선 투자환경, 인프라, 개방된 제도 등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소위 '선점효과'라고 불리는 이런 보이지 않는 두바이의 강점이 향후 몇 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무한 상상력과 창조적 리더십으로 두바이의 천지개벽을 이끌어온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무함마드의 정치적 입지도 흔들릴 가능성은 없다.
2007년 '두바이 모델'이라는 저서를 내놓은 흐비트(Martin Hvidt)도 '선점효과'를 강조한다. 셰이크 무함마드가 주도하는 두바이는 그동안 혁명적이고 창조적인 국가 개조(改造)의 길을 걸어왔다.
한낮에는 섭씨 50도를 웃도는 모래사막 위에 물류, 무역, 정보기술(IT), 의료, 미디어, 레저, 관광 등 세계 최고의 종합 허브를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이를 통해 두바이는 이미 중동 내에서는 위의 분야에서 허브 지위를 달성했다. 최소한 중동지역 내에서는 고지를 선점하고 있다는 얘기다.
선점효과는 상대적인 개념이다. 바꾸어 말하면 두바이가 모든 면에서 잘했다기보다는 주변 국가들이 너무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우디, 아부다비, 카타르, 쿠웨이트 등 주변국은 두바이보다 훨씬 더 큰 영토와 오일머니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보수적인 이슬람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 두바이는 이를 깨는 사고전환을 통해 개방 정도, 경제 제도, 투자 환경 등에서 크게 앞서나가는 하부구조를 이미 상당히 구축했다.
하지만 이제는 미래보다는 과거도 돌아보며 현실을 직시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어떻게 보면 이번 사태는 두바이에 따끔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어떻게 극복할 지가 두바이의 미래에 큰 전환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1990년대 말 금융위기를 극복했듯이 우리도 할 수 있다." 최근 두바이 주민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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